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96
제 696화
다음 날.
남궁운과 진천희는 아침을 함께 먹게 되었다.
단 두 사람만 먹는 것으로, 주변에서 사람들을 모두 물렸다.
남궁운이 선택한 것은 ‘그냥 솔직하게 말하는 것’.
애초에 어설프게 말한다고 한들 그가 못 알아챌 사람도 아니고, 무엇보다 숨긴다고 숨겨질 문제는 아니었다.
“음, 뭐. 예상은 했네요.”
“미안하네.”
진천희는 난백찜을 한입 삼키며 말했다.
“뭐, 세가는 으레 그런 편이니까요.”
이미 가씨세가의 불지옥을 맛봤기 때문인가.
진천희는 역시나 평온했다. 그보다는…….
‘겸사겸사 화주의각 지지 세력도 죄다 다 청소하시려나 본데?’
진천희는 여기서 다음 수를 하나 더 예측해냈다.
가주를 치료하면 다행이다.
허나 치료가 실패하거나, 불완전하게 된다면 화주의각은 어찌될 것인가.
‘화주의각 지지 세력에 어르신께 못마땅한 사람들이 섞여 있는 거고, 높은 확률로 남궁세가 분열을 막기 위함인가.’
마지막 수까지 알아챈 후, 진천희는 결론을 내렸다.
‘이것 참……. 세가에서는 친자식도 장기 말이구나.’
현대인으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발상.
허나, 강호에서는 흔한 일이기도 했다.
진천희가 물었다.
“후회는 없으십니까?”
그 말에 그만 남궁운은 명치가 갑갑해졌다.
“아버님이 이상해졌다는 건 아네. 예전 같은 총기가 사라졌다는 것도 알고 있고, 이대로라면 세가 사람들도 고통받게 될 거라는 것도 알고 있네.”
남궁세가의 몰락과 아버지의 목숨.
그것을 저울질하라고 강요하고 있었다.
“도리어 자네야말로 평안하구만. 강제 치료라도 갈 줄 알았는데.”
“아아, 제가 맡은 환자라면 어떻게든 살리려고 노력하겠지요. 하지만 아니잖습니까. 도와주고 싶어도 문조차 두드리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요.”
“……자네는…….”
진천희가 웃는다.
기묘하게도 한순간 깊은 슬픔이 스쳐 지나간다.
“이 일이라는 게 참 이상해서. 그러네요. 함께 싸우려면 환자든, 보호자든 그럴 마음을 먹고 문을 두드려야 해요. 이것만은 어쩔 수 없는 거지요.”
마치 수십 번, 수백 번 겪어 온 것 같은 표정이었다.
젊은이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은 깊은 상념이 스쳐 지나갔다.
이윽고 진천희가 웃었다.
“그러니까 저는 궁금합니다. 화주의각이 그래서 치료를 잘할 수 있답니까?”
“삼십 년 전 황제를 몇 년간 더 연명하게 해 준 신단을 쓰기로 했네. 만드는 데 십 년의 시간이 걸린다던가.”
그 말에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세계는 과학으로 측정할 수가 없다.
수은 중독을 내공으로 이겨내는 세계다. 그렇다면 자신이 아는 게 전부일 수도 없는 법.
“그런 거라면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죠. 저도 기대해 보겠습니다.”
그래도 천하 삼 대 의각이다.
화주의각식 개정대법이 얼마나 효험이 있을지는 진천희도 모른다.
그래도 의술이 크게 뒤쳐졌으면 천하 삼 대 의각에 이름도 못 올렸을 터.
‘그래. 수은 중독을 인정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치료약이 있을 수도 있지. 인류사에 그렇게 소 뒷걸음에 약 만드는 일도 종종 있으니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거 아닌가.
치료법이 다르다고 한들 치료만 가능하다면 무슨 상관이랴.
“백린의각에도 자네의 스승이 만든 단약이 있는 것으로 아네만.”
“혈린단…… 말씀이시죠?”
“그렇네. 그것. 백린의각을 세울 적에 만들었고, 강호에는 단 세 번 출현했다던데…….”
혈린단.
이름만 들으면 혈선교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사악해 보이는 이 단약은 스승 제갈린이 자신의 구음절맥을 치료하고자 만들었다.
어찌 보면 백린의각의 초석을 다졌던 게 바로 이 혈린단의 명성이다.
‘그 효험은 소림사의 대환단에 비견된다고 했지만…….’
사실 그 제작 비법은 단순하면서도 복잡하다.
강력한 기운을 가진 영약을 재료로 때려 박는다.
만년화리의 내단 같은 것을 오행상생상극의 묘리에 따라서 섞어서 연단로에서 구워내는 것.
애초에 절세의 영약들로 만드는 거니 효험이 있을 수밖에.
‘물론 보통은 그렇게 만들면 영단끼리 기가 부딪쳐서 그냥 진흙덩어리가 되고 말지만 말이지.’
굳이 말한다면 대환단은 아니지만, 영단들을 잘 섞어서 만든 유사…… 대환단이다.
비록 유사…… 대환단이라고 해도 그 약성은 진짜 대환단에 비견되는 수준, 복용자의 체질에 따라서는 상회할 정도니 대단한 것.
‘그러고 보니 일전 청성파의 멸문에 혈린단이 얽혀 있었지.’
자세한 사정은 죽은 이들이 너무 많아 알기가 어렵다.
스승님도 그리 자세히 말씀하지는 않으시고.
진천희는 거기까지만 생각했다.
“어쨌든 그러면 저는 잠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도 일이 많으니까, 오랫동안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의원은 선을 긋는다.
“열흘 후.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얼핏 보면 매정해 보일 수 있으나 그것만으로도 큰 은(恩)이라는 것을 남궁운은 알고 있다.
보통 의원이라면 자신을 욕보였다며 그 자리에서 떠났을 테니까.
“나는 자네에게 너무 큰 빚을 지고 있군.”
“알면 됐습니다. 술이라도 마셨으면 그냥 떠날 생각이었으니까요.”
“큭, 금주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나.”
“대협의 체향에 술 냄새가 안 나거든요.”
“음? 그게 맡아지나?”
남궁운은 자신의 소매에 코를 묻고 킁킁거렸다.
“원래 그런 건 본인은 모릅니다. 그리고 저도 요즘 스승님을 닮아가서 냄새에 예민해지기 시작해서요.”
현원전단신공이 깊어감에 따라 오감이 예민해지고 있다.
물론 냄새 자체를 싫어하진 않는다.
맛있는 음식 냄새나 애기들 정수리 냄새, 온천에서 갓 씻고 나온 냄새 같은 것은 여전히 좋아하니까.
하지만 술 냄새를 조금 더 잘 맡게 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황구 수준은 아니지만.’
그냥 사람치고 냄새 잘 맡는 수준.
남궁운이 말했다.
“자네에게 부탁을 하는 처지인데 몸가짐을 바로 해야 하지 않겠나? 자네가 온다 할 때부터 금주했다네.”
“와아……. 잘하셨습니다. ‘남궁 형’.”
진천희가 환하게 웃자 남궁운은 멋쩍어졌다.
“자네에게 칭찬을 얼마 만에 듣는지 모르겠군.”
남궁운은 이윽고 침을 꿀꺽 삼키더니 자못 진지하게 물었다.
“엇……. 그러면 이제 형이라고 불러주는 겐가?”
“술 계속 안 드시면 생각해보도록 하지요.”
“거, 자네 자비가 없구만.”
진천희는 한참 웃었다. 그러고는 이리 말했다.
“화주의각 치료가 잘되면 모르겠으나, 만약 잘못되었을 시에는 혈풍이 커지지 않게 막아 주십시오.”
“속 시원하다고 할 줄 알았더니만.”
그게 아마 강호의 감상이겠지. 하지만 의원은 조금 달랐다.
“……그래도 사람이 죽지만 않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으음. 아마 화주의각 의원들과 그에 동조하는 자들은 전부 화를 면하지 못할 걸세. 하지만…… 일단 노력해 보겠네.”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면 되었습니다.”
“자네는 정말…… 요즘 보기 힘든 의인이군.”
그 말에 진천희는 고개를 젓는다.
“의인은 아닙니다. 그냥 눈에 닿는 곳에서 누가 죽는 게 싫을 뿐입니다.”
그냥 흔한 위선일 뿐이라고 진천희는 쓰게 웃는다.
어째서일까.
그는 자신이 선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위선자라고 자조할 뿐.
남궁운은 그런 진천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쓰게 웃는 얼굴이 왜인지 뇌리에 박혀서 한참이나 지워지지 않았다.
* * *
화주의각은 자신들의 치료는 비인부전이라고 하면서, 진천희가 참관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 일광이 참관하는 꼴을 눈뜨고 볼쏘냐.’
그렇다고 해서 남궁세가의 가주 직계 가족까지 참관을 못 하게 할 수는 없는 법.
남궁운과 부인들 그리고 남궁운의 이복형제들이 참관하는 가운데 치료가 시작되었다.
우선은 뜸을 놓아 열기로 몸을 이완시키고, 그다음으로 침을 놓아 기혈이 원활하게 흐르게 만든다.
이후 신단을 가져와 화려하게 장식된 목갑을 열었다.
화악.
그 향만 맡아도 머리가 청량해지고, 몸에 활력이 돌아온다.
강호에서도 영약 중의 영약이라고 불리는 화주신단이 모습을 드러낸 것.
금박에 싸인 황금의 보주처럼 생긴 그것은 손가락 두 마디만 한 크기였다.
가죽으로 된 장갑을 낀 화주의각의 부각주가 그것을 조심스레 들어 가주의 입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마치 물처럼 스르륵 녹으며 그 약이 가주의 목구멍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자.
치이익-
가주의 몸에서 증기가 뿜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내부에서부터 타오르는 것 같은 형상에 다들 놀랐지만, 화주의각의 부각주는 신중한 얼굴로 가주의 몸에 손을 대고 기공 치료를 이어 나갔다.
“이것은 유독한 것이니 모두 물러서십시오.”
다들 그 말에 한발 물러나서 치료를 지켜본다.
그러자 가주의 혈색이 돌아온다.
신이한 기운이 그 몸에 감돌며 새파란 안색이 정상이 되고, 증기도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악취가 코를 찌르고, 가주의 옷이 시커멓게 물들어 있었다.
“후…….”
그러자 부각주가 물러섰다.
그와 함께 온 의원들이 그를 부축했다.
“치료를 끝났소. 따끈한 물로 씻기고 푹 주무시게 두시면 일어나실 거요.”
“치료는 잘된 건가요?”
위지연의 질문에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이오. 약효를 전부 흡수했고, 개정대법도 제대로 이루어져 벌모세수의 효과가 일어났소. 저 노폐물들을 보시오. 몸 안의 탁기가 모두 흘러나온 것이지.”
다들 감탄의 기색이 어렸다.
“일단 본인은 좀 휴식을 취해야겠소. 본각의 의원 둘이 여기 상주하여 상세를 살필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그렇게 말하고 부각주는 비틀거리며 자리를 떴다.
기공 치료에서 내공을 너무 쓴 탓이다.
‘과연 화주의각이다! 이거라면 다들 만족할 거야!’
위지 부인은 그 모습을 보며 의기양양한 표정이 되었고, 남궁반은 그저 사람 좋은 미소로 웃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다른 가족들 모두 기뻐하는 듯 보였다.
* * *
“옴. 사바하. 뱀이여. 뱀이여. 네 꼬리를 물어라. 꼬리를 물고 물어 삼키고 삼키어라. 옴. 사바하. 뱀이여. 뱀이여. 어디까지 삼켰느냐? 삼키고 삼키면, 결국 네가 스스로를 삼킬 것이니.”
듣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 초현실적인 음색이 울려 퍼진다.
사이하고 음울한 힘이 실린 진언(眞言)의 내용조차도 불길하여 감히 듣기가 거북하다.
어둠 속의 공간에 오로지 화로 하나가 놓여 있고, 그 불꽃 안에는 뱀이 한 마리 똬리를 틀고 누워 혀를 낼름거렸다.
기묘하게도 불꽃 속에 있는데도 아프지도 않은지 멀쩡해 보였다.
겉으로 보면 은색 뱀이지만, 어째서인지 꺼림칙하고 불경해 보였다.
그 기묘한 사악한 기운은, 보는 이로 하여금 불안한 마음이 들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뱀 앞에는 절반은 흑색으로, 나머지 절반은 백색으로 칠해진 가면을 쓴 이가 앉아서 진언을 읊는다.
“기묘하도다. 기괴하도다. 기이하도다.”
기이한 진언과 주술의 언어는 계속 이어진다.
“물이되 금속이며, 불변하며 유변하는 너 진사의 뱀이여. 삼키어라. 삼키어라. 스스로를 삼키거라.”
화로 안의 뱀이 결국 자신의 꼬리를 문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그대로 삼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스스로를 완전히 삼키자, 스스로 불길에 타오르며 검은 연기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 연기는 하늘로 솟구쳐 그대로 맴돌다 어디론가로 사라진다.
화로의 불이 꺼졌다.
공간 전체가 어둠으로 감싸이고 하나의 목소리만이 조용히 울려 퍼졌다.
“자. 진천희여……. 너의 실력을 보자꾸나. 진실된 마(魔)는 오직 순수한 마음을 따르는 것인즉……. 진천희여, 진천희여. 혈린의 아이여. 너의 실력을 보여 다오.”
술사는 그를 ‘반선의 씨앗’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저 본명을 부를 뿐.
진천희를 떠올리며 술사는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