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25
제 725화
주술사는 그렇게 처치를 하고, 더는 관여치 말라고 하고 자리를 떴다.
당연했다. 동네 길고양이도 자기 영역이 철저할진대 사람이라고 다르겠나.
진천희가 그를 따라 밖으로 나가니, 주술사는 사람들에게 소의 시체를 가져다 불태우라고 지시하고 있었다.
‘장작은 충분한가 보군.’
강 옆에 자리한 마을이다 보니 그래도 좀 숲이 있다.
어찌 보면 운이 좋은 셈이라 할 수 있었다.
지역에 따라서는 장작이 귀해서 시체를 땅에 묻어서 처리해야 하는 수도 있으니까.
사람들은 소의 시체들을 꺼낸다.
허름한 옷으로 갈아입는 것을 보니 후에 같이 태울 모양이었다.
세균이 악령으로 탈바꿈한 순간이었다.
‘괜찮네.’
의원 입장에서 이런 민간 신앙은 환영이다.
‘그나저나 방금 그 주술은 배워 보고 싶은데 어떻게 안 되려나?’
의술에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진천희는 그에게 다가가 거래를 제안했다.
자신이 아는 주술을 가르쳐주는 대신에, 당신이 아는 주술을 가르쳐 달라고.
“행색을 보고 짐작이야 했다만, 네 녀석은 이 지역 술사가 아니로군.”
“그렇습니다만.”
“그래서 그런 금기를 함부로 입에 담는 건가. 주술이란 본디 각 주문마다 사람을 가린다는 것을 모르는가?”
“아, 잘 몰랐습니다. 저는 아무거나 배워서.”
그 말에 주술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 햇병아리가 나를 무시하나?’
신의 피를 이은 존재도 아닐진대 아무 주술이나 익히는 대로 들어간다는 게 말이 되나?
‘그런 놈이 왜 맹인 악사나 하고 있지?’
그런 존재라면 어느 왕이든 발 벗고 달려와서 왕실 주술사가 되어 달라 애걸할 터였다.
모든 주술을 제약 없이 익힐 수 있다니?
건국신화에나 나올 법한 존재일뿐더러, 건국신화는 과장되었다고는 해도 적어도 황금을 산처럼 쌓아놓고 살 수 있다.
‘거짓말이 심하군. 뭐, 맹인이라 눈에 뵈는 게 없나 보군.’
젊은 놈의 치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가르쳐주마. 네가 배울 수 있다면 말이지. 다만! 네 주술을 나에게 가르쳐줄 필요는 없다.”
“음?”
맹인 악사의 손끝이 살짝 꿈틀거렸다.
“대신 네 옆의 두 짐승의 깃털과 꼬리털을 조금 다오.”
“네?”
“나를 장님으로 아나? 딱 봐도 범상치 않은 것이 분명 사막의 영기를 흡수한 귀한 놈들 같은데. 저런 존재의 털과 깃털은 주술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영물을 말하는 건가?
중원의 영물과는 다른 개념인 모양이지만 여기도 그런 생물이 있는 모양이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몰라도 분수에도 안 맞는 걸 데리고 다니는군. 강의 신이 도운 건가?”
여기서는 기연을 강의 신이 돕는다고 표현한다.
자신이 풍족하게 사는 것도 모두의 강의 은총이라 믿기 때문이었다.
“네. 그런 것 같습니다. 과분한 운이지요. 아무튼 일단 물어볼게요.”
진천희는 생각했다.
‘역시 저 주술사는 실력이 좋군. 변신한 황구와 뇌진을 알아본다니.’
이렇게 된 이상 저 주술을 반드시 배우고 싶었다.
진천희는 황구와 뇌진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깃털과 꼬리털을 조금 가져가도 될지 물었다.
삐익!
컹컹컹!
두 영물 모두 흔쾌히 승낙했다.
“둘 모두 허락했네요.”
“좋다. 그러면 내일 내 거처로 와라. 나는 이 마을 밖 숲에서 살고 있으니까.”
그 말에 진천희가 미소 지었다.
그 미소를 본 주술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못 익힌다고 날 원망하지 말거라.”
“내일 뵙죠.”
그렇게만 답한다. 그 모습에 주술사는 왜인지 짜증이 났다.
‘제까짓 게 무슨 수로 모든 주술을 익힐 수 있단 말인가.’
특히나 그가 가지고 있는 건 특별한 재능을 가진 자만이 익힐 수 있는 고등 주술.
그의 자랑이었다.
배운다고 되는 게 아닌 것.
‘덕분에 귀한 물건을 얻게 되었군. 저 맹인 악사 놈에게는 미안하게 되었지만.’
* * *
여관에 돌아왔다.
여관 주인은 초조한 기색으로 진천희를 기다리고 있었고, 진천희는 이 동네 주술사가 이미 처리한 뒤라고 적당히 답을 했다.
“아이고, 잘됐네. 잘됐어!”
그는 부처님의 은덕에 감사하고 있었다.
불교인 모양이다.
진천희는 주술사가 좀 삐졌다는 이야기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그건 이제 나중에 겪을 저 사람의 이야기니까.
그리고 주술사가 꼬장꼬장해 보여도 이런 걸로 나쁜 짓을 할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으니까.
“식사를 주문하고 싶은데요.”
“으음, 가격을 싸게 해주고 싶지만……. 주술사가 이미 처리한 것도 있고, 요 근래 먹을 것 구하기가 쉽지가 않아 그건 좀 어려울 듯하오.”
원래라면 또 흔한 바가지인가 싶겠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우역의 여파구만, 이거.’
근방에 고기가 들어간 것은 다 올랐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소를 이용해 농사를 지어야 하다 보니 작물도 줄었다.
진천희가 답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연주값을 밥값에 포함하면 어떨까요?”
“아니, 고작 연주 조금 한다고 식사값을 깎아 달라는 말…….”
디리링-
그 순간, 돌 비파가 깊은 음색을 만들어냈다.
고작 현 몇 개를 튕겼을 뿐인데 소리는 파장이 되어 주변에 퍼져나가고 행인들이 일제히 가게를 바라보았다.
시선.
손님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의 시선들이 꽂히는 것을 객잔 주인은 느꼈다.
“주, 주술이오?”
“뭐어……. 비슷합니다.”
“그러면 한 곡만 들어 보고 결정해도 되겠소?”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리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서 음을 길게 연주했다.
므—–
그것은 음악이 아니었다.
대체 뭐 하는 짓이냐고 객잔 주인이 물어보려던 찰나, 행인이 주렴을 걷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소가 우는 소리군.”
“그렇지요.”
딩딩딩딩!
“개? 그것도 작은 개가 짓는 소리인가?”
“오, 맞추셨네요?”
다른 행인도 들어와서 묻는다.
그다음은 새가 지저귀는 소리, 그리고 매미가 우는 소리까지.
사람들이 제법 모이자 이제는 현을 잡는 손을 바꾼다.
둥-
곡조가 시작되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음률이 경쾌하게 이어졌다.
객잔은 신기한 노래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로 가득차기 시작했고, 진천희는 그런 사람들과 주거니, 받거니 대화하면서 연주를 해나갔다.
“……믿… 믿을 수가 없군. 대체 뭐하는 자이지?”
파리만 날리던 객잔에 기적이 일어났다.
* * *
‘크으, 이 고물가 상황에서 황구와 뇌진 밥까지 챙겼다.’
심지어 대추야자 간식도 받았다.
혀가 녹을 만큼 달디단 간식.
이걸 커피와 함께 마시니 그야말로 극락이었다.
‘이 동네 특산물이 바로 커피지.’
그동안 커피와 비슷한 탕약을 먹기는 했어도 진짜 커피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아메리카노를 홀짝이고도 싶었지만 이번에는 좀 다른 걸 해보고 싶다.
따가각-
빙한기로 순식간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어냈다.
‘한국에서 먹는 아메리카노 맛과는 조오금 다르지만.’
이 지역 커피는 깊이가 더 깊고 향이 진한 대신에 끝에서 신맛이 살짝 난다.
그런데 그게 또 대추야자 간식과 꼭 맞아서 계속 들어갔다.
‘내가 반드시 커피 무역 성공시키고 만다.’
치약에 커피까지 있다니 여기는 무슨 이세계인을 위한 파라다이스 뭐, 그런 건가?
“하루만 더 묵어 주면 안 되겠나! 내, 사례는 함세!”
컹!
삑!
고민이 되긴 한다.
황구와 뇌진이 이 대추야자에 맛들려버렸다.
중원에서는 절대 이만큼 단 과일은 못 만든다.
‘주술에 따라서는 더 오래 있을 거 같기도 하니.’
생각해 본다고 답하고는 침대에 누웠다.
평소처럼 이불을 꼬깃꼬깃하게 구겨서 안고 자고 있었는데, 문득 진천희의 눈이 살짝 떠졌다.
창백한 달빛 아래로 푸른빛이 선연했다.
이번에는 황구도 깨어났다.
황구는 다급히 뇌진을 핥아서 깨운다.
거대한 혓바닥이 뇌진의 깃털을 헝클어뜨리자 뇌진은 짜증스러운지 삑삑대며 깨어났다.
‘살기가 짙다.’
진천희는 빙정검을 꺼내려다가 대신 지팡이를 쥐고는 그대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탕!
마치 마술과도 같은 움직임으로 순식간에 지붕까지 올라간 진천희는 눈을 크게 뜨고는 먼 곳을 바라보았다.
밤.
허나, 기이할 정도로 달이 크고 밝은 밤.
먼 곳에서 석양이 종잇장만큼 남아있었다.
피부에 닿는 공기가 따끔거렸다. 흡사 바늘로 가득 차있는 듯한 대기 속에서 먼지구름이 보였다.
‘그렇군. 눈을 감은 시간 동안 더욱 기감이 예민해진 거구나.’
안력을 돋궈서 보니 그것은 말 탄 이들이었다. 평범한 행상인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문득 그들이 들고 있는 깃발을 확인했다.
혈풍사(血風沙)!
‘역시 안 죽고 잘 살아있었구나. 이놈들!’
장강에 수로채가 죽지 않듯, 마적 떼인 혈풍사도 살아있었다.
진천희는 즉시 내력을 담아 이곳 언어로 소리를 질렀다.
“마적 떼가 온다아아아아!”
사자후의 응용!
우렁우렁한 소리가 일제히 뻗어나가며 집집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그 놀라운 광경에 황구와 뇌진의 솜털이 곤두선다.
본능적으로 강함을 느꼈기 때문일까?
주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솟아오른 털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이윽고, 마을 사람들이 헐레벌떡 뛰어나왔다.
“마적? 마적이라고?”
“마적이 침입한다고 하오!”
놀랍게도 그들은 관군을 찾는 대신 장정들이 삼삼오오 무기를 꼬나 쥐었다.
‘이 지역은 양민들이 직접 싸우는 건가 보구나. 강한걸? 아니, 그러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인가?’
진 태수는 행정의 공백을 느낀다.
허나, 강호도 이런 곳은 많지 않았던가.
조금만 외진 곳에 들어가도 포졸 대신 마을 장정들이 칼을 꼬나 쥐고 산적과 목숨을 건 혈투를 벌여야 한다.
그게 싫다면 정파에 부탁할 돈이 있어야 하는 거고.
“황구야. 달리자.”
진천희는 지붕 뾰족한 꼭대기를 밟고는 그저 각력만으로 솟구쳤다.
퉁!
마치 별을 향해 쏜 화살처럼 청년의 모습이 호를 그리며 날아오르고, 또 날아오른다.
그런 청년의 뒤를 황구와 뇌진이 따라붙었다.
황구는 곧바로 축근공을 풀고 거대한 모습으로 돌아온다.
신분을 감추는 게 중요한 것은 알지만, 사람이 죽으면 주인이 슬퍼함을 알기 때문이었다.
“뇌진.”
진천희의 수신호에 따라 뇌진이 번개를 뭉친다.
전처럼 벼락을 내리꽂는 게 아니었다.
양쪽 날개 아래로 뇌구(雷球)가 형성이 되더니 그것을 흩뿌리듯 던졌다.
그 모습에 놀란 마적 떼들이 놀라서 눈을 부릅뜬다.
“대체 저게 무슨?!”
“번개! 번개가 공이 되었다!”
뇌구가 만들어낸 소리가 지평선을 때린다.
콰과과광!
과거와 비교되지 않을 만큼 거대한 파괴력!
‘우와, 뇌진 엄청 강해졌구나!’
깃털만 검게 변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이히히힝!
포식자의 등장에 말들이 일제히 앞발을 치켜들었다.
“빌어먹을! 저놈이 이상한 걸 썼다!”
“말들을 진정시켜!”
컹!
거대하게 변한 황구의 등에 진천희가 재빠르게 올라탔다. 그러고는 곧바로 등에 멘 돌 비파를 퉁긴다.
우르르릉-!
음공이 섞인 비파 소리에 제아무리 훈련받은 군마도 견디지 못하고 주인들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살려줘!”
“사, 사술이다! 혈불승! 혈불승께서는 어디 계신 거냐!”
혈풍사라 칭하는 마적들이 멈추어 섰다.
그 수가 수백이나 되나, 가공할 폭음에 십수 명이 나가떨어졌으니 놀랄 만도 하다.
다만 음공이라 칭하지 않고 사술이라고 하는 것을 보니, 이 동네에는 음공이 없나 싶었다.
혹은 무공의 개념이 화 제국과 다르거나.
‘혈불승? 혈불사의 승려인가 본데…….’
진천희가 그렇게 생각하며 비파에 손을 얹는다.
상대가 수백이라고 하지만, 과거 일천여 명이 넘는 무인들의 살육 불법 집회도 해산시켜본 적 있는 몸.
어찌 되었건 서로 내장 구경하는 것보다야 낫지 않나.
디디디딩!
경쾌하게 현을 뜯어 소리를 냈다.
내공이 서린 소리가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그런데.
딸랑. 딸랑. 딸랑.
마적들의 사이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싶더니 진언이 울려 퍼졌다. 그것이 음공과 충돌하며 그 힘을 약화시키는 듯했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히 스바하.”
그리고 이어지는 불교의 진언.
동시에.
소리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