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63
제 663화
아랫마을에서는 마침 평소보다 더 큰 장터가 열렸다.
폭죽이 사방에 터지고, 아이들은 입에 먹을 걸 하나씩 물고 신이 나서 달려가고 있었다.
진천희는 그런 가월에게 이것저것 가르쳐주었다.
“저건 용 탈입니다. 안에 사람이 여러 명 들어 있지요. 움직일 때마다 같이 움직이는 겁니다.”
“오오!”
“약장수도 왔네요. 음… 대형 의각에서 검증된 약만 구매하시는 걸 권합니다.”
백린의각 앞마당이지만 약장수도 버젓이 왔다 가곤 한다.
장터란 원래 그런 것. 대신 많이 사기 친다 싶으면 지나가던 하의원들이 한마디 보태기 때문에 적당히 하고 간다.
그게 정도(程度)니까.
“우와!”
“보통 불로 묘기를 합니다.”
약장수가 입에 불을 넣고 다시 불을 쏘자 사람들이 모두 소리 지르며 박수를 쳤다.
그녀도 같이 박수를 친다.
“아까 그것 다시 먹어 봐도 되요?”
“음? 아, 매운 대창 꼬치 말하시는 거죠?”
가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기다리면 되죠?”
보아하니 약장수의 묘기를 더 보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네. 여기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황구와 함께 있으니 별문제는 없으리라.
진천희는 재빨리 꼬치를 사러 갔다.
다만 한번 꼬치를 소진해서 다시 굽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돌아온 그곳에는.
‘……그래. 영화에서도 꼭 없더라.’
이러면 보통 납치를 당하고 범인이 몸값을 요구하는 루트겠지만.
컹컹!
‘오우, 황구 알리미 확실하고.’
이래서 황구를 붙여 놨다.
진천희는 곧바로 몸을 날려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했다.
어떤 흑도들이든지 이 불돼지 대창 꼬치로 처맞다 보면 두 번 다시 매운 것을 못 먹게 되리라.
“와… 미친……. 사람이 왜 저렇게 생겼어?”
“털 옮는 거 아니야?”
예상 밖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악인이 몸값을 위해 납치한 게 아니라, 어린애들이 몰려서 위아래로 그녀를 훑어보고 있었다.
“야, 황구만 꼬시면 된다고 했잖아!”
“황구가 귀여운데 못생긴 애도 같이 왔어.”
대체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가월의 얼굴을 가리던 삿갓도 어디론가 벗겨져 있었다.
“와, 진짜 털 옮겠다!”
그리 말하며 한 애가 돌을 던졌다.
그때 진천희가 곧바로 난입했다.
탁-
“우리 친구, 폭력은 쓰지 말자.”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진천희 자신도 어렵다.
지구에서도 주변 놈들은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고, 그 애가 대학 입시까지 하고 있던데 자신은 아이는커녕 결혼도 한 적이 없으니까.
그래서 부모로서의 시야 같은 건 모른다.
보육원 출신이라 평범한 가정을 경험해본 적도 없고.
하지만 그보다는 상처받은 담당 환자가 우선이었다.
가월을 돌아보며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습니다. 제가 너무 들떴나 봐요.”
그녀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소백룡?”
“일광!”
“얘들아, 일광이다!”
“우와아아아!”
아이들 눈에 감탄이 서린다.
허나, 가월의 심장은 조금 부서진 후였다.
‘아마 평생 생각나겠지.’
이런 건 그랬다.
몸으로 두들겨 맞는 게 아니어도 평생 기억에 남는다.
당해본 사람만 아는 상처들이니까.
하지만 그걸 어릴 때는 모르지.
그때였다.
가월이 말했다.
“야, 그러는 네놈들은 얼마나 이쁘다고!”
반말?
귀를 의심하는 순간, 돌을 던졌던 놈의 뺨에 가월의 주먹이 꽂혔다.
빠악!
무공이 실리지 않은 공격인데도 애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허억?”
“털 괴물이 육칠이를 공격했어!”
“털 괴물? 말 다 했습니까아아?!”
진천희가 말리려고 들자 황구가 갑자기 진천희 옷자락을 꽉 물었다.
“황구?”
끼잉, 끼이이잉!
아이들 싸움에 끼지 말라는 의미.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옷이 찢어지든 말든 다시 가려고 하니까 이번에는 잠자코 놀고 있던 뇌진이 푸드덕거리며 진천희의 시야를 가렸다.
“으악! 뇌진까지!”
삐익, 삐익!
그동안 가월은 자신을 놀렸던 놈들을 남김없이 패기 시작했다.
“이 쓰레기들! 이 바보들!”
도망치는 애들의 뒤통수에 가월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욕을 했다.
털이 북슬한 얼굴에서 눈물이 흘러나온다.
그제야 뇌진도 황구도 진천희를 풀어 주었다. 그러고는 황구가 기다렸다는 듯 이마로 진천희를 툭 건드린다.
‘아까는 가지 말라더니, 이제는 가 보라고?’
하여간.
뇌진은 황구의 뜻에 따라 함께 말렸다고 치고.
늘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황구다.
애들 심리에 관해서는 진천희보다도 빠삭한 게 황구였다.
“괜찮습니까?”
“……안 괜찮습니다.”
눈물을 소매로 쓱쓱 다 닦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제가 이겼네요.”
“네. 이기셨습니다.”
“처음으로 이겨 봤네요.”
“그렇군요.”
“그동안 저런 눈빛을 했던 건 죄다 가문 어른들이라 싸울 수가 없었거든요. 그분들은 경멸만 할 뿐 나쁜 말을 안 하니까. 그래도 애들은 아예 돌까지 던지니까 대놓고 싸울 수 있었어.”
그녀는 다시 울었다.
이윽고.
“제가 이겼어요. 좀 많이 추했지만.”
한마디 더 덧붙였다.
진천희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네. 훌륭하게 이기셨습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가월은 계속 소매로 닦다가 갑자기 도망치는 애들을 향해 소리 질렀다.
“내가 이겼어! 바보들아–! 내가 이겼다고!”
뭐라고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주먹맛을 본 애들은 한마디도 못 하고 그냥 멀어진다.
“헤헤헤헤. 헤헤헤.”
가월은 그저 바보처럼 웃는다.
인생 처음으로 이겼다. 무엇에 이겼는지는 그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슴의 응어리 하나가 톡하고 깨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시고 쓴 유자 맛이었다.
하지만 그 향만은 달아서 웃음이 멈추지가 않았다.
아마 그래서 사람들이 유자를 좋아하는 거겠지.
참으로 아프고 바보 같은 짓이었다고 가월은 생각한다.
“경치 좋은 곳 가요. 사람 없는 곳.”
그래도 할 가치는 있었다.
향만은 달았으니까.
“알겠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기묘한 소풍이었다.
* * *
진천희는 가월을 데리고 산으로 향했다.
폭포가 흐르는 곳으로, 과거 진천희가 스승님의 병을 고치기 위해 몰래 빠져나왔던 그곳이었다.
경치가 무척이나 아름다워 진천희만의 비밀 장소였다.
가월은 거기 앉아서 폭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콰르르르-
쏟아지는 물줄기가 마치 천둥과도 같아서 무심코 홀려서 들어가 버릴 것만 같았다.
가월은 무릎을 끌어안고 한참 폭포를 바라본다.
진천희는 가월에게 말을 걸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곁에 있어 주었다.
더 있자는 말도, 가자는 말도, 그렇다고 괜찮냐는 말도 하지 않는다. 그냥 있을 뿐.
그 배려가 상냥해서 왜인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유폐되고 나면 자결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군요.”
“네. 가씨세가에 필요 없는 장손은 살아 있을 가치가 없으니까요.”
둘째나 셋째, 또는 분가였으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졌으리라.
“황상께서는 제국팔가(帝國八家)를 치워버리고 싶어 하십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가(賈家)가 어떤 틈을 보여서는 안 되니까요.”
하나는 전체를 위해 살아야 한다.
그 안에 실리 외의 어떤 사감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
황손들이 황위를 두고 싸우던 그 전쟁 속에서, 가씨세가는 어떤 선택을 하였나.
결코 파도에 거슬러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파도에 빈틈을 보여서도 안 된다.
어머니 가완은 숙련된 노잡이였다.
다른 세가들이 앞서서 파도를 타기 시작할 때, 가완이 이끄는 배는 결코 앞서서 나간 적이 없었다. 그리고 다른 배들보다 먼저 파도를 선택한 적도 없었다.
그리고 가장 약할 거라 생각했던 파도를, 그 파도가 거세어져 가는 틈을 보고 재빠르게 탔다.
지금의 가씨세가는 제국팔가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강대해졌다.
본가뿐만 아니라 분가의 모든 아이들이 관직에 진출하여 세를 형성하고.
깊은 원한은 만들지 않으며, 만들어야 할 때는 반드시 뿌리를 뽑아 후환을 남기지 않았다.
그 파도를 탔기에 여기까지 온 어머니지만 그렇다고 파도를 믿지도 않았다.
‘따님, 들으십시오. 파도는 누구의 편도 아닌 법입니다. 파도는 그저 어부들이 모두 고기밥이 될 때가 돼서나 만족할 것입니다. 그러니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이번 파도는, 가가(賈家)가 타고 있는 파도는 특히나 그런 편이지요.’
그렇기에 가월은 어머니를 깊이 존경했다.
‘따님의 자리는 따님의 것이 아닙니다. 가가(賈家)의 것입니다. 쓸모가 없다면 치워질 것입니다. 이 어미는 언젠가 죽을 것이고, 다음 노잡이가 제대로 된 자가 아니면 파도는 배를 뒤집을 것이니까요.’
모든 것은 가가(賈家)를 위해.
누구보다 신중하고 의심이 많은 당대 노잡이가 말했다.
그렇다면 그것은 법이리라.
이 격동 속에서도 살아남았으니 더더욱.
“제 몸이 털로 뒤덮인 순간, 저주가 시작됨을 알았습니다. 어머님은 마음의 준비를 했고. 저도…… 할 생각이었죠. 그게 가문을 위한 거니까.”
진천희가 물었다.
“가문의 저주가 맞습니까?”
“모르겠습니다. 일단 주술적으로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지만 돌아오지는 않았네요.”
‘그러면 과학으로 치료할 수 있나?’
그녀가 말했다.
“혹자는 선대가 손에 묻힌 피가 자손들에게 영향을 미친 거라 했으나, 누구도 확실한 것은 모릅니다. 답이 없으니 이리 살아가는 것이지요.”
“…….”
진천희가 물었다.
“여전히 쓸모가 없어지면 죽을 생각이십니까?”
“의원님은 참 이상하십니다. 제국팔가의 딸, 그것도 유폐될 후계. 자칫 성가셔질 게 뻔한 일에 이렇게 신경 써 주시니 말입니다.”
이상한 인간.
그래서 일광인 걸까. 그녀는 작게 중얼거렸다.
진천희를 본다.
부드럽고 선하고, 그런데도 완고한 면이 있는 이 의원을.
사람들은 미쳤다 부르고, 괴짜라고 부르나 그럼에도 자신의 걸음걸이를 조금도 늦추지 않는 기묘한 자를.
“오늘 참 즐거웠습니다. 마을 장터에서 사람들 노는 걸 보는 것도 즐거웠고요. 절 놀리는 애들을 때려주는 것도 속이 시원하더이다. 마지막 외출로 삼기에는 나쁘지 않지요.”
“…….”
“사람이 참 이상합니다. 죽기 위해서는 온갖 이유가 다 필요한데, 살기 위해서는 그런 사소한 이유 하나면 충분하니까요.”
그녀는 깊게 숨을 쉰다.
이윽고 이렇게 말했다.
“다음에도 장터에 오고 싶습니다. 시비는 다시 걸리고 싶지 않지만, 그 공연을 보고 싶으니까요. 바보 같습니까?”
그 말에 진천희는 고개를 젓는다.
“저도 삶이 많이 힘들어 죽고 싶은 적이 있었습니다.”
전철에 몸을 던지고 싶었다.
딱히 미래가 암담하다거나, 삶이 외롭다거나 하는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일이 너무 많았고, 잠을 자지를 못했다.
나를 위한 위로로 택시라도 잡을까 했는데 그런 날은 택시도 안 잡히더라.
그래서 그냥 전철에 몸을 던지고 싶었다.
그냥 한 걸음만 앞으로 내디디면 됐었다.
사람이 너무 피곤하고 힘드니까 기관사의 정신적인 충격이나 주변 사람들의 고통 같은 것도 머릿속에 들어오질 않았다.
웃기게도 그것도 기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더라.
그때 폰을 보았다.
폰을 켜서 뭐라도 보려고 했다.
그때 본 게 웹 소설이었고.
물론 그때는 유료 웹 소설이 체계화된 형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인터넷으로 소설을 볼 수 있었다.
다음 화가 올라올 때까지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진천희는 다시 살았고.
긴긴 과로가 끝날 때까지 그랬다.
병원 밖으로 오랫동안 못 나갈 때도 많았다. 그래도 소설을 읽을 수 있었다.
U튜브도 지금처럼 보편화되진 않았던 시절이었는데, 그래도 웹 소설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