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91
제 691화
페니실라민이 못 미더우면 친숙한 이름으로 다가가는 수밖에.
강호인들이 좋아하는, 있어 보이는 이름이다.
이걸 피에 넣으면 기린의 힘이 샘솟는다고 사기를 쳐야 하나 3초간 고민하며 진천희는 입을 털었다.
“애초에 수은으로 단약을 만들어 공급한 것도 화주의각 의원들 아닙니까?”
그때 누군가 나섰다.
“백린의각의 보약만으로 부족하시다는 걸 어쩌겠습니까. 당연히 숙부님께 부탁드려 화주의각의 신단들을 가져왔지요.”
위지 부인.
그랬다.
그는 남궁세가의 둘째 부인으로 화주의각과 연이 있으셨다.
남궁세가가 백린의각과 연수하는 게 이래저래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인지 틈만 나면 화주의각 사람들을 끌어들였던 것.
남궁운은 못마땅한지 위지 부인을 한참 바라보았지만 뭐라고 더 발언하기 어려운 눈치였다.
친어머니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분명 어머니다.
그리고 친어머니는 돌아가신 상태.
남궁운은 불편한 기색으로 팔짱을 끼고 있다.
“크흠…….”
진천희는 차분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뭐, 화주의각이 치료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긴 하지.’
할 수 있는 말은 다 했다.
이제 선택하는 건 환자 보호자의 일이고, 그 책임도 보호자가 지는 법.
겉모습과는 달리 의외로 진천희의 속내는 냉정했다.
의원 일을 하면서 이런 일은 한두 번 겪는 게 아니고, 그것에 일일이 열을 내기에는 할 일이 너무 많다.
‘지구도 강호도 흔한 일이긴 하지.’
괜히 병실에서 가족회의하다가 개판 나는 게 아니다.
환자는 아직 살아 계시는데 유산 싸움하는 일도 흔하고.
이 병원에서 모셔야 하네, 다른 병원으로 가야 하네 하면서 싸우는 일도 너무 흔하고.
의원은 도망치고 싶었다.
“제가 설명할 건 이 정도입니다. 선택은 보호자분들께서 해야 할 문제고요.”
이 구도, 세가물 무협 소설에서 엄청 많이 봤더랬지.
하필 또 딱 남궁세가다.
세가물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곳.
‘이쪽은 도가랑 또 달라서 갈등 방식도 다르게 풀려요.’
친모가 돌아가시고 다른 첩들이 득세하는 상황!
건강이 상해서 칩거에 들어간 가주!
한국 무협지의 전형적인 세가물 전개라고 할 수 있었고.
주인공이 이제 힘으로 권력을 틀어쥐고 세가 내 반대 세력을 다 내쫓거나 저 어디 구석에다가 처박아 넣는데…….
‘음…….’
지존천마에서는 그걸 하는 게 남궁연이다.
“…….”
허나 남궁연은 소심한 표정으로 겁을 먹고 있다.
‘누구도 상상 못 하겠지. 겁쟁이라고 여겼던 남궁연이 사실 가장 무서운 존재라는 걸.’
그리고 오빠인 남궁운은 정작 유교의 도리 앞에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남궁운이 살아있는 한 남궁연은 움직이지 않을 거고…….’
그녀라고 처음부터 손에 가족들의 피를 묻히고 싶었겠나.
지금이 가장 남궁연이 행복한 때.
가주의 건강으로 약간 흔들리긴 했지만 사랑하는 오빠가 함께 있으니까.
그러면 여기서부터는 환자의 영역인가.
‘병실에서 수라장 본 게 한두 번이 아니지.’
의외로 진천희는 마음이 편하다.
인간에 대한 기대가 낮아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의외로 당황하지 않는 진천희를 화주의각 의원들은 기이하게 보고 있었다.
‘화를 낼 줄 알았는데 왜……?’
* * *
남궁세가에는 여러 건물들이 있다.
그리고 가문의 중진(重鎭)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는 건물도 존재하는 법이다.
창룡각이라는 건물이 바로 그런 곳이다.
웅장하고 수백 명이 들어갈 정도로 크며, 상석에는 가주가 앉는 권좌가 있다.
그 모습은 황궁을 본떠 만들었으니, 웅대하고 장엄할 만하다.
그러나 오늘은 그곳에 몇 명의 사람만이 모였다.
가주가 위독하면 부가주가 대신하는 게 법도.
부가주는 뇌력검이라 불리는 남궁청.
과거에 진천희와 의형제인 여하륜을 대상으로 검진을 파훼하는 내기를 벌였다가 패한 바가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보좌로는 쌍룡이검(双竜二剣)이 있었다.
이 두 사람 역시 과거 투괴와의 은원을 정리하려고 싸우던 중 여하륜의 파천일공에 패퇴하였던 전적이 있었다.
지금에 와서는 이 둘 다 이를 악물고 절치부심하여 무공에 성취를 보여 과거보다 고강해져 태상장로라는 직책을 얻은 상태였다.
남궁세가의 법도에 따라 이 셋은 가주의 권좌 바로 다음에 자리한 상석(上席)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가주의 권좌는 비워둔 상태.
가주가 비록 혼수상태라고 하지만, 그 자리에 앉는 것은 불경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 아래로 남궁운, 의약당주, 총관, 둘째 부인, 그리고 셋째 부인이 모였다.
가문의 나머지 수뇌부들도 모일 법하지만.
이 자리는 어디까지나 치료의 방법을 논하는 게 목적이기에 가주의 가장 가까운 가족과 최측근만 모인 상태였다.
남궁연은 진천희에게 다과를 주러 갔다.
한마디로 회의에 끼기 싫어 튀었다는 뜻이었다.
그런 회의장의 안에서 남궁청은 피로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후…….”
그가 돌연 한숨을 내쉬었다.
“위지 부인, 화주의각을 굳이 불러야 했소?”
둘째 부인 위지연(尉遲燃).
위지세가의 딸.
위지세가는 팔 대 세가에는 들지 못하지만, 성세는 팔 대 세가보다 조금 못할 뿐인 강성한 세가다.
그리고 위지 세가는 화주의각과 친한 걸로 유명했다.
슬하에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었으며 남궁세가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것도 그녀였다.
그녀 본인도 위지세가의 무공을 익힌바.
상당한 고수이기도 했다.
“백린의각을 어떻게 믿죠? 그들의 의술이 일절이라 하였으나, 부술이 그렇다는 것이지 단약에 있어서는 화주의각을 따를 수 없다는 것은 여기 있는 모든 이들이 알 겁니다. 거기다 수은이 독이라니! 화주의각은 최고급 진사를 쓴단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냐? 영아?”
그 말에 셋째 부인 주영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주영영(朱泳永).
한미한 세력을 가진 주가(朱家)의 사람으로, 슬하에 아들 하나를 두었다.
주가는 비록 무공으로는 명성이 높지 않고, 무인의 수도 그리 많지 않지만, 상가(商家)이기에 자금이 풍부하다.
그렇기에 남궁세가와 정략결혼을 한 것은 어찌 보면 필연인가.
그녀는 뭐든 강단 있는 위지 부인과 달리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한 성격으로 유명했다.
“어어, 소첩은 잘 모르겠어요. 사실 둘 다 유명한 곳이니까요.”
“그게 무슨……!?”
바로 편을 들어줄 줄 알았던 위지 부인은 기분이 상했다.
그때 쌍룡이검이 말했다.
“연 매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쌍룡이검은 위지연을 연 매(燃妹)라고 부른다.
‘누이 매’ 자.
즉, 누이로 대한다는 뜻.
쌍룡이검의 어머니 역시 위지세가 출신이다.
그렇기에 어릴 때부터 유독 친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그럼그럼. 약은 화주의각이지.”
“혈린 그놈이 살 가를 줄이나 알지. 약은 별로야.”
누이 기분 좋으라고 하는 이야기.
하지만 어느 정도 사실이기는 했다. 세간의 인식이 그러했으니까.
약은 화주약선!
이런 말이 강호에 널리 퍼져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남궁청은 사촌형제인 쌍룡이검의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우리는 백린의각과 더 많은 사업을 하고 있잖나. 게다가 최근에는 단약도 백린의각 쪽이 더 우수해. 자네들, 투괴의 일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니겠지?”
그 말에 쌍룡이검이 정색했다.
“아니! 뭐, 뭐, 뭐, 무슨! 옛일을 지금 끌고 온단 말인가!”
“저잣거리 나가서 물어봐! 화주의각 약이 더 좋다고 할걸!”
정곡이었다.
“어쨌든 일이 꼬였기도 했지만. 문제는 화주의각에서는 그들의 자랑이자 비전 단약인 화주신단을 쓰자고 했다는 것이네. 대가를 크게 지불해야 함은 물론이야.”
화주신단을 이용한 개정대법.
그게 화주의각 의원들이 내놓은 답이었다.
화주신단이라고 하면 천년소림의 대환단과 비교해 볼 수 있다고 소문이 나 있는 신단이다.
삼십 년 전.
황제의 생명을 삼 년이나 더 연장시켰다고 하는 귀하디귀한 영약!
주 부인이 말했다.
“그보다는 어느 쪽이 더 잘 치료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거 아닐까요?”
그 말에 위지 부인이 곧바로 받아친다.
“저는 화주의각이 더 낫다고 봐요. 운아, 네가 일광과 친한 건 알지만, 이는 그이의 생명이 달린 일이야. 알고 있겠지?”
남궁운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어려운 문제였다. 허나, 제대로 이야기해야 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욱더 백린의각의 소각주인 그에게 맡겨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백린의각의 의술이, 화주의각보다 한 수 위라고 보고 있습니다.”
“…….”
남궁운은 뜻을 굽힐 생각이 없었다.
그는 진 아우의 실력을 알고 있으니까.
이윽고 남궁청이 눈가를 문질렀다.
“이야기가 계속 같은 곳에서 도는군…….”
“그이가 혼절한 상황이라면 부가주께서 이 일을 결정해 주셔야죠. 화주의각의 의원을 써 주세요.”
허나, 남궁운도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아버님의 문제이기에 더더욱 백린의각의 소각주에게 맡겨야 합니다.”
남궁운과 위지연의 눈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쌍룡이검은 눈빛으로 위지연을 응원하고, 셋째 부인인 주영영은 곤란한 듯한 미소만 짓고 있었다.
“만약 그이에게 변고가 생긴다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게냐?”
“어머님. 화주의각의 약으로도 치료가 안 될 수 있습니다.”
위지연은 남궁운의 선택으로 가주가 죽을 경우 네가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를 담아 말했고, 남궁운 역시 그에 맞받아쳤다.
화주의각의 신단을 쓰고 가주가 사망한다면 결국 그 책임은 위지연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남궁청은 둘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가주…….’
가주의 목숨이 여기에 달려 있다.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가?
* * *
같은 시간, 진천희는 남궁연과 함께 남궁세가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아……. 이거 좋아요.”
“나무가 아름답군요.”
“네. 봄마다 꽃이 피는데 참 예쁘답니다.”
여전히 말투는 조금 어눌하나, 그래도 전보다 많이 말이 는 그녀였다.
어릴 적 늘 말을 더듬었을 때도 진천희는 편견 없이 대해 주었다.
남궁세가의 지진아니, 모지리니, 대단한 오빠의 짐 덩어리니, 사람들이 뒤에서 쑥덕이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릴 적 그녀에게 있어 타인은 보통 두 종류였다.
‘나를 무시하는 사람, 그리고 나를 이용하려는 사람.’
기이하게도 당시 진천희는 둘 다 아니었다.
특이한 것은 당아처럼 친하게 지낸 것도 아니라는 점.
적당한 관계. 적당한 거리감.
그게 어릴 적 남궁연은 썩 멋있게 느껴졌더랬다.
그렇게 성장한 지금.
이제는 무재(武才)를 발휘하기 시작한 그녀를 누구도 무시하지 못한다.
강자존.
검이 사람을 증명하는 게 바로 강호.
거기다 말 더듬던 습관이나 내성적인 성격을 많이 고쳐서 그럭저럭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수준까지 돌아오니.
이제는 그녀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이 생겼고, 세가 내에서도 그럭저럭 잘살고 있다.
그래도 뭐, 어릴 적 기억이 어디 가겠나.
마침 본가 회의는 끼기 싫었기에 진천희 옆에 착 붙었다.
진천희 역시 그런 남궁연과 함께 본격 남궁세가 대탐방을 하고 있는 중이다.
보호자들끼리 불지옥에서 서로를 쥐어뜯는 동안, 일광은 지적 욕구를 충족하고 있었다.
천국이었다.
‘오우, 이거 신기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