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9
제 69화
고집이 강하고 진중한 그녀였다.
한 번 정한 일은 하늘이 뒤집어도 끝을 보았다. 그러면서도 사사로운 일에는 결코 고집을 부린 적이 없었다.
진천희는 아무 말 없이 몸을 일으켰다.
“바로 채비할게. 그리고 돈은 필요 없어.”
친우의 절박한 부탁에 값을 매길 진천희가 아니었다.
* * *
그녀는 숲을 빠르게 달렸다.
자그마한 등이 빛 그림자를 따라 흩어졌다가 다시 나오길 반복했다.
그런 왕각연을 따라 진천희는 뒤처지는 법 없이 쫓아갔다.
“더 빨리 뛰어도 돼.”
“어떻게 안 거야?”
진천희가 지칠까 싶어 전력으로는 달리지 않았다.
만약 진천희가 너무 지친다면 업고 달릴 생각이었다.
진천희가 담담하게 답했다.
“궁귀 아저씨한테 파사신궁에 전승되는 보법이 일절이라고 들었거든. 나 여유 있으니까 달려.”
궁귀, 왕채백은 진천희에게 계속 궁귀라고 불러 주기를 바랐다.
별호는 자신이 쌓아 온 업이라면서.
그렇게까지 부탁하니 진천희로서는 달리 마다할 명분이 없었다.
딸인 왕각연도 아버지가 정한 일이니 크게 의미를 두진 않았다.
“알았어.”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리에 힘을 준다.
퉁!
첫 진각을 밟기가 무섭게 그녀의 잔상이 흩어졌다.
마치 혼몽이라도 꾼 것처럼 자취 하나 안 남기고 사라졌다.
‘휘유, 대단하네.’
진천희는 작게 휘파람을 불고는 내력을 돌렸다.
오행신공, 풍결과 이번에 깨달은 빙결을 다리에 집중한다.
삼재보법의 깨달음이 소년의 몸을 일깨웠다.
탁.
진천희는 가장 적은 움직임으로 왕각연의 뒤를 곧장 쫓아갔다.
그런 진천희를 보는 왕각연의 눈빛이 일순 경이로 바뀌었다.
“너 무공 배운 지 얼마 안 되지 않았어?”
“반년.”
“그게 된다고?”
친우의 성취가 놀라운 모양이다.
두 아이가 도착한 곳은 협곡과 협곡 사이에 자리 잡은 작은 굴이었다.
그것도 나무뿌리에 가려져 있어서 보통은 절대 알 수가 없는 위치. 알아본다고 해도 산짐승이 파 둔 것처럼 무성의한 생김새였다.
거기다 어른은 들어갈 수 없는 좁은 토굴.
그 앞에 둘은 멈춰 섰다.
“여기에 환자가 있는 거야?”
“응.”
왕각연은 몸을 굽히며 네발로 굴속을 들어갔다.
비싼 비단 옷이 얼마나 더러워지든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이고, 궁귀 아저씨 울겠… 아니다. 오히려 뿌듯해하시려나.’
옷이 해지면 또 사 줄 명분이 생긴다. 그렇지 않아도 왕각연의 잔소리에 새 옷을 못 사 줘서 안달인 아저씨였다.
좋은 게 좋은 거다.
진천희는 그런 왕각연을 따라 토굴 안으로 들어갔다.
두 명의 어린아이는 그렇게 끙끙거리며 한참을 내려갔다.
그리고 그 끝에 다다르니 빛이 보였다.
좁다란 방. 낮은 천장.
그런데 안을 볼 수 있는 건 비싼 야명주가 박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겉으로 봤을 때는 몰랐는데 이곳은 사람이 만든 인위적인 장소였다.
마치 오래전 어떤 고인이 만들어 둔 것 같았다.
끼잉-
야명주 빛 아래로 짐승의 소리가 들렸다.
왕각연이 말했다.
“다 왔다.”
왕각연을 따라 좀 더 깊이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쪽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한 마리의 개가 있었다.
개에게서는 피비린내가 났다.
진천희가 물었다.
“치료해 달라는 게 이 개야?”
“응.”
보통 개로는 보이지 않았다.
진천희는 엉덩이걸음으로 개 곁으로 다가갔다.
개의 목에는 세 개의 밧줄이 묶여 있었다.
목을 조르는 올가미가 아니었다.
개 목걸이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든 일종의 표식이었다.
매듭 모양이 기이해서 진천희는 유심히 바라보았다.
의각원이 배우는 건 의술뿐만 아니다.
강호에서 통용되는 여러 상식을 배우는 것은 기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매듭은 본 적 있는 매듭이었다.
“개방……? 그것도 밧줄 세 개에 매듭이 다섯 개? 방주를 상징하는 증표잖아?”
특급 전서견.
그것도 개방의 방주의 소식을 나르는 특급 전서견.
보통의 문파는 전서구, 즉 새를 사용한다.
날아다닌다는 점에서 속도가 보장되고 다른 문파가 가로채기가 쉽지 않으니까.
문파에 따라서는 비둘기 대신에 매나 까마귀, 까치를 사용하기도 한다.
보통 전서구는 정해진 곳으로밖에 움직이지 않는다.
개중에 지능이 높은 조류를 특별한 대법을 사용해 키우게 되면 준영물이 되어 여러 곳을 오갈 수 있게 된다.
심지어는 사람의 말도 알아듣게 된다.
여기서 개방은 개를 함께 병용한다.
속도는 새보다 느리지만 무리지어 움직이며 복잡한 루트를 한 번에 돌아다닐 수 있고 후각을 이용해 추적에도 용이하다. 또한 개라는 신분을 이용해 먹이 구걸에도 일가견이 있다.
개방은 사람뿐만 아니라 개도 구걸을 한다.
그리고 방주급의 분이 사용하는 전서견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영물이잖아?”
준영물이 아니다. 그냥 영물이다.
진천희가 말했다.
“나 개는 치료할 줄 몰라.”
“무슨 사연이냐고 물을 줄 알았는데?”
“그건 살리고 나서 물으려고.”
개 치료할 줄 모른다고 말한 것치고 진천희는 곧바로 의료용 독주에 손을 소독시키고 있었다.
‘우선 체온부터.’
진천희의 검지가 전서견의 항문을 찔렀다.
낑!
“가만히 있어.”
진천희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전서견은 더는 짖지 않았다,
‘내가 아는 건 아주 기본적인 것뿐인데 어쩐다.’
옛날에 맛보기로 공부하긴 했다.
사람과 달리 개는 응급 시 항문으로 체온을 잰다.
체온계가 없으니 촉진으로 판단하는 수밖에 없는데 개는 인간보다 체온이 2~3도 정도 더 높은 게 정상.
‘…인데 지나치게 높은데? 맥박도 빠르고.’
진천희가 말했다.
“이런 건 전공자를 찾아야지. 나한테 시켜 봐야 돌팔이밖에 안 돼.”
왕각연이 물었다.
“개는 그러면 어디서 봐주는데?”
‘맞다. 이 세계는 현대식 동물 병원이 없지.’
사람 몸도 못 돌보는 시대에 개 돌보는 의원을 찾는 건 더 힘든 일이다.
진천희가 한숨을 쉬었다.
“으…… 그럼 나도 모른다? 하는 데까지는 해 볼 테니까 처치하고 의각으로 가자. 거기서 치료하면 돼.”
크릉!
전서견이 그 말에 진천희를 물려고 했다.
놀라서 왕각연이 강아지를 진정시켰다.
“황구야. 그만해! 그만해!”
개 이름이 황구인 모양이다. 흔한 개 이름이다.
왕각연이 말했다.
“뭔가 일이 있는 건지 딴 곳에 가는 건 절대 안 되는 모양이야. 자세한 건 잘 모르겠어.”
“넌 어쩌다가 얘를 발견한… 아니다. 일단 알았어. 환자가 그걸 바라신다 이거지?”
살다 살다 개를 환자로 받을 줄은 몰랐다.
진천희는 소설 속에서 개방에 생길 만한 일들을 떠올려 봤다.
개방의 방주의 전서견이다.
그런 영물이 목숨을 걸고 전하는 소식이 결코 작은 소식일 리가 없었다.
‘짚이는 게 너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많았다.
개방은 앞으로 수많은 폭풍우를 겪게 된다. 하나하나가 개방에 치명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 개가 살아야 개방이 사는 건가.’
무림을 생물로 치면 전서는 적혈구라고 할 수 있다.
산소 대신 정보를 옮겨 문파 전체를 구석구석 살린다.
“왜 다쳤는지 알아?”
“나도 몰라. 솔직히 이 녀석이 도와 달라고 울지 않았다면 나도 전혀 몰랐을 거야.”
왕각연이 말했다. 황구는 동네에 자주 보이던 개다. 개방 사람들과 친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거지와 개는 경쟁 관계이면서 동시에 공생 관계이지 않나.
황구는 체구가 좀 큰 노란 털의 개다. 흔한 개.
“개방 소속 개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방주님의 전서견인지도 몰랐어. 그냥 머리가 좋고 발이 빨라서 아이들 모두가 좋아했지. 목에 걸고 있는 밧줄도 너무 허름하고.”
진천희 자신도 배워서 아는 거지, 모르고 개를 봤다면 평범한 시골 발바리로 보였을 것 같긴 했다.
‘그런데 이 녀석 이 동네에 자주 나타났었나 보네. 동네 아이들이 알 정도면 뭐…….’
왕각연의 말이 이어졌다.
“예전에 같이 놀던 애들이 황구라고 불렀어. 그게 다야. 그러다가 오늘 숲에서 사냥을 하다가 발견했는데…… 굴로 날 데려가더라. 그리고 여기서 쓰러지더라고.”
거의 마지막 힘을 다해서 그녀를 찾아내 부른 것 같았다.
그 넓은 숲에서 익숙한 냄새를 찾아 도움을 요청하다니. 영물은 영물인 모양이다.
진천희는 작게 한숨을 쉬며 진맥을 했다.
오행신공이 황구의 몸에 흘러들어가는 듯했다가 길을 잃었다.
인간의 혈도가 아닌 개의 혈도. 진천희가 개, 그것도 대형견에 대해 아는 것은 극히 일부다.
진천희는 어렵게 진단을 내렸다.
‘외상으로 인해 오염이 진행된 상태고, 염증 반응이 심해. 슬개골 탈구, 정강이 골절, 그리고 상완이두 건막염인가?’
우선 상완이두 건막염.
사람으로 치면 중년층에게 자주 생기는 증상이다. 그러나 사실 이 증상은 대형견에게도 자주 발병된다.
비만으로 인해 상완이두근과 활액막이 손상당해 염증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고, 지금 경우는 운동성.
즉, 과도하게 앞발을 사용하다 생겼다고 볼 수 있었다.
‘근막 손상도 심한 상태고. 아, 그렇군.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계속 산을 달렸구나.’
앞다리를 한계까지 사용했을 경우에도 생긴다.
‘통증이 극심했을 텐데 포기하지 않았어.’
정강이뼈는 골절된 상태다.
뒷다리가 부러지면 보통은 못 달리는 게 정상이다.
야생의 개였다면 쉴 곳을 찾아 움직였을 터. 그러나 황구는 달랐다.
영물다운 건지 충견다운 건지 미련하게도 계속해서 달렸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가 온다.
아무리 영물이라고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한계에 다다르자 가장 가까이에 있는 믿을 수 있는 냄새를 추적해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고는 자신만의 은신처에 몸을 숨겼다.
‘네가 사람보다 낫다. 사람보다 나아.’
황구가 이렇게까지 해서 전해야 할 전서는 무엇이었을까.
‘골절은…… 당연한 말이지만 충격을 뒷다리로 받아서 생긴 거고.’
다행히 지난번 왕야의 반려이신 유랑후보다야 상태가 낫다. 그러나 염증이 많이 진행되었다는 건 이미 위험한 징조다.
감염증은 뼈 유합을 막고, 한번 골수염으로 진행되게 되면 만성이 되어 완치하기가 어렵다.
떨어져나간 골편의 수는 셋.
분쇄 골절(Comminuted fracture)!
상처는 참 많은 것을 알려 준다.
분쇄 골절은 둔기로 내리쳤을 때 생기는 외상이다.
진천희는 개가 당한 상처로 적의 모습을 추론해 낼 수 있었다.
‘상대는 검을 쓰지 않고 권이나 각을 날렸군. 가급적 전서견을 생포하려고 했던 거야.’
어째서일까? 죽이고 서신을 빼앗는 게 효율적이지 않나?
어째서 살려서 끌고 가려고 했던 거지?
진천희는 상처를 통해 추론한 것을 왕각연에게 알려주었다.
“그게…… 돼?”
“응.”
“전설에 나오는 천리안, 그런 거야?”
“그게 되면 신선이지. 나는 그냥 상처를 보고 조금 추리해 보는 수준이야.”
“조금이라고?”
컹!
황구도 놀라서 작게 짖었다.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에 진천희가 물었다.
“황구는 사람 말 다 알아들어?”
“아마도. 가끔 귀찮아서 못 듣는 척을 할지언정 다 알아듣는 거 같긴 해. 지금 우리가 하는 이야기도 다 알아듣고 있고, 너 부르기 전에도 간단하게 이야기했으니까?”
“이야기?”
“내가 말하면 쟤가 대답하는 거지.”
적어도 예, 아니오만큼은 누구보다 잘하긴 한다.
그렇다면…….
진천희가 황구와 눈을 마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