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11
제 711화
‘기분 탓인가?’
어차피 앞이 안 보이니 의미 없는 일 아닌가.
진천희는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지팡이를 잡았다.
그리고 바닥을 탁탁 치면서 집무실을 나선다. 그 뒤를 유호가 유령처럼 따라붙는다.
진천희는 그대로 배양실을 들러 연구각의 지박령들을 위로(?)해 주고, 연구 결과를 확인했다.
“제발 돌아가요. 소각주님. 그 눈으로 왜 또 왔어요!”
“가서 좀 쉬라니까!”
“휴가 얻었다고 생각하고 가서 자요. 자!”
상의원들의 걱정 섞인 일갈에 진천희는 헤헤헤 웃는다.
“지난번에 신청한 예산 통과됐다고 말하러 왔어요.”
“우리 걱정은 그만하고 가서 자요.”
“잘 부탁해요.”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해야 할 일들을 하였는데, 해가 떨어지는 시각이 되자 곧 스스로의 방으로 되돌아갔다.
그러고는 좌선을 하고 앉아 오늘 하루의 일과에 대해서 생각했다.
일의 진행 속도는 과거에 비해서 느려졌다.
사람을 써야 했고, 결과를 보고받은 이후 지침을 내리거나 문제점을 파악해서 다시 명령을 내려야 했다.
“쿨럭!”
기침을 하면 눈에서 피가 나오는 기묘한 상황.
“히이이익!”
같이 일하던 관리가 그만 비명을 지른다. 자신이야 어떻게 보이는지는 잘 모르겠다.
일단 안대가 흡수를 잘한 것 같지는 않으니 다시 바꿔야겠군.
그나저나.
역시 눈이 없으니 불편하구나.
그나저나 스승님께서 보라 하셨던 하늘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눈을 잃고, 감각을 제한하며 볼 수 있는 것이 대체 뭘까?
강호의 무공이란 이렇듯 비의라는 부분을 구결과 은유로 전수한다.
훌륭한 스승이 없으면 비전을 제대로 이어받지 못하는 것은 그런 이유였다.
그렇게 생각을 이어 나가다 천천히 명상에 들어간다.
스스로를 관조하고, 생각의 저변이 넓어져 갔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다. 그리고 어느샌가 열흘이 훌쩍 지나고.
언제부턴가 날짜를 세는 것을 포기했다.
포기하고 나니 세상이 그것대로 또 재미있어졌다.
“일광이 장님이 되었다더니 진짜로 눈에 뵈는 게 없구나!”
“오우, 딱 아시네? 유호. 처리해줘~”
“크아아아악!”
유호가 사람을 피 떡으로 만드는 소리를 들으며 진천희는 배시시 웃었다.
눈이 보이지 않을 뿐. 자신은 그저 자신이지 않던가.
이렇게 유호를 부려 먹으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젓가락질은 참 못하시고요.”
“그러니까 포크, 아니 식사용 작은 삼지창 만들어 달라고.”
“아예 적응하고 사실 모양이군요.”
“뭐, 왜. 뭐?”
시간은 다시 흘렀다.
동생들도 걱정되었는지 띄엄띄엄 왔다 갔다.
사마현이나 천우는 마침 근처에 일이 있어서 오는 길에 들렀다고 했는데 여하륜은 무슨 수로 왔다 갔는지 알 수가 없다.
마교가 준동을 하느냐 마느냐 하던데 설마하니 십만대산에서 여기까지 올 리도 없고.
천우는 이번에는 직접 잡아 온 준영물급 꿩으로 요리를 했다.
그렇게 형을 먹였다.
사마현은 자주 왔다.
근처 분타에 일이 있어서 자주 놀라온다고 했는데, 아무리 봐도 핑계 같았다.
그래도 봐주기로 했다.
이 녀석이 자주 온다고 한들 하오문에 별일 없을 걸 아니까.
그보다 여하륜이 걱정이었다.
이 녀석은 한 번밖에 오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있다 갔다.
마교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황금 같은 시간을 이렇게 써도 되나 걱정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형의 잔소리를 들을 놈도 아니고. 직성이 풀릴 때까지 있다 갔다.
그러다 보니 앞이 안 보인다고 외롭진 않았다.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야.’
장님이 된 진천희는 생각했다. 자신은 행운아라고.
곁에는 늘 누군가가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이 귀했다.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다가 진천희는 문득 생각했다.
비록 느릴지라도 세상의 일에는 멈춤이 없다고.
눈을 감고 있으니 시간이 느리게 느껴지면서도 기묘하게도 빠르다고.
왜일까?
왜.
“아!”
진천희는 명상 중 답을 찾아냈다.
“때로는 느린 것이 더 빠를 때가 있구나.”
하늘을 본다는 것은 ‘거대함’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 그것을 알게 된 순간.
깨달음이 마치 번개처럼 정수리를 때리는 것 같았다.
저절로 단전의 내기가 풀려나와 몸 전체를 내달린다.
법열경의 황홀감이 전신을 감싸는 듯했다.
온몸에 퍼져 나가는 환희의 순간이 오롯이 한 지점으로 모여들었다.
“마땅히 그리되리라.”
현원전단신공의 구결 중 하나였다.
마땅히 그리되리라.
천인의 계획 아래.
마땅히 그리되리라.
그리고 진천희는 눈을 떴다.
앞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괜찮았다.
몸 전체가 몹시 상쾌하고, 모든 것이 명료(明瞭)하여 명확(明確)하고, 명징(明澄)하다.
진천희는 방금 전의 구결을 다시 한번 되뇌었다.
“천인의 계획 아래 마땅히 그리되리라.”
이는 모든 것을 재단하고, 계획할 수 있다는 개파조사 제갈량의 자신감의 표현이 아니었다.
현원전단신공을 대성하게 되면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 하는 것을 지표로 삼는 구결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진천희는 자신이 다음 단계로 나아갔음을 깨달았으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의사(醫師)’적으로 알았다.
깨달음으로서 뇌가 다음 단계로 진화하고 변화한 것이다.
뇌 지능 네트워크 연구에 대한 논문은 매해 나온다.
그중에서도 여러 가지 실험과 검증으로 두정엽-소뇌 네트워크와 전두엽-두정엽 네크워크가 지능에 영향이 있음이 밝혀진 바가 있다.
하지만 뇌라는 것은 단지 지능만 담당하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감각들이 뇌의 여러 부위에 연계되어 있고, 이것들의 상호 소통을 능력의 주요 원인으로 볼 수 있는 것.
그리고 지금.
현원전단신공을 대성하게 된 진천희는 자신의 뇌가 더욱더 극적인 변화를 통해 초월적인 진화를 이루었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알게 된 것이다.
일시적으로 시력을 잃는 것은 뇌가 변화하는 과정 때문에 생긴 일이었던 것.
만약 진천희가 현원전단신공을 대성하지 못했다면…… 다시는 대성을 위한 도전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진천희는 해냈다.
스승 제갈린이 말한 ‘하늘을 본다’를 해낸 것.
‘하늘을 본다는 것은 크고 넓은 세계를 본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구나.’
가속된 사고 속에서도 더 크고 더 넓은 것을 보고 계획할 수 있는 두뇌가 되어야 한다.
느린 것이 때로는 빠르다.
그것도 바로 그런 이치에서 나온 것이다.
느린 듯 보이는 거대한 계획은 때로는 빠를 수 있다…….
‘무골이 단순히 뼈와 골격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기혈이나 맥도 의미하는 것을 알고 있긴 했지만, 인지능력도 포함된다는 것을 새삼 다시 깨닫게 되는군.’
무인과 범인과의 차이점은 단순히 키가 더 크고 힘이 더 세고가 아니라 인지 능력부터가 다르다.
하긴, 아무리 강함 힘으로 검을 빨리 휘두른다고 해도 상대의 검을 보고 계산하지 못하면 막지를 못하니까.
‘대표적인 게 여하륜이지.’
천살성은 인지능력을 극단적으로 뒤튼다.
하늘이 내린 살(殺)이라는데. 과학적으로 그게 가능한지는 모르겠다만 그는 본능적으로 살검을 쓸 줄 알았다.
“그렇게 서두를 필요가 있는 겁니까?”
“…….”
울컥.
깨달음을 얻자마자 진천희의 목구멍으로 핏물이 흘러나왔다.
어둠 속에 유호의 말이 울렸다.
“조금 느리다고 실망하실 분이 아닙니다.”
“…….”
“설령 무인으로서 일을 못 하게 된다 하더라도 결코 버릴 분이 아니고요.”
앞을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공포.
“더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되어도 쓸모없다고 제자를 내치진 않을 텐데요.”
오히려 안온하게 의각에서 편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도 있을 터였다.
웃기는 이야기지만 눈을 잃고 의각에서 지냈을 때와 지금처럼 활인을 위해 사방으로 돌아다녔을 때.
어느 쪽이 더 명줄이 길지는 현원전단신공이 없어도 알 것 같았다.
웃긴 것은 그 모든 것을 선택한 것은 진천희 자신.
그것은 일견 지독한 사랑이었다.
진천희가 말했다.
“물론 알아. 스승님이 나를 버리실 리가 없다는 것 정도는 이미 알아.”
“그럼 뭡니까? 이성은 알고 있지만, 감정은 싫다. 그런 겁니까?”
“그런 것도 있지. 하지만 내가 그런 게 싫어서 그래.”
유호의 표정이 묘해졌다.
“아무리 노력해도 희망이 없다면 포기하는 것도 답이겠지. 하지만 희망이 있는데도 하지 않는 것은 내가 싫더라.”
진천희는 거기까지 말하고 고개를 돌려 유호를 보며 빙긋 웃었다.
“이것도 관성 같은 건가 봐. 역시 나는 의원인 내가 좋아.”
쿨럭-
다시 한번 피 섞인 기침을 뱉었다.
진천희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하지만 그것은 불완전했다.
완전히 깨달음을 얻는 데까지 한 걸음.
“유호, 나 좀 사람 없는 별채로 데려가 줄래?”
진천희가 손을 뻗는 순간 안대가 풀어지며 다시 피눈물이 흘러나왔다.
유호의 반대쪽을 향해 손을 뻗는 진천희.
그 모습을 보며 실소했다.
“당신은 무공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군요.”
“그러니까 사람이지.”
“그리고 내공이 없어도 뭐든 하려고 하구요.”
“그러니까 의원인 거고.”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던 무공이 먼지처럼 흩어졌다.
심지어 눈조차 보이지 않는 상황.
손가락 하나 튕기면 죽을 인간이 눈앞의 진천희였다.
그럼에도 왜일까.
이 사내에게서는 기묘한 기백이 느껴졌다.
심지어 자신과 반대 방향으로 손을 흔들고 있는 이 모습조차도, 그는 앞으로 가고 있었다.
그저 나는 것과 걷는 것, 그리고 기는 것의 차이일 뿐.
그는 내공이 없어도, 눈이 보이지 않아도 앞으로 나아갔다.
개미가 기듯 하찮다.
사실 대부분의 인간이 유호에게 있어 하찮은 존재였다.
유호 같은 존재에게 있어 개미와 인간은 큰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이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아득히 존귀한 것’은 궁금해졌다.
탁.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자신을 붙잡는 게 느껴졌다.
“오, 데려가 주는 거야?”
“바보짓 구경하는 것도 슬슬 질려서 말입니다.”
“헤헤헤헤.”
신은 결국 신관을 업었다.
‘손가락을 잃고, 눈을 잃고, 내공을 잃어도…….’
의원은 기어갔다.
그 끝에서 다다른 깨달음이 무엇인지 궁금해졌지만 결코 묻지 않았다.
그것은 존귀한 것이 필멸자를 상대로 가진 일종의 오기였고.
이 기묘한 인간을 이해했다가는 더는 뒤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바람이 차네. 시력이 있을 때는 몰랐는데 이제는 알겠어.”
달이 시렸다.
가을이 오는 소리였다.
기묘하게도 눈을 감았기에 볼 수 있는 것도 있었다.
“유호. 이제 조금만 닿으면 소우주(小宇宙)를 볼 수 있을 것 같아.”
강호인에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유호는 모르지 않았다.
“대성을 미리 축하드립니다.”
“진짜로 축하는 것 맞아?”
진천희가 투덜거렸다.
그 순간, 다시 한번 바람이 훅 불며 진천희의 긴 머리카락이 부풀어 올랐다.
“아, 그런 건가?”
하늘이 보였다.
그것은 몸속에 있는 하늘이었다.
이 순간을 놓치면 두 번 다시 기회가 없음을 알았다.
의원은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