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
제 7화
진천희는 차와 다과를 음미했다. 그러면서 생각을 이어 나갔다.
‘하아. 울고 싶다. 이런 중요한 일을 이제야 생각해 내면 어쩌냐? 하긴. 어제부터 오늘까지 여러 가지 일이 있어서 정신이 없긴 했다만…….’
진천희는 계속해서 차와 다과를 먹는다. 벌모세수 후라 배가 고픈 상황도 있지만, 생각을 정리하려고 머리에 당분을 넣어 주기 위함도 있었다.
‘소설로 치면 지금은 1권에서도 1장인 부분. 백린의선이 천마 여하륜을 치료해 주는 장면이기도 하잖아? 근데 이다음에 바로 위기 상황의 사건이 하나 일어난단 말이지. 그리고 잘못하면 나도 죽을 거고.’
진천희는 속으로 혀를 찼다.
‘허, 참 나. 그걸 까먹고 있었다니…… 이제라도 기억나서 다행이긴 한데. 문제는 어떻게 사태를 해결하는가, 그건데 말이야.’
차가 쓰다.
‘씁…… 어쩌냐, 진짜. 이 사건에 들어간 음모를 막아야 살긴 살 텐데.’
진천희가 생각을 이어 나갔다. 이 운룡표국의 분타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초반에 천마 여하륜이라는 주인공에게 밀어닥치는 위기 중 하나이지만, 그것은 진천희에게도 위기였다.
숨을 한 번 내쉬고, 진천희는 눈앞에 놓인 다과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진천희는 어떤 생각을 떠올렸다.
‘이거다! 이거면 가능성이 있어!’
다과를 보면서 진천희는 확신했다. 그리고 손을 뻗었다.
와구와구. 그리고 마구 다과를 집어먹기 시작했다. 아까보다도 더 빠른 속도였다.
‘분명 이것들 중에 확실히 있을 텐데…… 미세하게 뒷맛이 달다고 묘사되어 있었어. 그런데 미세한 단맛이 뭐야, 대체? 에라, 모르겠다…….’
그는 모든 차와 다과를 종류별로 마셔 보았다. 이다음에 일어날 ‘그것’을 위해서.
그렇게 이것저것 마구 먹어 대는 사이 백린의선과 운룡표국의 국주, 운지상이 안으로 들어왔다.
“상태가 좋아 보이는구나. 이 정도 몸 상태라면 긴 대화를 해도 괜찮겠지?”
이 사건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진천희가 다 나았겠다, 물어볼 이야기들이 많을 터였다.
그가 누구인지, 어디서 온 건지, 그 부술은 어디서 배웠는지.
은인은 은인이나, 필요한 것은 알아야 했다. 그것이 국주로서의 중요한 소임이었다.
말문을 꺼내기가 무섭게 진천희가 기침을 내뱉었다.
“쿨럭, 쿨럭쿨럭!”
표국주 운지상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으냐? 혹시 아직 몸 상태가 돌아오지 않은 것이라도……?”
“…….”
그에 비해 백린의선은 은은한 미소만 지을 뿐, 진천희를 지켜보고만 있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백린의선이 직접 벌모세수까지 해 준 아이다. 그런 아이가 감기에 기침할 리는 없었다.
기침을 하며 진천희는 생각했다.
‘마치 시험이라도 하는 것 같은 얼굴인데?’
기본적으로 선인이라고는 하나 그 역시 무림인이다. 정파, 사파, 마교, 심지어 황궁의 사람까지 치료하는 기인이기도 했다.
얕은 수에는 넘어가지 않을 터였다.
진천희가 말했다.
“차 때문에 목이 가려워서요.”
“가렵다?”
청록색 다기에서는 값비싼 철관음의 향이 은은하게 퍼지고 있었다.
진천희가 말했다.
“이 차를 마시니 왠지 목이 가려워요. 혹시 그냥 물 좀 주실 수 있을까요?”
“가렵다니 그럴 리가…… 독이 들어 있을 리도 없고.”
“잘 모르겠어요오.”
‘가랏! 어린아이 연기!’
진천희는 속으로 그렇게 외치며 손등으로 눈가를 쓱쓱 닦았다. 그야말로 순진한 어린아이 그 자체였다.
백린의선이 진천희 앞에 앉았다.
“잠시 진맥을 해 봐도 되겠니?”
“네? 네. 네!”
‘좋았으! 역시 백린의선! 단번에 알아차리는구나!’
진천희는 천연덕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백린의선은 그런 진천희의 손목을 살며시 붙잡고는 내력을 내보냈다.
‘오, 뭔가 간질간질한데?’
기가 뭔지, 내공이 뭔지 아직 잘 알 수는 없지만 무언가가 그의 안으로 부드럽게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어째서인지 그것은 진천희 안에 있는 것들과 싸우지도, 섞이지도 않고 그저 자신이 갈 곳을 살폈다.
한참 후에 백린의선이 손을 뗐다.
“내공이 흩어졌군요.”
국주가 당황해 물었다.
“네? 내공이라 했소이까? 이 아이는 분명 무공을 익힌 흔적이 없는데…….”
“공손세가에서 보낸 영약도 있겠다, 벌모세수를 시키면서 약간의 내공을 넣어 두었지요.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이대로면 전부 배출될 뿐이니 후일을 위해 조금 쌓아 둔 거죠.”
“버, 벌모세수…… 각주께서 이 아이를 그리 중하게 보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운룡표국의 국주인 운지상은 백린의각의 각주이자, 백린의선이라는 별호로 유명한 이 눈앞의 미공자를 잘 알고 지냈다.
그는 고절한 의술과 심후한 무공을 지닌 기인이지만, 본인의 건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이는 천하인들 대다수가 아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벌모세수를 직접 베풀었다고 한다. 이것은 자신의 생명을 깎아냈다는 의미나 마찬가지.
이는 보통의 일이 아니었다.
“…….”
백린의선은 답하지 않았다. 그저 신비롭게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더는 물어보지 말라는 뜻이었다.
가뜩이나 백린의선에게 자식을 보여 주고 싶어 하는 고관대직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 사실이 퍼지면 백린의선의 집 앞은 그들이 보낸 심부름꾼들로 난장판이 될 터.
“허, 허나…….”
국주의 말에 백린의선이 답했다.
“운룡표국에는 큰 신세를 지었지요. 조만간 손주분께서도 무공을 익히신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손주도 자신에게 보이고 싶으면 닥치라는 뜻이었다.
입막음의 비용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상대는 백린의선. 각 세워야 좋을 게 없었다.
“……그저 백린의선의 의술에 경탄스러울 뿐이외다.”
“제 얼굴에 이리 금칠을 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둘의 대화를 지켜보며 진천희는 생각했다.
‘과연 백린의선이네. 국주의 손주까지 생각해 주다니, 이 시대의 참의사. 크으!’
전생의 직업이 의사라서 그런지 무림의 의사도 전부 좋게만 보이는 진천희였다.
백린의선이 말을 이었다.
“여하튼 그 내공이 전부 흩어졌습니다. 산공독……으로 보입니다만.”
“산공독? 이 아이에게 산공독을 누가 먹인단 말이오. 우리 운룡표국은 은인에게 그런 짓은…….”
누명이라도 쓴 것처럼 국주의 얼굴이 붉어졌다.
백린의선이 고개를 저었다.
“누가 탔는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어째서 탔는가가 중요한 것이지요. 이 아이가 먹는 차와 다과들은 운룡표국의 상급 표사와 고위 무사들에게도 지급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옳지. 백린의선 파이팅!’
표국주 운지상의 표정이 딱딱해지는 것을 보며, 진천희는 표정을 숨기려고 애썼다. 이 모든 것은 진천희의 설계!
‘이대로면 일단 운룡표국 분타 습격 사건은 막을 수 있어!’
진천희가 그렇게 생각하며 둘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으음! 누군가 본 표국을 노리는가…….”
“당장 차와 다과를 버리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습격이 있을지 모르니 병장기를 챙기라고도 하십시오.”
그 말에 국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뿐이 아닐 것이오. 표행의 습격. 그리고 분타에 독…… 필시 어떤 음모가 있을 터. 의선께 미안한 마음뿐이오. 본국의 일에 끌어들인 셈이 되니…….”
이미 국주는 상황 파악을 전부 끝낸 듯했다.
“별말씀을. 제 말을 믿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선 조치부터 하시지요.”
“신의의 말을 믿지 않는다면 누구 말을 믿겠소? 배려에 감사드리오.”
국주는 그렇게 말하고는 밖을 향해 소리쳤다.
“분타주를 불러 와라!”
그러고서 국주는 진천희를 바라보았다. 백린의선이 진천희에게 말했다.
“산공독이 있다는 것을 알았니?”
그의 투명한 눈빛이 진천희에게 닿았다. 마치 그를 시험하고 있는 것 같은 눈이었다.
‘여기서는 시치미를 떼는 거다.’
진천희가 말했다.
“산공…… 독이 뭐예요?”
무공을 흩는 독. 무색무취하다.
뒷맛이 옅게 달콤하다고는 하지만 막상 먹어 보니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모든 다과를 전부 다 먹어 보기로 했다. 그중 하나는 걸리겠지 싶어서.
중요한 건 산공독에 걸리는 것이었다.
‘후후후. 뭘 하든 죽는 것보다는 낫지.’
이미 닥쳐올 재앙을 알고 있는 그가 단순히 꺼림칙하단 이유만으로 산공독을 마다할 리가 없었다.
백린의선은 생각했다.
‘아무리 내공을 흩는다고 해도 독은 독이지. 설마 그걸 알고 집어먹을 리는 없을…… 거고.’
의원이란 그런 자리다. 강호에서 수많은 은원과 혈겁 사이에서 사람을 구해야 하는 일이었다.
별의별 인간사를 다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의원으로서의 감이 말하고 있다.
진천희가 뭔가 숨기고 있다고. 하지만 이상하게도 위험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뭔가 홀린 기분이군.’
백린의선이 말했다.
“조사를 해 보고 뭔가 나온다면 운룡표국은 내가 구한 게 아니라 네가 구한 거란다.”
마치 국주에게 들으란 듯이 말을 꺼냈다.
국주는 흠칫 놀랐다.
‘틀린 말은 아니군. 아무리 운이라고 해도 이쯤 되면…….’
생각을 정리한 그가 말했다.
“이 일이 끝난 후, 자리를 만들자꾸나.”
여기서 자리란 평범하게 차를 마시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닐 것이다.
진천희는 생각했다.
‘이것은 뭔가 뜯어낼 기회다.’
돈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나.
사람을 살려준 건 살려준 거고, 진천희 자신도 먹고살아야 하지 않겠나.
이 허허벌판에 홀로 떨어졌는데 뜯어낼 건 다 뜯어낼 생각이다.
‘돈, 더 많은 돈! 쇼 미 더 머니! 영약! 무공 같은 건 안 배워 놔서 그런 거 잘 모르겠고! 일단 돈!’
장강을 좌우하는 운룡표국쯤 되면 쩐이야 넉넉하겠지. 진천희는 생각했다.
그는 그늘진 아이처럼 슬프게 미소 지었다.
“집도 가족도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는 처지인데, 이런 저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걸로 다행인걸요.”
어린 진천희의 말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
심지어 눈물까지 훔치는 가솔도 있었다.
‘미모 때문인가, 생각보다 과하게 먹힌 것 같은데?’
국주마저도 어찌할 줄 모르고 진천희의 어깨를 꽉 쥐었다.
“걱정하지 말거라. 내가 그래도 운룡표국의 국주 아니더냐. 너는 이곳의 은인이기도 하니, 결코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실망은 무슨 실망?’
뭔가 큰 결심이라도 했는지 비장한 목소리로 말을 하는 게 아닌가.
그때 백린의선이 국주의 어깨를 붙잡았다.
“……안 됩니다.”
“네?”
“안 됩니다.”
“의선께서 미리 벌모세수까지 시켜 놓은 아이란 건 알고 있소. 하지만…….”
“하하하, 안 됩니다.”
백린의선은 웃고 있지만 단호하게 국주의 말을 쳐내고 있었다.
‘뭐가 안 된다는 건지.’
국주가 진천희를 표국으로 끌어들이려고 하고, 진천희를 제자로 삼으려고 하는 제갈린이 철벽을 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진천희 혼자만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그것은 진천희라는 인재를 얻으려는 두 명의 기 싸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