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69
제 669화
진천희는 그렇게 제독태감 영감님의 인도로 별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와작-
별채문을 열자마자 들리는 건 감자칩 씹는 소리.
와, 보통 이런 혈사가 일어나고 나면 폭군이 나른한 표정으로 술잔을 기울이면서 권력을 한탄하고, 외로움을 한탄하고 그러면서 어둠 속에서 칠현금 소리에 귀나 기울이고 그러지 않나?
이게 현대 드라마뿐만 아니라 강호 경극에서도 꼭 그렇게 등장하시던데?
“왔느냐?”
와작, 와작-
방금 전까지 인간 백정이 되어 내관들 목을 줄줄이 날리시던 분이.
지금은 햇빛을 받으며 감자칩을 씹고 있었다.
와, 웰빙하다. 정신이 웰빙해.
“왜 그런 눈으로 보느냐?”
“기분이 좀 언짢으시다고 들어서요.”
“아무리 짐이라도 사람 죽이고 나서 기분이 좋겠느냐. 우중충한 기분을 먹는 걸로 풀고 있었지.”
아아, 그러시구나.
어둠 속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폭군은 어디 가고. 기분이 더러워서 감자칩을 한 번에 세 개씩 집어먹고 있는 폭군이 눈앞에 있다.
그분은 감주를 대나무 대롱에 꽂아 쭈압쭈압 빨아드시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가 진짜 개 같았으니라. 언젠가 싹 정리할 생각이긴 했는데 이렇게 급하게 정리해야 할 줄은 몰랐지. 그래서 대체 가월은 왜 살린 거냐? 그렇지 않아도 머리가 총명한 애라 가씨세가에 큰 힘이 될 것 같았는데.”
“……의원이니까요……?”
“쳇.”
방금 혀 찼어. 혀 찼다고!
일국의 황상이나 되어 놓고 어린 여자애 목숨 구명했다고 짜증 내고 있다고.
보는 사람까지 속이 다 옹졸해지네.
“그래서 은왕야…….”
“내가 은이인 줄은 어떻게 알았느냐?”
“자주 보니까 왠지 익숙해져서요. 틀렸습니까?”
“맞았다. 더 짜증 나는군.”
크그그그–
대나무 빨대가 빈 바닥을 울리는 소리가 아주 그냥 깜찍하군.
은왕야가 말했다.
“네놈은 쓸데없이 머리도 좋으면서 쓸데없이 강직해서 왜 이렇게 짐을 귀찮게 구느냐.”
“그 덕분에 구명하셨잖습니까?”
사람이 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더니, 대장암 치료 전에 그 소리 똑같이 해보시지 그러쇼.
아무튼, 역대 폭군과는 달리 비교적 건강하게(?) 스트레스를 풀고 계시는 왕야께서는 햇살을 받으며 힐링 중이시다.
“먹겠느냐?”
“네, 네. 성은이 망극…….”
“그냥 닥치고 먹어라.”
그리 말하며 감자칩을 진천희 입에 쑤셔 넣었다.
진천희는 감자의 풍미를 느끼며, 황실 숙수는 같은 감자칩을 튀겨도 뭔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맛있네.’
아무튼 은왕야가 손짓하자 제독태감이 ‘어이쿠, 어이쿠’ 앓는 소리를 내며 감자칩 소쿠리를 들고 왔다.
내관 목 치고 먹는 감자칩은 꿀맛……은커녕 기분이 좀 이상했다.
‘하긴 생각해 보면 친혈육도 목을 댕강댕강 날리던 양반이었는데 그때마다 어둠의 폭군 모드로 술을 빨았다가는 간이 안 남아났겠지.’
주왕 전하는 제외.
그렇게 술을 퍼먹으시는데 간이 상하기는커녕 어지간한 무림인보다 쌩쌩하다.
“가주 가완을 만나 보니 어떻더냐?”
진천희는 눈동자가 데구르르 굴렀다. 사회생활 스위치가 켜지는 순간이었다.
“굉장히 명석하시고 황실에 대한 절도와 충절이 느껴졌습니다.”
“그건 공식적인 이야기고, 비공식적인 평가는?”
아니, 그것도 물어보세요?
하지만 괜히 또 같은 말을 했다가는 안 놔줄 눈치라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두뇌 회전이 굉장히 빠르며 냉철한 분이셨습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금욕적이기까지 했는데, 아마 그게 맞을 겁니다.”
“괴물이지. 그것도 가문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감정 없는 괴물.”
“황상께 반발하거나 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 역으로 그렇기에 내가 안전한 거고.”
은왕야는 한 번에 감자칩 세 개를 와작, 씹었다.
“짐이 제대로 권력을 쥐고 있는 한에는 가씨세가는 내게 충성을 다할 거다. 걔들은 그런 놈들이니.”
바사삭-
다시 감자칩을 씹으며 그가 말했다.
“가씨세가 선대 가주가 자식을 괴물로 만들었어. 뭐, 결과적으로는 그런 괴물을 품은 가씨세가를 이렇게까지 키운 것도 나, 아니 ‘우리’지만 말이지.”
그는 손가락에 묻은 소금기를 핥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러면 기분 전환도 끝났으니 따라오거라.”
은왕야는 손가락을 까딱하며 신호했다.
진천희가 은왕야를 따라간 곳은 후원 뒤쪽.
작두 펌프가 보란 듯이 있는 게 아닌가.
“짜잔!”
체통 없이 손가락까지 흔들며 제스처를 취해주시는 게 아닌가.
진천희는 재빨리 박수를 치며 호응했다.
“오오오오, 이것은 무엇인가요! 폐하!”
“……그만해라. 너희 작두 펌프잖느냐. 추임새가 과하지 않느냐.”
“이런 걸 좋아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싫어하지는 않지만 네놈이 할 건 아니지.”
그런가.
아부 방향을 바꾸어야 하나.
‘이놈의 황상들은 사회생활을 강요하면서도 개까탈스럽네.’
이러니까 부하들이 죄다 맛이 가는 거 아닌가.
은왕야가 말했다.
“네가 보낸 보고서대로 장인을 시켜서 만들어 보라 시켰느니라.”
“물은 어디서 끌어오고 있습니까?”
“저기.”
위를 보니 계단 위에 거대한 물탱크가 있었고, 내관들이 부지런히 물을 담아 넣고 있었다.
“어……?”
어느 내관들은 물을 기르다 말고 헉헉거리며 엎어졌다.
사악한 은왕야는 그 모습이 깨소금이라는 듯 크헤헤헷 웃었다.
“상수도 공사라는 것을 할 생각이었는데, 일단은 물을 퍼 올리는 걸 먼저 보고 싶어서 그것부터 시켰느니라.”
인권 착취의 현장.
진천희의 동공이 거칠게 흔들리는 것을 은왕야는 흥미롭게 보며 말했다.
“쟤들도 죽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렇군. 벌 대신 시켜 보고 있으신 건가.’
일단 목을 벤다, 살려 둔다, 사이에 ‘물 노역을 시킨다’가 껴있는 모양이다.
‘그래. 황상께서 죄다 죽인 건 아니구나.’
진천희는 마음속으로 불경을 읊었다.
어차피 이 로열패밀리 형제들과 함께 뭔가 하려면 제정신으로는 힘들지 않나.
이 미친 궁궐에서 그냥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다행인 일이다.
황상이 말했다.
“이제 충분히 즐겼으니 상수도 공사를 할 예정이라 불렀다.”
“어……. 그걸 제가요?”
“그러면 가씨세가에 시키리?”
“결정적일 순간에 독을 풀 수도 있긴 하겠군요.”
그만큼 상수도는 예민한 문제이긴 하다.
모두의 식수가 달려 있는 거니까 진천희가 물었다.
“그런데 저는 믿으십니까?”
“…….”
은왕야는 답하지 않는다.
그냥 손을 들어 진천희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는 게 아닌가.
“공식적으로는 너는 조언을 하는 위치로 해주마. 만족하지?”
“당연하죠. 대놓고 나서서 설계했다고 하면 제 말년 꼬입니다.”
“그래. 황실 지하 지도는 제독태감이 안내한 곳에 있을 것이다. 설계를 마칠 때까지는 황궁 밖으로 나가지 못할 것이니 각오하고.”
“그런데 진짜로 절 왜 믿으시는 겁니까?”
은왕야는 답하지 않는다.
“…가 보거라.”
* * *
역시 마음을 읽는 금왕야의 힘인가.
그거 때문이겠지?
과중한 책임 때문에 어깨가 떨리기는커녕…….
‘집에 돌아가고 싶다.’
진천희는 벌써부터 농땡이를 치고 싶었다.
‘황실에 그렇게 믿을 만한 인재가 없냐. 이놈들아…….’
사람의 마음을 읽는 자면 뭐 그래도 괜찮다 싶은 놈들은 삐릿삐릿 텔레파시로 솎아낼 수 있지 않나 싶다만.
이것에 관해서도 스승님이 말씀하신 게 있다.
-사람의 마음은 언제든지 변화하기 때문이란다. 오늘은 충신이라도 내일은 어찌 될지 모르는 게지. 그렇다고 황상이 모든 신하들을 매일매일 일렬종대 집합시켜서 속마음을 읽어 대는 것도 불가능할 거고.
역시 그놈의 허점.
물론 금왕야가 가지고 있는 이능은 사람의 마음과 기억을 읽는 거지, 이 사람이 미래에 뭘 할지 아는 게 아니니까.
조작도 가능하다 듣기는 했다만, 그렇다고 팔대세가의 모든 자들을 자기 편으로 기억 조작하지는 못하는 모양이니 일단 읽는 쪽이 더 중점이라고 봐야 하나.
‘조작 쪽은 제약이 있는 모양이야.’
일정 기간이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간다거나, 멀어지면 원래대로 돌아간다거나 대충 그런 거겠지.
‘역시 주왕야처럼 눈앞의 뚝배기를 깰 수 있는 게 가장 좋은 능력일지도 모르겠다.’
압도적인 힘.
결국 중원에서 힘은 모든 것을 쉽게 만드는 마법의 열쇠 아닐까.
“뭐, 그래. 결국 혈연이고 나발이고 아무리 봐도 내가 보건에 미친 광인 같으니까 부려 먹는 거지.”
그게 황실 전문가들보다도 더 신뢰가 가니까 이렇게까지 하는 걸 테고.
진천희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황실의 지하도를 쭉 익혔다.
그중에는 비밀 통로들도 몇 개 존재하였는데, 아마 진짜 중요한 건 숨기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들었다.
사실 그런 건 별로 중요치 않다.
과제를 끝내고 나면 아마 금, 은왕야가 그대로 반영하기보다는 여러 기술자 손을 거쳐서 몇 번 더 수정할 테니까.
중요한 건 그 초안.
‘후우, 집중하자.’
진천희의 눈이 푸른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마치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처럼 한참을 응시하다가 이윽고 연필을 들어 빠르게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자와 각도기도 없이 그리고, 지우고 그리고, 지우기를 계속해서 반복하며 이어 나간다.
‘물을 끌어오고, 그걸 저장하고, 상수도를 만들고, 하수도를 만들고. 하수도의 끝은 정화 시설이어야 하고.’
수로는 무조건 교체하기 쉬워야 한다.
하는 김에 화장실도 좀 바꿔 보기로 했다.
그렇게 설계를 하기를 삼 일째.
“끝났다!”
“후후후, 족히 보름은 걸릴 줄 알았는데 고작 삼 일이라니, 대충 하신 거 아닙니까요?”
제독태감이 들어와 진천희가 그린 설계도를 하나씩 가져갔다.
“차라리 황상께서 그렇게 봐주시면 좋겠네요. 그래야 다시는 이런 일 안 시키지.”
“열심히 하신 것을 이 촌부는 알고 있습니다요~”
하여간, 음흉한 영감.
“어찌 되었건 황상께서 일부 지역에만 시험 삼아 몇 개 설치하라 하셨는데, 그것까지는 함께해 주셔야죠.”
‘그래. 그럴 줄 알았다.’
아주 소처럼 부려 먹고 있다.
진천희가 투덜거리자 제독태감이 말했다.
“천재란 존재들은 역시 뭔가 유별난 것 같습니다.”
“네?”
“보통은 이러한 일을 황상께 받으면 다들 감복하여 눈물을 흘릴 테니까요.”
“……눈물씩이나요?”
“가문의 영광 아닙니까요? 심지어 일 끝났다고 살인멸구도 안 시키고 말입니다.”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진천희가 곧바로 받아쳤다.
“저도 그게 걱정되는데, 이거 그렸다고 ‘기밀을 아는 존재니 죽어라!’ 하고 밤에 동창 보내서 푹찍하는 거 아닙니까?”
그 말에 무슨 개소리를 하냐는 듯 제독태감이 대꾸했다.
“그럴 거였으면 두 왕야의 정체를 알았을 때 이미 살인멸구를 했겠지요. 그리고 주기적으로 두 황상들을 진료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으음…….”
“뭐, 투덜거리셨듯, 황상께서 은공을 신뢰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보건에 돌아버린 광인으로 생각하시는 것도 맞긴 합니다만.”
그걸 듣고 있었냐.
너무 많이 투덜거렸나 보다.
진천희가 눈을 가늘게 뜨자 제독태감이 말을 이었다.
“그래도 황상들께서 진실로 믿는 이는 거의 없다는 것만 알아주셨으면 하옵니다.”
“그중 하나가 저라는 거고요?”
“네. 그런 셈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