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65
제 665화
“……어… 혹시 지난번에 박피하던…….”
사마혜는 떠올렸다.
곰보 자국을 해결하는 것이 활인이라며 환자들의 얼굴 흉터를 고친 다음 그 기술을 고스란히 전수했던 나날들을.
그 귀하디귀한 경지를 가지고 대체 왜 박피를 하냐고, 다들 정신이 나가 있었다.
일단 그 경지까지 갈 수 있느냐도 문제였고.
사마혜는… 아슬아슬하게 가능하지만 그런 생각까지는 안 들었다.
그저 미친 듯이 힘들 뿐.
은공이나 백린의선이야 기연과 영약으로 똘똘 뭉쳐서 내공도 많은 데다가 그 무학은 생사를 넘나든 자들이니 ‘후, 좀 피곤하다’ 하면서 어깨나 좀 두드리고 말지.
사마혜는…… 그런 건 없다.
그렇기에 훨씬 느리고, 훨씬 많이 쉬고, 훨씬 효율이 안 나올 뿐이었다.
“제에모……? 제모라고요? 털 없애는 데 또 그걸 해요?”
“요체는 비슷해. 혜아야, 연습하면 된다. 내가 그렇지 않아도 실험용 돼지 준비해 놨어! 몇 달에 걸쳐서 할 수 있는 검증도 이미 다 끝난 상태라서 나와 스승님은 바로 하면 돼. 이제 너만 오면 된다!”
대충… 은공에게 사연을 들은 사마혜가 말했다.
“아……. 그런 거라면 확실히 가슴 같은 부위는 제가 해야겠네요. 생명이 위독한 상황도 아닌 데다가 계속 제모해야 할 거고.”
“그래. 혜아야! 말 잘했다. 이게 성공하면 환자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진천희가 눈을 빛냈다.
사마혜가 되물었다.
“하지만 그… 저주 같은 거면 어쩌죠? 털이 다시 자라면?”
“…….”
진천희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불쌍할 지경이다.
사마혜가 말했다.
“그……. 시술 전에 액막이 제라도 지낼까요?”
“우리가 하는 일이 저주가 아니게 해 달라는? 과학적인 질병이길 바라는 비과학적 의식이겠구나.”
과학적이길 기원하는 토속 JE-SA라니.
이게 무슨 개소린가 싶지만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해야지. 어차피 매년 봄 되면 연구당 앞에서도 지내니까.”
달에서도 생존한다는 곰벌레도 죽이는 게 실험실인진데, 이거 잘 지내면 어째 좀 더 애들이 잘 크는 기분이 든다.
여기는 음양오행&풍수지리가 지배하는 세계가 아닌가.
진천희는 그렇게 사마혜와 함께 과학을 기원하는 토속 세리머니를 했다.
* * *
대망의 시술일이 되었다.
미리 얼굴 부분 털을 깎아서 모근이 잘 보이도록 노출시켰다.
맨들맨들하게 완전히 바짝 깎기보다는 지구 기준으로 3mm~5mm 정도는 남기고 깎았다.
본격적으로 시술하기 전.
진천희는 가월에게 거울을 건넸다.
가월은…… 억지로 용기를 내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것도 잠시, 도로 거울을 덮어서 내려놓는다.
“참 못생겼네요. 털이 좀 남아 있으니까 닭 껍질 같아 더 징그럽고. 아, 울렁거려.”
적나라한 자학에 옆에 있던 사마혜와 다른 의원들이 살짝 놀랐다.
제국팔가의 가씨세가.
그 후계가 이 정도로 마음이 상해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
‘어쩔 수 없나. 또래 애들을 만나 봐야 상처만 될 터이니…….’
사마혜가 기억하기로 어린애라고 더 착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기 안에 자기가 너무 크다 보니, 도리어 남의 마음을 존중하는 법이 미숙했다.
싫은 것은 참는 법도 배워야 가능한 거니까.
진천희가 답했다.
“눈썹은 어떻게 해드릴까요? 그 부분은 남겨 두어야 할 거니까요.”
“…….”
그런 소리 그만하라는 말도, 위로도 하지 않았다.
필요한 말을 우선할 뿐.
가월은 고민한다. 그러다가 문득 사마혜를 보았다.
예쁜 얼굴이고 예쁜 눈썹이었다.
질투는 나지 않는다.
전래동화에서는 꼭 예쁜 사람을 자기처럼 추한 사람이 질투를 하고 나중에 벌을 받는다.
하지만 현실은 감히 질투를 할 기력도 없다.
하루만 네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그것도 약간 비참한 기분이 들어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못생겼으니 착하게라도 살아야 한다고 되뇔 뿐.
예전에는 억지로 밝은 척을 하거나 웃기는 척을 해봤지만 그마저도 반응이 안 좋아서 포기했다.
문득 진천희의 눈썹을 보았다.
부드럽고 온화한 인상의 눈썹.
하지만 자신의 성격은 부드럽지도 온화하지도 않다.
그걸 알고 있으니 더 힘들다.
진천희가 말했다.
“생각나는 게 없다면 적당히…….”
“……어머님과 닮은 눈썹으로 해 주세요.”
“…….”
진천희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럴 만했다.
어머님이 어떻게 자신을 생각하는지는 외인인 의원조차 잘 알고 있는 일이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애정을 놓을 수가 없어서.
“어머님과 똑같은 눈썹이면 좋겠어요.”
“……알겠습니다.”
비슷한 눈썹인 딸이라면 혹여 다시 털이 자란다고 하더라도 기억해 주지 않을까.
사마혜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저어, 하나만 물어도 되나요?”
무례인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이 정도는 물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라면 팔 부분에 미리 시험을 해보려고 했다는데 그걸 마다한 이유가 궁금합니다만.”
가월이 답했다.
“모름지기 절망이란 짧고 강렬할수록 좋답니다.”
“그건…….”
“어중간하게 넘어질 바에는 그냥 제대로 넘어지는 게 마음 정리도 편하니까요.”
기묘한 철학이었다.
하지만 왠지 이해가 될 것도 같았다.
진천희가 답했다.
“그러면 최대한 어머님과 닮게 그리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상의원이 앞으로 걸어오더니 눈썹을 그려 나갔다.
진천희가 답했다.
“환자께서는 차라리 제대로 넘어지는 게 마음 정리가 편하다 하였으나,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목소리는 사무적이었으나 묘하게 온기가 느껴지는 말투.
진천희는 말을 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루어낸다면, 일어서게 된다면, 평생을 잊지 못하겠죠.”
“…….”
“그 경험이 사람을 살게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른인 진천희가 아이인 가월에게 말했다.
그것은 아이였던 진천희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잘 끝내고 맛있는 거 먹읍시다.”
“……맛있는 거라면……?”
“뭐 좋아해요? 혹시 달고 살찌는 거 좋아하세요? 저는 좋아하는데.”
조금 피로에 찌들었지만 명랑한 목소리.
일광은 여전히 일광이었다.
* * *
선현의 말씀에 인간은 겉모습의 미추보다는 내면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그런 멋진 사람이 많아진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대다수는 보이는 것을 중시하고 보이는 것으로 행동을 정하곤 했다.
사실 그랬다.
눈은 마음의 창이니까.
언제나 눈이 먼저 움직이고 나면 그다음 이성이 바로잡는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에는 혐오감을 표출하지 않는 정도,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거다.
‘결국 세상만사는 선현의 말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거고.’
못생긴 수준의 얼굴도 아니고, 이건 사람이 아닌 얼굴이니.
가월은 쓰게 웃었다.
점혈에서 깨고 나서 그녀는 거울을 보지 않았다.
희망을 품지 않기 위해서였다.
어머님도 만나지 않았다.
분명 기대를 할 거니까.
아직도 어머님을 사랑한다.
병아리가 처음 본 상대를 좇듯, 자식이 부모를 좇는 건 본능과도 같아 어쩔 수 없나 보다.
하지만 반대로 굳이 그녀를 증오하고 미워할 이유도 모르겠다.
만약 어머님이 그녀를 아껴 후계로서 자리를 굳혀 준다고 한들 가씨세가 가주로서의 기능은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니 답은 멸문이다.
가문이 멸문당한다면 가월 자신부터 목이 날아갈진대, 그 동정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가월은 칠현금을 뜯고 서책을 읽었다.
백린의각의 수많은 별채 중의 하나.
장기 입원하는 일도 왕왕 있다 보니 별문제는 아니었다.
어머님도 허락하셨다.
마지막 기회이니 정말로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었다.
문득.
그건 자신, 가월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머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님도 포기하는 과정이 필요했다면… 그런 거라면…….’
가슴이 조금 달달해졌다.
하지만 다시 기대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오늘은 계란말이를 달달하게 부쳐 왔습니다~ 상태도……. 어디 좀 볼까요?”
거울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 방.
일광만이 찾아와 맛있는 것을 주곤 했다.
“얼굴 상태에 대해서는 가르쳐 주지 마시고요.”
가월은 다시 말했다.
일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알겠습니다. 정 궁금하면 물어보시고요. 그런데 본인 팔다리 보면 대충 알잖아요?”
“봤어요. 그런데 기대가… 되어서 안 보려고요.”
“으음. 좋습니다. 털이 다시 자랄 수도 있다는 게 걱정된다는 거죠?”
가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그녀는 자신의 손등을 본다.
거뭇해졌다.
하지만 기분 탓일까, 전보다 덜 자란 기분이 든다.
털도 듬성듬성해지고.
그 말은 지금 얼굴도 그렇다는 뜻일까?
알 수 없다. 하지만 묻는 게 두려워서 다시 이를 악문다.
거울을 보는 것도 아직 두렵다. 바보 같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랜 상처가 잡아끌고 있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시간을 보내는 것. 그때까지 살아 있는 것.
다시 시술을 받는다.
그리고 다시 칠현금을 뜯으며 시간을 보냈다.
‘어머님은 나를 버릴까.’
알 수 없다.
‘나는 쓸모가 없을까.’
설령 그렇더라도 죽지 않기로 결심했다.
디리리링-
어느 날, 진천희가 다시 그녀에게 다가왔다.
“제 생각에 환자분께서는 결론을 내는 게 무서워서 그냥 이 상황에 안주하시는 것 같습니다.”
어떤 것이 결정 나기 전.
그 상태.
배우 지망생, 아이돌 지망생,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지망생들.
떨치고 나가서 프로가 되거나 한계를 깨닫고 다른 직종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공시처럼 시험으로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닌 직군의 지망생, 결론이 확정나기 전의 그 애매한 단계를 원하는 경우가 있다.
미적지근한 희망이다.
‘결말이 나는 건 괴롭지. 도망치고 싶고.’
집착적인 희망.
확실한 건 하나 있다.
결론을 내리려면 용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필요한 건 거울이었다.
천으로 덮여 있어서 아직 아무것도 볼 수 없지만, 그가 그것을 가져왔다는 것은 그만큼 결심했다는 뜻.
“할 수 있는 걸 다 했다는 뜻이군요.”
언젠가 새는 알을 깨고 나가야 한다.
그렇지 못한 새는 알 속에서 죽을 뿐.
“네. 그렇습니다.”
그녀에게는 과연 그럴 용기가 있을까?
허나, 영원히 의각에서 살 수는 없다.
치료를 하든 못 하든 환자는 언젠가 나가야 한다.
“필요하면 불러요. 알았죠?”
사내는 명랑하게 말하면서 미적지근한 희망을 가차 없이 부쉈다.
“…….”
진천희가 나간 자리.
가월은 새카만 거울을 한참 바라본다.
심장이 따끔거린다.
그것은 그녀가 평생을 피해 온 것이었다. 가장 저주해 온 것.
이 세상의 모든 절망이 그 속에 있었다.
그것을 놓고 간 의원이 야속하였으나,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론을 내라는 건가.’
어이없게도 사내는 그녀의 얄팍한 속셈을 너무나도 냉정하게 꿰뚫고 있었다.
그럼에도 일갈하지 않고, 민망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그저 웃으며 등을 떠밀어 줄 뿐.
이 앞에 있는 건 절벽일까?
만약 얼굴만 털이 없어지지 않았다면 어쩌지.
평생 짐승의 꼴이라 하여 사람들이 다시 비웃는다면.
‘이곳이 참 편했는데.’
여기는 의각, 그녀의 집이 아니니까.
이윽고 가월은 결심한다.
망설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게 이상하다는 것은 그녀도 알고 있으니까.
용기를 내어 주춤주춤 거울을 들었다.
천을 벗겨내며 그곳에 비친 건… 자신의 얼굴.
“……못생겼네.”
응시하고 있는 여자에 대고 말한 첫 한마디.
그러고는 목에 담아 오던 통곡을 한참을 내뱉었다.
울음이 대나무 밭을 울린다.
그것은 생의 절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