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60
제 660화
대욕탕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스승님 전용이다.
일단 사 대 당주님들은 목욕하러 왔다가 상사 만날 일이 없도록 스승님 처소에서 머언 곳으로 삥 돌아간다.
이분들은 천기를 읽는 야생적인 감을 가지고 있는지 뭐 시키려고만 하면 사라져 있다. 그리고 같은 당 의원들도 못 찾지.
아래 의원들은 당연히 스승님과 사 대 당주랑 같은 탕 쓰기 싫으니까 또 돌아서 가버리고.
그것도 상의원들 이야기.
중의원, 하의원들은 들어갔다가 상의원의 ‘라떼는~’으로 시작하는 근성론을 듣기 싫으니까 눈치 봐서 자기들끼리 쏙 들어간다.
그러면 우리 연약한 상의원들은 수발들 삐약이들이 없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리며 자기들끼리 탕에 들어가지.
들어가서 누가누가 더 몸이 나쁘나 자랑한다.
백린의각 온천 피라미드가 이렇게 돌아간다.
위로 올라갈수록 외로운 구조다.
그리고 그 피라미드 최정점 스승님은.
“음, 새로 만들어서 깨끗하구나.”
남의 머리카락 하나라도 떨어져 있으면 역정 내실 분이다.
혼자 들어가시는 게 백린의각의 평화를 지키는 일.
그렇게 신축 대욕탕(이라고 부르고 사실상 스승님 전용 탕)은 오늘도 평화롭다.
진천희는 쭈그려 앉아서 타일을 확인한다.
“음, 잘 붙여 놨군요.”
로마식 목욕탕을 일부 차용했다.
바닥에 깔린 타일들로 백린의각을 상징하는 기린 모자이크도 박아 놨다.
그리고 장수를 상징하는 거북이, 학, 사슴, 기린 석상이 네 모서리에서 온천수를 뿜고 있다.
“여기는 비교적 위에 있는 탕이라 많이 뜨겁구나.”
“네. 아래쪽 탕이 좀 더 온도가 낮게 설계되어 있으니까요.”
스승님 전용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지옥탕이라고 불리는 이 뜨거운 열기를 버틸 인간이 별로 많지가 않기 때문.
보통은 족욕하는 온도를 스승님은 그냥 쓰신다.
한마디로 사람을 삶는 온도.
스승님의 거구의 몸이 자리를 잡자 온천물이 출렁거리며 거대한 파도를 만들어냈고.
진천희도 구석으로 들어갔다.
“자, 그러면 이야기해보자꾸나. 혈선교를 물리쳤다고 했지? 장천군 말이다.”
“네. 그리 어렵지 않게 물리쳤습니다. 스승님.”
스승님은 바구니에 있던 유자주를 허공섭물로 띄워서 제자에게 던졌다.
술 주(酒)라는 글자가 들어가지만 취기가 없어서 사실상 그냥 달콤한 음료.
유자와 약초를 넣고 졸인, 그야말로 건강주다.
알코올 없는 건강주.
어린아이들도 마실 수 있다.
심지어 대나무 대롱도 건네주신다.
진천희는 과거 빠나나우유를 떠올리며 쭈압쭈압 유자주를 빨았다.
탁 쏘는 유자청의 맛이 시원하다.
“보험 사기 조사하러 갔는데 일이 커지더라고요.”
“그래. 네 행적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진천희는 장천군을 만나기까지의 이야기와 마을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도원동의 이상한 점을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람의 몸뚱이로 영단을 만든다라. 왜 혈선교가 그렇게 강한지 알겠구나.”
“네. 무학에 대한 깨달음이 없는데도 강했죠.”
“사지가 멀쩡하다는 서신은 반만 믿었는데 진짜로 멀쩡하더구나.”
그 말에 진천희는 윽, 하고 침음을 삼켰다.
‘내가 그렇게 신용이 없었나…….’
너무하지 않으십니까. 스승님.
속으로 그리 생각하며 말을 삼킨다.
왜냐면 진짜로 박살이 났는데 괜찮은 척 서신을 보낸 게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여장은 또 했더구나.”
그건 이야기 안 했는데 어찌 아신 걸까.
“이름이 너무 뻔하긴 했죠? 사마희와 진천현이라니.”
“그래. 그런 이름이라니. 요즘은 들키는 걸 즐기는 게냐?”
“…….”
말리기도 전에 사마현이 먼저 그렇게 불렀다고 말해 봐야 변명일 뿐이려나.
제자는 대답도 못 하고 유자주만 쭙쭙 빨았다.
“그리고 황상도 황상이시지. 남의 제자를 그렇게 부려 먹으려면 동창 몇은 붙여 주는 게 예의가 아니더냐. 내, 참.”
제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서 대머리가 되라고 저주했습니다!”
“……너다운 저주구나. 딱 사소하고 고통스러울 것이.”
대머리가 뭐 어때서? 이만큼 악독한 저주가 어디 있다고.
스승님은 뭐가 즐거우신지 피식 웃으셨다.
‘그래도 다행이다. 생각보다 화가 덜 나셨어.’
제자가 무사한 것을 직접 확인하셨기 때문일까, 아니면 장문의 서신들이 도착해서 어떻게든 스승님 화를 풀어 주었기 때문일까.
원인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제자 입장에서는 가슴을 쓸어내릴 일이었다.
새콤한 유자주를 다 먹고 내려놓으니 이번에는 스승님이 유자를 통째로 건넸다.
“탕에 띄워 놓을까요?”
“최상급 유자를 목욕용으로 쓴단 말이냐?”
확실히 유자는 딱 봐도 크고 좋은 향이 나는 것이 특히나 귀해 보였다. 스승님이 말했다.
“먹으렴.”
“네?”
“무당산에서 천 년 된 나무에서 딴 유자란다. 피로 회복에 좋고, 감기 회복에도 좋단다. 내상 회복에도 도움이 되지.”
“아…… 그렇군요. 그러면 곧바로 유자청을 만들어 먹겠습니다.”
“무당분들은 그냥 먹더구나. 유자청을 해서 먹으면 약효가 떨어지거든.”
스승님이 태연히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이 시고 쓴 걸 그냥 먹으라고?’
누가 유자를 귤 먹듯 까먹겠나. 졸이거나 술로 담가 먹지.
허나, 스승님이 자애롭게 말씀하셨다.
“먹으려무나. 희야.”
“네, 네!”
‘화 풀었다는 말은 취소.’
그랬다. 이 세상에서 백린의선의 뒤끝만큼 긴 건 없으니까.
진천희는 눈물을 흘리며 스승님 보는 앞에서 생유자를 하나 다 까먹어야 했다.
다행히 무당산의 천 년 유자나무에서 땄다는 말대로 생각보다 쓴맛은 강하지 않았다.
귀물은 귀물이었다. 하지만 시다. 너무 시다.
레몬을 생으로 먹어도 이것보다는 덜 실 것 같다.
“크윽, 스승님. 피로가 푸… 풀리는 기분입니다!”
“그래. 영단의 효능도 있는지 작게나마 내력이 회복된다고도 하더구나.”
“어, 엄청 비싼 거겠네요.”
“그래. 원래라면 외인은 못 구하는 귀한 물건인데 권. 제. 님. 께. 서. 특별히 보내주셨단다.”
아. 화풀이했다.
이건 백 프로 권제님께 화풀이한 거다.
그렇게 진천희는 유자를 생으로 먹고 2%만큼 더 건강해졌다.
* * *
“왔으니 좀 쉬게 하고 싶지만 네 녀석은 그럴 녀석이 아니지.”
“헤헤헷!”
진천희가 탕에서 뒤통수를 긁적였다.
유자 하나를 통으로 먹고는 의외로 입에 맞는다며 한마디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게 또 먹다 보니 끝 맛이 달아서 진미였으니까.
이래서야 벌칙의 의미가 없지만, 스승 입장에서는 귀한 걸 먹였으니 그럭저럭 넘어가실 모양이었다.
“네가 봐줬으면 하는 환자가 있단다.”
“환자요?”
“그래. 조금 특별한 환자지.”
특별한 환자.
그 말은 특별히 ‘까다로운’ 환자란 뜻이었다.
“우선 이 제국에서 권문세가라고 할 만한 가문이 얼마나 있는지 알고 있느냐?”
“음……. 제국팔가(帝國八家)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제국을 좌지우지하는 핵심 여덟 가문이다.
황상께서 전례 없이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이 여덟 가문이 힘을 합치면 황권이라도 능히 억누를 수 있다.
물론 그렇기에 아무 때나 거부권을 행사할 수는 없고.
황상 역시 제국팔가를 마음대로 쥐락펴락하지는 못한다.
그게 현 화 제국의 정세.
“그래. 일전에 보았던 육헌이 제국팔가의 하나인 육가의 사람이지.”
“그렇군요.”
“그리고 오늘. 그 제국팔가의 하나인 가가(賈家)의 환자가 와 있다. 그 조상 중 유명한 이는 삼국 시절 태위의 직위까지 올랐던 가후다.”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군.’
가후(賈詡). 자는 문화(文和).
그래서 가문화라고 부르는 이들이 많다.
가후 하면 삼국지에서도 대충 10위 안에 들어가는 책략의 귀재이며 처세술이 기가 막혀 조조의 밑에서 자살하게 된 순욱과는 달리 거의 여든까지 장수하다 노환으로 사망했다.
그 사망한 시점에는 가문도 잘 번성시켰다.
삼국지를 본 사람들은 알지만 그때는 자기 한 몸 챙기기도 힘들고 본인 집안 챙기기는 더 힘든데 가후는 그걸 했다.
‘가가(賈家)가 가지고 있는 식읍과 재산을 생각하면 그 당시 기준으로도 상당했지.’
물론 지금은 말할 것도 없다.
진천희가 말했다.
“그런데 스승님. 제국팔가의 혈족이라고 해서 저희가 뭔가 특별 대우를 할 건 없습니다만…….”
환자에게는 최선을 다한다.
인간의 지혜가 부족하여 치료할 수 없는 난치병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언제나 온 힘을 다해 치료해오지 않았나.
딱히 세가가 있든 없든 그런 건 의외로 중요치 않았다.
“허나, 이 병을 치료한다면 제법 큰 대가를 주기로 했단다.”
후원금이나 인맥.
어느 쪽이든 주겠다는 뜻.
생각해보면 한이정을 치료하며 백린의각에 큰 조력자가 생기지 않았나.
그뿐만 아니라 당시 한이정의 할아버지 제독태감이 보내주었던 막대한 후원금은 백환후와 새로운 분타 확장에 큰 도움이 되었다.
“오오오! 주는 돈은 언제나 땡큐죠!”
진천희가 눈을 빛냈다.
“하여간 네 녀석은.”
스승님이 혀를 차더니 이렇게 말했다.
“일단 네가 가서 직접 진단해 보거라. 나는 치료하기 어렵다 판단했다만…….”
그 말에 진천희가 한쪽 눈썹을 찌푸렸다.
“스승님이 치료가 어렵다 하시면 저도 어려울 텐데요……?”
“그건 아직 모르는 일 아니냐.”
“음…….”
진천희는 턱을 문지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불초 제자! 진단하러 가 보겠습니다!”
* * *
열네 살.
작은 키의 환자가 앉아 있었다.
마치 고릴라처럼 전신이 털로 뒤덮인 아이는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았다.
한창 예민한 시기에 온몸이 털로 뒤덮여 있다는 건 친구를 사귀는 것도 제대로 된 사회생활도 불가능하다는 뜻.
특히나 이 시대는 더더욱 자신과 다른 존재를 배척하는 데에 익숙하다.
처음 진천희는 이 아이도 연원왕과 같은 영물일까 싶었지만 곧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진료 기록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이 제국에서 가후의 후손들이 그리 녹록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으니까.
‘진맥 결과를 보면… 다모증(털과다증/Excessive hair growth)이군.’
어째서인지 가가(賈家)에는 대대로 털이 많은 후손이 태어나곤 했다.
언제부터 이러한 일이 시작되었는지는 외부에 밝히지 않아 알 수 없으나 세간에서는 ‘저주’라고 부르고 있다.
누가, 어떤 저주를 걸었는지는 모르겠다만. 가후의 후손 중 하나가 이렇게 선천적으로 다모증을 타고난단다.
‘보통 선천적 다모증은 유전자적 이상으로 발현되긴 하는데 말이지.’
현대 지구였다면 유전병으로 진단을 내렸겠지만 여기는 진짜로 저주가 실존하는 곳이니 뭐라 하기 어렵네.
다른 의원들이 먼저 진단하기로는 아이의 신체는 모두 정상이다.
진천희 역시 아이를 진맥했다.
‘음. 역시나 종양 문제는 아니고. 호르몬 불균형 문제도 아니고. 약이나 독 때문도 아니고.’
진천희도 소견은 같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렇게 타고난 것.
현실에서도 다모증이 심각한 사람은 얼굴도 털이 뒤덮는데, 마치 늑대인간이나 설인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끝없이 털이 계속 자라는 터라 주기적으로 잘라 주기까지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