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13
제 713화
어쩔 수 없나.
굳이 천하 경영이라는 말을 붙인 건 역시 개파조사님이 개파조사님이라 그런 걸까.
‘현원전단신공은 결국 이렇게 알고도 모르는 게 더 많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시작되지.’
제갈세가는 지략으로 먹고사는 세가 아닌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더 넘기 어려운 벽이 될 터였다.
그리고 스승님은 그걸 넘었다.
“…….”
“왜 그렇게 바라보느냐?”
“어, 신기해서요. 스승님은 어떻게 그 벽을 넘으신 건가요?”
진천희의 말에 제갈린은 피식 웃었다.
“글쎄다. 나는 절맥을 타고났다고는 하나, 세가에서도 손에 꼽힐 만한 무골임에 틀림없고, 너처럼 눈이 안 보일 일은 없었지. 뭐, 조금 따끔거리던 기간이 있긴 했단다.”
눈병인가.
‘무학의 벽은 눈병이었나.’
진천희가 어이가 없어 바라보니 스승님은 작게 웃으셨다.
“원래는 거기까지 가는 것조차도 쉽지 않은 벽이었지. 그리고 내가 모르는 게 많음은 이미 그때도 알고 있었단다. 무지(無知)가 뼈에 사무쳐 골수에 이를 정도였으니.”
“…….”
스승님은 거기까지 말하고는 입을 다문다.
진천희는 그 말의 무게에 왠지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언제 대성을 하셨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스승님이 자신의 병을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몰랐음은 틀림없었다.
어떤 깨달음은 절망과 맞닿아 있었고.
때로는 흙바닥을 굴러 지옥을 봐야만 볼 수 있는 게 있었다.
희망이었다.
진천희는 눈을 감은 세계 속에서 혼돈을 보았다.
보았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그것은 보지 않아야만 알 수 있는 영역이었으니까.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 내려놓았을 때가 되어서야 마주할 수 있는 영역.
인간의 인지로 닿는 것은 극히 일부분인 그 영역 속에서.
앎(知)이란 얼마나 허무하던가.
그 절망을 알아야만 나아갈 수가 있었다.
“개파조사님은 참 별난 분 같아요.”
스승님은 눈을 감고 미소 지었다.
“그래. 그건 그렇지.”
진천희가 맛본 절망을 제갈린도 보았다면.
그렇다면, 진천희가 맛본 희망을 제갈린도 보았으리라.
“자, 그러면 눈이 돌아왔으니 이제는 무엇을 하겠느냐.”
진천희가 미소 짓는다.
“축하는 하지 말죠? 대공을 축하한다고 풍악을 올리거나 그런 거 절대로 하지 말고.”
“그것참 아쉽구나.”
스승님은 강호에서 제일가는 팔불출이다.
이번에야말로 무슨 풍악을 올릴지 상상만 해도 무시무시해졌다.
“그러면 무엇을 할 셈이지?”
“평소처럼요.”
“음?”
진천희는 뺨을 긁적였다.
“깨달은 게 있거든요. 눈이 안 보여도 제가 저인 것은 똑같고. 눈이 보인다고 제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평소처럼 살겠다?”
“제자, 고생한 스승님과 유호에게 만두 정도는 올리고 싶습니다.”
장난스럽게 말하며 뚜벅뚜벅 걸어간다.
제갈린은 그런 제자가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실로 일광이 아닌가.’
같은 깨달음을 얻었으면서도 자신과 닮은 부분은 하나도 없는 놈.
그래서인가.
다음 생을 산다 하더라도 이 녀석을 다시 제자로 들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스승님과 유호에게 만두를 대접했다.
그것은 진천희가 눈을 뜨고 처음으로 한 일이었다.
‘눈 감았을 때도 요리는 가능했지만, 그건 밑 준비를 유호가 다 해줘서 가능한 거고.’
이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만들었다.
그리고 천일취를 준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데워드릴까요?”
“알지 않느냐.”
“그쵸.”
진천희는 열양기로 천일취를 데워 스승님께 올린다.
유호는 오히려 차갑게 식혀서 건네주었다.
후릅-
“천일취에 만두 안주가 그리 나쁘진 않구나.”
좋다는 뜻이었다.
만두의 농후한 육즙 위로 그윽한 향이 덮어진다.
“이제는 뭘 할 것이냐?”
“사 대 당주부터 모두에게 만두를 보내줄 겁니다.”
“어쩐지 처음과 끝이 같구나.”
“수미상관을 좋아하거든요.”
“허나, 그때의 만두와 지금의 만두는 맛이 다르구나.”
“미각이 더 예민해졌습니다.”
제갈린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성취는 이런 일상 속에서도 태가 나기 마련이었다.
특히나 그의 제자는 그랬다.
무학보다는 늘 활인이 먼저인 놈이었다.
특히 요리는 사람을 살리면서도, 좀 실수했다고 사람이 죽을 일은 없으니 더욱 즐거이 했다.
제갈린이 이윽고 거구를 일으켰다.
“어, 스승님?”
“나도 돕는 게 좋겠구나. 희야.”
“으윽……. 괜찮아요!”
“의각 사람들 다 먹이려면 혼자서 될 것 같으냐?”
확실히 스승님까지 끼면 든든하긴 하다. 하지만 이래도 좋은가 투덜거리는데 유호가 짜증 냈다.
“아니, 두 분이 일하면 저는 놀라고요?”
“유 총관은 놀아!”
“…….”
스승님은 놀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저 유호를 한번 쓱 봐줄 뿐.
“쯧.”
유호는 결국 혀를 차더니 함께 부엌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세 사람은 하루 종일 만두를 만들었고. 의각은 작은 잔치가 열렸다.
진천희가 말한 대로 풍악도, 손님들도, 스승님의 팔불출도 없었지만.
모두가 만족하고, 모두가 잊지 못할 그런 하루.
보름날. 만두처럼 둥근 달이 뜬 어느 날이었다.
* * *
다시 일상이 돌아갔다.
가월을 가르치고, 공사 현장을 지휘하고, 본인 무공 수련도 했다.
거기에 긴급 수술도 하고, 상의원과 중의원들에게 부술도 가르쳤다.
그뿐이 아니다.
중원의 의술도 아직 진천희가 모르는 게 제법 많아서, 이것저것 공부도 같이 하고 있다.
연구각에서의 의약품 개발에도 관여하고, 가끔은 유호에게 가서 천일취와 육회 그리고 최근에 만든 유호 전용 만두도 대접했다.
주에 한 번은 스승님과 같이 온천욕을 하면서 ‘어으~ 시원하다~’라는 소리를 하다가 스승님에게 뜨거운데 왜 시원하다고 표현하냐는 질문 아닌 질문도 들었다.
그리고 무월과 함께 회계 일을 하기도 했다.
현승청장과 함께 백린현의 행정 현황을 확인하기도 하고, 백린현 내에 시범적으로 생길 제갈세가 만두 객잔(가칭) 다섯 곳의 준비 과정도 점검했다.
그야말로 천방지축 어리둥절 빙글빙글 돌아가는 진천희의 하루.
그렇게 다시 쏜살같이 몇 달이 쓱 지나갔더니.
어느덧 객잔의 영업 개시일이 되었다.
그리고.
진천희는 객잔의 영업 개시를 위한 오픈 이벤트를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희야.”
“예. 스승님.”
“꼭 이런 행사를 벌여야 하는 게냐?”
“그럼요! 이런 이벤트를 안 하면 경쟁이 안 된다구요.”
분명 이놈은 무공을 대성하고도 자신을 위해 잔치를 하지 말아 달라 했던 놈이었다.
강호인으로서 평생 올까 말까 한 성취를 해놓고서는 그 성취로 만두나 빚었다.
그래 놓고 정작 이딴 만두 객잔에 개점 잔치를 하자고 하다니!
“그래. ‘이벤트’. 그런 거 없어도 충분히 경쟁을 할 수 있어 보인다만……. 네가 천하동미를 목표로 했다지만, 다른 객잔들과는 맛부터 다르지 않니?”
제갈린.
그는 사람이 싫다.
그냥 싫은 것도 아니고 벌레마냥 경멸할 수 있는 수준으로 싫어하는 자가 바로 제갈린이었다.
그것은 어렸을 적의 불우했던 환경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갈린의 체질도 한몫했다.
구음절맥은 천형이지만, 천하를 오시할 재능도 같이 준다.
특히 감각 부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태어나면서부터 주변의 향을 전부 파악했을 정도의 존재가 바로 구음절맥인 것이다.
그런 제갈린이기에 식사조차 까다롭다.
제자의 음식이거나 아주 고명한 숙수의 음식이 아니면 맛이 없어서 먹을 수 없을 정도!
이딴 걸 먹을 바에는 벽곡단 먹고 말겠다는 모욕도 서슴지 않고 본인 면전에 대고 하는 양반이었다.
그런 제갈린을 데리고 진천희는 만행을 저지르고는 했다.
-스승님! 이게 저희 현에 있는 최고 인기 객잔이래요! 어떠세요?
제갈린을 데리고 객잔에 가서 음식을 사 먹이고 평가를 부탁한 것!
진천희 자신은 막입이라서 먹으면 그냥 다 맛있다나?
덕분에 제갈린은 평생 모르고 살았던 세계를 알게 되고, 경험하게 된다.
아니, 세상에 이런 음식이 있었다니? 너무 맛없다.
이럴 수가! 이런 걸 먹고 산다고? 너무 맛없는데?
허! 이런 걸 먹고 배탈이 안 나다니? 인간은 의외로 강한 게 아닐까?
제자가 쓰레기 같은 음식들을 맛있다며 스승님에게 얹어주면 제갈린은…….
“그래. 이번에는 어떤 걸 들고 왔는지 보자꾸나.”
요리사를 경멸하며 먹어 주었다.
그것은 제자 놈이 진흙탕에서 사지 하나 잘라먹고 객사할 것을 이딴 음식 하나 먹어치워서 살리겠다는 의지.
그렇다고 평가가 자비로운 건 아니었다.
그리고 객잔숙수와 주인의 위장에는 구멍을 뚫었다.
괜찮았다.
너무 심하다 싶으면 진천희가 스승님을 말리고 숙수가 울화로 피를 토하고 쓰러지지 않도록 진료를 해주었으니까.
“…….”
그런 과정 끝에 제갈린은 깨달았다.
천하동미라고 주장하던 제자의 만두 객잔은 사실 천하일미는 아니어도 천하십미, 혹은 천하백미에는 들겠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러니 이런 화려하고 볼거리 많은 행사(제자의 말을 빌리자면 이벤트)는 불필요한 것이다.
어차피 맛있으니까! 가격도 싸니까!
대충 하오문에 돈 좀 쥐여 주고 여기 맛집이라고 소문만 내주면 끝날 일이 아닌가?
대체 왜 이놈은.
그 무공을 대성하고!
본인 잔치는 마다하고 이딴 짓을 하고 있단 말인가!
‘내 세상 모든 귀한 것을 네게 다 쥐여 주었거늘.’
이 미친 제자는 조막만한 객잔을 꽃으로 장식하면서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래. 네가 행복하면 된…… 게지.’
제갈린도 죽음의 5단계를 거쳐 제자를 인정하기로 했다.
“스승님. 진정으로 좋은 상품이 있으면 사람들이 알아준다, 그것은 헛된 거짓말입니다. 행운과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없다면 좋은 음식이라고 해도 묻힐 수 있어요. 괜히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이야기가 있나요.”
운칠기삼.
이 고사성어의 유래는 옛날 옛적 옥황상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어떤 학사가 장원급제를 위해서 공부를 하였는데, 늙어 죽을 때까지 결국 낙방하고 말았다고 한다.
이 사람이 죽고 나서 너무 억울해서 옥황상제를 막무가내로 찾아가 한풀이를 했는데.
염라대왕의 수하인 저승차사가 무슨 생각인 것인지 이 노인을 옥황상제 앞까지 데려갔단다.
현대로 치면 클레임을 걸었더니 회장을 만나게 해준 꼴.
아무튼 학사의 억울함을 들은 옥황상제는 정의의 신과 운명의 신을 불렀는데, 그 둘에게 술 시합을 시키더니 이렇게 말했다 한다.
-정의의 신이 더 많이 마시면 너의 분노를 인정하나, 운명의 신이 더 많이 마시면 네가 체념하는 것이 옳다.
이 무슨 개소리인가 싶겠지만, 설화가 그냥 그렇다고 하는데.
어쨌든 이 술 시합에서 정의의 신은 석 잔 마시고, 운명의 신은 일곱 잔의 술을 마셨다.
“세상은 사람의 질서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며, 불합리하다 하여도 하늘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나 7푼의 불합리한 운명 또한 3푼의 인간의 이치에 의해서 행해지니. 이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재주(技)가 좋아도 그 역할은 30%밖에 되지 않고 성공에는 주변 상황 등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운(運)의 역할이 70%라는 말이다.
중국의 기이한 옛이야기를 담은 ‘요재지이(聊齋志異)’.
여기에 수록된 이야기다.
‘운칠기삼도 작작해야지. 이만한 맛을 만들어 놓고 왜 하늘에 기대고 있는지.’
“그런데 희야.”
“예. 스승님.”
“네가 준비하는 이 이벤트라는 것은 이미 운과는 관계없지 않으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