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93
제 693화
“서로 검기는 쓰지 않기로 하고, 내공도 둘 모두 반 갑자의 공력만 쓰는 건 어떨까요?”
진천희의 말에 남궁진이 놀란 눈치로 되물었다.
“헛?! 정말 그래도 됩니까?”
보통 가르침을 준다고 하면 한 손을 쓰지 않는다거나, 몇 보를 움직이지 않겠다고 한다.
허나 내공을 적게 쓴다는 말은 안 한다.
그만큼 내공이 절대적인 게 바로 강호니까.
진천희가 답했다.
“괜찮습니다. 제 부족한 가르침이 전달되었으면 좋겠군요.”
그 모습에 남궁진은 가슴이 뛰었다.
‘진짜 대협이시구나.’
반면 진천희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놈의 남궁세가 회의 좀 빨리 끝나라. 나 치료하고 돌아가든가, 그냥 화주의각에 맡기고 돌아가든가 하게.’
삐뚤어진 어른은, 이 잘생기고 착한 도련님들이 내뿜는 광채에 말라 죽을 것 같다.
남궁수가 심판을 보기로 했다.
지도 대련이니 심판이랄 것도 없지만 아무튼 뭔가 하고 싶어 해서 시켰다.
“비무 시작!”
그 말을 하고는 기쁜지 또 열심히 팔을 꼼지락거리며 흔든다.
표정은 또 무표정이다.
엄격, 근엄, 진지.
어린 남궁수의 말이 울리자마자 남궁진이 먼저 거리를 좁혔다.
“실례하겠습니다.”
창궁무애검법.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절초를 처음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진천희는 손을 들어 가볍게 그의 검을 후려쳐서 막아냈다.
탕!
검기 없이 반 갑자의 공력.
그런데 기묘하게도 진천희의 손에는 조금의 공력도 담겨 있지 않았다.
‘헛?! 어떻게?’
아비 스님과 천우의 일전에서 깨달은 무리였다.
허나, 그것을 여기 모인 남궁가 아이들이 알 리가 없었고.
남궁진은 도리어 오기가 생겼다.
그의 검 끝이 수십 개로 갈라진다.
검기가 없어 벽력 소리가 들리진 않았으나, 훌륭한 창궁무애검이라고 할 수 있었고.
‘진이 오라버니. 노력을 많이 하셨구나. 대단해.’
‘우와! 진 형! 엄청 강해졌어어!’
‘완벽한 검식이다!’
그 기세에 모두가 감탄한다.
남궁진도 자기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검형이 나오자 조금 의기양양해졌다.
‘이거라면 소각주도 검을 뽑아들겠지!’
허나, 기묘하게도.
탁-
손이 나무를 치는 소리와 함께 남궁진의 검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어……떻게……?”
“너무 정직한 검로입니다. 그리되면 힘을 담는 곳을 때리기만 해도 이렇게 쉽게 칼이 날아가죠.”
“……그게 무슨.”
“한 번 더 할까요?”
다시 한번 기회를 주겠다는 뜻.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남궁진이 사양할 이유는 없었다.
이번에는 진천희도 알기 쉽게 목검을 들었다.
탁, 타닥-
검과 검이 부딪친다.
오롯이 가르치기 위해 검기는 전혀 담겨 있지 않은 검.
한쪽 검은 힘이 넘쳤고 성급했다. 남궁진의 것이었다.
일견 광오하다 할 수 있는 검을 진천희는 부드럽게 누르며 가라앉힌다.
남궁진이 검을 쓸 때마다 가장 약한 정곡을 때려 검을 다시 날려 보냈다.
‘실전이었으면 나는 죽었다.’
허나 진천희는 그저 여상하게 다시 물을 뿐.
“다시?”
“부탁드립니다!”
진천희는 이 여드름 자국 가시지 않은 청년이 납득할 때까지 계속해서 검을 받아주었다.
탁, 타닥, 탁-
남궁수와 남궁선, 남궁연은 넋을 놓고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만큼 아름다운 투로였다.
남보다 강하거나 빠르지 않았다. 본가에 이보다 빠르고 강맹한 검로는 수없이 봐왔으니까.
오히려 일광은 다른 이들보다 힘을 덜 들이고 느린 투로를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기품이 있었다.
강했다.
마침내…….
탕!
또다시 검이 날아간다.
“다시?”
“…….”
남궁진은 대답하지 못하고 바닥에 엎드려 숨을 골랐다.
허공에 천 번 휘두르는 것보다 눈앞의 소의선의 일검을 받아내는 게 훨씬 더 힘들었다.
왜일까.
물론 연습보다 비무가 더 힘든 건 알고 있다.
허나, 이건 검기도 실리지 않았고, 심지어 상대는 자신보다 느리고 약하게 움직이지 않았던가.
“……혹시 남궁세가의 무공을 파훼하는 파훼식을 알고 있는 겁니까?”
뚝뚝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훔치며 남궁진이 물었다.
그 말에 진천희는 한참 웃었다.
파훼식.
보통 무공의 초식이라는 게 규칙과 고유한 패턴이 존재한다.
그것을 완벽하게 파악한다면 그 무공을 완전히 해체하여 이길 수 있게 되는데 그것을 강호에서는 파훼식이라고 불렀다.
‘음, 남궁운이 제갈세가에 진 빚을 갚겠다며 자신의 무공의 구결을 전수해주긴 했지.’
제아무리 소가주라고 해도 알려지면 뇌옥행이다.
허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가주급의 경지이고, 진천희도 따로 파훼식을 만들지도 않았다.
이 정도의 창궁무애검법이라면 지금의 무학으로도 충분했으니까.
“제갈세가가 파훼식으로 유명하긴 하지요.”
세간에서는 제갈세가가 검을 맞대는 것만으로도 파훼식을 안다고 생각한다.
그게 가능한 건 스승님 정도일까.
진천희 자신은 한 번으로는 안 된다.
몇 번 더 부딪쳐보든가, 아니면 파악할 시간이 주어지든가 해야 한다.
“하지만 소문이 과장되었습니다. 저는 그저 보고 파악한 게 전부니까요.”
“……어떻게……?”
진천희는 자신의 푸른 눈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제갈세가의 무공은 오성을 극한으로 올려주지요. 때문에, 오성이 극성에 다다르게 되면 다른 이들과는 다른 ‘시간’ 속을 살게 됩니다.”
“다른 시간?”
“네. 보통은 눈 한 번 깜빡일 때 하나의 생각을 한다면, 제갈세가의 현원전단신공은 세 번의 생각을 동시에 할 수 있게 하니까요.”
“……?!”
남궁진은 놀란 눈으로 진천희를 바라보았다.
“이런 수 싸움에서 유리한 면이 있지요. 그렇기에 남궁 소협이 공격하는 것을 ‘느리게’ 느낀 것이고. 그렇기에 큰 힘을 담지 않아도 수 싸움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남궁진이 놀란 눈으로 말했다.
“제갈세가 무공의 무서움에 대해서는… 익히 배웠다고 생각했습니다만. 그 진수를 이제야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군요. 실로 무서운 무공입니다.”
“아닙니다. 이는 제가 강호에서 여러 경험을 쌓은 덕이지요. 남궁 소협도 강호에서 경험을 쌓으시면 그렇게 될 겁니다.”
그러다가 남궁진이 불쑥 이런 말을 했다.
“그런데 타인과 다른 시간을 산다면… 조금 외롭겠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이렇게 말하더니 실수했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실언했습니다.”
자칫 제갈세가의 무공을 깎아내리는 말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더욱 당황한 모양이었다.
진천희가 고개를 저었다.
딱 사춘기에 나올 법한 감상.
어른은 이런 모습도 그냥 귀여워 보였다.
어른이 되면 모른다. 이때니까 눈치챌 수 있는 거니까.
“괜찮습니다. 저는 필요할 때만 사용하니까요.”
전투를 할 때나, 일을 해야 할 때.
그러다 보니 딱히 고독을 느낄 일은 없다.
그보다는 스승님은 언제나 현원전단신공을 펼치시니, 진천희 자신보다는 더 고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하지만 제자인 자신이 감히 그런 걸 생각하는 것 자체가 실례일 수 있기에 진천희는 고개를 저어 생각을 쫓았다.
그렇게 적당히 분위기를 풀고 덕담을 나누던 때.
“여기 일광이 있으렷다!”
내력이 실린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노고수 세 사람이 서 있었다.
두 사람은 쌍룡이검.
그리고 그 앞에 선 노고수는 비록 나이가 많다 하나 전신 근육질에 팔 척 거한이었다.
‘우와아……. 위압감이 엄청난걸?’
거기다가 풍겨 오는 기세가 보통 인물이 아님을 말해 주고 있었다.
이만 한 자가 있었다면 분명 강호에 풍문이 날 터.
‘대체 누구지?’
한참을 생각하는데 곧바로 남궁진, 남궁연 등이 모두 부복하여 예를 갖추었다.
“소손이 조부님을 뵙습니다!”
조부? 그러면 현 가주님의 아버지?
남궁운의 입장에서는 할아버지다.
허나, 지존천마에 언급이 안 될 정도로 밖으로 나오는 일이 없는 분이셨다.
그는 진천희를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오호? 천하 십 대 고수에 들어간 아해라더니……. 정말 대단한 놈이잖아?”
“백린의각의 진천희가 인사드립니다.”
“총기도 있고 말이지. 나는 저 녀석들의 할애비, 태상일장로 남궁반이라고 한다.”
그 모습에 진천희는 놀라서 눈을 홉떴다.
태상일장로 남궁반!
태상장로들 중에서도 첫 번째라는 의미지만, 사실 그보다 그 정체가 더욱 대단한 사람이었다.
저 노인이 바로 전대 남궁세가의 가주였으니까!
‘아직도 생존해 있으셨나?’
진천희가 강호 생활을 한 지 제법 오래 된 지금.
하오문과 개방에서 받아 보는 강호의 정보들은 알뜰살뜰하게 진천희의 두뇌 속 뉴런에 박혀 있다.
현원전단신공의 공능 덕분에 기억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기에, 남궁반에 대한 정보도 기억하고 있는 중이다.
남궁반!
그는 무려 50년 전에 천하 십 대 고수였던 절대 고수!
전대의 고수로서, 그 당시 검왕이라는 별호를 얻으며 천하를 호령했다.
그리고 이십 년 전에 현재의 가주에게 가주직을 넘겨주고 은거했다고 들었는데…….
그 이후로 소설 지존천마는 물론이거니와 진천희의 귀에도 딱히 행보가 들린 적이 없었다.
‘역시… 강호에는 기인이사가 많고. 오래된 역사를 가진 문파와 가문들의 저력은 끝을 알 수 없다고 하는구나.’
강호의 격언이 어디 가는 게 아니다.
이것이 바로 도산검림의 강호!
‘기세가 거의…… 권제님만 하잖아?’
허나 권제님은 무골치고는 나이가 있어 체구가 작은 편이셨는데 저분은 저 나이에도 팔 척 거한이라니.
어찌 보면 권제님과 정반대다.
물론 오랫동안 수없이 강호에서 생사를 나누었던 노장 특유의 분위기는 비슷하지만.
“그래. 아해야. 어디 한번 네 녀석의 무를 봐 볼까?”
신이 난 표정이셨다.
‘아, 이거…. 곧바로 한판 뜨시려는 거다.’
권제님도 그렇지만 오랫동안 강호에서 살아남은 분들은 뭐랄까.
체면이나 돈, 명예 이런 것보다 재미를 더 추구하시는 면이 있다.
역시 해볼 거 다 해보시고, 즐길 거 다 즐기셨기 때문일까.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재미가 귀해지는 거지.’
진천희는 침착하게 답했다.
“죄송합니다만 저의 본분은 의원입니다. 노선배님과 제가 어찌 비무를 할 수 있겠습니까.”
“네가 우리 장손 놈 친우라며? 노 선배는 무슨… 어르신이라고 부르거라.”
보자마자 ‘진 아우’라고 호칭을 바꾸는 남궁운과 어르신이 겹쳐진다.
‘이야…. 남궁운 할아버지 버전이구나. 밝다. 밝아. 이 밝음에 말라 죽을 거 같아.’
진천희는 일부러 능청을 떨며 한 걸음 물러나 거리를 벌린다.
“그나저나 네 녀석. 그렇게 무위가 고강한데 의원이라고 빼는 거냐? 에잉… 김이 새는……구나……!”
빛이 폭발한다.
본능적으로 현원전단신공이 감각을 강제로 끌어 올렸다.
시계(視界)가 느려지며 천지만물이 전부 정지한 것 같은 감각이 생겨났다.
그 와중에서, 남궁반의 손만은 지나치게 빠르다.
정지한 세계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것 같은 그 모습!
칼이 검집에서 뽑혀 나와 그대로 찔러오되, 그 끝에서 쏘아진 기운이 미사일처럼 날아온다.
그 모습은 쾌검의 달인이라는 점창파의 장문인에게서도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천희는 아주 미세하게 움직이며 두 손을 쫘악 뻗어 앞으로 내민다.
두 개의 손바닥.
쌍장이 나아가다가 그대로 두 손의 위치를 바꾸어 빙글 돌리니, 유무형의 기가 파장이 되어 뿜어져 나와 회전을 일으켰다.
콰쾅!
검기와 장력이 허공에서 충돌해 폭발했다.
그 위력이 보통은 아니어서, 주변의 기물이 그 풍압에 흔들거릴 정도!
“호오, 그걸 막아?”
“아고고, 어르신 살려주십시오.”
“홀홀. 죽긴 뭘 죽어! 어디 한번 제갈세가의 무공 좀 구경해 볼까!”
멀리서 검기로 공격하던 노인 남궁반이 훌쩍 뛰어오르며 다시 검을 휘두른다.
남궁반의 신형이 하늘에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천지가 짓눌리는 중압감이 생성되며 비무장의 판석이 쩌적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제왕검형의 기세!
“어이고, 어르신!”
진천희는 입으로는 죽는 소리를 하며 매서운 검초를 향해 손을 뻗어내었다.
무당파의 절학이 검세를 걷어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