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77
제 677화
원융(圓融).
천지만물에 편벽(偏僻)됨이 없어 천상천하의 모든 것이 가득 차올라 완전히 일체가 되고 융합되어 방해됨이 없음이다.
이는 천지가 소통하여 하나 됨이며, 우주가 하나 되어 일체가 됨을 의미한다.
태극혜검의 최종 절기라고 할 수 있는 것.
때문에 하선의 검에서 일어난 강기가 사방을 메우고 물들인다.
그러나.
천우는 보았다.
태극원융의 절초에 허점이 여기저기 나 있는 것을!
아직 하선은 태극혜검을 극성으로 연마하지 못한 것이다.
스륵.
천우의 두 손이 원을 그린다.
무당파의 절학 중 하나인 태청산수(太淸散手)가 펼쳐졌다.
원은 곧 점이 되고, 그것은 순식간에 강기를 머금어 태극원융의 허점을 찌른다.
쾅!
강기와 강기가 충돌하며 폭발이 일어났다.
천우는 여전히 미동도 없는 데 반해서, 하선은 그 충격의 여파로 다섯 걸음이나 물러섰다.
“푸학!”
하선이 피를 토한다. 그의 얼굴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떠올라 있다.
“태극혜검이 깨지다니!”
“어찌 저럴 수가!”
“태청산수였는가?”
“태청산수 역시 본문의 신공절학이지만 태극혜검의 절초를 깰 수 있을 정도인가?”
다들 웅성거린다.
하선이 피를 닦아내며 물었다.
“천 사질. 어떻게 내 태극원융의 초식을 막은 건가? 나는… 나는 이해할 수가 없네.”
“하 사숙. 하 사숙의 태극원융은 훌륭하였으나 허점을 전부 지우지 못하였습니다. 태극원융이 제대로 펼쳐지기 위해서는 팔괘의 이치대로 팔방을 전부 덮어야 하나, 사숙의 검은 두 개의 방위에서 틈을 만들었습니다.”
“허… 그게 보였단 말인가?”
“제 눈은 하나이나, 많은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도록 수련했습니다. 사숙.”
“허허……. 그래. 내가 졌네.”
하선 진인은 벽을 느꼈다. 그것은 과거 권제의 등에서 보던 벽이었다.
물론 그분에 비하면야 아직은 멀고, 작은 벽.
허나, 새로운 벽이 다시 무당을 짊어지고 갈 것을 깨달았으니까.
장문인 정형 도인이 말했다.
“천우도장이 무당제일권임을 선언한다!”
와아아아아!
모든 무당인들이 함성을 질렀다.
처음에는 하선진인을 응원하던 자들도 천우의 권을 보니, 그가 권제의 후계라는 것을 의심하는 이가 없었다.
진천희는 가슴이 뜨거워졌다.
‘잘됐다. 잘됐어.’
이렇게 된 거 천우가 무당분들과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물러날까 슬금슬금 뒷문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형님!”
슬쩍 나가려던 진천희를 불러 세우는 천우였다.
“오, 천우야.”
“형님 감사합니다.”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권제님 덕분이지.”
천우가 달려와서 진천희에게 포권을 했다.
“두 분 덕입니다.”
무당인들의 시선이 진천희에게 쏠렸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 판을 만든 것이 누구인지. 지금의 천우를 누가 살려서 무당권제 앞에 앉혔는지도.
‘이거 빠져나오기는 그른 것 같군.’
기묘한 동경과 존경, 질투를 느끼며 진천희는 생각했다.
* * *
다음 날 새벽.
무당파는 해검지 아래로 비무장을 만들었다.
그것을 천우는 빤히 지켜보고 있었다.
“스승님께서 이걸 바라신 걸까요?”
천우의 말에 진천희는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공동전인으로서 깊이 존경하고는 있지만, 그것과 별개로 권제께서 그렇게 책임감이 강하신 양반은 아니셨잖냐.”
“……그건 그렇죠.”
“그래도 돌아가신 후에 쌓아왔던 은원들이 무당을 노리게 될 것은 예상하셨을 것 같아.”
강호에서 권제는 튀어나온 못이었다.
오만방자하며 강했다.
수없이 많은 혈로를 걷고, 그 혈로를 본인의 주먹으로 만들어왔다.
그리고 뒤를 보지 않았다. 변명도 하지 않았다. 합리화도 하지 않았다.
사람이 사람을 무(武)로써 죽인 것뿐.
그게 그가 생각하는 도(道)였고, 투로였으며 혈로였다.
그 지옥도.
피 값을 찾으러 누군가는 올 것이라고, 그리고 그게 꽤 클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아셨겠지.
어찌 보면 그분이 백 살이 넘게 살다 가신 것은 그만큼 강했고, 또 운이 좋아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진천희가 과거 정광의 혈사를 막지 못했다면 무당파는 아비규환이 되었을 터이니까.
‘좀 얄밉긴 하네.’
이 혈채를 조금이나마 걷어내긴 해야 한다.
허나, 권제와 같은 무당인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들은 당사자니까.
한 발자국 먼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무당과 깊은 연이 있는 자.
말발이 좀 되고, 혈사를 누구보다 싫어하는 놈.
‘나밖에 없네. 이거.’
마지막까지 멋대로 하다 가셨다.
-내가 보낸 이별 선물은 잘 먹었느냐.
그놈의 유자가 너무 셨다.
너무 시어서 먹다가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리고 너무 비쌌다.
‘유자 한 알에 무당을 지켜야 하다니. 너무한 거 아닙니까. 어르신.’
망할.
진천희는 소매로 눈가를 몇 번 문질러 자국을 지운다.
-……네 녀석은 본래 이곳에 있을 수 없는 녀석이지. 그렇지 않느냐?
-괜찮다. 뭐라고 하는 게 아니다. 허나, 그 몸뚱이는 본디 네 것이 맞으니 너무 마음 쓰지는 말려무나.
대체 어떻게 알게 됐는지라도 가르쳐주든가.
‘생각해보면 천마도 천기에 대해 뭔가 아는 것 같긴 했지.’
권제께서는 임종 직전이 되어야 하늘을 좀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하던데 어떤 과정인지는 진천희 자신도 알 수가 없다.
천마가 보는 것과 권제께서 임종 전에 본 것이 같은 건지도 알 수 없고.
“비무장도 이제 완성이군요.”
대단할 건 없다. 그저 바닥에 돌이나 좀 골라내고 평평하게 만드는 작업.
호화롭게 화강암 바닥을 댈 것도 아니니 대리석으로 장식할 필요도 없다.
무당에서 쓰는 진법이나 조금 만지는 게 전부.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비무장이 만들어졌다.
“새벽 공기가 차구나.”
“네. 아침이면 이제 많은 이들이 오겠죠.”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들리는 이야기는 많았다.
“투전꾼들부터 올 거고요.”
“그래.”
이런 비무장에는 반드시 돈이 낀다. 천우가 피식 웃었다.
“다들 제가 지는 것에 걸었다더군요.”
사십구재.
한 명의 인간이 사십구 일 동안 무당을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나.
다들 그리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무당인들도 마찬가지.
천우가 비록 권제의 뒤를 이었다고는 하나, 아직 너무 어리지 않나.
하다못해 십 년. 아니 삼 년 후라도 되었다면 모를까, 지금은 어렵다 하고 있었다.
“절차대로 무당에 비무첩이 도착했습니다.”
진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겼을 경우, 무당과의 은원을 모두 청산하겠다는 거겠지. 졌을 경우?”
“……스승님의 위패를 가져가겠다 합니다.”
그 말에 진천희의 눈이 커졌다.
고인의 위패를 빼앗아 가겠다?
그것은 무덤에 침을 뱉고 사람을 두 번 죽이는 행위가 아닌가!
“장문인께서는…… 권제께서 생전에 지은 은원이 크다 하셨습니다.”
“설마 수결하셨니?”
“네.”
“…….”
진천희는 이마를 꾹꾹 눌렀다.
“네가 지게 되면 무당은 봉문하겠구나.”
천우가 담담히 답했다.
“네. 위패조차 지키지 못한 문파가 무슨 낯이 있어 강호를 보겠습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요.”
“너는 사부님의 위패를 뺏긴 천하의 반푼이가 될 것이고.”
“…….”
천우가 눈꺼풀을 접는다.
거구의 몸이 고요하게 새벽 공기를 들이쉬고 내쉴 뿐.
진천희가 답했다.
“독하구나. 하지만 그 또한 권제께서 뿌린 씨라면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
“……사실 이렇게 질서정연하게 비무를 하게 된 것만으로도 기적이라 하였습니다. 장문인, 그리고 장로께서도요.”
진천희나 천우 모두 권제 세대에 일어난 일들을 모른다.
권제께서 얼마나 많은 피를 어떤 식으로 뿌렸는지도 모른다.
그저 그들의 은원이 사무치게 깊다는 것만 알 뿐.
“그래서 장문인께서는 수결하신 거구나.”
“……네.”
강호, 강호였다.
* * *
아침부터 일찍 무림맹의 사람들이 도착했다.
권제께서 돌아가시자마자 맹주 악진이 사람들을 보냈는데, 본디 장례식 조문객으로 온 자들이 졸지에 이 일의 증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보다 먼저 온 자들이 투전판 노름꾼들이다.
그들은 비무장이 완성되기도 전에 이것저것 들고 와서 돈 주머니를 소쿠리에 수북하게 쌓아 놓고 판돈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노름꾼들 옆으로 하오문의 장사꾼들이 끼어서 도시락을 팔기 시작했다.
“닭꼬치! 닭꼬치 팔고 있습니다!”
“당과! 당과 여기 있습니다!”
“시원한 감주도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다른 문파의 무인들이 기가 질려 말했다.
“하오문 이놈들은 어째 안 끼는 곳이 없구려.”
“말도 마시오. 금혈방의 소방주가 하오문 후계가 된 이후로는 이제는 돈 냄새만 나면 용암이라도 달려들 놈들이 되었소.”
“옛날에도 돈 좋아하는 놈들이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 시간에도 사마현은 악착같이 돈을 벌어대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가장 풍채가 좋은 장사꾼이 달려와 진천희에게 말했다.
“소방주께서 소의선께 안부 전해드리라 하였습니다.”
그리 말하며 10단짜리 도시락을 건넸다.
“물론 무당의 밥이 맛있을 터이나, 사십구재를 치르면 체력이 많이 빠질 거라 하시며…….”
“고… 고맙습니다.”
“여기, 셋째 형님께도 이를 전하라 하였습니다.”
그리 말하며 대나무 도시락…….
그것도 가장 작은 걸 천우에게 주는 게 아닌가.
“…….”
‘혀… 현아…….’
안 주느니만 못한 도시락이었다.
천우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괜찮다고 전해 주십시오. 이미 큰형님께서 아우인 저를 염려하여 푸짐하게 아침상을 차려 주셨으니까요.”
“아, 그대로 전할까요?”
“네. 하하하. 그러시면 되겠습니다.”
천우는 천 리 밖 사마현의 명치에 주먹을 꽂았다.
적의 공격을 이용해 반격하는, 매우 훌륭한 태극권이었다.
그렇게 각 문파의 검수들까지 모두 도착한 후.
장문인께서 내려와 비무첩을 읽었다.
비무첩은 얼마나 원한이 깊게 담겨 있던지, 그저 읽는 것만으로도 사방에서 살기가 튈 지경이었다.
허나, 장문인의 목소리는 의외로 담담했다.
처음부터 이리될 줄 알았다는 듯.
그리고 모든 증인 앞에서 비무가 시작되었다.
천우는 비무장 한가운데로 걸어간다.
“저는 무당권제 명길진인의 전인 천우 도장이라고 합니다. 제자가 스승의 사십구재를 치르고, 스승의 은원 역시 이 자리에서 닦으려 합니다!”
우우우우우우!
모두가 천우를 야유했다.
그때 먼저 나선 것은 월선산인이었다.
“점창파의 월선산인이오. 과거 명길 진인이 본문에 와 본도의 스승님께 무자비한 손속을 보여주었소이다. 이제 그 은원을 갚고자 나왔는데. 독안철권이라니! 하! 무당파는 본도를 무시하는 건가!”
같은 배분의 무인이 나올 줄 알았는데 천 자 배분인 천우가 나왔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거기다가 천우는 가진 능력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무명이 잘 붙지 않는 녀석이고.
신진 고수들 중에서 손꼽히는 정도이지, 그렇다고 혈편왕 당아나 창룡검 남궁운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천우는 무시도 익숙하다는 듯 담담히 답했다.
“무당파 삼 대 제자 천우입니다. 점창파 월선산인께 도에 대한 가르침을 청합니다.”
“허……. 맹랑하구나. 좋다! 내 너를 꺾고 무당의 방자함에 가르침을 주겠다!”
천우는 슬쩍 형을 본다.
형의 뒤에는 급히 지원 온 백린의각의 의원들이 양손을 쥐고 기도하고 있었다.
“천지신명이시여. 제발 저 무림인들이 적당히 타박상으로만 끝나게 해주시옵소서.”
“서로 내장 색은 안 보게 해주시옵고!”
“골절도 분쇄골절과 개방성골절은 피하게 해주시옵고! 위치도 고관절이랑 척추 같은 곳은 제발 피하고!”
“최악의 상황이 일어나면 나머지 조각(?)을 비무장 내에서 신속하게 찾을 수 있도록 해주시옵소서!”
“머리도 제발…….”
권제의 제자가 생사결을 시작하는 동안.
형의 제자들은 불가능한 기도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