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8
제 68화
“허허허. 정말로 죽고 싶으십니까? 도련님? 굳이 그런 짓 하실 것 없이 제대로 요청하시면 바로 들어 드릴 텐데요.”
“그럴 리가. 유 총관. 내가 유 총관이 주는 서신을 어떻게 거절하겠어. 고오마운 마음으로 모두 앞에서 열어야지.”
유호는 누가 들을세라 아주 작게 두 글자를 발음했다.
“마교에서 온 걸 아주 그냥 다 광고하지 그러십니까.”
그랬다. 마교에서 온 서신이다.
그리고 직감으로는 리틀 천마, 여하륜이 보냈을 것 같았다.
진천희가 심드렁하게 답했다.
“마교와도 연이 있잖아. 우리 의각.”
“그건 내부의 이야기지 동네방네 할 이야기는 아님을 모르지 않으실 텐데요.”
화주의각이 백도를, 흑전의각이 흑도를 맡는다면 백린의각은 그 두 가지의 길 어느 곳에도 속해 있지 않았다.
백린의각을 찾는 환자들이라면 흑백을 따지지 않고 받았다.
중요한 건 환자의 개인적 사상이나 사문이 아니었다.
환자가 앓고 있는 병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대단한 것 같지만 조금은 다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스승님은 자신의 몸을 연구하는 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설령 마교라 하더라도 단서가 있다면 꺼리지 않았다.
어찌 보면 지식에 대한 탐욕만 친다면 혈생노괴와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그것을 스승님은 교묘한 방법으로 포장해 가운데를 걸었던 것뿐이고.
마교의 환자도 받는다.
그건 정파의 기준으로 봤을 때 심각한 일이지만 현대인 진천희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환자를 가리지 않고 치료한다는 건 의사로서 좋은 덕목이지.’
진천희는 대답 대신 웃기만 했다.
“도련님 머리를 열어 보고 싶네요. 됐습니다. 이만 갈 테니 혼자서 느긋하게 열어 보십시오.”
“앗, 가게?”
“네. 검사해 보니 위험한 건 안 들어 있었습니다. 뭐, 그쪽 분들은 의각 쪽에는 늘 정중해 왔으니 당연한 거지만요.”
“알았어. 그러니 차 한 잔 더.”
“크윽. 알겠습니다. 도련님.”
유호는 패배를 시인했다.
진천희는 아무도 없는 방, 탁자에 앉아 목함을 살펴보았다.
목함은 비단 끈으로 묶여 있었는데 꽤나 고급이었다.
진천희는 매듭을 풀고 목함을 열었다.
딱-
마치 하나의 나무처럼 완벽하게 맞물렸던 상자가 소리를 내며 반으로 갈라졌다.
편지와 비단 주머니.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교에서 편지를 보내도 좋다고는 했지만, 보낼 사람이라고는 형밖에 없어 이렇게 보낸다.
나는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때가 되면 얼굴을 보러 가겠다.
발신인이 쓰여 있지 않았지만 누가 보냈는지 명확했다.
‘벌써 계급이 많이 오른 건가? 조만간 정말 소교주 달겠는데?’
마교인이 외부에 편지를 보내기 위해서는 그 정도 직위가 아니면 안 된다. 하지만 이건 빨라도 너무 빨랐다.
원래라면 5년은 족히 걸릴 예정 아니던가. 대체 무슨 변화가…….
‘아. 그렇구나. 내 가르침 덕분에 빨라진 거야.’
진천희가 여하륜에게 가르쳐줬던 건 그냥 기본적인 처세술이었다.
무인 대 무인이 벌이는 힘의 논리가 아닌, 그냥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이다.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모두가 다 아는 기본적인 상식.
‘딱딱한 말투를 보니 성격이 바뀐 것 같지는 않지만. 음.’
또 한 가지. 진천희는 그에게 사람을 죽이기 전에 세 번은 생각해 달라고 부탁했다.
여하륜은 세 번은 늦으니 두 번만 하겠다 했다.
그게 이 상황를 만들어 낸 것이었다.
‘무서운 놈. 천살성의 본능을 이겨 내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그리고 또 한 가지.
‘혈고를 억누르는 데 성공했군.’
건강하게 잘 지낸다는 말은 그것을 뜻했다.
의료인으로서 뿌듯해졌다.
‘자, 그러면 이 비단 주머니만 열어 보면 되겠네.’
제법 묵직하다.
진천희는 주머니를 열었다. 거기에 있는 것은 새카만 팔찌였다.
누가 마교 아니랄까 봐 흑룡 장식이 팔찌를 둘둘 감고 있었다.
‘이거, 설마. 내가 소설에서 본…… 그건가? 원래라면 여하륜 본인이 끼고 있는 건데?’
확신이 없다.
진천희는 흑룡의 머리를 비틀어 보았다.
달칵-
그러자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가느다란 흑사(黑絲)가 모습을 드러냈다.
실보다도 가는 현이지만, 살이 베일 만큼 날카롭다. 암기 중의 암기라는 그것.
‘헉, 흑천혈사? 이 귀한 게 대체 왜 서신으로 온 거야?’
흑천혈사.
천마가 사용하는 암기 중의 하나다.
피와 살이 튀는 마교에서 자신의 몸을 지킬 만한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비단 커다란 대검만을 뜻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현이 적의 목을 조이고 벤다. 유사시에 함정을 만들어 수백의 고수들을 말려들게 했다.
‘흑전암괴와 연을 만들었구나. 제자가 된 걸까?’
암기의 제왕이라 불리는 흑전암괴가 가지고 있는 호신 무기다.
원작에서 리틀 천마 여하륜은 흑전암괴를 힘겹게 이기고는 이 흑천혈사를 얻어 낸다.
장력은 코끼리 힘줄 같고, 특수한 내력을 주입하면 예기가 금강석을 벨 정도로 날카로워진다.
만 개의 비수보다 무섭다 하여 흑전암괴가 평생 소중히 간직한 비보다.
흑전암괴는 마교 내에서는 괜찮은 축에 드는 상식인인 데다 상당한 강자다. 그러나 여하륜은 천살성의 기질을 이기지 못하고 그의 자식을 죽인다.
그게 소가주 혈겁 때였다.
그때 여하륜이 당한 상처는 족쇄가 되어 그를 괴롭히게 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던 모양이다.
팔찌는 상처 하나 없었다.
지금의 여하륜으로는 강제로 뺏어내는 건 불가능.
원한보다 끈끈한 것을 이룬 모양.
흑전암괴와 사제 관계가 되든, 하나뿐인 그놈 자식에게 어떠한 은혜를 입히든, 좋은 방식으로 4년이나 빨리 이 비보를 얻어 냈다.
‘그런데 천마 놈이 왜 이걸 날 줘? 지가 쓰지.’
그것도 생색 하나 내는 거 없이 ‘무슨 오다 주웠다.’ 같은 느낌으로 툭 던져 놨다.
‘아니, 내가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이 팔찌의 가치도 몰랐을 거 아냐. 팔아먹기라도 했으면 어쩌려고?’
추웠다.
천마의 쿨함이 너무나도 추웠다.
진천희는 팔찌를 장착했다.
지금은 약간 헐렁하지만 몸이 성장하고 나면 그때는 괜찮을 것 같았다.
‘답장을 써야겠지?’
혹시 누가 엿볼 수 있을 테니 이쪽도 이름은 쓰지 않는 게 좋겠다.
그 전에 전서구가 마교 분타에 도착한다고 한들 제대로 천마 놈 앞에 돌아갈지도 모르겠고.
진천희는 간단하게 답장을 썼다.
끼니 잘 챙겨 먹고 몸 건강히 잘 지내라는, 형식적인 답장이었다.
* * *
전서구를 보내고 진천희는 툇마루에 걸터앉아 흑천혈사를 만지작거렸다.
역시 겉으로 봐서는 평범한 팔찌다.
아니, 무척이나 고급스럽고 매우 비싸 보이니 평범과는 거리가 먼가.
‘흑천혈사를 만든 장인은 분명 화려한 걸 좋아하는 이상한 놈일 거야.’
암기는 숨기기 좋게 평범할수록 좋은 것 아닌가.
이런 팔찌는 부잣집 도련님 기준에서야 평범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게 그런 엄청난 비보라는 게 실감이 나질 않았다.
시험 삼아 용머리를 돌려 흑현을 뽑아 보았다.
장력이 대단한 건 알겠는데 절삭력이 높아 보이지는 않았다.
문득 내공을 흘려보내 보았다.
“…….”
이것만으로는 별 변화가 없었다.
이번에는 내력을 조금씩 조합을 바꿔서 넣어 보았다.
오행신공의 금(金)과 수(水) 기운을 2대 1 정도로 섞어 넣자 드디어 반응이 왔다.
자르르-
흑현 전체가 반응한다.
현 끝에 손가락을 대자 붉은 선이 생겼다. 메스 같은 절삭력이었다.
‘특수한 내력을 주입하면 된다고는 들었는데 오행신공으로 대충 흉내는 되는 모양이야.’
원래라면 아마 마교의 마공에 반응했을 터였다.
‘음. 역시 편법이 달다.’
여하륜이 어디까지 알고 보냈을까.
진천희는 생각에 잠겼다.
“대체 무슨 생각 하십니까?”
유호는 진천희가 마신 차와 다과, 그리고 목함을 수거했다.
진천희는 팔찌를 만지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어떻게 하면 사람 목숨 구하는 데 쓸 수 있을지 궁금해서요.”
“사람을 죽이라고 만든 암기를 의술에 쓰겠다고요?”
“미친 소리 같아요?”
“언제는 도련님이 제정신인 적이 있으십니까? 도련님에게는 그게 정상이겠죠.”
‘이놈이?’
이번에는 어떻게 멕여 줄까 진천희가 고민하는데 유호가 한마디 덧붙였다.
“그런 도련님이니 준 걸 겁니다. 제정신이 아닌 인간이니, 자신과 다른 방향으로 쓸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
그걸 저놈이 어떻게 아는 걸까, 진천희가 슬쩍 돌아본다.
유호가 이마를 찌푸린다.
“뭐, 밑바닥까지 가 봤던 놈들이 하는 생각은 비슷비슷하니까요. 그런 놈이 저걸 쥐어 봤자 어떻게 쓸지 뻔하잖습니까.”
“밑바닥, 밑바닥이라…….”
유호의 말은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마치 본인이 거기까지 가 본 듯하지 않나.
생각해 보면 언제는 스스로를 미물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어릴 적 빈민굴에서 굴러 본 걸까. 아니면 저놈도 어릴 때 사파나 마교에 납치라도 되었다가 도망이라도 나온 건가.
암살을 업으로 삼는 문파에 세뇌 납치라도 당했을 수도 있고.
강호란 게 그렇다. 겉으로 봐서는 알 수가 없었다.
‘뭐, 맨날 날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놈을 봐줄 생각은 전혀 없지만.’
아무튼 여하륜 녀석은 이걸 다른 방향으로 써 주길 바랐던 모양이었다.
물론 호신 용도도 있을 거고.
‘반은 맞았네. 그렇지 않아도 의료용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차였으니.’
유호는 진천희에게 다시 차 한 잔과 떡 세 개를 놓아 주고 갔다.
약간의 독설을 담아서.
진천희는 허허롭게 웃으며 그런 유호를 멕였다.
그렇게 혼자 툇마루에 있기를 몇 시간.
흑천혈사의 사용법을 머릿속으로 열심히 응용하고 있던 참에 누군가가 진천희에게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유호인가? 아니군.’
유호의 발소리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네발짐승의 것에 가깝다.
아마 그가 익히고 있는 무공의 영향 같은데 이번에 들리는 발소리는 그렇지 않았다.
가볍고 빠른 발걸음.
“천희야.”
왕각연이었다.
이제는 완치가 되다 못해 전신 세맥까지 뚫린 그녀였다.
동년배에서 그녀를 이길 자는 강호의 명문 세가들을 뒤져 봐도 거의 없다.
그녀의 등에는 커다란 각궁이 걸려 있었다.
파사각궁이라는 병기로 신병까지는 아니어도 파사신공을 사용하기 좋게 개량된 활이었다.
손때가 묻어 있는 것으로, 아버지 궁귀가 쓰던 활이었다.
화경에 이른 궁귀에게 이제 파사각궁은 필요 없다.
활에 얽매일 경지에서 벗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딸 왕각연에게 물려주었다.
어린 여자아이의 체구에는 큰 활이었지만 그녀는 그것을 자유자재로 다루었다.
“무슨 일이야? 숨은 왜 그렇게 차 있는 거고.”
왕각연이 말했다.
“너 경공 잘한다지?”
“삼재보법에서 파생된 삼재 경공은 좀 밟을 줄 알지.”
삼재경공도 삼재보법과 다를 바가 없다.
좌, 우, 전. 이거 세 개가 전부다.
보통이면 농담으로 받아들일 하급 경공인데 왕각연의 표정은 진지했다.
“잠깐 따라와 줄래? 치료해 줬으면 하는 자가 있어.”
그녀는 주섬주섬 품에서 은전 하나와 철전 아홉 개를 꺼냈다.
그게 그녀의 전 재산임을 진천희는 모르지 않았다.
“무슨 일인데?”
“제발…….”
지금 답할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