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28
제 728화
‘혈풍사의 본진을 찾아낸 후 바로 관아에 신고하면 되려나?’
중원의 그 ‘관’과는 다르겠지만 그래도 왕국인데 치안 정도는 관리하겠지.
그보다 가장 시급한 건 이 주술을 배우는 것.
익힐 수만 있다면 백신을 만드는 시간을 엄청나게 단축시킬 수 있다.
‘그나저나 인신 공양이 이렇게 일반적인 인식으로 퍼져 있다니…….’
확실히 같은 새외인 완농과는 또 달랐다.
‘사람의 선악이란 무엇일까.’
진천희는 그리 생각하며 황구의 등에 올라탔다.
삐익!
뇌진이 기다렸다는 듯 진천희의 머리 위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셋은 마을로 향했다.
* * *
마을에서는 축제가 열렸다. 마적들의 습격에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고, 심지어는 마적들의 말까지 생겼으니 축제가 열릴 만했다.
싸움 와중에 갓 죽은 싱싱한 말을 도축해 마을 사람들은 축제를 벌이며 먹었다.
살아 있는 말들과 마적들의 주인은 진천희이지만, 그들은 저 맹인 악사가 이 말들을 다 끌고 가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이 돈을 모아 값을 치른다면, 싼 값에 말이라는 재산을 얻을 수 있을 테니 얼마나 기쁘겠는가.
진천희는 마적들을 관에 넘긴다고 했지만 재판 후에 지역 관습법에 따라 일부는 마을에서 알아서 처분하라 돌려줄 게 분명했다.
그리되면 도적들 역시 노예의 인장을 찍고, 이 마을을 위해 쓰일 것이 분명했으니.
축제가 벌어질 만했다.
진천희도 내심 짐작했듯, 이 지역은 노예 제도가 그대로 남은 곳이다.
치안에도 공백이 있는 편이다 보니 양민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법을 무시해야 했다.
현대인 입장에서야 화 제국도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치를 떨 만했지만, 세상에는 더한 곳도 존재했고.
그리고 그것을 이제는 새로 배우고 있는 중이었다.
무공이 있고, 주술이 있다.
초자연적인 것들이 당연하다는 듯 곁에서 살아 숨 쉬는 세계.
그곳에서 법도도, 인간성도 지키는 것은 요원한 일이겠지.
때문에 진천희는 붕대 속, 가라앉은 눈으로 주술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촌장을 지켜봐야만 했다.
“나의 술은 인신 공양을 허락지 않음을 말했을 텐데?”
“허면. 다른 주술사를 데려와도 되겠소?”
“이곳은 나의 영역이다. 만약 너희들이 이곳에 다른 영역의 주술사를 들인다면…… 나는 앞으로 이 땅의 일에 관여치 않고 내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하겠는가?”
“으으으음… 그건 좀 고민해 봐야겠구려.”
“그리고 놈들을 잡은 그 맹인 악사도 그저 노예로만 쓰길 바라지, 제물로 활용하는 건 원하지 않는 눈치였지 않나.”
“으으음, 하지만 그는 이방인이지 않소.”
그 말에 주술사는 혀를 찼다.
‘생명의 은인이라 하더라도 어차피 떠날 사람이라는 건가.’
결국 외지인은 외지인. 남겨진 마을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를 알아서 결정해야 한다.
“인신 공양을 통해 하는 의식은 효과가 좋지만 필연적으로 저주를 남긴다. 그건 상대가 제아무리 악인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 그걸 알고 있는 거겠지?”
“나도 촌장으로 산 지 오래되었기에 잘 알고 있소. 당신의 스승과도 알고 지냈었으니…… 알고말고. 하지만 지금 때가 좋지 않지 않소? 이 마을에도 이미 재앙이 다가왔는데…….”
진천희가 낮이 되어 주술사의 거처로 왔을 때 보고 듣게 된 대화.
인신 공양에 대해 별 거부감 없이 말하는 촌장과 마찬가지로 그냥 전공 외의 일이라는 정도로 넘어가는 주술사의 대화,
두 사람의 이야기가 여러모로 명치를 쿡쿡 쑤신다.
심장에 무언가가 돋아났다. 아프고 차가우며 뾰족했다.
썩은 장미향이 났다.
그 향은 두 사람이 대화를 이어나갈수록 짙어져만 갔고, 듣고 있자니 심장이 쿵쿵 뛰어서 가만히 있기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진천희는 참지 못하고 일부러 기척을 내었다.
“촌장님이 먼저 와 계셨군요.”
“오오……. 영웅께서 오셨습니까! 이곳에는 어인 일로.”
뺨을 잡아당겨 일부러 밝게 웃는다.
“이곳의 주술사분께 볼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두 분이 대화를 나누시는 듯한데, 기다릴까요?”
“하하하. 아닙니다. 아니에요. 이미 이야기는 다 했습죠. 자자. 그러면 저는 물러나겠습니다.”
촌장은 공손히 인사하고 물러났다.
멀어지는 촌장의 뒷모습을 안대를 한 채로 물끄러미 본다.
“안대를 하고 있는 채로 보면, 뭔가 보이나?”
“그러게요. 눈은 가려져 있어도 보이는 게 있더라고요. 그런데 인신 공양을 하고 나면 저주 같은 게 남나 보군요?”
“……그것도 모르는군.”
“네. 안 배웠으니까요?”
어이가 없다는 듯 주술사는 자기 이마를 꾹꾹 누른다.
“그래. 네가 주술에 대해서 생초짜라는 건 알 것 같구나. 들어와라.”
그가 그리 말하고는 움막 안으로 들어갔다.
진천희는 황구와 뇌진에게 앞을 지키게 하고는 그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아늑하고 차분한 향이 물결처럼 흘렀다.
정신을 맑게 하고, 몸을 이완시키는 향.
거기다가 향 자체도 가벼워서 마음에 들었다.
‘이거 스승님께 진상하면 좋겠는걸? 향 자체도 아주 좋고.’
효능이 좋아도, 향기가 불쾌하면 스승님이 좋아할 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진천희에게, 이 향은 합격 그 자체!
“이 향은 뭐죠?”
“내 비술 중 하나이지. 이건 안 가르쳐 줄 것이다. 만약 가르침을 받고 싶다면 무언가 대가를 내놓아라.”
“무엇을 대가로 드려야 할지 모르겠지만, 배우고 싶군요. 나중에 셈을 해 보죠.”
“그거야 나중의 일. 우선 앉아라.”
주술사가 자리에 앉는다.
그러고는 진천희가 앉자 옆에서 무언가 가루 같은 것을 꺼내 모닥불에 던진다.
화악! 하고 불길이 커지고, 향기가 더욱 진해졌다.
“내 이름은 쟈시. 다섯 땅의 조율자이며, 주술의 길을 걷는 하얀 늑대이다. 너 화 제국에서 건너온 신혈의 혈통을 가진 자는 이름이 무엇이며, 어떤 것으로 자신을 정의하고 있느냐?”
그것은 진지한 울림이며, 어떤 의식의 일부 같기도 했다.
“저의 이름은 진천희.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무공을 익혔으며, 의술의 길을 걷는 의원입니다.”
“의원이라! 새외에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을 낫게 하는 이들이 있음을 들은 바가 있다. 이 지역의 치료술사와는 다른 방식이라고 들었지. 네가 그런 의원인가?”
점점.
주변의 풍경이 몽환적으로 변하는 듯했다.
사방이 끝없이 넓어지고, 향의 연기로 된 세계에 빠져든 기분이 든다.
이것은 환술인가?
현원전단신공이 지극한 경지로 활성화되어 진기가 전신을 내달리고 대주천을 이룬다.
그럼에도 진천희는 자신이 기이한 공간 안에 있음을 느꼈다.
붕대 사이로 눈을 뜨니 무언가 풍경이 변했다.
어느샌가.
눈앞에 앉은 하얀 피부를 가진 주술사 쟈시의 모습마저 흐릿하다.
그러나 진천희는 기이한 이 상황 속에서도, 위험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래서 대답했다.
“실로 그러합니다.”
답하자 쟈시의 목소리가 멀리서부터 울리는 듯 들려온다.
“그렇구나. 그렇다면 네가 살린 사람은 몇이나 되느냐?”
“세보지 않아서 알 수가 없습니다.”
“적어서 세보지 않은 것인가? 많기에 세보지 않은 것인가?”
“그저 매일 사람을 살리고 있을 뿐입니다.”
“실로 진실이로다. 신혈이 이리 큰 공덕을 쌓다니, 그 공덕이 도리어 천기를 흩어트리는구나! 너 신혈의 아이야. 너는 우리의 술(術)을 배울 자격이 되노라.”
화아악.
연기가 가셨다. 그리고 주변의 풍경도 모두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방금 전의 기이하고 몽환적인 세계에서 빠져나옴을 알 수 있었다.
“조상 신령님들과 정령들이 너를 인정하였다. 이제 너는 내 술을 배울 수 있다.”
“시험이었군요.”
“그러하다. 나의 술은 내가 가르치고 싶다고 해서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주술의 세계는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구나.’
진천희는 속으로 그리 생각했다. 그리고 동시에.
‘만약 조상이 허락을 안 했으면 황구 털이랑 뇌진 깃털은 먹고 쨀 생각이었나?’
쟈시는 뻔뻔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나저나 인신 공양은 필연적으로 저주를 남긴다. 그것이 무엇인지 물었었지?”
“예.”
“인신 공양이란 무엇인 거 같나?”
“사람을 제물로 바치고…… 그걸로 득을 보는 의식 아닌가요?”
“크… 크하하하! 이런 풋내기가 이리 강한 힘을 가졌다니!”
쟈시가 크게 웃는다.
진천희는 자기가 뭔가 잘못 대답했나 싶어졌다.
쟈시가 웃음을 멈추고 말했다.
“주술이란 대가를 지불해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주술의 가장 중요한 근원이며 대원칙이지. 주술을 제대로 배운다면 이것을 모를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나?”
“대가를 지불해요?”
“그러하다. 시시한 주술일 경우 술사의 술력(術力)만으로 펼칠 수 있지만, 대다수의 주술은 대가를 내놓지 않으면 그 힘이 미치지 않아. 인신 공양 역시 마찬가지야. 인간을 제물로 바치고, 그 대가로 술사가 원하는 주술을 펼치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사념(思念)이 자리하고 있지.”
“사념…….”
“사념을 엮고, 대가를 지불해 주술이 발동된다. 때문에 주술은 절차와 격식을 제대로 지켜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된 주술이 사용되지 않고, 오히려 주술사 본인을 해하게 되는 법이지.”
오묘했다. 그리고 기묘했다.
“인신 공양이 그래서 문제이다. 인간을 제물로 바치니 그 효험은 반드시 크지만, 제물로 바쳐지는 인간은 대다수 그 주술 의식에 증오와 분노 그리고 악의를 남기기 마련이다. 이는 필시 저주가 되고, 그것은 의식을 치른 이들에게 향후 큰 재앙을 만들게 되지.”
“아! 그러면 동물들은요?”
“짐승들의 의지는 사람에 비하여 집요하지 않다. 사람 하나가 제물로 바쳐지는 것보다 짐승 십수 마리가 제물로 바쳐지는 것이 더 나을 정도지.”
그 정도로 차이가 날 줄이야!
잠깐?
그렇다면.
저들 혈선교는 대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걸까?
“자. 그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겠다. 너에게 닷새의 시간을 주기로 했으니, 그 시간을 알차게 써야지. 주술을 배울 준비가 되었나?”
“예. 가르침을 주십시오.”
“좋아. 우선 기초부터 가르치지…….”
쟈시가 그가 배운 주술에 대해서 설명을 시작했다.
* * *
쟈시의 주술.
진천희가 보기에, 그의 주술은 게임으로 치면 소환술에 가까웠다.
쟈시가 소통하는 정령들에게 대가를 지불하고 그 정령들이 나서서 힘을 사용하는 계열이다.
물론 쟈시 스스로 쓸 수 있는 직접적인 주술도 있었기 때문에 정령에 관한 주술이 아닌 직접 영향을 주는 주술들만을 주로 배울 수 있었다.
왜냐하면 쟈시의 정령 소환술의 경우에는 정령과 계약하고 그들에게 공양 의식을 꾸준히 해야 했기 때문!
일단 정령이라는 존재들은 대부분 지역구가 존재했다.
‘마치 은평구 구청장이 은평구에 있어야 하는 것처럼!’
현대인은 정확하게 그 본질을 깨닫는다.
그들과 계약하더라도, 그들이 없는 지역으로 가면 그런 정령들의 힘을 빌릴 수가 없다.
그래서 쟈시가 ‘이 지역은 내 영역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그가 영역을 떠난다면 그의 주술력은 절반까지 떨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