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76
제 676화
무당파의 대전.
천 명은 족히 들어갈 수 있는 넓은 공간.
이 공간이 무거운 공기로 가득 찼다.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것 같은 침묵 속에서.
상석에는 전대 고수인 명 자 배의 도사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명 자 배 중 이제 생존한 사람은 둘뿐.
그 밑으로 무당파의 최고 수뇌부라고 할 수 있는 장문인 정형 진인을 비롯한 정 자 배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좌우로 정 자 배의 제자들인 하 자 배의 도인들이 앉아 있고, 대전에는 천 자 배 제자들이 빼곡하게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천 자 배 다음은 진 자 배 도사들이 있으나, 아직 어려서 회의실에는 들어올 수 없으니 사실상 대부분의 무당인들이 들어온 셈.
명 자 배는 그저 보기만 하고, 회의는 정 자 배가 진행하는 게 보통이다.
진천희는 정 자 배 옆에 앉아서 조용히 참관하고 있다.
무당권제의 공동전인이자 큰 혈사가 날 뻔한 이번 일을 수습한 장본인.
장문인은 생각했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더 불을 지르기도 했지.’
49일 동안 이루어질 비무.
정정당당하게 이루어진 만큼 무당파에서도 져도 뭐라고 할 말이 없다.
모든 문파의 자존심이 걸려버린 이상 무당파는 반드시 이겨야 한다.
그걸 이 미친놈은 너무나도 쉽게 만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일광은 푸른 눈을 반짝이며 무당파를 쳐다본다.
밝은 미소. 이놈은 환자를 줄였다며 기뻐하고 있었다.
그 대가로 각 문파의 존장들은 일광을 더욱 일광 놈이라 욕을 하겠지만, 그런 건 이 사내에게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여차하면 그 기괴한 음공이라도 터뜨려서 그래도 죽는 것보다 고막 터지는 게 낫지 않냐며 위로해줄 놈이었다.
진천희의 미소에 광기를 느끼지 않은 무당파 검수들이 없었다.
오싹-
‘비무 중 치명상을 입어도 반드시 살리겠군.’
상대의 목을 날리는 게 아닌 이상 저승사자 멱살이라도 붙잡아 끌고 나올 놈이었다.
그렇기에 명길 사숙이 그리 믿은 걸지도.
사숙은 대충 사는 것처럼 보여도 한때 천마와 심계를 겨루던 자가 아니던가.
거기까지 생각한 정형 진인은 입을 열었다.
“사숙께서 귀천하시자마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본 파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겨야 한다.”
“으으음-”
모두가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 일광이 짜놓은 판이라는 기분이 들었지만, 가장 사상자와 부상자가 적은 방식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대신 지면 무당파의 명예는 땅에 떨어질 터.’
모든 강호가 비웃게 될 것이었다.
“……때문에 본 파의 최고수를 선별해야만 한다.”
“정형아. 이 두 늙은이가 나서면 되지 않느냐.”
명길의 사제이자 둘만 남은 명 자 배 도인 중 하나.
명화 진인.
장문인이 말했다.
“사숙. 저들도 전대분들을 모시지 않았는데, 두 분께서 나서는 것은 격에 맞지 않습니다. 저희 정 자 배에서 나서는 것이 맞겠으나, 저는 사숙의 전인을 내보내는 것이 어떤가 합니다.”
“천우를 말이냐?”
그 순간, 대전이 벌집을 쑤신 듯 웅성이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천우만이 조용히 눈을 깔고 앉아 있을 뿐.
“정숙하라.”
장문인의 말에 모두가 동시에 입을 다문다.
정 자 배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장문 사형. 천우가 명길 사숙의 전인이라지만, 아직 어립니다.”
“사제. 천우는 무당을 대신하여 전쟁에 참여했고, 흑선으로 활동하였네.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기실 천우가 대신 해온 셈이지.”
흑선.
무당의 반도들을 처리하는 감찰 조직.
그 때문에 무당파 내부에서도 그리 좋은 대우를 받지는 않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긴 했다.
“허나…….”
“사실 내가 천우와 비무를 한다 해도 이길 자신이 없네.”
그 말에 웅성거림은 더욱 커진다. 모두가 동시에 말을 내뱉었다.
“믿을 수 없습니다!”
“그 천우가 강하다고는 하나 하 자 배, 정 자 배를 이긴다니요!”
“아무리 장문인께서 천우를 어여삐 여기신다 하더라도 이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그중에 가장 크게 외치는 자가 있었다.
하선 도인.
“천우가 천 자 배 중에서 가장 강한 것은 압니다. 허나 우리 하 자 배를 이길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하 자 배들은 자존심이 상할 만했다.
한참 어린 천우가 배분을 무시하고 무당권제의 전인이 된 것도 질투가 났다. 그런데 이 일에까지 배분을 무시하고 끼워 넣다니!
“하선아. 너는 천우의 무공을 의심하느냐?”
하선도인은 그런 정형도인을 바라보았다.
그는 장문인 정형의 대제자.
그리고 화경의 경지에 이른 촉망받는 기재이며, 다들 내심 다음 대 무당파 장문인으로서 내정하고 있던 자였다.
그만큼 무당파 내에서 영향력이 큰 중견의 무인이기도 했다.
장문인 정형이 어여삐 여긴 만큼 자신감도 늘 가득 차 있었다.
“그렇습니다. 천우 사질(舍姪)의 무명은 익히 들었으나, 그 실체를 본 이가 거의 없지 않습니까?”
“용봉지회로는 부족하느냐?”
“부족합니다.”
그 말에 모두가 웅성거렸다.
예를 벗어난 건방진 발언임을 알고 있으나, 하선 도인도 더는 물러날 수 없었다.
그 모습을 진천희는 보았다.
‘하긴, 천우가 외유를 많이 했지.’
권제께 일정 이상 사사받은 이후로 권제께서 이다음은 실전을 통해 익히라며 무당파 밖으로 쫓아내다시피 하지 않으셨나.
천우는 그런 권제의 말을 따라 부평초처럼 강호를 주유하며 흑선이 되어 흑도로 돌아선 과거의 형제자매들을 처단해야만 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 하였나.
정작 그런 천우의 무서움을 무당파 스스로는 모르고 있다는 게 실소가 나왔다.
‘그래서 배분도 개꼬였지.’
천우는 본래 하 자 배의 제자가 되어야 맞다.
허나, 공동 수련만 했을 뿐 하 자 배 중에서는 스승이 배정된 바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다가 무당권제이신 명길도인이 제자로 맞이했는데, 이럴 경우 배분이 미친 듯이 꼬이게 된다.
‘명길도인의 제자면 정 자 배와 같은 배분이지.’
현대로 치면 마치 나이 차이가 한 살밖에 되지 않는데 이놈을 할아버지라고 불러야 하는 것 같은 상황.
그러다 보니 명길 도인은 무공 전인으로 삼을 뿐, 정식 제자로 삼지는 않았다.
배분이 꼬이는 걸 방지하기 위한 조처.
‘그래 봤자 눈 가리고 아웅하기지만, 이게 또 정파에서는 제법 중요하지.’
사파야 사마현이 우리 금혈방 족보는 개족보라며 낄낄 웃으며 다니지만 뼈 정파 무당파는 다르다.
때문에.
하 자 배는 전부 천우에게는 사숙이 된다.
그러다 보니 하 자 배가 천우를 사질이라고 부르는 것.
이윽고 정형 장문인이 입을 열었다.
“좋다. 천우. 나오거라.”
“장문인의 명을 받듭니다.”
천우가 거구를 일으키자 마치 산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천우는 어째 볼 때마다 키가 더 커지는 것 같단 말이지.’
거기다 그 거구의 덩치에서 오는 가공할 만한 압박감이 있다.
“가볍게 비무를 해보도록. 백린의각의 소각주가 지켜보고 있는 자리이니 다친다 해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천우는 포권을 했다.
천우의 한쪽밖에 없는 눈동자가 진천희에게 달라붙었다가 떨어진다.
“제자 천우가 하선 사숙께 가르침을 청합니다.”
“나 하선이 천우와 도를 나누어 보겠다.”
하선이 검을 뽑아들었다.
모든 무당인들이 자리를 비킨다.
대전 한가운데에는 두 사람이 서로를 고요히 바라보고 있었다.
천우는 두 손을 모아 기수식을 취하며 서 있었다.
“…….”
고요한 눈으로 한참 서로를 바라보는 와중.
하선 진인의 몸에서 식은땀이 흘러나왔다.
‘대체 이 압박감은 뭐지?’
마치 거대한 무언가를 눈앞에 둔 듯한 기분.
누군가가 그의 무덤을 밟고 있는 것 같은 기묘한 감각 속에서 하선은 결국 먼저 말을 꺼냈다.
“사질. 먼저 가겠네.”
태극혜검 태극만천.
비인부전의 태극혜검이 그의 손끝에서 피어났다.
‘태극혜검을 익혔다는 것은 그만큼 무당파에서 하선을 깊게 생각하고 있다는 거겠지.’
진천희는 눈을 빛내며 그의 검 끝을 바라본다.
검로가 마치 물과 같이 부드러우면서도 봄바람처럼 기묘한 움직임으로 찔러 들어갔다.
“오오오!”
그 기기묘묘한 검로에 모두가 탄성을 질렀다.
“완벽한 태극만천이군!”
“가공할 위력이야!”
“하선진인이 작심을 했군그래.”
그것을 보며 진천희는 생각했다.
‘천우의 약점이 바로 이 유능제강이지. 초식으로 그걸 골랐다는 건 맞는 선택이야. 하지만…….’
“하선 사형! 본때를 보여주세요!”
‘……천우는 외톨이구나.’
그래도 하정진인 같은 분들은 천우를 응원하지만, 대다수의 무당파 도인들 모두 차기 장문인이 될 인재, 하선진인을 응원하고 있었다.
“어떤가. 사질. 지금이라도 항복한다면 없는 일로 해주겠네.”
“…….”
이 느낌, 알고 있었다.
조직 사회가 그렇다.
조직의 궂은일을 도맡아 했던 사람보다, 자주 보고, 자주 인사 나누는 사람이 더 인기가 많고 잘나가는 법.
생각해보면 어쩔 수 없었다.
애초에 권제께서는 천우에게 무(武)로 끝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줄 뿐, 사람과 어울리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
다른 제자들보다 더 많이 밖으로 돌아다니니 무당 쪽 사람 만날 시간이 적은 건 어쩔 수 없지 않나.
거기다가…….
“파계한 제 사형의 원수를 갚아 주십시오.”
그 순간, 같은 배분의 다른 검수들이 입을 틀어막았다.
무당의 검을 들고 흑도에 몸을 담근 이상, 그는 사형이 아니다.
장문인이 그 말을 한 자를 향해 너는 후에 크게 징계할 것이라고 엄히 말했다.
허나 사람 마음이 쉽게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걸 보고 있으니 마음이 아파져서.
‘이 일 끝나고 우리 천우도 정치질 좀 해야겠다.’
……천우를 강하게 가르치기로 형은 생각했다.
그때, 천우가 한발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우는 검을 뽑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보여준 것은 한 거인이 남긴 것.
태극권 태극유수.
기묘했다.
천우의 어깨 위로 돌아가신 권제님의 잔상이 겹쳐 보였다.
“헛……?”
하선의 눈이 흔들린다.
그 순간 천우의 두 손이 부드럽게 검을 걷어냈다.
-야, 이놈아. 너는 보기보다 성격이 급해! 급하니까 못 하는 거다.
천우는 권제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참 기가 막혔다.
살아 계실 때는 그토록 어렵던 일이, 떠나시고 나서야 가능하다니.
천우의 두 손이 부드럽게 검을 걷어냈다.
“이익!”
하선이 그런 천우를 향해 계속해서 검을 찔러 들어간다.
일검, 일검이 절초라 할 만큼 절후의 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우는 그 절초를 모두 방어하기 시작했다.
“오오오오!”
“유능제강을 못 한다며 권제께 그리도 혼이 나던 천우가 아닌가!”
절초가 봄바람처럼 흩어진다.
단 일검도 천우를 스치지 못하고 스러진다.
“권제님의 내공을 받아서 아주 오만하구나! 허나, 그렇다 하더라도 이건 어떠냐!”
그리 말하며 내지르는 검에 천우는 손을 마치 버드나무처럼 밀어서 막아냈다.
그걸 보며 한 도인이 말했다.
“천우 도장이 두 발을 움직이는 걸 본 자가 있소? 혹시?”
그 말에 모두가 눈을 홉떴다.
“그러네. 단 일보도 움직이지 않았으이!”
그 말에 하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선은 참지 못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절기를 담아 검으로 쏘았다.
“노옴! 이건 어떠냐!”
태극혜검. 태극원융(太極圓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