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22
제 722화
카가가각!
그러나 어느샌가 나타난 회색의 모래덩어리가 그 검격을 모조리 막아냈다.
벽과 창문, 근처의 기물이 조각나 흩어지는 와중.
백천군이 회색의 모래를 발디딤 삼아 허공을 부유하고 있다.
초현실적인 모습을 한 채로 백천군이 입을 열었다.
“저와 같은 원로들은 시기에 따라서 강해지고 약해지지요. 저희 역시 혈선의 은총을 입은 몸이기에, 아무래도 천기에 제약을 받거든요. 그건 장천군도 마찬가지. 당신이 만났던 당시의 그는 아직 약했을 겁니다.”
“호오, ‘아직’ 약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당신 덕분에 천기가 그때보다 아주아주 느슨해졌지요.”
차르르르르.
모래가 살아 있는 것처럼 뭉쳐졌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당신의 은덕입니다. 당신의 위업이지요. 당신의 업이기도 합니다♬”
그는 노래하듯이 중얼거렸다.
“그래서 당신들, 원로들이 강해지고 있다 이거군요.”
“강해진다기보다는…… 과거의 힘을 조금씩 되찾고 있다고 할 수 있답니다.”
진천희의 표정이 단단히 굳어 버렸다.
일전 개소리를 내는 호랑이같이 생긴 생물을 만난 적이 있다. 영물의 일종이라 생각했지만…… 사실 요괴였다면?
천기가 흐트러지면서 요괴가 출몰한 거였다면?
그렇다면 저자의 말이 맞을 것이다.
저들 요선을 따르는 이들 중에서,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이미 존재한다면.
장천군처럼 이혼대법으로 혼백을 옮기거나… 애초에 인간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천기의 흩어짐으로 저들이 강성해지는 것!
사람을 살리고, 죽었어야 할 사람이 더 많이 살아남아 미래를 노래한다.
그 반동이 이거란 말인가?
“후후후후. 천기가 흩어질수록…… 저희는 더 자유로워집니다. 아아. 이거 참. 오랜만에 격이 맞는 자와의 대화를 하느라 즐거운 나머지 말이 많아졌군요. 실수했어요. 이러면 곤란한데 말이죠.”
그는 그렇게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자아. 돌아가시지요 반선의 씨앗. 이대로 제국으로 되돌아가 당신이 하던 일을 하세요. 저는 당신을 싫어하지 않아요.”
진심인가?
진천희의 의심에도 그는 흥얼거리듯 말을 이어나갔다.
“다른 동료들은 당신을 싫어하거나, 혹은 혈선께서 명하신 대로 끌고 와 제물로 쓰려고 합니다만.”
“…….”
그는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홀로 흥얼거린다.
“저는 다르게 생각하거든요. 당신은 그곳에 있는 게 좋습니다. 그곳에서, 사람을 살리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노력하시는 겁니다♪”
진천희는 그의 말을 듣고 한 가지 가설을 생각해 냈다.
이윽고, 가설은 미생이 되어 바둑판에 놓인다.
거기까지 고작해야 0.1초도 안 되는 시간.
“우역. 당신들의 짓이었군요?”
“이런이런~ 아닙니다. 아니에요. 우역은 저희가 일으킨 일이 아니랍니다. 자연 발생한 것이거든요.”
‘역시 그렇군.’
혈선교는 우역 같은 병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은 없다.
‘저주가 아니라 그냥 질병일 가능성이 삼 할은 더 올랐다.’
진천희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놈이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주 좋은 기회이긴 하죠. 덕분에 저희도 다양하게 일을 벌이고 있거든요. 그러니 돌아가 주시지 않겠습니까? 당신에게도 나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나트론의 수출도 아주 원활히 진행해 드리죠.”
“개소리는 끝났습니까?”
진천희가 용천혈로 기운을 흘려보낸다.
그리고 폭음과 함께 폭풍처럼 앞으로 나아갔다.
현극태보(玄極太歩)
극쾌일선(極快一先)–!!
신공절학의 보법이 의원의 몸을 번개로 만들어 주었다.
동시에 강기가 서린 검이 불쑥 찔러 들어간다.
쾅!
순식간에 회색의 모래가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검을 막아낸다.
심지어 모래는 둥근 구체가 되어 전방위를 막아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움직이기 시작하는 회색의 모래.
촤악!
마치 말미잘의 촉수처럼 뻗어오는 수십 개의 모래 줄기에 진천희는 허공에서 몸을 뒤집으며 검에 의념을 더욱더 집중했다.
일격에 모래와 함께 상대를 갈라 버리리라!
태을단선검 심무절기.
태을단선–!!
모든 것을 가르는 심무절기가 그대로 모래를 반으로 토막 낸다.
촤악!
그러나.
그 안에는 백천군이 보이지 않았다.
또한, 반으로 갈라진 모래들이 다시금 좌우에서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여 진천희를 옥죄려 했다.
콰릉!
그때 뒤쪽에서부터 강력한 뇌전이 날아와 모래들을 두드렸다.
뇌진이 깨어나 공격을 가한 것!
뇌진이 만들어낸 작은 틈에 황구가 기다렸다는 듯 연계했다.
“이런이런. 두 영물 때문에 조금 귀찮군요.”
그리고 실내의 반대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넓고 호화스러운 객실의 한쪽에 그가 서 있었다.
“그건…… 뭐죠?”
“회령사(灰靈沙)라는 주술이지요. 영이 깃든 잿빛의 모래랍니다. 영이 깃든 모래는 여러모로 쓸모가 많거든요.”
그 순간, 진천희의 검이 모래 더미를 베어냈다.
서컹!
고작 일격에 마치 두부를 자르듯 잘려나갔다.
“확실히 소문대로 강하군요. 이렇게까지 미움받을 줄도 몰랐고요. 이것 참, 손님이 호의를 가지고 왔는데, 너무 야박하셔서 마음이 아프네요♪”
“밤손님도 손님이라면 손님이지요.”
“후후후, 한마디도 안 지시는군요.”
촤아아악!
모래가 점점 불어났다. 불어난 모래가 그를 휘감으며 회전한다.
이것은 일전 장천군과 싸울 적에 본 홍사진의 모래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러면 왕국 안에서 뵙겠습니다.”
이윽고 모래가 창문 밖으로 전부 날아가 사라졌다.
삐익! 하는 호각 소리와 함께 병사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하기사 귀한 손님의 방에서 폭발 소리가 났으니 병사가 안 달려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진천희는 그런 병사들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푸른 보름달을 보면서 방금 사라진 적.
백천군에 대해서 생각할 뿐이었다.
* * *
이런 일이 으레 그렇듯이.
사옥시의 병졸들이 뒤늦게 달려왔다.
진천희는 대략적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참된 시민은 이런 건 숨기지 말고 퍼뜩 알려야 하는 법이다.
그러면 이제 병졸들이 알아서…….
“그건 우리가 해결하기에는 너무 큰 사안 같구려. 금강 장군님을 부르겠소.”
중원어로 번역하면 대략 이런 말을 하며 금강 장군을 불렀다.
진천희는 그렇게 그와 독대를 했다.
“혈선교에 대해 혹시 아시는 바가 있습니까?”
“음, 솔직히 말하면 잘 모르오. 중원에서 들은 이야기가 조금 있는 수준이라 할 수 있겠소. 하지만 혈불교라는 게 현재 담진 왕국 내부에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데 그걸 의심하고 있소.”
‘혈불교? 글자 하나만 다른데? 혈선교 짝퉁인가?’
금강이 말을 이어나갔다.
“아직 사교로 지정된 것은 아니지만, 요새 교세가 커지고 여러모로 껄끄러워지는 중이오. 우역으로 식량난인 곳에 나타나 사람들에게 식량을 나누어 주며 교세가 확장되고 있소.”
어떤 종교든 빈자를 먹고 자란다.
이 세상에는 돈 많은 자들만 믿는 종교 같은 건 없다.
있다면 그건 종교라기보다는 음모론에 자주 등장하는 비밀결사에 가깝겠지.
사이비도 마찬가지.
제아무리 수상쩍은 종교라고 하더라도, 내일 살아갈 한 끼를 주면 없던 신앙도 생기는 법.
“우리야 최선을 다해 지키겠으나, 삼엄한 경비를 뚫고 들어올 정도면 보통 놈이 아니오. 주의하시오.”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좀 생각을 해봐야겠군요.”
그 후, 한동안 진천희가 맹인처럼 눈을 감고 지팡이로 앞을 더듬어 가는 것을 목격한 자들이 늘었다.
‘조심하라고 하니 오히려 눈을 감고 다닌다고?’
중원에 그런 무학이 있던가?
‘모르겠다. 오히려 눈을 맑게 해서 시력을 증강시키는 무공이면 모를까.’
기인은 기인이었다.
* * *
며칠 후.
진천희와 군대는 담진 왕국 안쪽으로 출발했다.
위에서 붙여준 길잡이도 두 명이나 같이 가기로 했다. 그렇게 한참 이동을 하다가 두 번째 오아시스 도시에 도착했다.
‘음, 여기는 금강 같은 자가 마중 나오지는 않는군.’
대신 군관이 나타나서 도시 외부에 주둔지를 만들라고 명하고는 보급품은 이미 준비했다며 던져 주고 갔다.
‘금강이 이상하게 살가운 거였구나.’
하긴 화 제국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들고 온다고 했었나.
완농이나 북해빙궁, 오독문 때도 그랬고 외교적으로 평판이 좋은 놈들은 아닌 것 같다.
비장군이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대화 제국 사신에게 이런 대접이라니 사신께서 속이 문드러지셨겠군. 역시나 두 주먹을 쥐시고 분노에 떨고 계셔.’
같은 시간 진천희는 생각했다.
‘이, 이놈들! 감히 산양유를 주다니! 그렇지 않아도 스튜가 당겼는데 어떻게 알고!’
보급품에는 중원에서 구할 수 없는 식재료들이 잔뜩 들어 있어 매우 흡족했다.
‘요리사의 영혼이 활활 불타는구나!’
허나, 동시에 드는 생각.
‘화 제국 놈들 이거 다 인과응보지. 내 이럴 줄 알았다.’
진천희에게는 애국심이 없었다.
애초에 이놈은 대한민국인이지 화 제국민이 아니었고.
선황이 싸지른 똥 크기를 아주 자알 알고 있었다.
‘하와와와, 인생은 주는 대로 받는 것이에요. 내가 세외인이어도 화 제국은 밥맛없다는 것이에요.’
골드&실버 왕야가 들었으면 기함했을 생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면서 룰루랄라 산양 스튜를 끓일 준비를 했다.
진천희가 순양에게 말했다.
“순 장군은 여기서부터 천천히 왕도로 가주세요.”
“무슨 일이십니까?”
역시 외교적인 불쾌함을 표현하고자 그런 것일까, 생각하는데 진천희의 대답은 정반대였다.
“혈선교. 아시지요?”
“사교도들이 아닙니까? 역적으로 토벌 명령이 내려와 있는 자들로 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우역에 그들이 끼어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백천군(白天君)과 했던 대화를 떠올리며 말했다.
“음! 혈선교라.”
순양은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장군과 저희가 이 일에 크게 끼어들어 어떻게 할 수는 없는 상태죠. 여기는 타국이니까요.”
“예. 내정 간섭의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물론 담진 왕국은 강대국은 아니니 본 제국의 행사에 반발할 수 없겠습니다만……. 원한은 남을 테지요. 게다가 저희가 간섭한다 해서 제대로 처리가 될지도 알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역시 순양도 화 제국 사람답게 오만하긴 마찬가지.
하지만 이 상황에서 굳이 지적할 생각은 없다.
“그렇죠. 그래서 여기서부터 따로 움직이죠.”
“따로…… 말씀이십니까?”
“예. 최대한 느리게 왕궁으로 향해 주세요. 저는 혼자서 움직이며 알아보겠습니다.”
“허나 진 태수님의 안전은……?”
“저는 강호에서도 천하 십 대 고수로 꼽히는 몸입니다. 안전은 신경 쓰지 마세요. 게다가 두 영물도 함께할 거니까요.”
순양은 살짝 당황했다.
“이런 호위를 거절하는 분은 진 태수가 처음입니다.”
“물론 삼생에 남는 영광이긴 합니다만…….”
진천희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안대로 눈을 가린 상태로 살고 있는 진천희를 보고 있으면 기이하다는 말로 부족할 지경.
그럼에도 보통 사람보다 더 넓은 곳을 감지하고, 행동해 온 것을 순양은 알고 있었다.
“음! 알겠습니다. 황상께서 진 태수님의 명을 따르라 하셨으니…….”
“짐들도 부탁드릴게요. 의료품들이니 각별히 주의 부탁드립니다.”
“예. 맡겨 주십시오.”
그렇게 진천희는 마지막 스튜를 끓였다.
그저 보지도 않고 감각만으로 끓여내는 것이 신기라고 봐도 좋을 지경이었다.
‘진 태수님은 대체 경지를 짐작하기 어렵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