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5
제 65화
상인은 그리 말하고서 뒤돌아섰다.
냉정했다. 그러나 맞는 말이었다.
무인에게 다리를 자른다는 건 목숨을 자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런 일은 다른 장소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어떤 중견 규모 문파의 회의실.
그 안에는 총관과 문주가 앉아서 회의를 하는 중이었다.
“문주님, 백린의각으로 옮기는 쪽이 어떻습니까?”
“주왕야의 부마 때문에 하는 말이겠구나.”
“예.”
잘릴 다리를 살려서 고친다는 건 무인에게 큰 의미였다.
화주의각과 거래하던 문주들의 고민이 커져 갔다.
“확실히 장점이 있긴 하다만 그동안 본문의 내단은 화주의각에 의뢰해 만들어 왔지 않았느냐. 대형 문파야 문파 내에 의방이 갖추어져 있어 직접 조제를 해도 되겠지만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을 화주의각에 의탁해 왔다. 그걸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은 어렵겠구나.”
“문주님.”
“허나, 그건 우리 같은 늙은이들의 생각일 뿐. 장차 본문을 이끄는 것은 너희 같은 젊은 무인들이겠지. 모여서 함께 회의를 해 보자꾸나.”
작은 술렁임이 큰 파문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 * *
천하에서 세력을 가지고 있다는 자들 전부가 술렁거리는 와중.
가장 불이 떨어진 것은 하오문이었다.
과거 부마가 의탁했던 하오문의 분타는 이미 불에 타 재가 되어 버린 후였다.
그럼에도 주왕의 그 분노는 식을 줄을 모르고 점점 더 커져 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오문 내부도 문제였다.
분타들이 불타고 분타주들과 그의 세력도 함께 사망했다.
이제 비어 버린 자리를 누가 차지하게 될지도 큰 문제였다.
안과 밖에서 싸움은 커져 갔다.
자신의 온돌방에 누운 채로 서찰로 읽고 있던 제갈린.
서찰에는 하오문에 대한 정보가 적혀 있었다.
제갈린은 옆으로 고개를 돌려 진천희에게 이렇게 말했다.
“희야. 원래 관과 무림은 서로 상관하지 않는다는 규칙에 대해 알고 있니?”
어느 무협지에서든 한 번은 언급되는 매우 기본적인 이야기다.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고 있어요.”
“그래.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그렇듯, 그렇게 쉽게 분리가 되지 않는단다. 당장 주왕께서 들르신 곳이 바로 우리, 강호의 의각이잖니. 마찬가지로 표국과 정보상 같은 곳도 이렇게 관과 무림이 함께 이용하게 되지.”
“어려운 문제군요.”
“그래. 그게 바로 인간사란다. 우리 같은 의각도 어찌 보면 중립 지대라고 할 수 있으니 늘 생각해서 행보를 밟아야 한단다.”
스승님의 눈가가 곱게 휘어졌다. 진천희가 고개를 저었다.
“어려운 이야기네요.”
“어찌 보면 쉬운 이야기지. 기준을 정하기만 하니까.”
“기준이요?”
“관과 무림, 양쪽 모두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을 정하여 움직이면 된단다. 하오문은 제대로 기준을 지키지 않고 욕심을 부렸기에 이렇게 화를 당하게 된 셈이지.”
문득, 진천희는 스승님이 자신에게 무엇을 가르치려는 건지 깨달았다.
그는 자신이 죽고 없어진 이후를 상정하여 말하고 있었다.
진천희가 그 대신 각주를 물려받을 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진천희는 고개를 저었다.
“헤헤헤, 스승님. 저는 잘 모르겠어요.”
“희야…….”
“음. 어른들 이야기는 하나도 모르겠으니까. 안 들을래요! 이런 건 제가 더 어른이 된 다음에 들려주셔야죠~”
그때까지 살아 계셔야죠.
진천희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이었다.
못 나온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제갈린은 말없이 자신의 제자를 바라보았다.
“…….”
진천희는 억지로 화제를 바꾸었다.
“이다음에는 어찌 될 것 같아요. 스승님? 이 세상에서 술과 범죄자가 없어지지 않는 한 하오문은 절대로 안 없어진다잖아요.”
무협 소설에서 하오문이 없는 건 보지 못했다.
그건 인류 역사에 범죄가 없어진 적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래도 세력은 약화될 거란다. 그리고 아마 적절한 때에 적절한 방법으로 해결되겠지. 오랫동안 지속될 수는 없으니까. 지난번에 매독 치료를 받고 간 무화 남매에게 새로운 기회가 생긴 것 같더구나. 분타주, 어쩌면 그 이상도 노릴 기회가 온 거지.”
제자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제갈린은 더는 의각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진천희가 물었다.
“언제쯤 해결될까요?”
“음, 아마 다음 주 내에는 해결되겠지.”
* * *
다음 주. 황제가 칙서를 내려 직접 주왕야를 달랬다.
애초에 관아의 협조 없이 독단적으로 왕부의 군사를 몰아 일을 처리하게 되면 사법의 근간이 흔들리기 때문이었다.
그녀 입장에서는 지역 관아도 하오문에게 매수되었을 가능성이 높기에 참지 않았겠지만 이 이상 황제가 봐주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황제는 부마, 천유랑에게 유랑후(侯)라는 칭호를 내려 정식으로 부마에 맞는 격을 갖출 수 있게 해 주었고, 공신 가문의 양자로 편입시켜 호적을 바꾸어 주었다.
거기에 황가의 피가 이어져 있는 황손을 수양딸로 들여 주왕부의 대를 이을 수 있게 하였다.
이렇게까지 달래니 아무리 성정이 불같은 주왕이라 하더라도 더 화를 낼 수가 없었다.
거기에 무화에게서 서신이 왔다. 조만간 좋은 소식을 보낼 수 있게 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자세히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하오문 내에서 두 남매의 위치가 올라가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과연 스승님의 혜안 그대로였다.
* * *
백린의각 주변의 산천초목이 진초록색으로 피어나던 어느 날, 진천희는 스승과 서로를 마주보며 독대했다.
진천희는 스승의 방에 앉아서 유리창을 통해 그런 산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흑전의각과의 교류는 순차적으로, 그리고 비밀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혈생노괴는 이따금씩 찾아와 진천희에게 무공을 전수해 주기로 했다. 그러기 위한 기초적인 비급을 몇 권 두고 갔다.
허나 아직은 배울 생각이 없었다.
모든 것은 기초를 먼저 단단히 다지고 난 연후에 익히는 게 좋았다. 그렇지 않으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될 테니까.
진천희는 그렇게 생각하며 싱그럽게 피어나는 초록의 생명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스승님이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꼭 여름을 처음 본 사람 같구나.”
반은 틀렸으나 반은 맞는 말이기에 진천희는 작게 미소 지었다.
“산의 여름이 참 싱그럽습니다. 스승님.”
“그래도 밤공기가 아직은 차가우니 방심은 금물이란다.”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사이를 유호가 가로지른다.
“사과차입니다. 여름 풋사과로 만들었지요.”
풋사과 특유의 시고 달달한 향이 방을 채웠다.
초여름 햇빛 냄새였다.
스승님은 차를 한 모금 삼키고는 만족한 듯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후,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진지하게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지 않느냐? 준비되었니?”
“네.”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리는 진천희가 요청해서 가지게 된 자리였다.
의각에 들어오고 나서 몇 달.
왕각연을 치료하고, 사 대 당주에게 인정을 받아 부술당을 신설했다.
그 이후 오행신공을 전수받고, 외과 의학 지식을 체계적으로 전수하기 위해서 외과 의학의 지식을 서책으로 만들었다.
또한 틈틈이 외과 의학의 전수를 위해서 수술을 집도했으며, 항생제인 페니실린까지 만들어 냈다.
“지금까지 제가 가진 의술을 전수하고 있었습니다만, 사실 주먹구구식이었거든요.”
“그런 체계적인 지식이 주먹구구식이라…….”
“그래서. 더 자세하게, 그리고 체계적으로 의술을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스승님께 대화를 요청드린 거구요.”
제갈린에게도 아직 시기상조라고 해서 알리지 않은 지식은 많았다.
예를 들자면 세포라는 개념이 그랬다.
애초에 항생제인 페니실린(백린석유와 백린신단이라고 이름 붙여진)의 진짜 효능조차 의원들을 포함하여 백린의선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으니까.
-희야. 너는 내 제자이지만, 한 명의 의원이라고 생각한단다. 모든 것을 말해 줄 필요는 없지만, 네가 아는 의술에 대해서 가르쳐 다오. 나 역시 내 모든 것을 너에게 가르칠 테니.
강호, 전형적인 사제 관계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무인이 아니라 의원이었고,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기도 했다.
‘무엇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까.’
이 날을 위해 참 많은 것을 고민했다.
결국 답은 하나였다.
스승님이 이해를 하시든 하지 못하시든 전부 다 이야기하기로.
생명 앞에서 계산은 무의미했다.
둘의 지식이 합쳐지면 많은 무인을 살릴 수 있으리라 보았으니까.
“우선, 제가 알고 있는 지식들은 부술에 치우쳐져 있습니다. 또한 기존의 약학들과는 많은 부분이 이질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승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안광에 차분한 빛이 돌기 시작했다.
오행진기의 진기를 이용해서 제갈세가의 비전인 현원전단신공을 운용해 뇌를 일깨우고 있음을 진천희는 깨달았다.
이렇게 되면 필기도, 녹음기도 필요가 없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무기, 뇌를 사용하면 되는 문제니까.
진천희는 계속해서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하나, 둘 이야기를 꺼냈다.
필요하다면 그림을 그려 설명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스승님은 궁금한 것이 생기면 곧바로 진천희에게 물었다.
둘의 본질은 무인이 아니었기에 자존심 같은 것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배움에 대한 열의와 모르는 것을 알게 된 것에 대한 희열만이 둘 사이를 가득 채웠다.
하지만 단기간에 끝날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서 해가 떨어졌을 때,
스승인 제갈린이 말했다.
“어마어마하구나. 이런 지식이라니…….”
“지금까지 설명드린 것도 대략적인 개념에 가까운 것이니까요. 자세하게 가르치려면…… 적어도 몇 년은 걸립니다.”
“그렇구나. 대단해. 대단하구나.”
스승인 제갈린은 고개를 주억거린다.
“세포라… 그런가. 작은 것들이 모여 하나의 생명을 만드는가.”
스승의 눈이 반개한다. 그리고 스승의 몸에서 오색찬란한 기운이 안개처럼 흩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서서히 회전한다.
“설마…….”
진천희는 긴장했다.
무협 소설의 단골손님.
궁귀에게도 일어났던 현상이 스승님에게 일어나는 건 아닌가 하고 조금 기대됐다.
그러나 제갈린의 몸에서 일어난 안개가 다시금 제갈린에게로 빨려 들어가 사라졌다.
스승의 눈에 빛이 나면서 반짝인다.
“주인님. 괜찮으십니까?”
“괜찮다, 유호. 후후후. 이 나이에 깨달음을 얻을 줄이야… 내 체질만 아니었다면 아마도 큰 성취를 얻었을 터인데 아쉽군…….”
“주인님…….”
“그래도 이것만으로도 제법 가슴이 가벼워진 기분이야. 제법 좋아졌어.”
“정말이신가요?”
“물론이네.”
‘아… 안타깝다…….’
진천희는 스승의 모습에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지금 건으로 환골탈태라도 했다면 천형에서 벗어났을 텐데.
그렇게 쉽게는 안 되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