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27
제 627화
“근처 산적들의 정보가 있으면 싹 다 가져오시고요. 그리고 여기 외에도 공격당한 곳이 있을 테니 전부 구호를 해주시고. 습격당한 지역은 세금을 면제하여 보고서를 올려주십시오. 알겠죠?”
앞의 이야기야 구호를 위해 필요한 요구이나 뒤의 ‘보고서’는 다르다.
제아무리 장부를 조작한다고 한들, 진천희가 올리는 추가 보고서와 내용이 달라진다면 목이 날아간다.
이게 행정이다.
“어사님의 명에 따르겠나이다!”
쿵!
머리가 부서져라 절을 하고는 냉큼 달려간다.
그 모습을 보며 만선이 전음으로 물었다.
[저놈 앞으로는 이렇게 굴면서 나중에 양민들에게 화풀이하면 어쩌죠?] [그런 어설픈 성정이었으면 오래 못 가죠. 아마 제가 불시에 검문하여 황상께 상소를 올릴 것까지 염두에 두고 철저하게 할 겁니다.] [소각주님의 위치가 그만큼 올라갔으니 저쪽도 긴장을 하는군요.] [네. 이제는 일개 의원의 수준이 아니게 되었으니까요.]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권력의 좋은 점이다.
‘이렇게 큰 힘을 누가 쥐냐에 따라 양민들의 운명이 결정되다니.’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작게 혀를 찼다.
* * *
하루 후.
“오우, 형~ 잠 안 잤나 봐?”
사마현과 흑의인들이 산적들을 포박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그 숫자는 스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오히려 산적들에게 끌려갔던 양민들만 수십 명.
산적보다 양민들이 더 많은 셈이었다.
“산적들이 이것뿐이었어?”
“당연히 세 배는 됐지. 거의 작은 마을을 이루고 살더만.”
사마현은 형을 보고 피식 웃었다.
“너무 격하게 반항하기에 어쩔 수 없었답니다요~ 그래서 살아남은 게 이 녀석들뿐이야~ 그치? 내 말이 맞다고 해줘.”
사마현이 밧줄을 끌어 산적을 당기자 산적이 비명을 질렀다.
“히이이익!”
산적은 공포로 사타구니가 축축해진다.
사마현이 애교스럽게 다시 묻는다.
“그치? 다들 격하게 반항했었지~? 어쩔 수 없이 살아남은 애들이 너희들밖에 없잖아. 그치?”
“예예예예! 맞!! 맞습니다! 저도 사, 산적이지만 참으로 바보 같은 놈들입니다. 그러니까 히이익! 히익!”
오줌까지 지리며 미칠 것 같은 공포로 온몸을 떨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마현이 말했다.
“거봐. 내 말이 맞잖아. 어쩔 수 없었다고. 이건 정당방위야, 형. 정당방위.”
“……그래. 네가 말하면 그런…… 거겠지.”
지존천마에서 사마현이 사람을 어떻게 가지고 놀았는지를 묘사한 구절이 몇 개 생각났다.
인간의 공포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자극하고 사람을 단기간에 미치게 만들었던 것들.
지존천마에서는 그것들을 그냥 ‘놀이’라고 불렀다.
‘광대놀음’이라고 부르기도 했고.
그 행동에 큰 의미는 없다.
아이가 잠자리 잡아다 놀고, 개미집에 물 붓고 하는 게 얼마나 큰 철학이 있어서 그러겠나.
그냥 그게 재미있으니까 하는 거지.
진천희는 애써 떠오른 생각을 지웠다.
‘양민들이 참살당한 것을 보고 현이도 화가 난 거지.’
진천희 자신도 얼마나 화가 났던가.
숙련된 강호 의원이라면 검흔만 봐도 안다.
이놈들이 내질렀던 검은 타인을 죽이기 위해서도 있지만, 그저 자랑하기 위해, 가지고 놀기 위해.
또는 한 번에 못 잘라서 자존심이 상해서 몇 번이고 양민을 내리치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이놈들을 동정하기에는 수습한 양민들의 시체와 밤새도록 치료한 양민들의 상처가 너무 깊었다.
“의외로 형 냉정하네? 진짜로 믿어 주는 거야~?”
진천희가 답했다.
“나는 내 방식이 있듯이 너도 네 방식이 있으니까. 거기까지 간섭할 생각은 없어. 앞으로도 안 할 거고.”
“아, 그렇구나.”
왜일까.
사마현은 진천희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갑자기 한 번 더 말한다.
“아, 그렇구나. 형은 그런 거구나.”
기뻐 보인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진천희는 말했다.
“일단 현령이 남기고 간 포두와 포졸들에게 이자들을 넘기고, 풀려난 양민들도 치료하고 가족들 곁으로 돌려보내드려야겠다.”
진천희는 그리 말하고는 잠깐 몸을 휘청이더니 이내 다시 허리를 세웠다.
“현아.”
“응, 형.”
“나… 조금만 잘게.”
진천희의 입에서 나올 줄은 몰랐던 말.
“그러면 만선 대주, 그리고 현아. 뒤를 맡긴다.”
그 말을 끝으로 천막에 기어들어갔다.
며칠 만의 수면이었다.
* * *
진천희는 죽은 듯이 잠들었다.
사마현과 만선 대주는 진천희가 잠든 막사를 지켰다.
비록 뇌진과 천진, 난만이 서신을 나르느라 곁에 없다고 해도 황구가 있기에 걱정할 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잠든 진천희를 지켰다.
“사마 소문주께서도 소각주님의 협심에 감동한 것이오?”
만선 대주의 말에 사마현이 웃었다.
“그런 것도 있겠군요~ 응응. 우리 형의 협심이 아니었으면 혜아의 목숨도 없었을 거고, 저도 어찌 살지 장담을 못 했을 테니까.”
그 대답에 만선 대주가 고개를 살짝 갸우뚱했다.
사마현이 말했다.
“음~ 뭐라고 말할까요~ 착한 사람은 늘 먼저 가니까.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 형은 똑똑한데 바보 같은 면이 있어서 가만히 두고 보기가 어렵거든요~”
“아, 똑똑한데 바보 같다……. 무슨 뜻인지 알 것 같구려.”
만선 대주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낚싯대를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백린현에서도 그랬지. 세상을 바꿀 만큼 똑똑한 분이 어째서 이렇게 미련할 정도로 다른 이의 생(生)에 집착하는지. 소각주님 정도면 주변 사람들 좀 버리고 자길 위해서 살아도 아무도 뭐라고 못 할 분 아니오?”
사마현은 상체를 구부정하게 까딱였다.
“그런 사람이죠~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걸 모를 머리가 아닌데. 결국 다친 사람들을 구하러 달려가는…….”
사마현은 천막을 슬쩍 보았다.
형은 피곤할 때 몸을 웅크리고 자는 게 버릇이다.
그 상태로 죽은 듯이 잠만 잔다.
지난번처럼 의식을 못 찾는다거나 하는 일도 아니고 그냥 피로로 폭풍 수면 중인 것이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만선 대주가 말했다.
“그래도 소협 같은 이가 동생이라 다행이오. 우리 소각주님은 천성이 의원인 사람이라. 악인의 목숨조차도 고민하는 이이니 말이오.”
“대신 손에 피를 묻혀 줄 사람을 말하시는 거군요~”
사마현의 말에 만선 대주가 어색하게 웃었다.
“음… 틀린 말은 아니오. 하지만, 그만큼 강하고, 선하고, 영특하고……. 불안한 면도 있는 사람 아니오.”
“그 매력에 많은 이들이 따르는 거고요.”
“그렇소. 나 역시 그런 마음이지. 중원에 둘도 없는 분이시니까.”
만선 대주는 그리 말하며 진천희가 있는 천막을 슬쩍 바라보았다.
백린대에 모인 무인들 태반이 같은 마음이었다.
처음에는 더 좋은 조건을 얻기 위해. 또는 낭인으로서 살다가 이제 정착하기 위해 들어온 자들이었다.
일광이라는 별호를 모르는 이가 없다.
진천희가 얼마나 미쳤는지, 강호의 그 소문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백린대에 들어와 가까이에서 그를 보고, 지켜보게 되면 누구라도 같은 마음이 되지 않던가.
그렇기에 목숨을 걸고 소각주를 지키게 되었다.
물론 너무나도 강해져 버렸기에 지킨다는 말에 어폐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한 칼이라도, 일 초라도 벌기 위해 수련해오지 않았던가.
적어도 만선은 그런 마음이었다.
“차라리 형이 강호를 정복하는 게 나을지 모르겠습니다요~”
능글맞게 웃는 사마현을 향해 만선 대주가 한숨을 쉬었다.
“그 소리는 백린의선께서도 하셨네. 하지만…….”
알고 있다.
사마현도 일전에 슬쩍 운을 띄운 적이 있었으니까.
천하일통.
‘부상자와 사망자가 많이 나오는 전근대 재래식 통치 방식이라니.’
다시 생각해도 기가 막히다.
모든 강호인, 심지어 패도는 걷지 않겠다고 말하는 정파 강호인들조차 가슴이 뛰는 천하일통을 그따위로 표현하다니.
어찌 보면 강호에 대한 모욕이기까지 했다.
일광(一狂).
그렇기에 강호인들은 형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대신 미친놈이라며 비웃는 것이고.
형은 그런 자신을 긍정하는 것이겠지.
얼마나 지났을까?
부스럭-
“응응, 황구야. 그만 핥아. 밥 현이가 챙겨 줬을 텐데……. 으음…….”
인기척과 함께 진천희가 일어났다.
사마현은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형, 잘 잤어?”
“응… 역시 막사는 유민족 게르가 최고야. 막사가 아주 뜨끈뜨끈해.”
“나도 막사 보고 놀랐어. 유목민들과 교역 잘 하고 있구나?”
“그치. 혈선교가 문제지, 그리고 이런 말 하면 불충으로 잡혀가겠지만 전통적으로 화 제국은 너무 오만해. 그래서 상대를 야만인으로 취급해버려. 그러니 외교도 그따위고, 유목민들도 감정이 쌓이지.”
“희한한 관점이네.”
“들어 봐라, 현아. 비록 서로 칼을 맞댔다고는 해도, 숙신족이 딱히 더 사악해서 쳐들어온 게 아니에요. 다 인과응보다. 그게 제국의 약한 고리라 혈선교가 노린 거야.”
진천희는 그리 말하며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진천희가 덮은 이불은 유목민 사람들이 짠 직물이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백린의각은 교역을 하고 있다.
“으그그극, 잘 자니 살 것 같다.”
“뭐 먹을래. 형?”
“아무거나 남는 밥 줘.”
왠지 웃음이 나왔다.
“왜 웃어?”
“형이 잘 자서 기분 좋아서.”
“밥에 수면제라도 탈 줄 알았는데 다행이구만.”
“지난번처럼 과로사로 죽을 것 같으면 그거라도 해야지~ 이 아우, 형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사옵니다.”
“으이구.”
사마현은 진천희에게 베개로 한번 맞았다.
그러나 여전히 기분이 좋은지 싱글대며 밖으로 나왔다.
‘아, 형이 건강해졌다.’
잘 자고 푹 쉬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안심이 될 줄은 몰랐던 사마현이었다.
“형! 사슴 고기 카레는 어때?”
“……네가 카레를 만든다고? 솔직하게 불어라. 너 중원인 맞아?”
진천희의 말에 사마현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 * *
그렇게 진천희 일행은 다시 길을 떠나 복건성 경계를 넘었다.
“항주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산적과 사파가 아예 흔적도 없이 다 도망가 버렸구먼. 이놈들.”
백린의각과 하오문이 밀고 내려온다는 소식이 산적들과 사파들 사이에 퍼졌는지 이놈들 죄다 ‘어맛! 뜨거라!’ 하며 도망쳤다.
가는 길에 기왕 튀는 김에 한탕 하겠다고 하는 놈들을 발견했으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처음 봤던 규모까지는 아닌 터라 그럭저럭 수습할 만했다.
“어째 백린대는 실전 경험보다 구호 경험만 느는 것 같다, 형?”
“구호도 실전이야. 현아.”
“뭐, 그쪽이 더 형이 원하는 방향이겠지만.”
본래는 녹림십팔채 산하에 들어 있는 놈들이지만, 녹림십팔채 순위에 들어가는 놈은 또 아니다.
녹림십팔채.
설마하니 이 넓은 강호에 산채가 18개밖에 없겠나.
가장 강한 산채 18개가 녹림십팔채로 이름이 등재되고, 그 이하 세력도 녹림도에 들어가지만 중소 규모의 작은 산적들.
즉, 녹림십팔채 아래에 수없이 많은 중소 규모의 산채들이 있는 셈.
그러다 보니 녹림십팔채는 사실 연합체에 가까운 성격으로.
녹림왕이자 녹림총채주라는 존재가 강한 카리스마와 무공을 겸비하면 그 결집력이 강력해지고, 총채주가 약하면 그 결속도 느슨해진다.
사마현이 말했다.
“그런데 지금 총채주가 천하 십 대 고수에도 들어가지 않아서 딱히 결속이 강한 상황은 아니야.”
“그래?”
“응~ 하오문에 들어온 정보에 따르면 현재 총채주는 제천소성(齊天小聖)이라는 별명을 가졌는데, 생긴 게 원숭이처럼 생겨서 제천대성보다 작은 제천소성이라고 불린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