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39
제 639화
“그치? 그리고 또 하나, 현령이 제대로 일을 하는지 궁금하면 마을 노파가 얼마나 말랐는지 보면 돼.”
“뭐?”
진천희가 놀라서 눈을 살짝 떴다.
사마현이 키득였다.
“보통 식량이 생기면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손주를 먼저 먹이거든. 그렇게 아들, 딸까지 먹인 후에 남은 음식을 먹으려고 해.”
“인간의 본능인가?”
“짐승의 본능일 수도 있지. 어찌 되었든 식량이 늘 많을 수는 없으니까 살날이 얼마 안 남은 자신보다 손주나 자식에게 더 주고 싶은 건 사람 본성이야.”
“그러면 착취를 당하면 노인이 가장 먼저 마르고 병들 수밖에 없겠구나.”
“응. 심한 경우에는 아예 마을에 늙은이가 없는 경우도 있어. 그런 곳은 현령이 마을을 극심하게 괴롭힌 거지.”
“…….”
“보통의 노인들은, 특히 농사일을 평생 해온 노인들은 씨앗 한 줌을 삼키는 것보다는 자기가 죽더라도 내년에 밭에 심기를 원해. 자기는 어차피 내년을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 씨앗은 내년 봄에 심으면 다시 태어날 테니까.”
지독한 논리였다.
하지만 사마현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서 가족들 다 자는 새벽쯤에 산에 올라갔다가 영원히 안 내려오시지. 시체도 못 찾는 일도 많아. 그걸 좋게 포장해서 발을 헛디뎌서, 눈이 어두워서 돌아가셨다고 말하는 거고. 자살보다는 표현이 낫잖아.”
그건 지옥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게 포장한다고 해도 양민들의 삶이었다.
사마현이 말을 이었다.
“기아가 심해지면 인육을 먹기도 하고, 그때는 아이나 늙은 사람이 먼저 희생하기도 한다는데 지금 새 황제가 들어온 이후로는 그런 곳은 없어.”
“그건 다행이네. 인간이 거기까지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건.”
“맞아. 그리고 백성들을 쥐어짜는 현령이 많긴 하지만, 선황 때만큼 작정하고 들어가는 새끼들이 줄었다는 거고. 이건 어디까지나 하오문의 눈 닿는 곳 정보 바탕이야.”
사마현은 거기까지 말하다가 한마디 덧붙였다.
“……혹시 모르지. 외진 오지 마을 같은 곳은 그럴 수도 있는 거고.”
통신이 없으니까.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네 말만으로도 많이 좋아진 거긴 하네.”
“응. 옛날에 비해서는 훨씬 좋아진 거지.”
‘그리고 그렇다 하더라도 갈 길은 여전히 먼 거고.’
현실은 언제나 그렇다. 천국과 지옥 사이의 어딘가 어중간한 지점.
지금은 지옥에서 조금 더 멀어진 셈이지만, 그렇다고 천국과 가까운 것도 아니다.
그게 현실인 거지.
진천희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새벽인데 아이를 업고 바삐 걷는 양민들과 부축을 받으며 걷는 노인이 보였다.
“여기는 그래도 현령이 사람이긴 했구나.”
“뭐, 산적이 주는 뒷돈 받아먹는 건 다 똑같으니까. 극단적으로 뜯어먹은 건 아닌 거야. 어르신들이 영양 상태가 좋아.”
진천희는 생각했다.
‘그래서 다들 백린현으로 오려고 하는구나.’
서로 생각하는 최악의 기준이 달랐다.
진천희에게 있어서는 현령이 산적을 보고 눈감아주는 것만으로도 최악이나, 사마현이 느끼는 최악은 달랐으니까.
“지금은 산적이 없어진 틈에 빨리 움직이는 거지. 물건도, 사람도. 오오, 가는 방향을 보니 백린현으로 가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아도 다른 현에서 오는 사람들이 많아.”
그 말에 사마현이 피식 웃었다.
“그치. 형은 아직도 부족하다 느낄 수도 있겠지만, 사실 아니거든. 세상에 그런 곳 없어.”
“…….”
진천희는 잠깐 생각에 잠긴다.
형의 표정이 무거워지는 것을 본 사마현은 재빨리 화제를 바꾸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도 말 맞춰야지. 형.”
진천희는 고민하다가 물었다.
“나랑 네가 입고 있는 게 보타문의 무복인 걸 봐서는 대충 보타문 속가제자라는 설정인가?”
“응~ 친자매고, 운룡표국에 속해 있고, 보표로서 두 사람이 움직이고 있다고 말을 맞추면 돼. 호패도 위조해 놨어~”
‘와 치밀하다.’
여기서 보표란?
표사로서 단독으로 움직이며 물건을 배달하거나 사람을 호송하는 걸 뜻한다.
현대로 치면 쿠판맨처럼 작게 개인 택배 기사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하는 김에 택시 앱도 켜서 사람도 옮기는 거지.
“사저~ 오늘은 저기서 쉬어 가자~”
목소리까지 변조하니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사마현, 이 무서운 아이. 역할과 캐릭터가 혼연일체가 되었어.’
자신도 고대 원시 인터넷 때부터 TRPG를 꽤 잘했다.
물론 공부할 게 너무 많아서 자주 하진 못했지만,
부잣집 아들놈 하나가 자꾸 진천희보고 TRPG를 하자며 졸랐고 –그 시절 한남동 저택에 빔 프로젝트까지 설치해서 TRPG방까지 꾸미며 살던 놈이었다.- 나름대로 제대로 해보겠다며 역에 몰입도 하고 그랬었다.
‘나중에는 워함마 40k도 했었지… 그 돈 많이 드는 게임을…….’
피규어로 하는 전쟁 게임 비슷하다.
국내에 잘 알려지지도 않아서 같이 할 사람 찾는 것도 일이다.
사실 한국에서는 게임에 쓸 피규어보다 서울 한남 땅값이 더 비쌌지만 아무튼 그랬다.
그놈은 진심이었고. 걔 부모님은 왜인지 진천희를 무척 좋아하셨다.
진천희는…… 내심 질투가 났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표를 안 내려고 무척이나 노력했다.
‘그놈도 잘 지낼까. 잘 지내겠지. 그 돈이면.’
아무튼 진천희는 사마현을 보고 있자니 오랜만에 호승심이 들어서 열심히 목소리 연습을 했다.
하늘에 남아있던 달이 이제 완전히 지고 해가 뜨기 시작했다.
동쪽 지평선을 따라 붉은 띠가 떠오를 즈음.
어느덧 두 번째 마을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 * *
사마현은 말 속도를 줄이며 말했다.
“단석산의 집은 삼명(三明)에 있어. 그곳에 도원동(桃源洞)이라는 절경이 펼쳐진 지역이 있는데, 그곳에 저택을 지어 놓고 살지.”
그 말에 진천희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근처가 애초에 권문세가 별장이 있는 유명지고, 큰 절도 있고 해서 사람들이 제법 있다지?”
“응. 이미 잘 알고 있네. 돈 많고 시간 많으신 분들이 쉬러 오시는 곳이지. 워낙 풍경이 아름다워서 신선이 산다고도 하더라고.”
“그 동네는 뭐가 맛있으려나.”
진천희는 입가의 침을 쓰윽 닦으며 말했다.
새벽부터 달렸으니 이제 슬슬 배가 고파질 때다.
급한 대로 허리춤에서 미리 준비한 막대 과자를 꺼내서 자신도 하나 먹고 사마현에게도 하나 건넸다.
“오우? 땅콩이랑 호두랑…… 잣인가? 용케 이런 걸 만들었네. 형?”
“응. 그걸 한번 싹 다 튀겨 주고, 거기다가 곶감도 넣어서 꿀 넣고 딱딱하게 굳혔어.”
그래놀라 바.
현대는 프로틴 보충제로도 나오는 모양이지만, 진천희는 그냥 달고 열량 폭주하는 간식으로 만들었다.
여행용으로 쓰기 딱이니까.
오독오독-
“이거 재료값 많이 들겠네?”
사마현의 말에 진천희가 답했다.
“재료 자체는 의외로 괜찮아. 하지만 손은 많이 갈 거야.”
“그래?”
사마현의 눈이 빛난다.
아무리 봐도 이 녀석, 힘 많이 써야 하는 표사들이나 무인들을 상대로 객잔에서 팔아볼 모양이다.
“이거라면 살수들이 매복해 있을 때 먹으면 딱이잖아.”
그 말에 진천희가 어이없어 되물었다.
“살수들이 매복할 때 맛있는 걸 찾아?”
“걔들도 사람이야. 같은 벽곡단을 사야 하는 상황에도, 당밀 들어간 것부터 꼬박꼬박 먼저 팔려 나가더만.”
문득 저 어디 장문인을 폭찍하려고 대기하고 있다가 복면을 슬쩍 내리고 그래놀라 바나 오독오독 씹고 있는 살수들이 떠올랐다.
사마현이 말했다.
“사람에게 삶의 윤기가 얼마나 중요한데. 그건 착한 놈이고 나쁜 놈이고 관계없어. 애초에 문파에서 육성하는 살수들은 보통 고아거나 어릴 때 팔려 와서 삶의 즐거움을 다 거세당하는 애들인데.”
“그렇다고 듣긴 했어.”
‘강호가 사람 목숨 파리 목숨인 이유’ 사대천왕 중의 하나다.
보통 흑의 입고 나왔다가 주인공한테 추풍낙엽처럼 썰리는데.
나중에 알아서 독단 물고 자결까지 하는 걸 보면 의원 마음이 좀 그렇다.
“본인들이 의식을 하는지 안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단맛을 먹고 싶어 하긴 하더라.”
의외긴 했다.
보통 살수란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가 금기였으니까.
무협지에서도 주인공이 살수라고 하면 감정을 못 느끼는 냉혹한 설정이 늘 붙었고.
처음부터 그런 훈련 속에서 감정을 간직한 캐릭터가 아니면, 감정이 되돌아오기 시작한 건 최소한 소설 중후반인 경우가 많았다.
‘꼭 함께 성장한 살수 친구들끼리 죽고 죽이는 에피소드가 하나는 들어가지.’
그런 자들도 무의식적으로 단것을 찾는다는 건가.
“…….”
진천희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다음에는 내가 물엿 넣고 제대로 만들어볼게.”
“오, 형. 이 사업이 마음에 들었어?”
“그렇다기보다는 재활이라는 거지.”
“재활?”
전생에서 본 소년병 재활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사람을 쏴야 얻을 수 있었던 초코바를 거기서는 그냥 재활 프로그램에 올 때마다 하나씩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여긴 강호니까 그런 건 불가능하겠지.’
애초에 살수는 금분세수가 거의 불가능하지 않던가.
걔들은 칼을 놓으면 원수에게 찔려 죽거나, 비밀 유지를 위해 같은 편에게 칼 맞아 죽는 게 일이다.
애초에 이 세계는 현대의 기준으로 보면 소규모 내전이 계속되는 중이고, 중앙 정부인 관(官)은 이를 방치하는 형태의 시스템이니까.
사람 혼자서 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별거 아니야. 이거 하나씩 먹다 보면 객잔에 자주 오게 될 거고, 자주 오다 보면 주변 사람도 보일 거고. 벽곡단만 사먹다가 이렇게 모양도 다른 거 사먹고 있으면, 내가 이런 거 좋아했구나 하고 생각하는 기회도 있을 거고.”
형의 말에 사마현이 받아쳤다.
“신상품이 나오면 그것도 시험 삼아 먹어볼 거고?”
신상 그래놀라 바를 큰맘 먹고 구입해서 살행 전에 까먹는 살수라니, 상상이 안 간다.
사마현이 말했다.
“뭐, 형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알겠는데 나는 돈이 될 것 같아서 할 거야. 이름은 밀곡단 정도가 좋겠네.”
“꿀 밀(蜜)을 쓴 거야?”
“발음만 보면 비밀을 뜻하는 것 같기도 하고. 벽곡단이랑 한 글자만 다른데 엄청 맛있어 보이니까.”
“그래.”
그렇게 즉석에서 밀곡단으로 이름을 붙였다.
오독, 오독-
“그나저나 일단은 근처에 간 다음 잠입을 하는 게 좋으려나?”
그 말에 사마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게 정석이긴 한데 운룡표국에서 조사 나왔다고 하고 정문으로 들어가는 것도 방법이지. 어느 쪽이든 장단점은 있으니까.”
그 말에 진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한 잠입 임무는 해본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
선희 공주 때도 잠입 임무라기보다는 미끼가 되는 것이었으니 더더욱 어렵고.
반면 이런 일을 많이 해온 건 사마현이었다.
“차라리 그러면 일단 근처에 도착해서 탐문 수사 및 잠입을 해보고, 그다음 정문으로도 들어가는 건 어때?”
“둘 다 하자?”
그 말에 사마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돈에 관련된 일은 다다익선이옵니다. 시간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니 할 수 있는 건 다 하는 게 좋지요.”
사마현은 소매로 입을 가리며 키득였다.
그가 입은 옷은 보타문 검수의 그것이나 그 위에 입고 있는 장포는 제법 멋을 부린 차림이다.
일을 하러 온 건지 한량처럼 놀고먹으러 온 건지 알 수 없을 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