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15
제 715화
043. 밀교(密敎)가 부르는 소리
여기는 백린의각 소각주 집무실.
“이제 내 일도 슬슬 정리되어 가나? 이제 망할 황상 놈들이 한동안은 더 일을 안 줄 것도 같고.”
진천희는 건치 미소를 지으며 활짝 웃었다.
깨달음을 얻고 시력이 돌아온 뒤로 시간이 흘러흘러, 백린현의 빈민은 크게 감소되었다.
실업률도 거의 바닥까지 떨어진 상황.
이 정도면 일할 곳이 없어 놀거나 도적이 될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본인이 사파 꿈나무인 경우를 제외한다면 말이지.
“사용한 세금이 돌아온 게 더 신기합니다.”
무월의 말에 진천희가 낄낄낄 웃었다.
“나도 그래.”
인간은 교통이 불편해도 보고 싶은 건 어떻게든 보러 가기 마련인가 보다.
고대 이집트 때도 관광업으로 먹고 살았다던데, 백린현이 그런 상황이다.
치국의 기본인 농업이 발달하게 된 것을 근간으로 상인, 그리고 관광객들이 모여들었다.
다만 이 시대의 관광객들이란 서민이 결코 아니다.
교통이 불편하다고 해도 내가 마차 끄는 게 아니면 되는 거고, 내가 노잡이 하는 거 아니면 되는 것.
고대인들도 노예 이끌고 관광 갈 거 아니면 좋은 지중해 날씨 놔두고 거길 왜 가냐고 했을 터.
이 동네도 마찬가지.
한가락 하는 사람들이 와서 온천도 들어가고, 연무 도시 구경도 하고, 제갈 비법 만두도 먹고 있다.
‘뭐, 자연스러운 흐름이려나.’
이게 가능한 것도 모두 비축해둔 미곡량과 예산이 충분해서이다.
‘큰 산을 넘었으니 땅만 더 받지만 않으면 된다.’
아무리 골드&실버 왕야가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이라고는 해도 여기서 일을 더 주는 만행을 벌이지는 않겠지.
그때 유호가 와서 물건을 건네주었다.
“받으십시오.”
탁-
‘아니, 유호 이놈은 기척도 없이 불쑥 들어와서 휙 던지고 난리야?’
그래도 이놈이 이런 게 어디 원투 데이인가.
진천희는 한숨을 쉬며 물건을 내려다본다.
상자였다.
“뭐야, 이건?”
“주인님께서 보내신 물건입니다.”
진천희는 잠깐 망설이다가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단검.
뭔가 사이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으로, 손잡이의 조각이 독특했다.
쌍신(雙身)으로 이루어진 조각이었는데, 남자와 여자가 서로 음란한 자세로 포옹하고 있는 모습이다.
‘일단 중원에서 일반적으로 쓰는 것은 아니군.’
애초에 손잡이를 쥐고 휘두르라고 설계되어 있지 않았다.
“의식용 단검인가? 제사나 주술용?”
“네. 예전에 주인님께서 얻으신 겁니다. 환희밀교의 것이죠.”
환희밀교!
다두왕국과 세림교국 사이에는 사막이 넓게 펼쳐져 있었는데, 그쪽에는 환희밀교라는 종교 단체가 자리하고 있다.
본디 환희밀교는 불교의 종파 중 하나인데, 환희불이라는 존재를 추앙하는 단체.
‘환희불……. 이게 또 독특하지,’
쌍신(雙身)을 통해서 부처에 이른 신으로, 남성이며 여성이라고 표현되기도 하며, 혹은 남성불과 여성불의 두 명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환희밀교는 환희불을 남성이자 여성인 부처로 추앙하며, 이 존재의 가르침은 인간의 정신뿐 아니라 육체적 괘락을 탐구하여 초월에 이르는 것이라고 설파했다.
육욕과 욕념을 모두 극에 이르게 하면, 반대로 무상무념의 반열에 올라 해탈하여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교리를 가지고 있는데.
‘유교 대원군들이 들었으면 사생결단 날 소리지, 이건.’
그랬다.
칼 든 유교 깡패들이 강호 아닌가.
어제 사람을 백정처럼 죽여도, 오늘 살아서 효를 다해야 하며,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
남녀가 서로의 창자 색은 구경해도 되지만 그래도 일단 유별해야 한다.
그것이 칼 든 유교맨들의 논리.
서로의 명치에 칼을 꽂는 건 가능하지만, 사사로이 희롱하는 건 파락호나 할 짓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궁운은 파락호다.
순결 파락호.
현대인이 듣기에 미친 소리 같지만 아무튼 이 차이가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 세계에서 육체적 쾌락을 통해 초월에 들 수 있다는 환희불은 그야말로 사특한 존재.
여기서 환희밀교를 믿으려면 비밀리에 조용히 믿어야 한다.
그런데 저어쪽 지역에서는 꽤 인기가 있단다.
그리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환희불은 재복을 관장한다고 하여 세림교와 더불어 상인들도 많이 믿는 신이라고.
‘재복? 우리 유호 토용보다 더 잘 주나?’
유호 토용이 사방에 인기 있는 이유.
왜인지 돈을 많이 벌게 해준대서 사람들이 들고 있다.
‘생각해보면 여우가 원래 돈을 많이 가져다준다고 하지.’
보통은 사람 간 빼 먹는 불길한 존재로 취급받기도 하지만 중원 일부 지방에서는 좋은 이미지인 모양이고.
왜인지 유호 토용이 용하다며 사 가기 시작했다.
중원 시대의 밈이라고나 할까?
진천희는 환희불이 각인된 단검과 유호 토용을 나란히 앉혔다.
‘환희불이랑 유호 토용이랑 싸우면 누가 더 돈을 많이 벌어다 주지?’
현대인은 이런 거 중요하다.
“또 엉뚱한 생각 하시는군요.”
“스승님이 이건 왜 주신 거야?”
“으음, 일전에 혈선교도들을 처리한 적이 있었습니다.”
“진짜?”
“도련님이 없을 때 사소한 ‘화풀이’가 있었지요. 아무튼 거기서 발견한 단검입니다. 아마도 도련님께서 혈선교를 찾아야 한다면 꼭 필요할 겁니다.”
‘으음… 환희밀교라……. 서장에 가야 하나?’
서장은 세림교국이 있는 동네를 뜻했다.
세림교국이 그쪽 동네에서 가장 큰 나라지만, 사실 세림교국 외에도 수많은 작은 나라들이 붙어 있는 형태.
우우웅-
진천희는 흡(吸)의 묘리를 이용해 죽간본을 끌어당겼다.
순식간에 원하는 죽간본이 진천희의 소매로 쑥 빨려 들어왔다.
‘……이제 거기까지 성장했나.’
눈이 보이지 않았던 기간만큼 오감은 더욱 예민해져 있었고, 숨 쉬듯 사용하는 무공에는 깊은 무학이 담겨 있었다.
진천희는 아무렇지도 않게 죽간본을 드르륵 열었다.
거기에는 중원에서 생각하는 세계 지도가 그려져 있다.
축척은 조금 엉망이지만 그래도 대충 어디에 뭐가 붙어 있는지는 잘 알 수 있다.
“다두왕국을 지나면 나오는 사막, 사막 북쪽으로는 정글이 펼쳐지고, 그 위로는 또 고원과 평야 지대잖아?”
“네. 거기는 유목민들이 강세이지요.”
“중간 지역인 정글에는 간보, 미암, 석암이라는 왕국들이 가장 강성하고…… 그 외에도 여러 국가들이 있단 말이지.”
진천희는 손가락이 주르륵 내려간다.
“그 밑으로 다두왕국과 세림교국을 가르는 거대한 사막……. 한 나라가 네다섯 개는 들어갈 만큼 어엄청 큰 사막에 나라가 있긴 하지?”
“네. 대승불교의 종파인 라마교를 국교로 하는 담진, 세림교국의 세림교와 라마교가 반반 섞인 왕국인 밀산 왕국이 있습니다.”
“다두왕국과 붙어 있는 곳이기도 하고.”
환희밀교는 담진과 밀산에 널리 퍼져있고, 본산은 담진에 존재한다.
사실 담진이니 밀산이니 하는 것도 전부 화 제국에서 붙인 이름이다. 저 아이샤 왕국도 화 제국식 이름이 따로 있을 정도다.
저들의 언어와 화 제국의 언어가 다른데도, 화 제국은 자기네 식으로 상대를 부르는 오만한 국가였다.
어쨌든 이렇게 손가락을 그려 보고 나니…….
“엄청 멀잖아? 이거!”
다두왕국도 멀지만, 거기서 한 번 더 서쪽으로 가야 하는데, 화 제국 동쪽 끝에 있는 백린의각 본산에서 서쪽 끝까지 가서 세외까지 가야 하는 상황.
‘혈선교에 대한 단서는 확실히 중요하지만…….’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가는 데 석 달, 오는 데 석 달이야, 이거! 그러면 일이 잔뜩 불어나 있을 거라고!”
“그렇습니까?”
“평범한 사람이면 가는 데 반년, 오는 데 반년 해서 왕복만 일 년이다. 왜 세외까지 가는 비단 상인들이 가족을 일 년에 한 번만 보겠어! 이 거리를 주파하니까 이러는 거지.”
“그렇군요. 뭐, 그러면 가보겠습니다.”
유호는 오히려 아니면 말고, 하는 태도로 나가려는 게 아닌가.
“일단……. 어…… 유호, 고마워.”
“됐습니다.”
“삐진 거 아니지?”
“아닙니다.”
진천희는 감자 닮은 유호 토용을 들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유호, 고마워. 사랑해~ 미니 유호야. 아빠 배웅하자. 아빠, 고마워요!”
유호는 그제야 하찮은 인간 놈이 자기를 놀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새끼가아아앗!!!!!”
와장창창창!
* * *
이상했다.
이렇게 경지에 올랐는데 왜 아직도 유호의 동작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
개처맞고 나서야 진천희는 깨달았다.
이렇게 강해져도 유호 놈의 끝이 안 보인다고.
심무를 쓰는 것도 의념을 깨우친 것도 아닐진대 그냥 유호는 뒤지게 강했다.
“너희 아빠 너무 터프하다. 안 그러냐?”
진천희는 유호 토용의 이마를 쓱쓱 쓸었다.
유호는 못생겼다고 질색하지만 진천희는 좋아한다.
아니, 유호가 질색하니까 그 반응 때문인지 더 귀여워 보였다.
그렇게 유호를 보내고 진천희는 다시 지도를 쭉 훑어봤다. 그러다가 문득 손가락이 멈췄다.
“어. 이거……?”
이윽고 다시 흡(吸)결을 이용해 서책을 끌어당겼다.
탁-
지도에 있는 지역을 좀 더 자세히 적은 서책이다.
그 서책에는 담진왕국에 대한 것들이 쭉 이어져 있었는데 진천희는 다시 지도를 내려다보았다.
거기에는 범어도 아니고, 아예 세림교국 표음문자가 적혀 있었다.
발음은…… 나트론.
‘나트론 광산. 나트론 호수.’
진천희는 턱을 문질렀다.
“담진에서 연금술사들이 쓰려고 채굴한다라…….”
쉽게 말해 대륙 최대 소다 광산이다.
여기도 어째 명칭이 똑같다.
물론 그 크기는 지구에 비해 말도 안 되게 크지만.
이집트인들은 옛날부터 탄산수소나트륨을 사용해 방부제를 만들고 소다수를 만들었다.
그때 나트론 광산에서 채굴을 했는데, 그렇게 얻은 것을 시체의 수분을 빼는 데 사용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유리를 만드는 데도 쓰고, 아미포를 표백하는 데도 사용했고… 고대 기록에 따르면 이미 그때부터 약으로도 썼던 모양이고…….
현대 나트륨의 어원 자체가 이 광산인 나트론(Natrium)에서 비롯되었으니 말 다 했지.
‘와, 근데 진짜 크네. 지구에서는 이 정도 크기는 아니었는데.’
하긴, 중원 대륙 자체가 지구보다 더 크고 지명이 같아도 기후나 지리가 조금씩 다르기도 했지.
‘무역로를 잘만 뚫으면 베이킹소다와 치약을…… 더 쉽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도 얻고자 하면 얻을 수 있다.
이 세상 모든 소다가 다 저기 있는 것도 아니고 중원에도 채취할 수 있는 곳이 있긴 하고.
거기다 개인 교역도 가능하니까.
다만 문제는 단가였다.
저기서는 탄산수소나트륨이 빵보다 싸다.
동네 꼬마애도 소화 안 된다고 소다수를 먹고 산다.
하지만, 중원에서는 이놈이 비싼 데다가 가격도 시가라 상인 변덕에 따라 요동친다.
‘왕실 무역만 잘 뚫으면 해로를 이용해서 왕창 떼 올 수 있을 것 같은데.’
광산은 왕실 것이니 단가를 낮추려면 왕실과 교역이 되어야 한다.
“쓰읍……. 욕심이 나는데, 이거.”
* * *
“치약?”
“예. 스승님, 무공을 익힌 사람들은 대부분 건치를 유지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경지와 무공 성향에 따라 충치로 고생하는 강호인도 제법 많죠.”
“그건 그렇지. 특히 사파 무공은 양생공이 아니다 보니 이립(而立)만 넘어도 뼈와 치아가 삭기 시작하니까.”
“맞아요. 거기다 양민들의 경우에는 충치가 생기면 뽑아야 되잖아요? 뽑는다고 새 이빨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때부터 진정한 고난의 시작이고요.”
괜히 치아가 오복(五福) 중 하나가 아니다.
치아가 상하면 음식을 섭취하는 게 힘들어지고, 소화 기능도 같이 떨어지며 수명에 직접적으로 타격이 온다.
“네가 만든 게 있긴 하지 않느냐.”
“그렇긴 하지만 단가가 문제잖아요.”
“흐음. 그래서 고작 치약 재료를 캐러 담진왕국에 가겠다?”
아직 스승님은 탄산수소나트륨의 진정한 위력을 모른다.
스승님은 평생 입 냄새도 소화 불량도 겪은 적이 없는 인간이니까.
그냥 이 동네 전통 치아 관리법 정도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진천희는 가글이 하고 싶었다.
어금니를 민트 향 나는 거품으로 벅벅 닦고 싶었다.
‘스승님. 저 괴롭습니다.’
현대인만 알 수 있는 고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