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14
제 714화
운칠기삼대로라면, 진천희는 가게 차리고 행운이 오기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건 행운을 납치해서 가져오는 거 아닌가!
“하하하! 스승님. 진정한 책사라면 행운조차 가져와야죠. 그러기 위한 이벤트인 것입니다!”
내 제자는 어디가 잘못된 걸까.
‘아마 이놈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는 별세계에서도 저놈은 저랬겠지.’
거기도 사람의 이치로 돌아가는 곳이라면 이놈도 거기서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게 틀림없었다.
제갈린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자. 그러면 스승님. 이 제자, 이벤트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래. 하려무나.”
제갈린은 상석에 앉아서 진천희를 피로한 눈으로 보았다.
진천희가 단 아래로 내려간다.
이미 사람들이 잔뜩 몰려 있다.
상석에는 제갈린만 앉은 게 아니다.
이 백린현의 명사들도 와 있었는데, 심지어는 가가의 가완도 와 있었다.
가완이 왜 여기에 있는가 싶겠지만, 백린의각이 자리한 온천 지역은 최근에 아주 인기가 좋다.
그 근처에 땅을 매입한 가완이 그곳에 온천 별장을 지었던 것.
제국팔가 가씨세가 가주가 직접 납시자 관리들이 손 비비기 바쁘다.
물론 그건 제갈린에게도 마찬가지.
어떻게든 다들 제갈린의 호감을 사려고 안달이 나 있었다.
“의국백의 후계자는 아주 대단하시군요.”
“이 제갈 모에게 과분한 아이지요.”
“장자가 말하길 역보역추(亦步亦趨)라. 역시 스승이 가는 길을 제자가 쫓아가는군요.”
“알아서 자란 것이지요. 저는 한 게 없습니다.”
제갈린은 제자에 대한 칭찬은 좋아하나, 본인에 대한 칭찬은 심드렁하다.
‘혈린은 기분 맞춰주는 것도 쉽지 않으니, 원.’
제자에 대한 칭찬 원 툴로만 가야 하는 게 백린의선 제갈린.
쉬우면서도 어렵다.
가완이 그런 제갈린 옆에 앉았다.
“이번에 이렇게 자리를 함께 되어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고작 만두집 개업 행사에 제국팔가가 와서 구경하는 전대미문의 일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제갈린은 별생각이 없어 보였다.
“저 녀석이 하겠다고 하니 시켜 주어야지요.”
“후후후, 제 딸인 가월도 밑에서 잘 배우고 있어 성취가 뛰어나다 들었습니다.”
가월의 일취월장.
서원에 기반을 둔 가씨세가면 당연히 문관을 지원하여야 함이 옳으나, 혹자는 무관에도 소질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뛰어났다.
진천희가 기초를 가르치고, 제갈린이 응용을 가르쳤다.
원래라면 응용도 진천희가 가르쳐야 했지만, 장님으로 무공까지 금제를 당한 상황이라 스승인 제갈린이 대신한 것.
그게 오히려 가완에게는 도움이 되었다.
다만 절친한 친우인 사마혜와 함께 밤에 제갈 놈을 외치며 베개를 주먹으로 두드렸지만 아무튼 그랬다.
기묘한 사제, 아니 기묘한 사손 관계라 할 수 있었다.
“저희야말로 이런 무재를 가르칠 수 있어 영광입니다. 가씨세가의 홍복이지요.”
“아닙니다. 제갈세가의 기재에게 딸을 맡길 수 있어 어찌나 영광인지 모르겠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본 후에 후후후후, 웃음을 지었다.
나왔다. 그랬다.
사회생활 비기.
서로의 얼굴에 금칠 발라주기!
여기서 중요한 건 상대의 공을 치하하는 게 아니다.
상대의 딸, 또는 제자를 칭찬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효과는 좋았다.
한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벤트는 시작되었다.
진천희는 숙수의 옷을 입고 연설을 시작했다.
“우선 이 자리를 빛내주신 가완 가주님과 저의 스승이신 백린현의 주인! 의국백을 모시고 이렇게 자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장황한 연설이 시작되었다.
어법이 맞는지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일단, 일단 길어야 한다.
모두의 눈에 졸음이 내려올 즈음, 그제야 진천희는 철과를 들고 열양기로 불을 지폈다.
화르르륵!
“오오오옷!”
“시작되는가! 전설의 진 소각주의 요리!”
“과연 시작부터 기백이 상당하네!”
모두가 주먹을 불끈 쥐고 바라본다.
그중에는 얼이 나간 무인들도 있었다.
“방금 내 착각인지 모르겠는데, 의념만으로 열양기를 피워서 불을 낸 게 맞는 것이오?”
“……나도 지금 착각인가 싶은데. 그걸 고작 화과 데우는 데 쓰고 있어 보이는데?”
“칼질도…… 내력 없이 한 번에 세 번의 절단을 한 것처럼…… 보이는구려?”
그랬다.
안목이 있는 무인들은 다른 의미로 충격을 받고 있었다.
“시력을 잠시 잃었다고 들었는데 그동안 성취가 대단해진 모양이오. 어떻게 내력 없이 저게… 왜……?”
그게 어찌 가능한지는 알 수가 없다.
허나 이미 눈앞에 일어나고 있지 않나.
“아니, 그러면 그 정도의 심득을 비무나 검무로 보여주지는 못할망정, 왜 고작 만두 빚는 데 보여주고 있단 말이오!”
절로 목소리가 격양된다.
그때 뭔가 서늘한 감각이 목젖 아래를 찌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쪽을 돌아보니 제갈린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흡……!”
가공할 살기에 그는 순간, 뱀에게 잡아먹히는 환각을 본다.
죽는다, 죽는다, 죽. 는. 다.
어둠이 밀려왔다. 사술인가 싶었으나, 그건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극한의 공포 앞에서 만들어낸 스스로의 심상일 뿐.
실금 직전까지 가서야 제갈린은 눈빛을 치웠고, 무인은 입을 다문다. 그를 보며 다른 장로들은 생각했다.
‘혈린 성격…… 참.’
‘……제자가 만두 빚으면서 심득을 보여주고 있는 이 상황이 보통이 아님을 저놈도 알 거 아닌가!’
그러거나 말거나 제갈린은 허허롭게 부채를 부치며 우리 제자의 요리가 일절이라며 웃고 있었다.
제자는 그런 스승님의 전폭적인 지원에 자신감 있게 요리를 해나갔다.
그렇게 만두가 찜기로 들어가고.
함께 들어갈 볶음밥도 황금빛으로 자글자글 빛났다.
여기에 매운 소고기 짬뽕 국물까지 만들어낸다.
촤라라라락!
국물 한 방울까지 튀지 않고 화과 속에 담기는 것은 분명 의념의 영역이다.
붉은 짬뽕의 회오리가 불맛을 하나하나 입어 용틀임을 한다.
“……저것도 무공이오?”
“어느 주방장 숙수가 국물로 회전 회오리 용틀임을 시키고 있겠소.”
“……과연 천하일광이로다.”
탕!
그렇게 순식간에 회장에 모인 모든 이들을 대접할 요리들이 완성되었다.
“더 드시고 싶으시면 말해주시고요!”
끌려나온 유호는 떫은 표정으로 모두에게 한 그릇씩 건넸다. 그러다 유호는 보았다.
‘저 새끼 사마현인데?’
맨 뒷줄에 있는 노파는 틀림없는 사마현이었다.
역용술이 극에 달하고, 냄새마저 숨기는 경지에 이르렀단 말인가.
허나, 혈생노괴의 역용술까지 간파해내는 유호의 눈을 속일 수는 없다.
‘음, 모르는 척해야겠군.’
진천희도 속이고 몰래 먹고 있는 걸 보니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하오문의 내부 사정상 여기 있다는 사실을 들키면 안 되는 모양이다.
하긴, 생각해 보면 저놈이 자기 형 눈이 멀었다는 말에 얼마나 달라붙어 있었나.
심지어 백린의각 아랫마을에 장원까지 사두었다.
이러니 하오문에서 당연히 말이 나올 수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게 형 개업식 참가하겠다고 역용까지 하고 와서 박수 치고 있는 꼴이 퍽 희한했다.
‘미친놈.’
어쨌거나 모르는 척 그릇을 내려놓으니 사마현, 아니 사마현이 변장한 노파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먹는 게 아닌가.
밥알 하나까지 놓치지 않겠다는 듯 음미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유호, 고생했어. 유호 특별 만두도 하나 해줄게.]진천희가 전음을 보냈다.
천일취로 고기 잡내를 제거한 만두다.
그 귀한 천일취를 고기 잡내 제거하는 용으로 쓰는 것 자체가 호사스러운 일인데, 워낙 그 향이 그윽하다 보니 만두를 만들어 찌고 나면 술기운은 날아가고 그 향만이 남아 고기에 스며있다.
당연히 재료값만 따져도 말도 안 되는 가격.
그것을 유호를 위해 빚어주겠다고 말한다.
[주인님은요?] [스승님은 지금 여기서 만든 이 만두가 좋다고 하셨어.]요리는 맛도 의미하지만 추억도 의미했다.
그만큼 제갈린은 이 기묘한 제자가 벌이는 일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거겠지.
[됐습니다. 그러면 저도 똑같이 주십시오.] [유호 입에 안 맞을지도 모르는데 괜찮아?] [……귀찮으니까요.] [알았어.]진천희는 그리 말하고는 찜기에서 만두를 덜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과 똑같은 만두.
“우와, 만두가 일절이로고!”
“정녕 이 가격에 이걸 팔아도 된단 말인가?”
“혹시 착각은 마시게. 이건 일광이 만들어서 그런 거고, 다른 숙수가 만들면 같은 재료로도 다른 맛이 나겠지.”
모두가 신이 나서 진천희가 만든 요리를 즐겼다.
진천희가 유호에게 속삭였다.
[후식은 호떡이야. 이건 밥값보다 비쌀 예정이라서 단가는 신경 안 쓰고 만들었어. 어차피 이 메뉴는 입점하는 가게가 거의 없을 거고.]또 이상한 말을 쓴다. 그래도 유호는 대충 알아들었다.
진천희는 마치 수술을 집도하는 외과의처럼 끓는 기름을 면밀히 관찰하고 집중한다.
탄수화물+당은 언제나 옳았다.
특히나 그걸 튀기면 더더욱!
사악한 강호 의원은 호떡을 튀기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거기에 설탕 입힌 알감자까지!
‘고속도로 휴게소 가고 싶다.’
고향, 지구 별 맛이었다.
* * *
만두를 메인으로 하는 객잔이 백린현에 약 일곱 개.
일곱이라고 하면 많은 것 같지만 이미 백린현은 어마어마한 토지규모를 자랑하는 터.
사실 적은 편이다.
“내가 만두 하나 먹으려고 산 두 개를 넘어왔다네!”
“나는 세 개 넘었다네!”
그랬다.
학관에 가기 위해 매일 산을 하나 넘어가는 일은 자랑도 아닌 이 세계에서 만두 하나 먹겠다고 이 먼 걸음을 온 것은 그야말로 대단한 일.
허나,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싶은 건 시대를 초월하던가.
사람들은 줄 서서 만두를 먹었다.
“맛은 있는데 이 줄 서서 먹을 수준은 또 아닌가…… 싶기도 하고?”
워낙 오래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생긴 것.
“그래도 먹어 보니 좋네. 남은 만두는 죽통에 싸서 어머니랑 먹어야겠네.”
기반을 다졌으니, 다음 일에 착수할 때였다.
‘남은 건 이제 대규모 농지 개간인가.’
농지 개간.
치국을 하는 자들 대다수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이자, 끝까지 하는 일 중의 하나였다.
“정말로 이렇게 가실 생각이십니까?”
무월의 질문에 진천희가 답했다.
“응. 본인이 개간한 농지는 삼 년 후에 본인에게 주자고.”
“왜 바로 안 주고요?”
“만약 즉각 지급하게 되면 세금이 발생하거든. 빈민은 세금 낼 돈이 없잖아? 그리고 개간이라는 게 일 년 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해외에서 산을 밀어 밭을 만들어본 친구가 그랬다.
개간은 사람이 할 게 못된다고.
아니, 기계가 할 것도 못된다고.
아무리 나무를 베고 뿌리를 뽑아내도, 계속 새로운 돌과 뿌리가 발견된다.
그러다 트랙터에 턱하고 걸려서 오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면 A/S를 받아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본인이 기사 자격증까지 따서 알아서 수리하거나 자격증 없이 눈대중으로 야매 수리라도 하지만, 그게 아닌 초보 귀농자는 그냥 수리 기사 부르고 돈을 날린다고.
“3년은 해야 겨우 쓸 만해질걸?”
“그동안은 식량을 지급하겠군요.”
“응. 개간을 하려면 힘이 있어야지. 미곡을 풀어서 지원할 거야.”
무월이 살짝 이마를 찌푸렸다.
“괜찮습니까? 자칫 위에서 감찰관이 내려올 수 있습니다.”
“공짜로 써버리면 안 좋아하니까. 나중에 소출의 6할을 받을 거야. 미곡값과 땅값, 거기에 세금까지 합친 거지.”
“……그거라면 한다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겠군요.”
“빈민만 받을 거야. 이미 땅이 있는 양민은 안 되고.”
무월은 앞서 걸어가는 진천희를 바라보았다.
‘이런 건 칼 같은 양반이라니까.’
눈이 멀어도, 내공을 잃어도 언제나 하는 일은 똑같은 자.
대체 이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설마하니 지상 낙원을 만들려는 것은 아닐 거고.’
그게 불가능하리라는 건 진천희 본인이 더 잘 아는 일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따르는 이들이 많은 것은 그래도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때문인 거겠지.
무월은 그런 진천희가 좋았다.
그렇기에.
“오늘 저녁은 뭡니까?”
“불도장.”
“오오, 호사스럽군요.”
“잘 먹어야 잘 일하죠. 크헤헤헷!”
오늘도 악당처럼 웃는 은공이었다. 그래도 관료들 걱정해주는 마음이 늘 고마웠다.
“……그리고 스승님께서 직접 요리하신다고 하셔서요.”
취소.
‘오늘 저녁은 체할지도 모르겠군.’
살아남아야 한다. 무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