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10
제 710화
“가족으로서의 마음이지.”
그리 말하며 제갈린은 제자의 몸에 침을 꽂아 넣기 시작했다.
퉁, 투둥, 퉁-
기묘하게도 침을 살에 꽂아 넣는데 마치 기혈을 두드리는 듯 소리가 울린다.
“처음 현원전단신공을 가르칠 때만 해도 이렇게 빨리 여기까지 성취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그만큼 몸을 혹사시켰으니까요.”
타고나길 무골이 아닌 녀석이다. 그것을 무학에 맞춰 억지로 끼워 넣었다.
그리고 혹사, 다시 혹사.
무골도 아닌 그릇이 깨졌다가 다시 고쳐지면… 다시 또 들이붓기 시작했다.
전보다 몸이 더 개선되기야 했겠지. 하지만 그 이상으로 무학을 들이부으면 어찌 될까.
사람은 철이 아닐진대 마치 칼을 만들듯 스스로를 단조하는 삶.
“말로는 아무리 해도 안 들으니 몸으로 교훈을 느낄 때도 되지 않았나.”
태연히 말하며 계속해서 침을 꽂아 넣는다.
그 모습이 왜인지 사람이 아닌, 어떠한 이형의 존재 같아서.
유호의 등에 털이 슬쩍 곤두섰다.
“이게 주인님께서 생각하는 가족입니까.”
“그런 셈이지.”
* * *
이상한 꿈을 꾸었다.
사람들이 모여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꿈이었다.
낯익은 얼굴들이어서 한참 바라보니 그동안 만나 왔던 환자들이었다.
모두 돌아가신 분들이었다.
상처가 심해서, 병마가 심해서, 인류의 지식으로는 부족하여.
‘아니면…… 내가 부족해서…….’
그때 판단했던 게 과연 맞는 판단이었을까.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환자는 더 오래 살지 않았을까.
최신 논문을 아무리 읽고, 아무리 공부하고, 실력을 갈고닦는다고 한들 병은 언제나 사람을 시험한다.
사고도 마찬가지.
하늘 아래 똑같은 모습으로 부러진 뼈는 없다.
아무리 사람들이 떠받드는 권위자가 되었다고는 해도… 죽음 앞에서는 그저 홍수 속의 개미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려 내려가고, 쓸려 내려간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병마 앞에서 인간의 지식은 여전히 부족했다.
지구에서부터 있었던 오랜 생각이었다.
인간은 여전히 암을 정복하지 못했다. 당뇨도 마찬가지. 치매도 정복하지 못한다.
아이들의 몸은 장기도 작고 혈관도 작아서 쉬운 적이 없었다.
나이가 들면 수술 하나하나에 목숨을 걸어야 할 때가 온다.
모든 약은 부작용을 동반한다.
인간은 미약하다.
지식이 된다고 하더라도 여건이 안 되면 치료 자체가 불가능할 때도 있었다.
모든 환자를 치료할 수는 없었다.
의각에 도착하기 전에 죽은 환자야 어쩔 수 없다고는 해도 도착하고 죽은 환자들은 어찌해야 할까.
시야에 문득 현대식 메스가 보였다.
처음 이 세계에 왔을 때 보았던 환자였다.
그 환자가 메스를 들고 진천희를 내려다본다.
그때 가진 거라고는 어린 육체뿐.
혈사가 지나간 자리. 이미 피를 많이 흘려 도저히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아직 살아는 계셨다.
숨은 붙어 있었으나 현대 장비가 없으면 불가능했고, 설령 있다 하더라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태.
그래서 과감하게 포기했다.
어린 육신으로도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을 우선으로 찾았다.
그 말은 죽을 사람들을 골랐다는 뜻도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어떻게. 자신은 신이 아닌데… 그 몸으로 무슨 수로.
하지만…… 그래도 다시 보니 숨이 턱하고 걸려서.
“으윽!”
진천희를 스쳐 지나간 환자들이 모두 손에 메스를 하나씩 꼬나 쥐었다.
망자들이다.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해요.’
진천희가 그들을 보냈으니, 이제 그들이 진천희를 치료할 차례인가.
죄책감은 무게가 되어 짓눌렀다.
-너는 임상이 적성은 아닌 것 같다.
선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잊으려고 그렇게 노력했던 목소리.
-그런데 내가 환자면 너 같은 의사를 찾을 거 같긴 해.
그들이 진천희의 눈을 쑤셨다.
꿈인데도 통증이 이어졌다.
환자 하나가 말했다.
‘잘 지내십니까. 소각주님.’
놓쳤던 생명 하나가 속삭였다.
목소리가 똑똑히 기억이 났다.
현원전단신공은 결코 잊어버리는 법이 없었다.
혈사 중에 급소를 찔리고 그게 악화되어 의각에 온 환자였다.
할 수 있는 조치를 다 했으나, 밤에 상태가 급변하여 사망했다.
낮까지는 분명 괜찮았는데 밤에 그리된 것은 본가에서 보낸 달맞이꽃 때문이었다.
강호인은 강하면서도 연약하다.
같은 부술도 지구인보다 예후가 좋을 때가 많지만, 반대로 갑작스럽게 심마로 인해 죽는 경우가 있었다.
당시에는 가족이 보내는 꽃도 치워두는 게 좋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당연했다.
보통은 죽었어야 하는 상처였으니까. 그리고 심마로 죽은 거면 운명이려니 하는 풍조가 강호에는 늘 있어 왔으니까.
밤은 길고 생각할 시간이 많아진다.
그렇기에 심마가 우려스러운 강호인은 미리 수면약을 처방한다.
그렇게 백린의각에 규칙이 생겼다.
나를 원망하나. 진천희는 자조했다.
과거 이런 환몽을 본 적이 있지 않았던가. 이제 진천희의 살점을 하나씩 뜯어갈 차례였다.
이번에는 죽은 환자들이라니.
사람의 가장 나약한 부분을 불쑥 찌르고 들어온다.
죽는 건가?
이런 죽음이면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왠지 자신에게 어울리는 죽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목소리가 말했다.
‘당신은 다 나을 거니까.’
어째서?
기묘했다. 망자들이 메스를 하나씩 쥐고 진천희의 몸을 난도질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치료라는 기분이 드는 것은.
그 상처 사이로 새카만 무언가가 빠져나가고 있었기 때문.
의원은 죽음에서 다시 멀어지고 있었다.
그건 퍽 기묘한 느낌이었다.
홍수에 떠밀린 개미 한 마리. 땅을 짚고 눈을 뜬다.
그 앞에 보인 것은 어둠.
꿈보다 더 깊은 어둠이었다.
진천희는 그 자신이 잠에서 깨었음을 인지했다.
몸의 감각이 정상적이었지만 동시에 몹시 무겁고 기운이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어둠이 눈에 가득 들어차 있다는 점이었다.
“눈이…….”
“그래. 안 보이겠지.”
스승님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스승님. 앞이 안 보입니다.”
제자의 말에 스승이 답했다.
“그거 참 잘됐구나. 이제 조금 쉴 마음이 들더냐?”
무골이 아닌 몸뚱이가 휘적인다. 그러고 나서야 진천희는 하나를 더 깨달았다.
기운이 움직이지 않았다.
“스승님. 내공이…….”
“전혀 미동도 없다는 것이냐?”
“네.”
“모처럼 ‘시험’에 들었기에 잠시 내공을 봉해 두었단다. 눈이 없으면 음공을 사용해서라도 주변을 인지(認知)하고 움직이려고 들 것이 뻔하기에 미리 절마금침을 박아 금제를 걸어두었느니라.”
시험?
손을 더듬다가 무언가가 턱하고 잡힌다.
사람의 몸. 근육이다. 손을 더듬더듬 올리니 이제 턱으로 짐작되는 것이 만져졌다.
“스승님인가요?”
“유호다.”
“…….”
스승님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나직하게 웃었다.
“자, 그러면 한번 보자꾸나. 네가 자초한 일이니. 네가 벗어나야겠지. 희야. 한없이 자애적이고 자해적인 천재야. 너는 하늘을 넘을 수 있겠느냐.”
하늘을 넘는다?
“……현원전단신공의 과정 같은 건가요?”
“고작 그 정도로 거기까지 추론하다니 신기하구나. 내공이 없어 현원전단신공을 쓸 수 없음에도.”
“…….”
“과정은 아니다. 그래. 정확하게 말하면…… 무골이 아닌 이가 이 정도 경지에 오른 것 자체가 기적인 거겠지.”
“눈을 돌리려면 무학이 필요한 겁니까?”
“무학을 얻게 된다면 그때는 시력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얻게 될 것이다.”
진천희는 깨달았다.
스승님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제갈세가 비전 만두를 전수하고 그것을 팔도록 유도하며, 은근히 제자를 붙잡아 자기 곁에 둔 것은 그만큼 슬슬 때가 다가오고 있었음을 의미했고.
유호를 보내 계속해서 감시를 시킨 것은 날짜를 감지했음을 의미했다.
“궁금하긴 하구나. 네가 과연 하늘을 넘을 수 있을지.”
냉혹하면서도 자상했다.
그는 제자의 몸을 지켰고, 제자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응원했다.
심지어 그게 초래하게 될 결과까지도.
통상적인 사제관을 아득하게 뛰어넘은 광기.
그럼에도 진천희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스승님의 목소리는 퍽 즐거운 듯한 음색을 가졌다.
“한동안은 못 돌아다니겠군요.”
“그렇지.”
“그러면 이렇게 된 거 명상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너는 굽히는 법이 없구나.”
울면서 스승에게 애걸이라도 할 줄 알았건만.
이놈도 제정신은 아니었다. 그래서 제갈린은 즐거웠다.
어쩌다 이런 놈이 제자가 된 것인지.
그리고 두 미친 사제를 보고 있던 유호는 혀를 찼다.
“쯧. 뜨거운 물이라도 가져올까요?”
“부탁하네. 유호.”
“알겠습니다.”
인간을 이해할 날이 온다 하여도 이 새끼들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 * *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보이지 않는다.
본래 강호인은 그렇다 할지라도 어떻게든 주변을 인지하고 인식할 수 있는 법이다.
기감이라고 하여, 기운을 움직여 주변을 감지할 수 있으니까.
게다가 진천희는 음공까지 익혔었다.
초음파의 원리를 이용하면 주변의 사물을 분간하는 것에 어려움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진기의 운행이 봉해졌기에 기감을 사용할 수 없다.
또한 내공이 움직이지 않으니 음공을 쓸 수도 없었다.
물론 외공을 단련하여 금강불괴에 이른 초인적인 육체이니만큼, 그 감각은 보통 사람보다 우월하고 초월적이긴 했다.
귓가에 들리는 소리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정상 생활은 가능했다.
내공이 봉해진다고 해서, 그간 수행했던 것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육체에 남은 감각과 숙련된 기능들은 살아 있으니까.
그렇기에 진천희는 해가 뜨면 의각 내부를 눈을 감고 돌아다니며 일처리를 하기 시작했다.
일처리라고 해봐야 유호가 읽어주는 서류들을 듣고 가부를 결정하는 수준이지만.
“은공. 정말 이런 상태로 일하셔도 되는 거예요? 각주님이 허락하셨어요?”
진천희의 집무실에 쳐들어온 사마혜.
그녀는 진천희 뒤에 고요히 서 있는 유호를 보며 우려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이 느껴지는 목소리. 진천희는 빙긋 웃는다.
“의각의 지형 정보야 이 머릿속에 다 들어 있으니까. 그리고 귀는 멀지 않았어. 이 몸도 튼튼하고. 다만 가월의 무공 수련을 당분간 봐주지 못해서 문제지.”
“그건 각주님이 직접 하고 계신다고 하던데요.”
“스승님이? 나중에 감사 인사를 해야겠는걸.”
“으음……. 모르겠네요. 그건 가월 이야기도 들어 봐야 알겠죠.”
사마혜도 직접 각주님께 무공 수련을 받은 적이 있었다.
지옥이었다. 제갈린은 사람을 사람으로 안 보는 극악한 놈이었다.
왜 저딴 놈에게 우리 꽃 같은 은공이 제자로 붙어있는 걸까, 사마혜는 생각하며 한숨을 쉬었다.
“은공. 쉬면서 하세요.”
“그래도 할 일을 해야지.”
“소각주님. 현승청장이 뵙기를 청합니다.”
밖에서 집무실의 하인이 말을 해 왔다.
“혜아야. 그러면 이만 가보렴. 나도 일해야 해서.”
“하아……. 몸 보중하세요. 그리고 이 일, 오빠한테도 말할 거니까.”
“현이는 너무 호들갑이 심한데…….”
“전혀 심한 거 아닐걸요?”
사마혜는 그 말을 끝으로 나간다.
그 뒤를 이어 현승청장이 들어왔다.
“현령님을 뵙습니다. 괜찮으신 겁니까?”
“괜찮아요. 잠시 눈이 안 보이는 것뿐이니까.”
비록 안대로 눈을 가리고 있었으나 목소리에는 현기가 느껴졌다.
이 광경을 보고 있자니 ‘그걸 괜찮다고 하는 당신은 진정코 일광이십니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승청장은 말을 삼켰다.
“자. 보고해 주세요.”
“예. 우선 공사 진행은…….”
현승청장과는 약 1시진 정도 회의를 하고 돌려보냈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