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1
제 71화
예전에 아빠가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호위와 호신은 다르단다. 자기 몸을 지키는 것보다 남의 몸을 지키는 게 훨씬 어려워.
당시 아빠는 딸에게 자기가 아는 모든 것들을 전수했다.
그건 무공이라기보다는 용병으로서의 요령에 가까웠다.
‘바람 방향도 괜찮고, 마침 달도 어두워. 이대로 적이 발견하지 않으면 좋겠는데.’
그 순간, 푸드득 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겉으로 봤을 때는 단순히 놀란 산새가 날갯짓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별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녀는 활대를 쥔 손에 힘을 준다. 그리고 그 새가, 새들이 진천희를 쫓아 날기 시작하기가 무섭게 그녀의 손에서 다섯 발의 화살이 날아갔다.
쉐에에엑!
그녀의 화살에 새들이 한 발씩 대가리를 맞고 떨어진다.
그 모습에 그녀는 깨달았다.
‘추종향!’
먼 곳에서도 냄새로 찾을 수 있도록 만든 추적용 향수다.
역시나 황구에게 추종향이 묻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두 아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물에 씻는다고 씻겨 나가는 것도 아닐뿐더러 제대로 중화시키려면 의각으로 가야 하니까.
‘황구도 그걸 알고 깊은 굴을 찾아 들어갔던 모양인데…… 밖으로 나오니 바로 추적이 붙는군.’
각연의 화살을 봤으면서 진천희의 속도는 줄지 않았다.
‘무서울 정도로 침착한걸.’
의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바로 냉정함이라고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진천희는 뭐 하나 놀라는 법이 없었다.
삐이익-!
먼 곳에서 호각 소리가 울렸다.
역시나 위치가 발각된 모양이다.
그와 동시에 새카만 옷을 입은 복면인이 달 아래로 모습을 드러냈다.
어두운 밤, 보통 사람이라면 잔상조차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 그녀는 다시 시위를 당겼다.
퉁!
화살이 놈의 쇄골 위에 박혔다.
목을 쏘려고 했는데 아쉽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일격 필살은 모든 궁사의 목표지. 하지만 실전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란다. 상대도 무공을 익혔으니 급소를 피할 줄 알거든. 그때는 어떻게 하냐고? 어떻게 하긴… 그거야…….
왕각연은 다음 화살을 날렸다.
퍽!
두 번째 화살이 복면인의 미간을 관통했다.
쇄골을 관통당한 고통에 피하지 못한 모양이다.
-화살 한 발, 한 발에 큰 의미를 담을 필요 없단다. 한 발의 화살로 적의 움직임을 늦출 수 있다면 그걸로 이득인 거지.
-음…… 그래. 중요한 건 일격 필살이 아니라, 한 발, 한 발이 만들어 내는 긍정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
스승이자 아비의 가르침이 어린 그녀의 머릿속에서 맴돈다.
어떻게 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몸이 반응했다.
탕!
다음 복면인을 맞춘다. 그리고 바로 뒤, 그녀의 머리 위에서 복면인의 인기척이 느껴진다.
아빠는 말했다.
-접근전을 두려워하지 마라. 몸이 굳으면 죽는다.
그녀의 몸이 회전한다.
활대가 마치 둔기처럼 턱을 때렸다.
텅!
두개골에서 텅 빈 소리가 난다. 충격이 적의 뇌수를 뒤흔든다.
제대로 들어갔다.
그녀는 두 걸음 거리를 번다. 동시에 화살이 그녀의 손을 떠났다.
퍼벅!
숨이 가쁘다.
적들은 이제 그녀의 존재를 완벽하게 인지했다.
* * *
산비탈을 달려 내려가며 진천희는 생각했다.
‘각연아. 넌 괜찮니? 이 아저씨는 무섭다.’
겉모습이야 소년이지만 몸속에 든 것은 현대의 평범한 의사다.
대한민국에서 평범하게 공부하고, 평범하게 시험을 치르고, 평범하게 수련의를 거쳐 의사가 되었다.
의료 봉사라고 해 봐야 국내 안이었고, 해외 NGO는 죽기 전에 처음 나간 셈이다.
‘무협 소설에서 늘 보는 장면이긴 했지.’
그러나 막연하게 짐작하는 것과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천지 차이였다.
복면을 쓴 흉수들은 어린아이들을 상대로 진심으로 살수를 뻗치고 있다.
손속을 둘 사정 같은 건 처음부터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들의 목적은 진천희의 품 안에 있는 누렁이 개뿐이었다.
가급적 생포를 하려 했으나 방해꾼이 생겼으니 미련을 두지 않는 모양이었다.
죽여서 서신을 빼앗을 모양이었다.
그런 그들을 상대로 왕각연은 힘껏 화살을 날려 대고 있었다.
그녀는 너무나도 침착했고, 의기가 있었다.
이따금씩 동네 아이들과 공터에서 놀다가 해가 지면 보리엿을 입에 물고 올라오는 아이와 같은 아이라고는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작은 손으로 쏜 화살이 적의 몸을 관통했다.
매번 급소를 맞추는 건 아니었지만 몸 한 곳을 관통하고 지나가는 건 변함이 없었다.
진천희는 작게 실소를 했다.
‘여기서 내가 가장 겁먹었어.’
평생을 현대인으로 살아온 진천희에게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천희의 움직임에는 조금의 군더더기도 없었다.
왕각연조차 진천희가 왜 이리 태연한지 이해가 안 갈 정도였다.
그것은 미련할 정도 반복해 왔던 삼재보법 덕분이었다.
다섯 명의 복면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둘 정도는 각연이를 믿자.’
머리로 무언가를 느끼기도 전에 몸이 계속해서 움직였다.
소년의 발걸음이 방위의 빈 곳을 찾아 정확하게 파고 들어갔다.
훅–!
검을 휘두르고 암기를 쏘기도 전에 이미 소년은 그들을 스쳐 지나갔다.
복면인의 눈이 살짝 커지는 것을 진천희는 보았다.
컹-
황구도 마음에 들었는지 작게 짖어 진천희를 칭찬했다.
모두의 감탄과는 정반대로 진천희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소년은 습관처럼 웃었다.
긴장감이 소년의 안면 근육을 힘껏 당겼다.
‘웃어?’
복면인들은 약이 올랐는지 진천희를 공격했다.
독이 묻은 중검이 소년의 목을 향해 날아갔다.
진천희는 어깨를 틀어 몸을 한 바퀴 돌렸다.
마치 톱니바퀴처럼 최소한의 회전으로 검격을 피해 내고는 계속해서 달려갔다.
일련의 동작 동안 시간은 조금도 지체되지 않았다.
황구가 신이 났는지 꼬리를 퍼덕퍼덕 흔들었다.
컹, 컹!
“즐겁냐? 나는 무섭다.”
컹!
최소한의 동작으로 적의 공격을 모두 피해 내니 황구도 신기한 모양이었다.
복면인들은 미칠 노릇이었다.
‘아무리 봐도 삼재보법으로 보이는데?’
상대는 무림의 고수도 아니고 어린아이.
것도 상승 절기도 아니고 하급 무사나 배우는 기본 중의 기본 보법만으로 적습을 모조리 피해 내고 있었다.
거기다 그렇게 소년이 피하고 나면 그 자리는 눈 없는 화살이 채운다.
쉐에엑!
뇌수를 쏟아내며 복면인들이 하나, 둘 쓰러졌다.
두 아이는 마치 오랫동안 연습한 사람들처럼 물 흐르듯 복면인들을 물리쳤다.
‘아무리 오성이 뛰어나다고 해 봐야 어린아이다. 곧 체력이 떨어질 터!’
‘……?’
이상했다. 두 아이들 모두 호흡이 흐트러지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여아는 냉철한 얼굴로 시위를 끊임없이 당겼고, 남아는 실실 웃으면서 공격을 피해 냈다.
도무지 지친 기색이 보이질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의외의 상황에서 생겨났다.
왕각연의 활통이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화살을 더 가져왔어야 했어.’
아버지 같은 심궁의 단계는 아직 아니다. 그렇다면 화살이 필요하다.
마침 진천희의 등 뒤에서 암기가 날아왔다.
망설일 시간 같은 건 없었다.
그녀는 마지막 화살을 당겼다.
까앙!
궁귀가 봤으면 감동으로 눈물을 흘릴 일이었다.
날아가는 암기를 화살로 맞추는 것은 엄청난 기예였으니까.
그걸 실전에서 해낸다는 것은 한 명의 궁사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암기가 화살에 맞아 진로를 틀었다.
왕각연이 소리 질렀다.
“어서 가! 돌아보지 말고!”
그 목소리에 진천희는 불길함을 느꼈다.
등 뒤에서 더는 화살 소리가 울리지 않았다. 대신 소도가 뽑히는 소리가 울렸다.
그것은 왕각연이 늘 들고 다니던 소도.
그걸 뽑았다는 의미는 하나다.
진천희가 말했다.
“이다음은 내가 알아서 할게! 넌 도망쳐!”
“나보고 친구를 버리고 도망치란 말이야?”
“……가서 어른을 불러오라는 뜻이야.”
개소리다.
이 숲에서 그녀가 어른을 불러 돌아올 때쯤에는 이미 진천희는 주검으로 발견될 것이었다.
왕각연은 어금니를 으득 부딪쳤다.
“천희야. 황구 버려! 던지고 도망쳐! 너라도 살아!”
안면이 있는 개냐, 목숨을 구한 친우냐, 둘 중 하나를 고른다면 친우였다.
각연은 이미 각오를 다졌다.
그 개가 무림의 어떤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든 그것은 친우의 목숨보다 중하지 않았다. 그러나 진천희는 다른 의미로 각오를 다졌다.
소년은 포대기의 매듭을 꽉 당겨 조였다.
“각연아. 전력으로 뛰어.”
소년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지며 미소를 만들었다.
흡사 광인과도 같았다.
그 순간, 진천희의 주먹이 대지를 때렸다.
콰아아앙!
오행신공 금(金)의 웅후한 내력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기이했다.
‘대체 어떻게 이런 내공을?’
처음 시작한 건 오행신공의 화(火)결이다.
내공을 돌고 돌아 증폭시키는 원리를 왕각연이 알 수는 없었다.
그저 강대한 일격에 혼이 나갈 지경이었다.
대단한 권법도 아니었다.
‘삼재권법 하단치기지, 저거?’
그 웅후한 내공이 무림에서 가장 삼류 권법이라고 치부하는 권법을 타고 폭발했다.
거기에 어째서 땅을 때린 것일까.
복면인들 중에 충격으로 비틀거린 이도 있었다. 하지만 적을 무력화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진천희가 노린 것은 다음 수였다.
쿠그-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눈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설산, 산비탈 위.
어릴 적 보았던 백두산의 사진처럼 휴화산도 산은 산이라 눈은 쌓인다. 그리고 그 눈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진 않는다.
적당한 충격에도 꽤나 쉽게 허물어지는 게 눈이었다.
쿠그그그그-
“눈사태다! 도망쳐!”
각연이가 놀라서 진천희를 향해 소리를 질렀으나 그 자리에는 진천희가 없었다.
진천희는 이미 멀찍이 멀어진 후였다.
“으아아악!”
추적이고 나발이고 대자연 앞에서는 무력했다.
복면인들도 기겁을 하며 달리기 시작했다.
문득 왕각연은 그의 아버지 궁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제갈가는 음…… 진법의 고수란다. 검보다 머리가 더 무섭지. 진법이란……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딸.
-그냥 주변 지형지물과 자연을 잘 이용해서 적을 전멸시키거나 내쫓는 병법이라고 말하면 이해가 될까?
-아하하, 사실 이 아빠도 잘은 모르겠더구나. 숱하게 많은 적들을 상대해 봤지만 그것과 진법은 좀 많이 다른 것 같아.
그 말을 왕각연은 깨달았다.
‘이게 바로 진법……?’
다르다. 많이 다르다.
그녀가 아는 진법이란 미리 무언가를 준비해 놓고 적이 쳐들어오기를 기다리지 않나?
어찌 되었건 주변 지형지물을 잘 살펴서 자연환경을 이용해 깽판을 놓는다는 점에서는 같은 것 같기도…… 했다.
쿠과과과광–!
복면인들조차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산비탈을 달렸다.
그건 왕각연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가장 선두에는 진천희가 있었다.
놀랍게도 소년은 눈 위를 달리고 있었다.
발에 오행신공 빙결을 운용하면서.
그 모습에 복면인들이 당황하며 말했다.
“서, 설마 답설무흔?”
백린의각에 이어 또 속는 자가 나타났다. 근데 그럴 법도 했다.
비탈이 가파르니 소년은 경공을 써서 발을 움직이는 대신 적당한 나뭇가지를 밟고는 그대로 눈 위를 빠르게 미끄러져 내려가기 때문이었다.
달리는 속도로는 절대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진천희가 말했다.
“내가 골프는 안 쳤어도 스키는 좀 탔지!”
정확히는 스노보드다.
컹!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 없지만 황구는 신이 났는지 꼬리를 열심히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