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2
제 62화
가장 궁금했던 문제였다.
그녀가 답했다.
“어째서 사랑하느냐라…… 정말 멋없는 질문이구나. 그래. 정 그리 묻는다면 이리 답하겠다.”
그녀는 붉은 입술을 벌려 나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저 그것은 운명이었느니라.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걸 느꼈지.”
‘얼굴을 보고 반한 거였군.’
미모가 뛰어나긴 참 많이 뛰어나기는 했다.
물론 스승님보다는 쪼오금 못하지만.
* * *
처치는 어렵지 않게 끝났다.
진천희는 왕야의 말씀대로 붕대를 아주아주 크게 감아 상처를 매우 부각시켰다.
역시 연출은 비주얼이 반이다.
왕야께서는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다.
“왕야!”
치료가 끝났다는 것을 알리자 부마, 천유랑이 먼저 호위 무사들에게 부축받으며 들어왔다. 왕야의 표정이 180도 바뀌었다.
“쿨럭, 쿨럭. 랑랑…… 왔는가.”
천유랑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되어 있었다.
‘우리 랑랑은 울어도 아름답군. 세상에, 사람인가. 어떻게 이렇게 일관적으로 아름다울 수 있지? 눈물이 단아한 턱 선으로 흐르는 모습이 마치 선계의 도화 꽃잎이 떨어지는 것 같구나.’
속으로는 엄청난 생각을 하며 그녀는 기침을 뱉었다.
혀를 살짝 깨물어 피를 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와, 왕야! 의, 의원님! 부디 다시 한 번 상태를 봐 주시겠…….”
“아니다. 아니다. 괜찮다. 랑랑. 부디 신경 쓰지 마라.”
“…….”
천유랑의 눈가가 깊게 파였다.
크고 유려한 눈매에 그늘이 지자 그녀는 그 모습도 즐겼다.
그녀는 천유랑의 모든 표정을 사랑했다.
달 아래 천유랑을 처음 보는 순간 그녀는 생각했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눈코입이 반듯하게 대칭적으로 달렸을 수가 있을까.
어떻게 광대뼈가 저 위치에 저 크기로 있을 수 있을까.
한밤중인데도 남자의 얼굴은 달보다 환하게 빛났다.
그때 그녀는 생각했다.
천고의 예술 작품이 눈앞에 있는데 굳이 정략결혼을 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라고.
이놈의 신분이 귀하든 천하든 그녀에게는 그리 중요치 않았다.
정략결혼을 하지 않아 생긴 손실은 주먹으로 해결하면 될 일이었다.
황족으로 태어나 남의 힘에 의지한다면 그게 어찌 황족이라 할 수 있겠나.
두 개의 이능과 뛰어난 무재(武才).
주먹으로 세상을 호령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감히 일국의 황녀라 할 수 없다.
그리고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었다.
그녀는 손을 뻗었다.
“랑랑…… 다시 나를 떠날 것이냐.”
“왕야.”
“주하라고 불러 다오.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녀의 목소리가 퍽이나 가련하다. 결국 그는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떠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빨리 낫기만 해 주십시오.”
“두 번 다시 떠나지 않겠다 약조해 다오.”
“왕야.”
“어서……!”
“……약조하겠습니다.”
진천희는 이 광경을 퀭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둘이서 염병을 하고 있네. 아주.’
모태 솔로인 그에게는 너무나도 괴로운 풍경이었다. 그리고 주왕이 너무나도 가증스러웠다.
‘부마, 천유랑은 들으시오. 지금 여기서 가장 심각한 환자는 당신이오. 당신은 왕야께 속고 있소.’
그러나 가장 아픈 게 분명한 환자는 꾀병 환자 병간호를 하겠다 하고 있다.
“제가, 제가 간호하겠습니다. 주하!”
“랑랑. 그러지 말거라…… 내가 무슨 면목으로 네 간호를 받겠느냐. 쿨럭! 아아, 피가. 피가 멎질 않는구나.”
주왕은 양심이 없었다.
은근슬쩍 나가려던 진천희에게 주왕이 말했다.
“전서구를 준비해 다오.”
“어디로 보내실 건가요?”
“주왕부. 나의 랑랑을 괴롭힌 자들은 피로써 죄를 씻게 될 것이다.”
그녀의 눈이 불탄다. 전쟁의 시대, 패왕의 얼굴이었다.
진천희는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한 곳 더.”
“어디입니까?”
“화주의각이다. 놈들의 말을 들었으면 나의 랑랑의 다리는 이미 없어졌겠지. 그러니 군왕으로서 다음번에는 좀 더 훌륭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따끔한 가르침을 내려주어야겠구나.”
그녀의 붉은 입술이 호를 그렸다. 범의 미소였다.
그 방에 있는 모두가 동시에 생각했다.
‘화주의각은 이제 난리 났군.’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 * *
며칠 후, 화주의각.
“백린의각에서 전서구가 도착했습니다.”
“그래. 언제 도착하나 했다. 크크큭.”
“마 총관님, 어째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그 말에 총관 마진추는 빠르게 표정을 수습했다.
“허튼 소리 하지 말고 어서 대령하거라.”
“예, 알겠습니다.”
“후, 오늘따라 날씨가 맑구나.”
마진추는 피식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았다. 아랫것들 앞인데 너무 가벼운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낸 놈들이 가서 제대로 깽판을 치고 온 모양이야.’
지난번 궁귀 사태로 화주의각의 채면이 얼마나 구겨졌던가.
그것 때문에 약선께서 총관인 자신을 어찌나 갈궜는지 생각만 해도 울화가 치민다.
그 울화를 담아 입심 좀 있다 하는 의원을 고르고 골라 보냈다.
그 결과가 저 전서구다.
‘천하의 백린의선도 화로 머리가 돌아 버린 모양이군. 하하하하!’
그는 차를 한 모금 삼키며 자축을 했다.
“오늘따라 차 맛이 참 달구나. 어디 찻잎이냐?”
“총관, 평소 드시던 용정차입니다.”
“그렇구나. 날이 이렇게 좋으니 차 맛도 꿀맛인 게로구나. 그래, 그런 것이었어. 결국 만물이란 사람의 마음에 달린 것이란다. 수라의 마음으로 보면 세상이 수라가 되고, 부처의 마음으로 보면 세상이 부처처럼 느껴지는 게지. 하하하하!”
“…….”
갑자기 불법까지 전파하며 그는 이 행복을 즐겼다.
그때 밖에서 소란이 일었다.
우당탕탕!
“이게 무슨 소리냐?”
“시동이 넘어진 모양입니다.”
“쯧쯧, 언제나 정숙해야 할 의각에서 그런 경망된 행동이라니. 몹시 매를 치거라.”
그 말에 의각원 중의 한 명이 당황하며 되물었다.
“지난번에는 신속해야 할 의각에서 걸음이 느리다며 매를 치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오늘따라 말이 길구나. 대신 맞겠느냐?”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의각원은 고개를 저었다.
화주의각의 회초리는 몹시 아프기로 유명하다.
-의술이란 맞으면서 배우는 것, 또한 훌륭한 의원이 되려면 고통을 알아야 하는 법.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온 화주의각의 교육법이다.
그러다 보니 새로 들어온 신입들은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시도 때도 없이 매를 맞는다.
‘분명 선선대까지는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환자의 목숨을 다루는 일이니 늘 엄격해야 한다는 뜻으로 선대께서 쓴 글이란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게 대를 거치면서 점점 과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마치 스트레스를 풀듯 신입을 때리기 시작했다.
장난을 치듯 때리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게 맞고 정식 의각원이 되면 그 한을 풀듯 후배들을 더 괴롭혔다.
악순환의 고리였다.
의각원들 간의 서열은 점점 더 공고해졌다.
지금에 와서는 왕부의 병사들보다 상명하복이 더 심해진 느낌이다.
“총관님!”
“들어오거라.”
문이 열렸다. 시동의 무릎이 너덜너덜하다.
크게 넘어진 건지 무릎이 깨져 있었다.
“쯧쯧쯧, 서신 하나 옮기는 것도 못하는구나.”
시동은 잔뜩 겁을 집어먹었다.
“그…… 그게…….”
아이가 우물쭈물거리자 답답해진 총관이 말했다.
“어서 내오거라!”
“네, 네!”
아이가 품에서 꺼낸 것은 새빨간 비단으로 만든 서신이었다.
마치 피로 엮은 것처럼 붉은 비단 위로 황금 용자수가 아로새겨져 있었다.
붉은 비단과 금빛 자수. 그것은 어느 황족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화주의각원들 중에 그 상징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주, 주왕?! 왕야께서 대체 왜 백린의각의 전서구로 서신을 보낸단 말이냐!”
그 말에 대답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마 총관은 서신을 뺏어들고는 포장을 뜯었다.
새하얀 종이 위로 강맹한 필체가 용처럼 질주하고 있었다.
이런 필체를 총관은 알고 있었다.
‘설마 왕야께서 직접 쓰신 건가?’
매우 극히 드문 일이었다.
보통이라면 주왕부의 아랫사람들이 왕야의 말을 대신 적어 내니까.
꿀꺽.
고작 필체만으로도 기가 눌릴 것만 같았다.
그는 천천히 글을 읽어 갔다.
한 번 읽고,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두 번을 읽었다.
두 번을 읽어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래서 세 번 읽었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지켜보는 화주의각원들도 입이 바짝바짝 탔다.
대체 무엇이기에 저리도 오래 읽고 있단 말인가.
일단 평범한 안부 편지는 아닐 거라는 건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었다.
“…….”
삼십 번. 그렇게 삼십 번을 읽고 나서야 총관은 내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툭-
그는 그만 서신을 놓치고 말았다.
떨어진 서신 위에는 간단한 글이 한 줄 적혀 있었다.
[지금부터 화주의각에 주었던 모든 혜택과 후원은 백린의각으로 돌린다.]화주의각에 정적이 밀려왔다.
“…….”
폭풍 전야의 고요였다.
* * *
“뭣이! 지원을 끊으시겠다고! 왕야께서?! 백린의각이 미쳤냐??!!!”
총관의 고함이 의각을 뒤흔들었다.
“파견 보냈던 우리 쪽 애들은 대체 뭐 하고?! 그놈들은 그걸 보고만 있었냐!”
“…….”
모두 입만 다물 뿐 한 마디도 못했다.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안다 하더라도 쉽사리 말을 꺼냈다가는 처세가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너희들은 꿀 먹은 벙어리냐!”
“죄, 죄송합니다!”
“빨리 가서 알아보거라! 어서! 한시라도 빨리 왕야의 마음을 돌려야 한다! 이 사실을 약선께서 아신다면……!”
그때 문이 다시 열렸다.
“총관! 약선께서 지금 당장 올라오라십니다!”
“크어어어억!”
총관의 목에서 혈관이 도드라졌다.
손발을 사시나무처럼 떨기 시작한 것이 위험한 징조였다.
“총관! 총관! 정신 차리십시오! 뭣들 하느냐! 응급약을 어서 내오지 않고!”
시동이 달려가서 단약을 꺼냈다. 총관은 약을 으적으적 삼켰다.
혈압이 빠르게 내려간다.
이렇게 단기간에 혈압을 낮추다니. 과연 약선께서 만든 약이라고 모두가 생각했다.
“끄으으으으으…….”
총관은 탁자를 붙잡고 한숨을 토했다.
“화를 내서 뭐 하겠느냐. 올라갔다 오겠다. 그동안 너희들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확인하고.”
“개방과 하오문 중, 어디로 가면 됩니까?”
정보를 다루는 두 곳이다.
“개방…… 아니다. 하오문 쪽이 좋겠구나. 그쪽 분타가 백린의각 위치와 가까우니 더 빠를 것이다.”
“알겠습니다!”
화주의각원들이 동시에 깊게 허리를 굽혔다.
* * *
주왕의 명으로 화주의각에 대한 지원금이 끊어지고, 백린의각에 지원금을 추가하는 것은 강호 무림뿐만 아니라 황궁의 정치판에서도 그 나름의 파장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것은 진천희가 알지 못하는 이야기.
그로 인해서, 진천희가 알던 미래 역시 조금씩 틀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