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27
제 727화
요리나 무언가를 제작할 때는 이런 청문회가 열리지 않는다.
무공과 사람 목숨이 걸릴 때는 꼭 이렇게 자아비판을 하고 있다.
아니, 무공도 결국 사람 목숨이 걸린 일이니 합쳐서 사람 목숨.
정신 건강에는 별로 안 좋다.
반면 이 지역 사람들의 반응은 달랐다.
“영웅이다! 부처께서 영웅을 보내셨다!”
마을 주민 중 하나가 불현듯 그리 소리 질렀다. 그리고 모두 뛰쳐나가며 소리쳤다.
“영웅이 오셨다!”
“와아아아아!”
심지어 어린아이들까지 일어나서 환호하기 시작했다.
‘그래. 오늘 사람을 구했지. 그러면 된 거야.’
아무러면 어떤가.
죽은 양민이 없으니 그걸로 감사하면 될 일 아닌가.
“쓰러진 마적들을 묶어주십시오. 생명에 지장은 없으니 곧 깨어날 겁니다.”
그 말에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나왔다.
“오오! 영웅께서 이 마적들을 제물로 사용하시려는 거군요!”
“영웅님의 말에 따르겠습니다!”
제물? 제무울?
진천희는 놀라서 크게 말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혈풍사의 본진이 어디에 있는지 추궁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범죄자이니 국가에 넘길 겁니다.”
“아! 노예로 판매하시려는 거군요. 알겠습니다.”
“제물로 쓰지 않는다고 한다. 영웅님께서 친히 노예로 부리고자 하신다!”
“와아아아아!”
환한 미소와 밝은 목소리.
허나, 왜일까.
웃고 있는 양민들에게서는 기묘한 광기가 느껴졌다.
사람들은 말을 한곳으로 모으고 기절한 마적들을 포박했다.
‘아니, 노예로 삼는 게 아니라 관아로 넘기려고 하는데……?’
그래도 여기 사람들 언어를 익히며 제법 문화를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그때 주술사가 어느 사이 다가와 있었다.
“네 녀석. 새외 놈이었군?”
“새외요?”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니지. 내 거처로 찾아와라.”
그리 말하고는 주술사는 유유히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렇게 사라지는 모습을 놀랍게도 진천희는 느낄 수가 없었다.
‘역시 제법 뛰어난 분이시구나! 맛있는 걸 드려야겠다.’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
* * *
진천희는 뒤처리를 사람들에게 맡기고 숲 안쪽으로 향했다.
얼마나 들어갔을까.
고깔 모양의 나뭇가지와 나뭇잎으로 만든 움막 같은 게 모습을 드러냈다.
움막 안쪽에서는 불을 피우는지, 연기 냄새와 희미한 탁탁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것만으로도 진천희는 곧바로 그를 찾아낼 수 있었다.
‘가죽 냄새. 문 대신 가죽 천막을 친 모양이구나.’
그러고는 손을 뻗어 자연스럽게 가죽 주렴 사이로 들어온다.
“대체 네놈은 장님이 맞나?”
“아, 사실은 장님은 위장이고 그냥 눈을 감고 다니는 것뿐입니다.”
“눈을 감고 산길을 제집처럼 돌아다닌다고? 내 참. 중원인들은 다 이러나?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주술사는 투덜투덜거리며 진천희를 맞이했다.
“아, 개와 새는 밖에 두도록 해. 여기는 내 영역이라 너무 강한 것들이 오면 망가지거든.”
‘예전 완농에 갔을 때는 황구와 뇌진을 보고 그런 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는데 확실히 얘들이 강해지긴 했구나.’
이제는 주술사의 영역 안에 들어오지 못할 만큼 강해진 영물들이었다.
‘하긴, 방금 전투만 해도 엄청났으니까.’
진천희는 두 녀석에게 잠깐 밖에 있으라고 하고는 안으로 들어왔다.
주술사는 모닥불에 나뭇가지를 집어넣으며 물었다.
“새외의 인간이 여기는 무슨 일이지?”
“새외라뇨? 여기가 새외…….”
“화 제국을 중심으로 하면 여기가 새외겠지. 하지만, 우리를 중심으로 하면 너희가 새외다.”
그 말에 진천희는 퍼뜩 깨달았다.
“아……. 그렇네요. 맞는 말씀입니다. 제가 제국인인 것은 어찌 아셨습니까?”
“네놈은 어째 세상만물을 꿰뚫어보는 듯하면서도 이런 걸 보면 진짜 바보천치 같아 보이기도 하는구나.”
“아하하하.”
주술사는 이 맹인 악사.
아니, 맹인 악사로 위장한 새외 놈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방금 전까지 혼자서 혈풍사 놈을 상대해 놓고서는 여기 와서는 불 쬐는 모양도 어설프고.”
참 괴상한 사내였다.
눈앞에 있는 새외 놈은.
“우선 붕대 아래로 보이는 턱 선이며 이 지역 사람 같지가 않았다. 피부색도 북방 놈들 것에 가깝고. 물론 이것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렵지. 여기는 수많은 이민족들이 오는 곳이니까.”
“그렇군요.”
“거기다 그 영흔도 이 땅의 것이 아니었다.”
“영흔이요?”
영혼(靈魂)이 아니라 영흔(靈痕). 고작 가운데 ㅗ자 대신 ㅡ가 붙은 것뿐이지만 그 의미는 사뭇 달랐다.
생소한 개념에 놀라서 입이 떡 벌어졌다.
“아니, 주술을 하면서 영흔도 몰라?”
“배… 배운 적 없는데요?”
그 말에 어이가 없어 주술사가 되물었다.
“네놈, 주술을 쓸 수 있는 거 맞느냐?”
“마, 맞습니다! 보여드릴까요?”
진천희는 다급하게 자신의 손목에 상처를 내어 보여주고는 주술을 이용해 회복시켰다.
원래라면 이렇게 하기보다는 자연 치유를 우선했겠지만 신용이 달린 문제이니 급하게 했다.
그걸 보고 나서야 주술사가 어이가 없는 듯 외쳤다.
“아니, 염병할! 제법 상급 주술이잖아!”
“욕까지 하실 건 뭡니까.”
“그런 놈이 영흔을 모른다고?”
주술사는 어이가 없어 침을 튀기며 물었다.
“네놈이 그래도 선대 주술사에게 기본적인 건 배웠을 거 아니냐!”
“이것만 배웠습니다. 아, 그리고 소독법 비슷한 거랑…….”
“그거 두 개를 그냥 가르쳐준다고 배운다고?”
“네? 네. 가르쳐주셨으니까요.”
“…….”
“예습과 복습, 요점을 모두 필기하였고, 반복 훈련 및 실전으로 주술을 연마했습니다!”
“…….”
왜일까. 주술사에게서 무언가 억울한 기색이 풍겨 나왔다.
그것은 자신의 삶 그 자체에 대한 회한이었다. 그는 잠시 스스로의 머리를 잡아 뜯으며 고뇌했다.
“……세상 너무 불공평하구나.”
그렇게 시간이 한참 지난 후, 그가 말했다.
“아무튼 네 녀석의 피를 한 방울 내어 다오.”
그는 뼈로 만든 그릇을 내밀었다. 어떤 짐승의 두개골이었는데 알기가 어려웠다.
“저주 같은 건 아니죠?”
“내가 미쳤냐? 이 자리에서 내 머리통 정도는 손날로 썰어버릴 수 있는 놈 앞에서 저주를 한다고?”
주술사에게서는 서러움까지 느껴졌다.
진천희는 피를 한 방울 내어주었다.
“여기 있습니다.”
투둑-
검붉은 피가 흡사 석류 알처럼 대구르르 흘러 내려갔다.
그는 핏방울에 대고 한참 동안 진언을 외웠다. 그러자 피가 스스로 끓어오르더니 증기가 되어 그의 코와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역시……. 네 녀석 신혈이로구나.”
그 말에 진천희의 눈이 살짝 커졌다.
‘우와아, 이걸 알아내네.’
진천희가 신혈이라는 것을 알아내자, 그는 왜인지 표정이 밝아졌다.
“신혈이 뭔가 대단한 건가요?”
“네놈이 그 예습인가 복습인가만으로 상급 주술을 쓸 수 있는 것을 보면 모르겠느냐. 그뿐만이 아니다. 본래라면 양립할 수 없는 술을 동시에 사용 가능하다는 점에서 대단하지. 제물로도 으뜸이고.”
제물.
명치를 깊게 누르는 단어.
진천희는 일부러 아무렇지도 않은 척 여상하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마을 주민들이 제물 운운하던데, 혹시 당신이 인신 공양이라도 하시나요?”
“나의 술은 인신 공양의 법을 모른다.”
다행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왜 묻는 것이냐?”
“인신 공양을 하는 자들이라면 저와 길이 다르니까요.”
길이 다르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말의 의미는 왜인지 냉정하다 못해 섬뜩하기까지 했다.
주술사는 그 모습에 피식 웃고 말았다.
“너희 화 제국의 생각을 우리에게 강요하지 마라. 이곳은 척박한 땅. 너희 화 제국에서 말하던 약육강식의 삶이 바로 우리의 삶이라 할 수 있지. 물론 그쪽도 마찬가지 아닌가?”
강호에서의 양민의 삶.
무인들은 양민의 고혈을 빨아가고, 양민들은 그 밑에서 신음한다.
강호에 피는 멎을 날이 없고, 강자가 늘 약자를 죽인다.
죽음, 죽음, 죽음…….
“적어도 저는 그것을 막고자 살고 있습니다.”
“차마 강호는 다르다고 하지는 못하는구나. 너는 다른 새외인과 다르게 위선은 없으니 마음에 든다.”
“…….”
진천희는 답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는 그것도 좋은지 느긋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약육강식. 오늘 이곳에 약탈을 하러 온 저들 혈풍사가 그러하지. 저들을 네가 막지 않았다면 마을 주민들 대다수가 죽고, 재물을 약탈당했을 것이다. 아이들은 어딘가로 잡혀가 개만도 못한 삶을 살 것이고.”
그게 마적이니까.
그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다면 저들을 제물로 삼아 대주술을 일으키고, 이 마을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정당한 것이 아니냐? 그게 인신공양이지.”
“허나…….”
부정하려는 진천희에게 그는 말을 이어나갔다.
“강호에는 그런 말이 있지. 타인을 죽이고자 한다면 자신도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그것은 부정하지 않겠지? 강호에 살았다면 말이다.”
순간, 진천희는 동생들을 떠올렸다.
여하륜, 진천우, 사마현.
그들 중에 누구도 손에 피를 묻혀 보지 않은 자가 없다.
강호에서 무인으로서 살아가는 한, 언제나 은원 한복판에 살아가고. 그렇다면 누구 하나는 반드시 죽어야 끝이 났다.
그렇다면 자신의 목숨을 구명할 뿐.
그 말은 반대로 타인의 목숨을 앗아간다는 뜻이었으니.
주술사가 되물었다.
“나를 죽이려 한 자를 죽이는 것이 정당하다면, 그들을 그냥 죽이기보다는 인신 공양의 제물로 하여 득을 보는 것도 정당한 것이 아니겠는가?”
“…….”
주술사는 청년의 목선이 가늘게 떨리는 것을 본다.
“참 너는 기묘하구나. 분명 방금 전까지는 투신의 재림처럼 싸우더니, 이제는 작은 목숨 하나에 몸을 떠니 말이다.”
신혈을 가진 자의 숙명이기 때문일까.
주술사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윽고 그가 말을 이었다.
“좋다. 오늘은 날이 늦었으니 내일 다시 오너라. 내일부터 주술을 가르쳐 줄 터이다. 너는 분명 고강한 전사이지만, 주술은 이제 기초를 떼어야 할 터.”
“……감사합니다.”
“닷새의 시간을 너에게 내어주마.”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작은 보자기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이것은 무엇이냐.”
“손님 집에 찾아갈 때는 빈손으로 가서는 안 되고, 작은 줄글을 익힌다고 해도 사례를 해야 함을 압니다.”
“예의가 바르구나.”
보자기를 여니 작은 찬합이 들어있었고.
거기에는 별사탕이 들어있었다.
새외에 오기 전에 당 떨어지면 먹으려고 미리 챙겨놓은 것이었다.
다른 칸에는 난생 처음 보는 딱딱한 간식이 들어있었는데 중원의 과일을 건조해서 만든 것 같아 보였다.
그리고 은전 몇 닢까지.
“돈은 도로 가져가거라. 이것은 돈으로 환산하는 것이 모욕인 일이니.”
“실례했습니다.”
진천희는 빠르게 은전을 회수했다.
주술사는 그런 진천희가 썩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그러면 나가 보거라.”
“고맙습니다.”
진천희는 가볍게 인사하고 천막 밖으로 나갔다.
새벽 공기가 비강을 가득 채웠다.
새소리가 멀리서부터 가까운 곳까지 자르르 울린다.
새벽이 오는 소리였다.
슬쩍 붕대를 들어 본 하늘은 어느새 쪽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제물, 제물이라.’
밤과 아침 사이의 짧은 푸른빛.
그것은 마치 사람의 목숨과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