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83
제 683화
“보타의 아비입니다. 본 파의 검법인 여래검을 사용하겠습니다.”
그리고 허리에 걸려 있는 것은 목검. 그것도 누가 보면 지팡이라고 착각할 만큼 낡고 뭉뚝한 모양새였다.
이걸로는 두부도 썰지 못할 터. 그러나 상대는 검황.
그녀는 검황이라는 별호를 내려놓았다.
이곳에는 죽은 친우를 만나러 온 한낱 땡중일 뿐.
그 이상은 필요치 않으리라.
“무당의 천우입니다. 사용할 무공은 본 파의 신공절학인 태극신권과 태극권. 그리고 태청산수입니다.”
천우가 사용하는 무공도 달라지지 않았다.
상대가 검황이라 하더라도 바꿀 것은 없다. 그저 배운 무학을 사용할 뿐이었다.
강호의 족적으로 남을 이 비무는 공증인도, 비무할 무인들도 말수가 적고 너무나도 담백하여 호사가들의 궁금증을 더했다.
딱 하나 다른 특별한 점이 있긴 했다.
아비 스님이 했던 말.
여래검공.
혹은 여래검이나 여래검법으로 부르는 보타문의 기본공에 속하는 무공이다.
그녀는 그 기본공으로 싸우겠다고 하고 있었다.
무당파에 태극권이 있다면, 보타문에는 여래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두 명은 서로 기수식을 취했다.
천우는 두 다리를 양어깨만큼 벌리고 서서, 한 손은 몸으로 당기고 다른 손은 앞으로 내밀었다.
아비 스님은 한 손으로 검을 쥐고, 고요히 늘어트려 놓은 채로 다른 손은 반장을 하고 서 있다.
고요한 대치.
“삼 수를 양보하겠습니다.”
선배인 아비 스님이 선공을 양보했다.
천우가 이것을 마다할 이유도, 그럴 여유도 없었다.
“그러면 아비 스님께 가르침을 청합니다.”
천우가 한 보 앞으로 나섰다.
아비 스님과는 사생결단을 낼 생각이 없기에, 주먹에는 강기가 아닌 권기가 서려 있다.
무당 태극권 섬통비(閃通臂).
전신의 기가 왼팔을 통해 뻗어져 나간다.
그 일권은 마치 섬전 같아서, 눈으로 보면 늦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일격의 정면에 어느샌가 검이 수직으로 섰다.
날 하나 서있지 않은 아비 스님의 목검.
보타 여래검 여래일선(如來一線).
검이 권기를 가볍게 잘랐다.
그러나 뒤이어 천우가 더욱 가까이 다가와 두 번째 초식을 사용했다.
두 손이 내력을 담아 아비 스님의 머리를 향한다.
태극권 쌍봉관이(雙峰貫耳)의 일초!
그것 역시 빠르고 강렬했으나 어느샌가 다가온 검의 옆면이 그대로 두 손을 튕겨낸다.
쩡!
이번에는 서로의 내력이 충돌해 큰 소리가 났다. 그럼에도 천우는 물러서지 않고 더욱 가까이 붙었다.
두 팔이 튕겨져 나간 것을 그대로 회전시키며 이번에는 쌍장을 내밀었다.
태극권 태극장!
그에 맞서는 아비 스님은 손잡이를 쥐지 않은 반대쪽 손의 손바닥을 펼쳐 검의 옆면을 잡고 내민다.
여래검 부동명왕.
쾅!
검과 손이 충돌하며 폭음이 생겨났다.
두 명의 발이 땅을 긁으며 뒤로 밀려나갔다.
그리 빠르지 않은 접전.
그러나 무공에 대해서 아는 이들은 지금의 접전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다들 알고 있었다.
간결한 듯하나, 상승의 무리가 있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공수교환!
“훌륭하군요. 천우 도장. 확실히 그대의 노력은 감탄스럽습니다.”
숨 하나 흐트러지는 법 없이 아비 스님이 말한다.
천우 역시 솔직하게 감탄했다.
“여전히 강하시군요.”
“본승도 자랑거리가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 그러면…… 세 번을 양보했으니. 이제 진짜로 가겠습니다.”
아비 스님의 기세가 달라진다.
여래검 천수여래.
검이 느릿하게 움직이는 듯 보였지만, 어느샌가 그 잔상이 열 개로 늘어났다.
그 열 개의 검영이 순식간에 덤벼들어 온다.
‘온다……!’
열 개의 검영, 천수여래라는 말대로 본디 제대로 펼치면 수십, 수백의 잔상이 보인다 들었다.
허나 아비 스님은 간결하게 열 개만 사용했다.
그럼에도 빈틈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고.
‘이게 검황이 내린 답인가?’
모든 방위를 정확하게 점하고 있어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천우의 손에서 무당의 비의가 켜진다.
태극권 태극원융.
수없이 많은 일격들을 흘려보낸 비의.
허나, 어째서일까.
아비 스님은 여전히 자애롭게 웃고만 계셨다.
“아미타불.”
그 순간. 열 개의 잔상이 변화했다.
마치 그것은 불가의 본존 뒤에 그려져 있던 만다라와도 같이 각자의 무학을 담아 개방되었다.
여래검 천수천안!
‘천수여래가 천수천안으로 바뀐다고?!’
지켜보던 진천희도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와아아아아!
무인들의 함성이 울린다.
아비 스님이 만들어낸 여래검 천수천안이 천우의 태극원융을 만나 충돌한다.
콰과과과광!
그 폭발에 구경하던 무인들의 몸이 주르륵 밀려나간다.
심지어 진천희의 소매도 함께 부풀어 올랐다.
허나, 그는 단 한 걸음도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이 비무를 하나부터 열까지 모조리 눈에 담아두어야 한다!’
그 순간, 태극권의 태극원융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쩌저저적!
태극이 폭발하려고 하자 천우는 절망했다.
‘역시 이길 수 없나……?’
검황이 가진 이름은 그야말로 광오하여 천우로서는 도무지 닿을 수 없는 산이었다.
지는 것 자체는 서럽지 않다.
그것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과도 같은 이치니까.
허나, 자신이 부족하여 스승님의 위패를 빼앗긴다는 것은 서러웠다.
그 순간.
-이놈아! 넌 뭐든 결론을 먼저 내리니까 문제인 거다!
왜일까.
스승님의 호통 소리가 등 뒤로 들리는 것 같았다.
문득 아비 스님이 어떤 가르침을 내리려 한 건지 궁금해졌다.
만약, 그녀의 목적이 진정으로 천우를 깔아뭉개는 것이라면 목검이 아니라 진검을 들면 된다.
삼 수 양보도 하지 않으면 된다.
검기 대신 검강을 쏟아부으면 된다.
허나, 검황은 그 길을 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뜻은 무엇인가.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몸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제야 생각이 따라서 움직였다.
-태극은 단순히 음양이 아닌, 변화를 뜻한다. 만물이 가볍고 뜨거울 수도, 무겁고 차가울 수도 있다면 결국 음양은 즉, 만물의 변화를 의미함이라.
스승님의 마지막 가르침.
아비 스님은 천우에게 보여주었다.
천수여래가 천수천안으로 개변되는 것을.
그렇다면.
‘태극원융도 변화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기 위한 태극권이 아니었던가.
‘우리가 당연하다 생각하며 반복해온 초식들이 사실은 족쇄였던가.’
그녀의 심무는 천수관음과도 같이 무쌍하다.
그것은 어찌 보면 태극과도 비슷한 면이 있지 않던가.
모든 만물이 다변함을 태극이라 한다면, 가장 많이 다변하는 것은 결국 마음(心)이 아닌가.
‘아아, 천변하게 변하는 마음(心)이야말로 곧 태극이구나.’
천우의 손끝에서 심무가 발현된다.
그것은 천우가 단 한 번도 꿈꿔본 적 없던 아득한 이상향.
그 변화를 아비 스님이 자애롭게 지켜본다.
천우가 자신을 잊고 권을 뻗어낸다.
태극신권 심무절기.
태극합벽—!
공기를 느낀다.
쪼개지려던 태극이 새로운 심무로 변화한다. 그렇게 변화한 태극이 음으로 양으로 폭발했다.
콰과과과과광—!
비무장 전체를 울리는 가공할 폭발 속에서 천우는 죽음을 본다.
자신이 펼친 심무에 자신이 죽을 위기라니 우습지도 않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쁘진 않다.
-그렇군. 내 백 년의 시간은 너를 만나기 위해 있었던 거였어.
한 사람이 일생을 걸어야만 가능한, 단 하나의 찬사.
권제께서는 자신의 제자에게 최고의 찬사를 남기셨다.
그렇다면 멈춰서는 안 되지 않나.
권제께서 살아가신 백 년을 누군가는 증명해야 하지 않던가.
다른 이여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자신이어야 한다.
그분이 무엇을 남겼는지 알아야 하지 않나.
‘고집스러운 태극이여.’
스승님의 진짜 뜻은 아직도 알 수 없다. 허나, 이대로 그의 위패를 지키지 못하면 평생 후회할 것을 알고 있다.
이 일권(一拳)이 평생 마지막이어도 좋았다.
팔을 내줄 각오를 했다.
사람은 한 번쯤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할 때가 있고 지금이 그때임을 알았다. 그러니 뻗어라.
천우는 죽음을 작심하고 온 힘을 다한다.
굉음 속에서 시야는 빛으로 가득 찼다.
울컥-
박살 난 비무장.
천우의 양팔이 부러졌다.
고막이 터졌는지 귀에는 피가 흥건했다.
방금 쏟아낸 심무는 천우에게는 결코 불가능했던 경지.
그것을 스승님의 가르침으로 억지로 끌어내서 사용한 것.
그 대가는 혹독했다.
그러나 그 시야에 보이는 것은 아비 스님.
그녀는 목검을 든 채로 여전히 서 있었다.
‘닿지 않았나…….’
그 순간, 진천희가 가운데로 향한다.
형 역시 무사하진 않았는지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두 사람 사이에 섰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둘 다 장외패! 무승부입니다!”
그 순간, 천우의 눈이 커진다.
자신과 아비 스님이 있던 자리에는 이미 흙더미밖에 남지 않았지만 원래라면 관객석이어야 할 곳이었다.
‘무…… 무승부?’
와아아아아아!
무당인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검황을 상대로 권왕이 무승부를 만들어냈다!
아비 스님이 목검을 도로 집어넣었다.
“멋진 태극이었습니다.”
“……저는 벌써 두 번의 가르침을 받았군요.”
“아미타불……. 과거 무당을 통해 깨우친 것을 무당에 돌려준 것뿐입니다.”
그 말에 진천희의 눈이 커졌다.
‘그랬구나. 그랬어. 그랬구나!’
무공은 결코 혼자서 늘 수 없다.
벽을 보고 면벽수련을 하는 것도 결국 한계가 있다.
싸워본 경험이 일생동안 단 한 번도 없는 자가 벽만 본다고 한들 천하제일의 고수가 될 수는 없는 법.
물론 내공이나 기술의 정밀함은 늘 수 있으나, 본질적으로 무(武)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서로 겨루어야 한다.
겨루기 위해서는 상대가 필요한 법이고.
무(武)도, 협(俠)도 결국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
그것이 은(恩)이고, 원(怨)이고 사람(人)이라면.
“권제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그 제자에게 돌려주시는 겁니까.”
“…….”
아비 스님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잘 놀다 갑니다.”
과거 권제께서 했던 말.
두 사람의 인연을 뜻하는 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후대인들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아비 스님의 눈가에 살짝 눈물이 맺혔다가 금방 다시 사라지는 것을 진천희는 보았다.
그리고.
“무승부!! 무승부라니–!!!!!”
위패를 결국 지킨 장문인의 목소리도.
“…….”
풀썩-
양팔이 부러지고 탈진까지 해서 쓰러진 천우의 모습도.
오늘은 사십구재.
죽은 이가 완전히 돌아가는 날.
권제께서는 마지막 풍경으로 이것을 잘 보고 가셨을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광경은 후인이 그에게 바치는 최고의 장례식임은 틀림없었다.
허나 진천희는 쓰러진 천우에게 응급조치를 하며 생각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십구재가 드디어 끝났다고.
* * *
천우는 꿈을 꾸었다.
갈대밭에서 권제께서 유자술을 드시고 계셨다.
쏴아아아-
바람이 불자 갈대가 흔들리며 눕는다. 그러나 결코 꺾이는 법이 없었다.
나중에는 오히려 그 바람을 이용해 씨를 퍼뜨리고 더 먼 곳까지 날아가겠지.
그것은 무당이 말하는 유능제강(柔能制剛)과 닮아 있었다.
“깨달음이 있었느냐?”
어린 천우는 권제께 다가가려 했으나 좀처럼 다가갈 수가 없었다.
무정할 갈대밭은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어서 그저 제자리일 뿐.
천우는 결국 그 자리에서 말할 수밖에 없었다.
“태극을 보았습니다.”
“후후후. 그걸 보기가 그리 힘들지… 내 옛 친우에게 부탁해 놓기를 참 잘했구나.”
천우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스승님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
그래서 두 사제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진천희, 그놈이 잘해주었더구나. 너는 울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