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26
제 726화
공기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추었음을 진천희는 바로 알아챘다.
‘주술! 혈불승이라는 이는 불가의 술을 쓰는 자구나! 아니면…… 혈선교의 누군가일지도…….’
그렇게 생각한 순간. 멈추었던 혈풍사들이 돌격해 오기 시작했다.
뒤에 마을을 두고, 앞에는 혈풍사가 미친 듯이 달려든다.
여기서 비켜서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즉시 이자들이 마을을 덮치고 살육과 약탈을 자행하리라!
‘일단 막아야 해! 음공이 가장 좋지만……. 다음 단계로 간다.’
진천희가 비파를 등에 메고 양손을 마주하여 합장(合掌)을 한다.
그리고 의식을 집중하고, 진기를 도인하자 그의 왼팔에서 검은 안개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그것은 진천희의 의지에 따라 양 손바닥으로 모였다.
일찍이 남궁세가에서 가주를 중독시켜 움직이지 못했던 마비독이 그의 손에 서린 것이다.
‘내 두 번째 수. 너희는 어떻게 대응할 거지?’
진천희의 눈은 안대 아래에서 파랗게 빛난다.
동시에 양손이 벌어지며 독연이 일어나 전면으로 뻗어져 나갔다.
어마어마한 양의 흑색 안개가 혈풍사를 덮친다.
재앙과 죽음을 떠올리게 만드는 검은 구름!
피할 수도 없다.
혈풍사의 마적 떼들 역시 진천희가 있는 방향으로 말을 몰아오고 있었으니, 서로 빠르게 충돌하는 것은 당연!
하지만 그 결과는 무서운 것이었다.
“그아……아아악!”
“히이이잉!”
비명과 함께 몸 여기저기가 마비된다.
그것은 그들이 탄 말도 예외는 아니어서 전열이 붕괴하며 순식간에 수십의 인마(人馬)들이 마비로 움직이지 못한 채 땅을 뒹군다.
이대로라면 뒤따르던 이들도 충돌하며 대형 피해가 일어날 상황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혈풍사의 마적 떼가 좌우로 갈라지며 옆으로 내달리며 독연을 피해냈다. 그러고는 뒤로 돌아 달려간다.
놀라운 기마술!
독연이 사라지는 사이.
그들은 질서정연하게 멀리에 가서 도열해 섰다.
그동안 머릿속 작은 진천희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속삭였다.
‘제법이야.’
‘하나하나가 전부 고도로 훈련된 기마병들. 단순한 도적떼가 아니야.’
‘마구(馬具-말을 타거나 부리기 위해서 사용되는 도구, 기구들. 등자나 말고삐가 이에 속함)들도 전부 오래 사용되고 잘 관리된 흔적이 있어.’
‘말에 올라탄 기수들의 행동은 말과 거의 일체화되어 있고, 숙신족의 정예들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아.’
현원전단신공.
그 최고의 오의인 천하경영이 세계를 굽어본다.
넓게 퍼져 나간 기가, 일대의 정보를 전부 진천희에게 가져다준다.
‘공기는 건조. 비는 올 것 같지 않아. 바람도 잘 불지 않는 상태. 게다가 저들의 말은 사막에서도 잘 달릴 수 있는 품종. 말발굽 옆에 털이 자라나 있어서 그게 가능한 듯. 전원 월도(月刀)를 쓰고, 활은 없다. 그리고 저 중심부에 있는 말을 탄 승려. 저자가 혈불승.’
정보가 쌓인다. 지식이 축적된다.
상대를 보고, 그 모든 것을 재빠르게 알아가고 있다.
그때다.
도열한 도적들 앞으로 한 명의 도적이 나섰다.
기감이, 시선이, 감각이 가르쳐 준다.
작은 진천희들은 우르르 모여 속삭이기 시작했다.
‘절대 고수다.’
‘화경에 버금가는 자야.’
‘다두왕국에 머물 적에 혈풍사가 사막의 악몽이라고 불린다더니. 녹림십팔채급의 단체라고 봐도 무방하겠구나.’
‘게다가 아까 보니 저 도적들 하나하나가 적어도 절정 이상의 수준이었어.’
‘다두왕국 때 만났던 혈풍사들과는 질적으로 달라. 이쪽이 주력(主力)인 것 같은데…….’
눈 한 번 깜빡일 정도의 찰나의 시간.
현원전단신공이 모든 것을 파악하고 귓가에 속삭인다.
“우리는 혈풍사. 이 사막의 주인이다! 어디에서 온 자인가?”
진천희는 황구를 탄 채로 앞으로 나섰다. 뇌진은 여전히 하늘을 날며 지상을 굽어본다.
“한낱 지나가는 유랑 악사입니다. 그러는 당신은 혈풍사에서 직위가 어떻게 되십니까?”
“본좌는 혈풍사의 삼단주인 루오다.”
그는 그리 말하며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아까의 주술은 훌륭하더군. 어딘가에 속한 자인 줄 알았더니, 그저 유랑 악사였단 말이냐. 그렇다면 내 너에게 제안하마. 순순히 투항한다면 노예로 삼되, 저항한다면 죽여서 제물로 삼겠다. 어느 쪽이냐? 선택해라!”
그저 단순한 통성명이 아니었다.
진천희가 어떤 세력인지 탐색하려는 의도! 그러나 진천희는 당황하지 않았다.
“마을을 약탈하러 온 거라면 돌아가시죠.”
진천희의 말투와 행색을 보아하니 어딘가의 왕족은 아닌 듯하여, 마적들은 내심 안심했다.
‘숨기는 게 있는 놈 같아 보이지만 죽여도 뒤탈은 없겠군.’
“흥! 감히 맹인 악사 따위가 우리를 가로막는단 말이냐! 그렇다면 죽어서 제물이 될 준비를 해라!”
루오는 그리 말하고는 월도를 꺼내어 하늘을 향했다.
동시에 진천희는 살갗으로 느낄 수 있었다.
혈풍사 전원이 월도를 하늘을 향해 꺼내들고 팔을 휘두르는 것을.
동시에.
그들의 몸 주변에 바람이 일어나 회전하기 시작하는 것을.
콰아아아!
도적떼를 중심으로 모래바람이 일어나 불기 시작했다.
그것은 제법 세찬 바람의 소용돌이였다.
용권풍처럼 무엇이든 빨아들여 날려버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모래가 휘날리며 주변이 제대로 보이지 않게 만들기는 충분했다.
“혈풍 안에서 우리는 무적이 될지니! 쳐라!”
루오가 모래폭풍 안쪽에서 소리 질렀다.
모래폭풍 소리에 그 목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을 지경!
진천희는 그제야 이들이 왜 혈풍사인지 알 수 있었다.
주술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강호의 무공도 아니었다.
이국의 무술!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그것에 일체화되어 덤비는 집단전투술이다!
굉장하다!
진천희는 그렇게 생각했다.
‘대단해! 이러니 사막의 악몽이라고 불리는 거구나……. 그렇다고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세림교국의 것과 유사한 느낌의 무술을 쓰며 혈풍사가 달려들고 있다.
그리고 진천희가 눈을 더욱 빛냈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안 통해.’
안대 아래의 눈에서 뻗어져 나오는 청광이 점점 진해진다.
이윽고 천 전체가 청광으로 물들어 빛난다.
동시에 황구가 내달렸다.
모래바람 사이를 뚫고, 두 명의 혈풍사가 갑자기 나타나 월도를 휘두른다.
그러나 진천희는 조금도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좌우에서 달려들며 횡으로 휘둘러진 월도. 하지만 진천희는 몹시 가볍게 그 두 개의 월도 사이로 몸을 비틀어 넣으며 공격을 피해냈다.
스릉!
앞머리가 조금 잘려나갔다.
콧등 위로 스쳐 지나가는 칼날이 섬뜩했다.
허나 진천희는 멈추지 않았다. 맹인 악사의 두 손은 번개처럼 좌우를 때렸다.
‘이게 무슨. 도망치기는커녕 역으로 이용해……?!’
혈풍사 놈들이 순간 경악했다.
퍼퍽!
두 명의 혈풍사가 나가떨어지며 모래바람 사이로 사라진다.
지극히 짧은 찰나의 순간이었고, 황구는 더욱 빠르게 앞으로 내달린다.
‘보인다.’
그 모든 것은 진천희가 계획한 것.
모래폭풍이 생긴 것은 예상치 못했지만, 그럼에도 상관은 없었다.
이미 이 근방의 모든 것은 진천희의 인지(認知) 안에 있다. 그리고, 그것들을 예측하고 있다.
황구가 앞발을 들어 덤벼오는 혈풍사 하나를 후려쳐 쓰러트린다.
진천희의 두 손이 부드럽게 움직이며 손가락 한마디만 한 탄지공의 기탄을 쏟아낸다.
모래바람이 기탄의 위력을 감소시키지만, 어지러운 이 환경에서도 순식간에 주변으로 다가온 자들의 혈도를 점하며 쓰러트렸다.
일점돌파.
삼국시대 여포가 이러했을까?
황구를 타고 돌진하며 마주 달려오는 혈풍사의 무리를 반으로 가르며 뚫고 나갔다.
그 궤적에 있는 혈풍사 수십이 다시금 전투불능이 되어 쓰러진다.
모래바람의 흐름조차도 감지하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혈풍사 무리들의 움직임까지 모두 ‘인지’할 수 있기에 가능한 행동!
모래바람은 더는 혈풍사의 무기가 아닌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현원전단신공을 대성한 자가 펼치는 천하경영의 경지!
펑!
폭음과 함께 이윽고 진천희는 그들의 무리를 완전히 돌파하여 뛰쳐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황구가 하늘로 크게 뛰어 오르며 반전하여 섰다.
혈풍사의 등 뒤를 잡은 셈.
“괴… 괴물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경악과 공포가 혈풍사들 사이에서 번져 나간다.
그사이 진천희가 외쳤다.
“달려, 황구야!”
컹컹!
황구가 내달린다.
이제 뒤를 잡힌 건 혈풍사다!
“저 개새끼를 죽엿!”
빗발치는 공격 속에서도 황구는 느려지는 법이 없었다.
컹!
제아무리 두꺼운 곡도와 채찍이라고 하더라도 황구의 거죽을 뚫지 못할 뿐.
크르르릉!
개는 달린다.
마치 철갑을 두른 군용 마차와도 같았다.
공격을 피하는 거라면 차라리 나았으리라. 정면으로 들이받으며 달려오니 그들의 당황이 ‘보인다.’
저들은 황구처럼 단번에 반전할 수 없으니, 더더욱 두려워하는 것이 보였다.
“망할! 저 황소만 한 개가!”
그때.
쉬리리릭!
바닥의 모래와 흙이 뒤섞이며 황구의 발을 잡아챘다.
‘이건…….’
진천희의 눈이 저 모래바람 안의 혈불승을 본다.
피처럼 붉은 혈색의 가사를 입은 깡마른 승려가 금강저와 종을 합한 것 같은 형태의 종을 들어 흔들고 진언을 외우는 게 보인다.
금강종이라고 부르는 이 지역의 불교 종파에서 사용하는 종이었다.
‘백천군이 쓰던 회령사와 비슷해!’
황구가 옴짝달싹하지 못하자 놈들이 기다렸다는 듯 비웃는다.
“크하하핫! 맛이 어떠냐!”
그런데 황구가 ‘컹!’ 하고 힘을 쓰자, 모래 족쇄가 그대로 끊어진 것.
“세상에, 무슨 놈의 개가 이렇게……!”
괜히 환골탈태한 게 아니었다.
제아무리 마적 떼라고 하더라도 황구를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그 잠깐의 사이. 혈풍사들은 사방으로 흩어지며 도주하기 시작한다.
“후…….”
진천희는 한숨을 내쉬며 멈추어 섰다.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으니, 황구가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산지사방으로 흩어지는 놈들을 모두 잡는 건 무리였다.
‘어차피 새외, 전의를 잃은 놈들까지 잡아 족칠 생각은 없으니. 그런데 이놈들 진짜 의리가 없네.’
혈풍사 무리들은 동료를 내버려 둔 채 저 멀리로 사라져 간다.
“혈풍사라… 혹시 혈선교에서 만들어낸 놈들인가. 아니면…….”
저 멀리로 사라져 가는 모래바람의 덩어리를 보며 진천희는 생각에 잠겼다.
컹, 컹컹!
그 와중에 황구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튀는 놈들을 무려 여덟 명이나 붙잡아 질질 끌고 왔다.
“잘했어. 황구야.”
헥헥헥헥!
개는 바보다.
이렇게 강하면서도, 이렇게 무시무시하면서도.
방금 마을 사람들 모두를 구해냈으면서도.
그저 잘했다는 한 마디, 쓰다듬 한 번에 세상 다 가진 표정을 짓곤 하니까.
진천희가 육포를 뜯어주자 기다렸다는 듯 텁텁 입에 넣었다.
즐거운 사냥놀이.
이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개였다.
* * *
“대체 우리가 뭘 본 거요?”
마을 주민들은 눈앞에 펼쳐진 신화적인 전투에 넋을 놓고 말았다.
번개와 늑대. 그리고 그 위에 올라타 검은 구름을 만들어내는 모습은 신화 속에 나오는 천인(天人)과도 같았으니까.
특히나 이 지역은 화 제국과 멀리 떨어진 곳이다 보니, 양민들이 무공을 볼 기회가 거의 없다.
이 지역 전사들이 사용하는 무술은 따로 있다 보니 진천희의 모습은 더욱 놀랍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저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이윽고 진천희가 터벅터벅 돌아오며 생각했다.
‘음, 좀 과했나.’
옛날이었으면 모를까, 깨달음을 얻은 상태에서 저놈들을 굳이 그렇게 진지하게 상대해줄 필요가 없었는데 괜히 힘이 들어간 건 아닐까.
머릿속 작은 진천희들이 청문회를 하기 시작했다.
‘방금 그 무공, 굳이 쓸 필요가 있던 겁니까!’
‘검로에 군더더기가 있어 보였는데 대비책은 있으십니까?’
‘대답해 보십시오! 더 나은 수는 없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