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72
제 672화
유호이기에 진천희도 전력으로 날리고, 유호 역시 그의 기대에 부응했다.
고작 고개를 옆으로 꺾어줄 뿐.
팡!
진천희의 각이 공기를 차며 굉음을 날린다.
유호의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넘실거렸다.
“칫, 이걸로는 안 닿나?”
그리 말하더니 곧바로 다음 공격으로 이어진다.
가공할 출수!
신기한 것은 권이 아니라 장법.
그걸 보며 사마혜는 생각했다.
‘은공은 권으로 사람을 치는 것보다 장법으로 충격을 밀어 넣는 걸 좋아해. 여차하면 유권으로 전환해서 이화접목의 묘리를 쓰기도 좋고.’
대신 그리되면 한순간, 한순간의 상황 판단이 다음 수를 결정하게 되고 비무의 난이도가 올라간다.
장타를 써야 할 때 이화접목의 묘리를 사용하고, 이화접목을 써야 할 때 장을 날리게 되면 눈먼 칼에 손바닥 잘리기 딱 좋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어지간히 동체 시력이 좋고 판단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면 이렇게 싸우면 안 된다.
‘저거 때문에 다른 문파들이 따라 하다 여럿 꼬였지.’
제갈세가 멸문 때 많은 비급들이 흩어졌다.
당연히 많은 세가들이 그로 인해 더 발전하였고, 천하일광이 보여주는 신법과 장법이 탐이 날 수밖에.
기본적으로 무공이란 혼자서 성립하진 않는다.
싸우는 것도 손바닥이 맞아야 하는 거고, 계속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는 게 무공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나마 뿌리가 굳건한 문파들은 괜찮다.
허나, 그 뿌리마저 잊어버린 문파들은 꽤나 오랫동안 헤매게 되었다.
후계가 죽는 일도 있었고.
‘검법도 문제지만 저 장법이 함정이야.’
손가락 끝까지 힘을 푼 저 동작은 얼핏 보면 허점투성이처럼 보이지만, 막상 덤비게 되면 사람이 아니라 이불을 상대하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저것을 따라 하는 무인은 일광이 쓰는 무공은 언제나 선택이 기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장타, 유권 사이에서 고민하고.
그다음에는 신형, 보법, 진각 사이에서 고민한다.
‘마지막은 연계기까지 뻗어서 생각해야 하니까 개 같지.’
정신 차려 보니 적은 수세에 몰려 있고, 관절이 빠져 있더라는 건 제갈세가의 현원전단신공을 대성해야 가능한 일.
‘은공은 시간을 쪼개고 쪼갠 후에 판단하니까.’
하지만, 겉으로 봐서는 모른다.
푸른 눈동자로 발악하듯 싸우는 이 모습을 보면 더더욱.
“유호오오오오오!”
“이 망할 도련놈이 나를 새 무공의 실험대로 쓰고 있어?”
그 순간, 유호의 주먹이 진천희의 뺨에 내리꽂힌다.
그대로 턱이 출렁이며 뺨이 호빵처럼 찌부러진다.
부아아앙–!
익살스럽게 날아가서 바닥을 열 바퀴를 데구르르 굴렀다.
모두가 숨을 멈추며 그런 진천희와 진천희의 피를 털고 있는 총관을 바라보았다.
평소와 같은 풍경.
아니, 평소보다는 조금 더 과격한 풍경.
아는 만큼 보인다 하지 않았나.
몇몇 무인들과 사마혜는 놀라서 사고가 정지했다.
‘대체 유 총관은 얼마나 강한 거지?’
진천희는 몸을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났다.
“헤헤헷. 역시 유 총관이야. 잔재주는 안 통하는구나~”
‘유 총관 주먹이 보이지 않았어.’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진천희가 말했다.
“그나저나 유 총관, 더 강해졌네?”
그리 말하며 푸른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게 아닌가.
왜일까, 그걸 보는 의각원들 모두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 * *
황궁에 다녀온 후, 몇 달.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백린의각에서 진천희는 의원으로서의 나날을 충실하게 보내는 중.
또한 백환후에서도 계속 양질의 인력이 충원되고 있었고, 수재급의 학사들을 삼투압으로 빨아먹는 중이다.
‘백수 수재는 이 업계에 많지.’
동네 수재 정도로는 과거 시험에 합격하기가 요원하고, 합격을 한다고 한들, 정식으로 발령 나는 것도 쉽지 않다.
여기서부터는 가문의 성세나 인맥 같은 부분도 고려되니까.
3대가 아니라 5대 전, 8대 전에 선조께서 지은 죄가 있다면 그것도 고려해서 관직을 내린다.
그게 싫으면 매관매직 시도해 보든가.
골드&실버 왕야들 덕에 그나마 굵직한 관직들은 매관매직이 어려우나, 지방 자잘한 곳들은 여전히 그런 판으로 돌아간다.
덕분에 그저 그런 집안의 수재들은 과거에 합격해도 백수로서 방바닥을 등으로 닦는 중이지.
“닥치는 대로 다 데려오면 안 되나?”
“이미 내당 부총관이 열 명입니다. 무월이 부리고 있는 외당 부총관도 열 명이나 되고요.”
유호의 투덜거림에 진천희는 이렇게 답했다.
“하지만 인재가 이렇게 백수처럼 지내고 있는데 아깝잖아?”
“이런 건 수요와 공급 문제지요. 근본적으로 화 제국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습니다.”
“그런가.”
진천희가 한쪽 눈썹을 찌푸리자 유호가 말했다.
“애초에 과거시험은 일 년에 한두 번, 자잘하게 지방에서 보는 것까지 합치면 일 년에 여섯 번은 보는데 그때 시험에 통과해서 관직을 얻으면 육순까지 합니다. 본인이 은퇴를 원해 황상께 상소를 올리거나, 건강상 문제로 그만두는 게 아니면요.”
“부정부패가 걸려서 파직되는 게 아니면 그리되긴 하지.”
“그러면 애초에 자리가 몇이나 납니까? 그렇게 많은 인재들을 시험 쳐서 통과시키고 발령 낼 곳이 없어서 이 난리가 나는데.”
그 말에 진천희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수재 정도도 쓸 곳이 많은데 왜 그리된 걸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유호가 답했다.
“천재여야 하는 거죠. 그게 아니면 가문이라도 크거나.”
인구가 많아서 그런 걸까.
하긴 황상 입장에서도 개인의 사정을 하나하나 다 알아내는 건 불가능하겠지.
거기다가 화 제국이 완벽한 중앙집권 체제 속에서 신하들이 죄다 부복하고 말을 들어먹으면 좋겠지만.
그러기에는 제국팔가와 지방 토호들이 눈 시퍼렇게 뜨고 있지 않나.
“으음, 그러면 좀 더 수재들을 데려오면 안 되나? 어차피 확장하고 있는 판에 그 사람들 쓸 예산이 없는 건 아니잖아?”
진천희의 말에 유호가 이마를 꾹꾹 눌렀다.
“그나저나 신약 대량생산 쪽은 어때?”
“소독제 말입니까?”
“응. 금창약보다 싸잖아.”
“효능은 떨어지죠.”
“그래도 염증으로 훅 가는 것보다는 낫지. 쉽게 구할 수 있고.”
현재 진천희가 개발하고 있는 건 가정용 소독약.
이미 강호에는 금창약이라는 게 존재하나, 가정용으로 상비하기에는 비싸다.
“비누만으로 안 되는 겁니까?”
“으음. 손발을 비누로 씻는 것만으로도 많은 병이 예방되긴 하지, 산욕열 발생도 억제시켜 산모의 생존율을 올리고, 비누를 많이 사용할수록 영아 사망률이 감소하고. 어른도 손을 자주 씻는 것만으로도 좋고.”
“그러면 된 거 아닙니까?”
유호의 말에 진천희는 고개를 저었다.
“소독약이 있어야 각종 염증부터 패혈증 같은 질병까지 예방할 수 있거든.”
그렇기에 양민들도 소독약이 필요하다.
어떤 의미로는 양민들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밭을 갈고, 거름 주고, 개한테 밥 주고, 너구리 쫓아내고 하다 보면 손발 성하기가 어렵다.
거기다가 그렇게 다쳐서 곪으면 의원 가서 치료할 돈이 없다.
금창약? 그 비싼 게 있을 리가.
그렇게 사지를 잃고, 목숨을 잃는 경우가 농가에서 의외로 흔하다.
고작 작은 상처 하나로 재수 없으면 사람이 죽는다.
“금호신단 대량생산만으로도 빡빡한데요?”
“으음, 그건 맞지.”
“그리고 아직 이름을 정하지 않은 신약도 이제 모든 검증이 끝났으니 곧 대량생산에 들어갈 거고요.”
아스피린.
“…….”
“욕심이 과합니다. 조금만 더 천천히 하십시오.”
“하지만…….”
“혼자서 몸 갈 일이 아닙니다. 도련놈.”
유호의 말에 진천희는 그만 말문이 막혔다.
맞는 말이었다. 아무리 자신이 혼자서 뭔가 해보려고 한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혼자의 힘이다.
아무리 과로를 하고 뭘 한다고 해도 그래 봐야 한 사람의 힘.
“……그래. 내가 너무 조급해졌나 보다.”
유호는 그런 진천희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대체 왜 이자는 이토록 절박하게 사람을 구하는 데 온 힘을 쏟는 걸까.
이해할 수가 없었다.
* * *
‘그래. 아스피린 이름부터 지어야지.’
개발이 완료된 지는 한참이나 지났지만 교차 검증하고, 대량생산하고 하다 보니 이제야 정식 출시를 앞두고 있다.
‘대량생산이라고 해봐야 지구 같은 그런 공장이 아니라 약방에서 열심히 찍어내는 수준이지만.’
처음에는 대형 세가 중심으로 풀리고 그다음에는 중소형 세가들.
마지막에는 표국의 표사까지 내려간다.
아스피린은 그래도 백린신단 가격보다는 단가가 낮다.
아무래도 백린신단은 내공을 부어야 하는 단점이 있는 데에 반해 아스피린은 버드나무와 정해진 시약들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겠지.
‘공정은 아스피린이 더 복잡한데.’
아닌가?
만드는 의각원 입장에서는 그냥 그놈이 그놈일지도.
진천희는 거기까지 생각하고는 정자에 들어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이었다. 이렇게 축 늘어져서 생각에 잠기는 것은.
그동안은 누가 쫓아오는 양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렇게 멍하니 누워서 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벌써 봄이구나.”
쏟아지는 봄비를 멍하니 보면서 올 겨울은 별일 없이 잘 보냈구나 생각했다.
그때 유호가 다시 정자를 향해 오는 게 아닌가.
“오오, 유 총관, 무슨 일이야. 다시 내가 보고 싶어졌어~?”
유호는 잠깐 걸음을 멈춘다.
저 능글거리는 얼굴을 한 대 팰까, 고민하는 눈치.
진천희는 더 놀려줄까 하다가 참기로 했다.
“무당파 서신입니다.”
“음?”
서신을 받아 여니 이렇게 쓰여 있었다.
-권제 병환 위급.
짧은 한마디.
진천희는 그것을 읽자마자 스승님을 향해 달려갔다.
* * *
“노환이시지. 알고 있지 않느냐.”
“무슨 병인지는…….”
“노환이다. 너도 이미 진맥하여 알지 않았느냐.”
스승님은 딱 잘라 답했다.
늙는다는 것은 어떤 의원도 막을 수 없는 순리였다.
마지막으로 진맥을 했을 때도 이미 권제께서는 건강이 그리 좋지 않으셨다.
물론 그 나이에 비하면 좋은 편이나, 그렇다고 시간을 이겨낼 만큼 체력이 있으신 건 아니었으니까.
“스승님께서는 잘 알고 계시는군요.”
“네 유자를 어떻게 받아 왔을 것 같으냐?”
그 말에 진천희의 눈가가 살짝 꿈틀거렸다.
먼 길을 다녀왔을 때, 스승님께서 제자에게 유자를 내리셨다.
화풀이로 그 자리에서 먹게 하셨었지.
“그때 이미 병에 대해 들으셨군요.”
“그래. 자리보전도 힘들어지셨다 들었다.”
천우는 서신에 이것을 적지 않았다.
아마, 그것은 그만큼 천우 자신에게도 힘든 일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스승님은 울적해진 제자의 이마를 검지로 툭 건드렸다.
“윽. 스승님!”
“마지막 인사를 하고 오거라.”
담담한 목소리.
“혹시 환골탈태라든가 하는 방법은 안 통할까요?”
“인위적으로 유도하는 방법 말이냐? 아이샤 왕국에서 했던 그것 말이다.”
진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 제갈린이 허허롭게 웃었다.
“왕자는 젊었지, 하지만 권제께서는 아니다. 그리고… 무학에 대한 깨달음이 맞아 우연히 되는 것이면 모를까, 그런 식으로 연명하는 것을 바라지 않으실 것 같구나.”
보통 고집이 센 분이 아니셨으니까.
진천희가 말했다.
“그래도 가 보겠습니다. 뭔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해 보겠습니다.”
“그래. 너는 그런 아이지.”
진천희는 스승님께 깊게 예를 표하고는 곧바로 짐을 챙겨 나갔다.
‘이리도 무공이 강해지고, 돈과 권력과 무명을 가졌음에도 내 제자는 변하는 법이 없구나.’
무서울 정도로 한결같은 녀석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너라도 쉽지 않을 것이다.’
단순히 권제가 노환으로 사망한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의외로 이런 것들은 의원에게 익숙하고, 저 녀석이 그 정도로 무너질 놈이 아니니까.
그보다는 무당의 거인이 사라진 후, 그 빈자리를 누가 차지할 것인가.
강호에 파란이 일 것이 자명했다.
알면서도 스승은 보내준다.
‘잘 다녀 오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