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33
제 633화
그렇게 생각할 때.
삐이익-!
진천희 머리 위에 올라탄 뇌진이 부리를 딱딱 부딪치며 소리를 냈다.
“응? 왜 그래?”
하늘에 있던 천진과 난만도 어미를 따라 동시에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고.
발밑에 있는 황구도 같이 짖기 시작했다.
컹컹컹컹!
으르릉 섞인 짖는 소리에 ‘무슨 일이야?’ 하고 물으려는 사이.
‘펑!’ 소리를 내며 독연을 뚫고 무언가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 높이는 무려 오십 장!
‘미친! 백오십 미터를 한순간에 뛰어오른다고? 단순 화경의 경지만으로는 불가능한데?’
설마하니 삼존이 산적 편에서 싸우고 있을 리는 없지 않나.
예상 밖의 상황에 눈을 부릅뜨는데 점으로 보일 정도로 높이높이 더욱 떠오르던 그것이 이윽고 하늘에서 몸을 빙글 돌리더니.
“여기 있구나! 이 제갈 새끼야!”
그대로 진천희를 향해 똑바로 떨어져 내리는 게 아닌가.
그건, 사람 옷을 입은 털이 복슬복슬한 무언가였다.
그냥 체모가 많은 건가 싶었는데 꼬리까지 보이는 것이.
‘워, 원숭이?! 왜 원숭이가 봉을 써?!’
경악한 머릿속과 달리 진천희의 목소리와 표정은 침착했다.
현원전단신공은 허둥대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는 공능이니까.
“뇌진. 쏴라.”
삐이이익!
주인의 명령에 뇌진이 날아가 번개로 후려쳤다.
콰과콰과쾅!
“천진, 난만도!”
세 마리의 천뢰응이 번개를 쏘아대자 원숭이는 봉을 휘리릭 돌려 번개를 방어했다.
진천희는 그대로 나무 꼭대기에서 뛰어올랐다.
쾅!
원숭이가 나무를 한 번에 반으로 가르며 착지했다.
그사이 천진과 난만이 연계하듯 번개를 추가로 날린다.
원숭이는 이번에도 봉으로 번개를 막아낸다.
“이게 무슨……! 네놈은 날 보고 당황하지도 않느냐!”
원숭이의 경악 속에서 진천희는 침착하게 빙정검을 뽑아 낙하하며 공격에 들어갔다.
뽑힌 빙정검이 한기를 뿜으며 적을 향해 공기를 가르며 전진했다.
“겁도 없는 새끼. 이래서 천기역행자인 건가?”
다급하게 진천희를 향해 봉을 다시 휘두른다.
콰과과과광!
봉과 검이 충돌하며 엄청난 기파를 만들어냈다.
그제야 진천희는 상대를 자세히 볼 수가 있었다.
‘키가 이 미터가 넘는 원숭이라고?’
멀리서 보았을 때는 헛것을 봤나 했는데 이제는 확실했다.
다른 강호인들도 충격을 받았는지 놀라서 소리 질렀다.
“워, 원숭이 분장을 했나!”
“녹림십팔채 총채주가 왜 그동안 안 나왔나 했는데, 이제 보니 병이 있어 나오지 않았구나.”
“아니오. 특수한 마공일 게 틀림없소!”
놀랍게도 으른의 에-바-랜드 강호 월드에서는 다 말이 되는 소리다.
원숭이 분장을 저렇게 할 수도 있고.
현대 의학으로는 규명할 수 없는 괴질 때문에 저렇게 될 수도 있고.
마공 중에 사용자의 몸을 변화시키는 것도 또 의외로 흔하다.
과거 상대한 고목혈마만 해도 마공의 영향으로 피부가 나무껍질로 화하지 않았나.
하지만 진천희는 다른 가설을 생각했다.
‘이것. 실험 결과가 오염되었다고 폐기하고 다시 해야 한다고 했을 때 유호가 뿜었던 기운과 비슷하다.’
유호보다는 약하지만 그래도 그 성질은 거의 흡사했다.
‘설마 영물인가?’
진천희만이 가장 정답에 가깝게 다가갔다.
그것은 오랫동안 유호에게 처맞아본 경험 덕분이었다.
‘유호는 일을 잘하지. 저자는 어떨까?’
* * *
“본좌의 이름은 연원왕이다. 강호의 동도들은 제천소성이라고 부르지.”
그 말에 진천희는 빙정검을 꼬나 쥐고 차분하게 답했다.
“당신은 인간입니다.”
“……?”
연원왕은 이놈이 왜 뜬금없이 그런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 모습을 보고 ‘괴물’이라고 욕하거나 ‘이미 인간의 몸도 버린 것이냐? 혈선교/마교!’ 하고 일갈당하는 게 일상.
차분하게 당신은 인간이라고 선고하는 놈은 또 처음 보았다.
‘일광이 돌았다더니 사실이군.’
아무튼 연원왕은 말을 이었다.
“뭐어. 네 말과 달리 나는 인간이 아니다. 종족상으로는 대성성(大猩猩)에 속하지.”
대성성!
진천희가 눈을 크게 떴다.
‘산해경에 나온 종족이잖아?’
고서 산해경은 상상이나 신화, 설화에 나오는 괴이한 존재들을 기록한 책이다.
지구 별에서야 상상 속의 도감으로 전해지지만, 이 무림 월드에서는 진짜란 말인가?!
‘춘추시대부터 여러 학자들의 손을 거쳐 계속 가필된 책이니 무협지에서 자주 나오기는 하지.’
무협지 단골 레퍼런스로 쓰인다.
요즘 무협은 아니다.
오히려 최근 웹소설로 넘어오면서 무협은 더욱 담백하고 심플해졌으니까.
90년대 대여점 무협에서 자주 보이던 잔인하거나 성적인 묘사도 이제는 많이 순화되었다.
어찌 되었건 옛날 무협에서 산해경에 대한 언급이 종종 나오곤 했다.
특히 지존천마는 요즘 무협 같지 않은 면이 많고.
‘지존천마는 후반에 투선도 등장해서 여하륜이랑 한판 뜨니까 산해경이 진짜라고 해도 이상하진 않지.’
그런 산해경에 보면, 성성(猩猩)이라는 종족이 있다.
외형은 원숭이와 가깝지만 말도 하고 여러 가지 신이한 힘을 지닌 것으로 표현된다.
‘아니, 이거 완전 손오공 아냐?’
그래서 스스로를 제천소성이라고 부르는 건가.
제천대성이 아니라?
어쨌든 성성이에 대자가 붙은 걸 보니 덩치가 좀 큰 쪽인 것 같다.
진천희가 말했다.
“성성이라는 영물……. 아니 인종인 당신이 어째서 중원의 일에 끼어드는 겁니까?”
아직 공식적으로는 사람 취급을 해주기로 했다.
진 교수는 유호 맛을 잊을 수 없었다.
이놈 mk-2 한 대만 더 놓아도 인류 보건에 혁혁한 기여를 할 수 있을 텐데.
진천희의 노력으로 연구소 상의원들이야 이제 스스로 연구하고 개발하는 상황까지 왔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들이 없어진 이후의 안배.
그 체계를 완성했으니 이제 쓸 수 있는 건 다 써먹어야 하지 않나.
제천소성 연원왕이 말했다.
“응? 크하하핫! 웃기는군. 산의 영역은 본시 우리의 것. 인간이 들어와 살고 있다고 해서 인간의 것이라고 할 수 있나? 대왕께서 계셨을 적만 해도 감히 인간 따위가 산을 오를 수 있었을 것 같으냐?”
‘대왕? 설마… 손오공 말하는 건 아니겠지?’
진천희는 속으로 쌍욕을 뱉었다.
‘설마 이놈을 패면 손오공이 오는 건……? 에이, 설마. 이름도 연원왕(戀猿王-원숭이 왕을 그리워한다는 뜻.)인데 그럴 리가.’
진천희가 말했다.
“같은 사람끼리 너무합니다.”
공식적으로는 이놈도 인간이다.
“미친놈이군. 내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사람 취급을 하다니. 크하하핫!”
왜인지 싫지 않은 눈치였다.
그가 말했다.
“흐흐, 뭐……. 이제 와서야 아무래도 좋다만. 네 덕분에 나도 활개를 더 치고 다닐 수 있게 되었으니까!”
‘활개? 나 때문에?’
천기 머시기랑 상관이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이 퍼뜩 떠오르는 순간, 놈이 곧바로 봉을 휘둘렀다.
진천희가 빙정검으로 막으려는 순간.
자라락!
봉이 구절편으로 변신했다. 아홉 마디의 채찍.
‘검으로 막았다가는 엿 되겠군.’
진천희는 막는 대신 오히려 신법을 사용해 옆으로 피해냈다.
콰과과과광!
일격에 바닥이 깊이 파이면서 사방이 박살 난다.
“이걸 피해? 안 막고? 네놈 대체 안력이 얼마나 좋은 것이냐. 아닌가? 인간이 예지능력을 가졌을 리가 없는데?”
진천희는 대답 대신 파인 자국을 보며 빠르게 생각했다.
‘어마어마한 위력인데? 강기가 느껴지지 않는데 저런 위력이라니. 거기다 무인이 쓰는 기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힘이 느껴져. 그래. 유호.’
천근추 수법으로 버티려 했던 진천희를 나무 뽑듯 순식간에 뽑아다가 던졌을 때 이랬다.
유호가 쓰는 수법은 무림인이 쓰는 무공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유호한테 매일 두들겨 맞았던 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진 교수는 졸업 못 하는 대학원생에게 깊이 감사를 했다.
‘고마워. 유호. 네가 날 살렸다.’
반면 연원왕은 그런 진천희가 신기한지 말했다.
“보통 무림인이라면 검기가 없는 공격에 코웃음을 치며 일합 정도는 막는데……. 네놈 참 기묘하구나.”
그리 말하며 다음 공격에 들어갔다.
들어오는 일격 하나하나가 가공할 정도의 파괴력.
진천희는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연원왕의 공격을 피해냈다.
‘구절편 한 방, 한 방이 무슨 트럭으로 사람 치는 급의 힘인데?’
빠른 데다 무겁다.
괜히 우리가 어릴 때 질량 곱하기 가속도가 힘이라고 배우는 게 아니다.
‘뉴턴 선생님의 가르침이 아주 그냥 뼈에 새겨지네.’
뉴턴의 제2 법칙을 몸뚱이로 느끼며.
쾅, 콰광! 콰과과광!
진천희는 종이 한 장 차이로 놈의 공격을 피해냈다.
‘심플하지만 강력해. 강기 같은 건 안 쓰나? 아니면 못 쓰나?’
어찌 되었건 상대는 영물.
그것도 인간으로 변신 가능한 영물이다.
아마 육각영독사처럼 아득한 수명을 사는 놈일 것이다.
물론 육각영독사가 이놈보다 훨씬 크고 강력한 느낌이지만.
아무튼.
‘내가 모르는 패 한두 장 정도는 엎어놨다고 봐야지. 이건.’
어디, 그렇다면 한번 열어볼까?
이놈이 뭘 숨겨놨는지.
그 순간, 빙정검이 유려한 호를 그리며 나아간다.
태을단선검의 무리를 지닌 검로가 연속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태을단선검 오의.
태을십단(太乙十斷)!
한 호흡에 열 번의 칼질.
흡사 소나기처럼 시야 전체가 검으로 뒤덮인다.
점이 모이면 선이 되고, 선이 모이면 면이 된다.
극쾌속의 찌르기가 벽이 되어 적을 압박한다.
“세상에. 이게 무슨……!”
싸우던 오륜회 검수들이 순간, 화려하고 빠른 찌르기에 시야를 뺏기고 만다.
만선이 급히 말했다.
“정신 차려! 저쪽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 말에 화들짝 놀라 다시 싸우려고 검을 드는 찰나.
그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상대 산적도 진천희의 검로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았던가.
그러거나 말거나.
진천희의 검이 적을 향해 나아간다.
허나, 상대의 몸에 닿은 검기가 여지없이 흩어지는 게 아닌가?
‘타격이 없어?’
연원왕이 기다렸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크카카카. 돌에서 태어나신 대왕에 비할 바는 아니다만, 나 역시 대왕께 선계의 술과 천도복숭아도 얻어먹은 몸이다 이거야! 인간들이 말하는 금강불괴에 가깝다!”
‘천도복숭아가 실존하는 거였어!? 아니. 응룡이 계시니까……. 그럴 수도 있지. 대왕(제천대성)에게 술과 천도복숭아를 얻어먹었다고 하는 거 보면…….’
만약 그런 거라면.
‘이놈도 머리카락을 뽑아 후 불면 혹시 수백 명의 대학원생을 부려 먹을 수 있는 건가?’
소름이 돋았다.
그런 거라면 월봉은 한 놈한테만 주면 된다.
‘뭐 이런 신이 내린 인재가!’
진천희가 눈을 빛낸다. 그러고는 다시 한번 엄숙하게 말했다.
“연원왕! 자꾸 헛된 말로 우리 편을 겁주려 하는데, 나는 네놈이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너는 사람이다!”
“……?”
이 미친놈은 왜 자꾸 자신을 인간이라 우기고 있는 걸까.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순간.
오싹한 기분이 느껴졌다.
왠지 이 눈앞의 인간에게서 멀어져야 할 것 같은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