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89
제 689화
가장 큰 일을 어느 정도 일단락을 하고.
진천희는 주왕부로 달려갔다. 물론 실무자들도 함께 향했는데, 막상 가보니 주왕은…….
-공무로 인해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공무라니…….’
시비에게 황궁 쪽으로 향했다는 말을 듣고 진천희는 조용히 닥치고 있기로 했다.
‘분명 황궁에 주왕 전하가 갔다는 소식이 객잔을 통해서는 안 들렸다는 말이지.’
가씨세가의 가주, 가완이 준 백학루(白鶴樓) 덕분에 이제 황도 정보를 더 쉽게 얻게 되었다.
하오문이 괜히 정보상이 아니다.
단순히 의각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정보에 비해 객잔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했으니까.
허나, 그쪽으로도 주왕 전하가 갔다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으니 이건 분명 비밀리에 움직이는 걸 거고, 십중팔구.
‘피바람이 불겠구나.’
내관들을 정리할 때부터 뭔가 큰 걸 준비하고 있겠거니 했다.
보통 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만 보고 움직이지는 않으니까.
아마 계속해서 다음 수를 놓고 있는 거겠지.
‘부디, 사람이 많이 죽지 않기를.’
의원이 바랄 수 있는 것은 이 정도뿐.
진천희는 그렇게 작게 기도를 하고는 상하수도 설치를 했다.
대략적인 큰 틀을 마무리하고, 이제 나머지는 하급자들에게 맡기고 백린의각에 돌아오니.
이번에는…….
“의각주님께서는 외유를 나가셨습니다.”
“음?”
이번에도 뭔가 일이 있는 모양이다.
특히나 유호까지 대동하고 나가셨다는 걸 보니 이쪽도 뭔가… 비밀리에 해야 할 일인 모양이었다.
‘요즘 스승님 자주 외유를 나가시지.’
어디서 뭘 하는지 굳이 제자에게 말씀하시지는 않으나, 뭔가 중요한 일일 거라고는 짐작할 수 있다.
‘어째 길이 다 엇갈리네.’
지구에 있을 때는 이런 감각을 몰랐다.
그때는 간단하게 톡만 보내도 알 수 있었으니까.
옛날 삐삐 세대도 길이 엇갈리면 삐삐라도 쳤으니까.
‘아, 요즘 애들은 모르나? 삐삐. 요즘은 병원에서도 삐삐 안 쓰니까.’
하지만 이 시대에 살면서 적응하다 보니 사람이란 게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더라.
길이 엇갈리는 건 흔한 일이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지 다들 시간 약속도 느슨한 편이고, 그만큼 느긋하기도 했다.
“하지만 쉬고 있으면 기분이 이상하단 말이지…….”
전생과 현생, 평생 일만 하고 살아오다 보니 아무 일도 없다는 건 역시 기분이 이상했다.
그래서 진천희는 가만히 앉아서 자신의 업무 리스트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학생 때부터 시작된 습관이 죽고 나서도 가는군.’
어차피 사교육을 할 수가 없다 보니 자기 주도 학습이 전부였던 때.
이런 식으로 쭉 정리하는 시간을 갖곤 했다.
그렇게 의대를 가고, 수련의를 거치고…….
많은 시련을 거쳐 한 사람의 교수가 되어 흰머리가 희끗해지기 시작할 때도.
그리고 죽고 나서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는 지금조차 사는 방식은 변하지 않았다.
‘일단 의원으로서의 일과랑 소각주로서의 일과는 정규 루틴이지. 이건 미리 빼놓고…….’
슥슥슥 써나갔다.
‘연구각 역시 계속 돌아가면서 신약을 개발하고 있고…….’
옛날에는 하나부터 열까지 진천희가 떠먹여줘야 했는데, 이제는 연구당 상의원들이 알아서 잘하고 있다.
‘그놈들 하의원 때 실수만 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벌써 자기 몫을 하고 남는구나.’
육체의 나이만 보면 진천희보다도 많은 사람들인데, 어째 진천희에게는 다들 자식 같고 그랬다.
그렇게 하나둘씩 정리해본 결과.
‘어? 진짜로 시간이 제법 남잖아?’
애초에 고강한 내가진기, 생사결을 통한 깨달음에 보옥의 힘까지.
거기다 나이도 젊으니 수면 시간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적어도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었다.
‘으음……. 시간이 남을 때는 뭘 하지?’
연구당에 자신이 필요한가 싶어 이거저거 보고서를 찾아보았지만, 아무리 봐도 고통만 줄 뿐 연구 진척에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남는 건 역시 무공인가…….”
지존천마.
진천희가 이 세계로 오게 된 원인이자, 이 세계의 미래가 쓰인 소설.
하지만 언제 샀는지도, 누가 지었는지도, 출판사가 어딘지도 기억이 안 나는 소설이기도 했다.
아무튼 그 소설에 따르면 지금 시점은 대략…….
“중반부쯤 되려나?”
천기를 엄청나게 바꿔버린 터라 확실하게 측정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대략 그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여하륜이 본격적으로 세계의 악을 멸살하겠다고 사방에 쥐불놀이를 하면서 돌아다니던 시점이 이쯤일 텐데?’
자신이 세계를 많이 바꿨다고는 해도 악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으니까.
‘혈선교는 아직 건재하고, 마교 내부의 암투도 문제고, 괜찮다 싶은 문파들도 각각 문제들이 있었으니까.’
물론 악과 싸우는 사람들이야 존재했다.
드물지만 이 세상에는 협객이라는 게 존재하고.
천기순행자들은…… 자신과는 대립하고 있지만 그래도 혈선교와 적대 관계인 모양이었다.
심지어 그 악랄하다는 마교조차도 여하륜 같은, 말 그대로 무협 주인공이 있고.
또한.
아직까지 진천희가 만나지 못한 절대적인 존재가 두 명 더 있다.
선존. 그리고 무존.
천하 십 대 고수의 가장 강력한 세 명인 삼존 중에서 선존과 무존은 아직 만난 적이 없으나, 지존천마에서의 묘사는 대충 보았다.
선존은 마존의 대척점에 위치한 존재다.
선도(仙道)를 지극히 수련하여, 선(仙) 그 자체가 된 존재.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천제단(天祭壇)이 있는 태산(太山)에 거하며 움직이지 않는 존재이다.
그자가 왜 그곳에 있는지는 지존천마에도 나온 바가 없다.
그리고 무존.
이자는 그야말로 무(武)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였다.
천하의 모든 무공을 익히겠다는 미명 아래, 다른 문파의 무공까지 강탈하는 자였다.
당연히 문외불출(門外不出)의 비전절기를 외인에게 전수하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
수십 년 전 무존의 만행에 무림 전체가 몸살을 앓을 정도였으며, 마교만이 그의 마수를 피해냈다고 알려져 있다.
왜냐고?
무존에 버금가는 마존이 그곳에 있으니까.
그리고 무존의 행적은 지금 묘연하다.
지존천마에서도 딱 세 번 등장하여 여하륜에게 도움을 주거나, 대련을 하며 여하륜을 두드려 패 주는 존재로 나온 전적이 있다.
그런 도산검림 강호 무림이니, 무공의 연마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진천희는 신중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시간은 유한하고, 몸은 하나이니 할 일이 많아도 제한을 받을 수밖에.
“아……. 손오공 분신술 같은 거 있으면 좋겠다.”
녹림의 연원왕이 그리웠다.
‘그 원숭이, 화학도 했는데…….’
대체 진천희를 만나고 무슨 심경의 변화를 보였는지 코빼기도 안 보이고 있다.
‘다음에는 절대 안 놓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진천희는 무공 수련에 박차를 가하기로 결심했다.
이 세계로 넘어온 지도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나, 무공과 의술에 있어서는 전문가 중의 전문가.
이 정도면 무공으로도 교수 수준이 되지 않을까 자부하는 진천희다.
물론 일대종사라는 좋은 무협 단어가 있지만 진천희는 교수라는 말이 더 마음에 들었다.
그는 괜히 일광이 아니었으니까.
‘아니, 근데 일대종사라는 말은 뭔가 나보다 더 대단한 인간이 들어야 하지 않나?’
권제님.
그분보다 그 말이 어울리는 사람은 없으리라, 그리 비교하니 한없이 작아졌다.
그래서 진천희는 스스로를 교수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다.
그는 교수인 것이다.
그렇기에 기왕 이렇게 된 거 학문적으로 좀 더 접근해 보기로 했다.
무공 완성 프로젝트!
난잡하게 익힌 여러 가지 신공절학들의 장점을 취합하고, 단점을 폐기 처분하거나 보완하며 하나로 합일시키기 위한 것.
진천희는 그렇게 남는 시간을 무공을 연구하고 수련하기로 결정 했고, 눈이 새파랗게 번쩍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면 일단 무공 이론부터 연구를…….”
접근법부터 괴이한 방식으로!
그렇게 작정하고 수련실로 향하던 진천희에게 의각에서 일하는 사람이 다급히 달려왔다.
“소각주님! 급행의 서한이 왔습니다!”
급보가 날아왔다.
* * *
-아버님께서 자리를 보전하고 누우셨네. 권제께서 돌아가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진 아우, 한번 왕진(往診)을 와 줄 수 있겠나? 화주의각은 요새 믿을 수가 없으니……. 진 아우만 믿겠네.
남궁세가에서 온 서신.
그걸 받은 진천희는 즉시 움직이기로 했다.
“황구야.”
컹!
진천희는 곧바로 황구에 올라타서 남궁세가로 이동했다.
급한 사안이다 보니 일단 어디로 향한다는 것만 전하고는 뇌진과 함께 빠르게 이동했다.
남궁세가로 가는 길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산적이나 수적을 마주치는 일 없이 평안하게 도착한 남궁세가…….
정문에서 호위 무사가 진천희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백린의각의 소각주님을 뵙습니다. 소가주님께서 미리 이야기를 해두셨으니 안으로 드시지요.”
깍듯하게 예를 갖춰서 호위 무사는 진천희를 맞이했고.
호위 무사를 따라 그렇게 안으로 들어간 남궁세가.
‘쥐 죽은 듯 조용하네.’
아무래도 가주께서 위독하기 때문일까.
만나는 가솔들, 호위 무사들 모두 웃음기 하나 없이 돌아다녔다.
무당파와는 다른 느낌의 기묘한 침묵.
진천희는 문득 후원에 바람이 불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진법이구나.’
이미 진법의 안에 들어섰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과연 남궁세가로구나.’
강호에서 진법으로는 제갈세가와 다투는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진천희가 보기에 제갈세가 쪽이 한 수, 아니 두 수는 위이나 견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남궁세가의 진법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특히나 정원석 하나하나까지 모두 쉽게 놓지 않은 것이 약간의 편집증마저 느껴졌다.
그리고.
‘돈이 많구나.’
호화롭게 황금으로 박하고 진주로 장식하고 하는 건 아니지만, 모서리에 놓은 분재 화분조차도 집 한 채 값이었다.
그걸 그냥 장식으로 놓고 있었다.
‘와……. 대체 얼마나 벌어들이는 걸까.’
이런 곳에서 어릴 때부터 산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귀빈실까지 안내받던 도중. 문득, 낯익은 의복이 보였다.
‘화주의각……?’
호위 무사가 전음을 보냈다.
[화주의각 부각주님께서 와 계십니다.]남궁운이 미리 언질을 하라고 말한 모양이다.
경쟁 의각이니 신경이 쓰이는 것도 당연한 일. 보통 이러면 기 싸움을 하기 마련이었다.
허나, 의외로 진천희는 불쾌하진 않았다.
오히려.
‘그런데 문지기 호위 무사가 전음을 한다고?’
무협 소설에서 문지기란 무슨 역할이냐.
보통 주인공의 위대함을 알아보지 못하고 가로막다가 처맞는 역할이다.
한마디로 주인공의 강함을 보여 주는 잔챙이 1의 역할을 맡고 있는 셈.
그런 잔챙이 1이 전음을 한 것이다.
‘대체 남궁세가는 문지기조차 얼마나 강한 놈으로 앉혀 놓은 거야?’
심지어 옷도 비단에 금실로 자수도 놓았다.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짓는다.
그때 화주의각 부각주가 진천희와 황구, 그리고 뇌진을 본다. 그리고 한 번에 알아보았다.
“화주의각 부각주 양당이오. 백린의각 소각주를 만나서 반갑소.”
양당?
‘지난번에 사마혜에게 찝쩍인 양빙과는 친척 관계인가.’
의각에서는 각주 아래에 보통 소각주와 부각주가 있다.
부각주는 의각의 이인자라고 할 수 있는데.
백린의각에는 부각주가 없다.
소각주인 진천희가 부각주의 역할도 하기 때문.
그만큼 스승님께서는 권력을 나누는 법 없이 고스란히 제자에게 물려주고 싶기 때문이었다.
진천희도 함께 포권을 했다.
“백린의각 소각주 진천희입니다. 이리 만나 뵈어 기쁩니다.”
“음. 마찬가지요. 허나, 본인은 일이 있으니 이만 가겠소.”
그렇게 진천희와 깊게 말을 섞는 법이 없이 양당은 도망치듯 사라졌다.
그 뒷모습을 한참 보다가 진천희는 생각했다.
‘어째 요즘 날 싫어하는 사람들이 나랑 대화도 안 하려고 한단 말이지~’
이렇게 평화를 사랑하는데도 어째 오해는 날로 커지는 것 같았다.
진천희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기로 했다.
‘언젠가 이 사람들도 나의 활인을 알아주겠지.’
진성자 어르신을 제물 삼아 혈사를 막았을 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넘었으나 진천희는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붉은 가슴으로 캔디송을 부를 뿐.
거기다 방금 그 태도.
진천희는 눈치챘다. 전생과 현생, 조직 사회에 몸담아왔으니까.
‘으디 보자아……. 남궁운이 나를 불렀으면 화주의각을 부를 리가 없는데……. 이거 남궁세가 내부에서 파벌 싸움이라도 붙었나 보구먼. 엇차차~’
속내와는 다르게 겉은 정반대.
진천희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눈꼬리를 휘어 부드럽게 미소 짓는다.
그 미모와 분위기에 얼굴을 붉히는 자들도 보였다.
‘가주는 죽어 가는데 다들 힘도 좋아.’
그런 청년의 옆얼굴은 무척이나 희고 달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