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29
제 729화
그나마 다행이라면.
진천희가 배우기를 원했던 주술과를 자라게 하는 주술은 정령 소환술이 아니었기에 배울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몇 가지 저주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으니…… 여러모로 요긴했다.
그 대가로 진천희 역시 자신이 알고 있던 주술 지식을 가르쳐 주었는데, 그중 몇 개는 쟈시도 사용할 수 있어 보인다고 했다.
그렇게 지식의 교환이 끝나고.
진천희가 떠나기도 전에 쟈시가 먼저 길을 떠났다.
움막을 부수고, 짐을 챙긴 그는 어디선가 낙타를 하나 데려와 그 위에 짐을 실었다.
“그러면 진천희여. 운명이 닿는다면 다시 만나자.”
“인연이 된다면 다시 만나죠. 아, 참, 이것!”
진천희는 백린의각 패를 꺼내서 건넸다.
“만약 중원에 오신다면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럴 리가. 내가 힘이 약해질 것을 알면서 내 지역을 떠날 이유가 있겠나.”
아쉽다.
‘진짜 주술사는 함부로 스카우트하기 어렵구나.’
낙타가 숲을 떠나간다.
진천희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았다.
그리고 마을로 되돌아가 말을 전부 마을에 팔고, 황구를 타고 마을을 떠났다.
우역을 버텨낸 소들이 탐났지만, 저 소를 데리고 이동하기에는 너무 험난한 여정이었으니까.
‘그나저나 왠지 다시 볼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진천희는 쟈시가 떠난 방향을 몇 번 더 돌아보았다.
실로 기묘한 예감이었다.
* * *
‘혈선교가 어떻게 방해할지, 그리고 그 피해 규모를 알아내는 게 우선인가.’
삐이익-
뇌진이 진천희의 팔에 앉는다.
도착할 곳에서 온 서신이었다. 새외에 유학을 가 있는 상의원 하나, 중의원 둘과 연락이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과거 연구당 소속 상의원이었다가 오독문 사태 때 분타로 내려왔다가 그대로 눌러앉았던 자였다.
그 이후, 이런저런 연구를 위해 강호낭중처럼 본격적으로 새외를 돌아다녔는데, 이런 일이 백린의각에 은근히 있다.
‘현대에서도 전공에 따라 교수실에 거의 없는 교수님들이 많이 계시니까.’
주기적으로 연락만 통하면 연구 비용은 백린의각에서 부담한다.
진천희는 지시 사항을 정리하여 바로 뇌진을 통해 전서를 날렸다.
통신 기기가 없는 이 시대에 뇌진은 강력하다.
삐이익!
특히나 환골탈태 이후에는 그 속도가 매의 강하 속도를 뛰어넘는다.
뇌진은 곧바로 빠르게 날아올랐다.
기분이 좋은지 날개 끝으로 스파크를 만들었다.
파지직!
맑은 하늘에 번개가 가로선으로 그려졌다.
순식간에 날아가는 뇌진에게 손을 흔들고는 곧바로 다음 도시로 움직였다.
‘수도 도착하기 전에 만나는 도시가 세 곳 정도인가?’
차라리 잘되었다 싶다. 예전처럼 혈선교 놈들이 먼저 덤벼든다면 그거야말로 바라던 바고.
‘하지만 이번 십천군은 꽤나 신중하단 말이지.’
디리링-
진천희는 황구를 타고 사막을 걷는다.
사막 늑대는 거대한 데다 길을 잘 알고 있다.
만약 길들일 수만 있다면 낙타보다도 좋은 게 사막 늑대.
본의 아니게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사고 있는 진천희지만…… 사막 늑대로 보여도 어차피 황구 아닌가.
황구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산책이 행복하다.
그런 황구 위에서 진천희는 생각했다.
‘담진 왕국은 절반이 사막, 남은 절반 중 반이 황무지, 그리고 나머지 반이 초원 지대이지. 강을 따라 농사 지대가 펼쳐져 있고.’
강 근처와 초원 지대에는 양이나 소를 키우는 유목, 그리고 그런 가축을 이용한 밭농사로 식량을 보급한다.
교역이 번성해서 외국에서 식량을 수입해오기도 하고.
‘담진 왕국 수도는 황무지와 사막의 경계선에 있는 거대한 바위산인가.’
제법 거대한 호수 옆에 세워진 것으로 알고 있다.
강이 범람하면 가끔 강과 호수 사이에 물길이 생기기도 한다고 했다.
진천희는 이곳에서 얻은 지식들로 루트를 짰다.
‘일단 담진 왕국 최대 목장이 자리하고 있다는 곳 한 곳, 오아시스 교역 도시 한 곳, 그리고 담진 왕국 최대 농산지가 있다는 곳 한 곳.’
“이 세 곳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보면 혈선교의 향방도 알 수 있겠어.”
그 말에 황구가 ‘컹?’ 하고 짖었다.
“내가 혈선교라면 이 셋 중에 한 곳 이상에 반드시 수작질을 할 거거든.”
이다음 수도로 향한다.
‘이 왕국에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건지……. 봐야 할 거 같아.’
특히 인신 공양.
여기 사람들은 인신 공양에 거리낌이 없었다.
물론 자신의 마을 사람들에게는 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 범죄자들이라면 인신 공양을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혈선교의 인신 공양과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
아직은 그저 육감일 뿐이지만.
‘대체 백천군은 뭘 꾸미고 있는 거지?’
진천희는 황구의 등에 탄 채로 달리기 시작했다.
* * *
진천희가 광야를 달리는 동안.
같은 시간 쟈시는 마을에 도착했다.
아니, 정확히는 ‘마을이었던 것’을 보고 있다는 게 맞으리라.
지도에도 없는 작은 마을이 불타고 있었다. 사람들이 정답게 모이며 빨래하던 우물가에는 시체만이 가득했다.
발가벗겨진 사람들은 모두 목이 잘려 죽어 있었다.
몸은 마치 마른 고목처럼 바싹 말라있었는데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쟈시는 알고 있었다.
“우샤.”
한 소년의 시체가 쟈시의 시야에 들어왔다.
쟈시와 똑같은 문신을 한 아이는 손에 꽃을 쥐고 있었다.
표정은 알 수 없다. 목이 없었으니까.
쟈시는 소년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
통통한 체구였던 아이었다.
그 아이는 이제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바싹 말라있었다.
그 순간, 목소리가 울렸다.
-쟈시.
쟈시가 놀라서 뒤를 돌아본다. 그곳에는 새카만 눈두덩이의 무언가가 앉아있었다.
보통 사람은 볼 수 없는 기묘한 무언가. 눈으로 보인다기보다는 느껴진다는 표현에 가까울지도 모르리라.
-쟈시. 막지 못했다.
-우샤는 쟈시를 기다렸다.
“정령이여. 우샤는 편히 갔는가.”
그 말에 어린아이 낙서로 얼기설기 그린 듯한 원숭이가 몸을 비틀거렸다.
-알 수 없다. 심연이었다.
-우샤의 목은 흰 것이 삼켰다.
-우리도 썩어간다. 부패는 나의 것이 아닌.
-쟈시여. 대지가 썩어가기 시작했다. 땅의 아이들은 끝났다.
-우샤가 죽은 것은 순식간이었다.
“누구냐! 누가 여기서 이런 모독적인 재앙의 의식을 행한 것이냐! 누가 여기서 저주의 의식을 행했나!”
그 순간, 쟈시의 눈에서 왈칵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쟈시는 창백한 손으로 눈가를 만진다. 자신의 피를 제물로 바쳐 정령들의 단말마를 더욱 크게 듣는다.
-피……. 그들은 피에서 비롯한 자들.
-핏자국을 따라가라.
-사거리 한복판에서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정령들은 애매한 예언을 내뱉는다.
사그라져 가고, 오염된 정령들은 골수까지 저주가 스며 제정신이 아니었다. 마침내 쟈시는 듣고 싶은 단어를 들었다.
-혈……불사.
으득!
“……감히 내 땅에서 이런 짓을 저지르다니!”
쟈시는 이를 빠드득 갈더니 손을 뻗어 소년의 시체에 걸려 있던 뼈 목걸이를 대신 자신의 목에 걸었다.
목걸이에는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쟈시가 우샤에게.’
언젠가 그가 소년에게 주었던 목걸이.
평생 가족을 갖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자식 대신 키웠던 아이가 이렇게 사망했다.
“좋다. 좋아. 반드시 복수해 주리라. 내 의지와 내 원념으로. 나의 가련한 정령과 사람들을 위해서. 저주해 주마. 찢어 죽여주마. 영겁토록 고통받게 해 주마.”
이윽고 쟈시의 몸에 지독한 저주가 휘감아지기 시작했다.
혈불사.
그날, 쟈시는 자신을 포기했다.
“정령이여. 이 땅에 있는 모든 저주를 나에게!”
저주의 축적.
스스로를 파멸시켜 적도 함께 파괴하는 금단의 비술.
이걸 택한 이상, 자신의 말로가 좋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 * *
“오, 목장이다!”
거대한 목장에는 도시와 강이 함께 자리 잡고 있었다.
말과 소가 살기 좋은 목초지가 아득하게 멀리 이어져 있었는데 목장답게 소똥 냄새가 훅 이어졌다.
‘목장이라고 해봐야 들판에 풀어놨다가 때 되면 데리고 돌아가는 거지만 말이지.’
목동들과 목장 주인, 소를 돌보는 주술사, 치료사, 그리고 그들이 살기 위해 필요한 대장간.
이방인을 위한 여관과 소를 사러 들른 상인들까지. 제법 많은 이들이 오고 가는 곳이었다.
진천희가 황구에게서 내려 마을로 들어서기 시작하자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맹인 악사인가?”
“맹인 점술가일 수도 있고.”
“이런 흉흉한 시기에 잘도 들어왔군.”
사람들의 숙덕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파고들었다.
허나, 이런 건 익숙하다.
이방인에게 배타적인 것은 어딜 가나 마찬가지 아닌가.
손님에게 후하게 대접하는 문화가 있는 곳도 ‘손님’이란 친구의 친구, 같은 계파의 독실한 종교인, 아니면 사돈의 팔촌이라도 좋으니 연이 있는 관계이지 생판 모르는 이방인이란 뜻이 아니니까.
물론 모두가 경계하는 건 아니었다.
“맹인 악사면 비파를 잘 켜겠군.”
“요즘 너무 힘드니까 점괘를 봐주면 좋겠는데.”
이런 은근한 기대도 느껴졌다.
맹인인데도 사막을 돌아다닌다는 것은 그들에게 어떠한 토속적인 신앙을 주는 존재였으니까.
진천희는 일단 여관을 찾아 들어갔다.
탁, 타탁-
기감 덕분에 주변을 전부 인지할 수 있지만, 굳이 막대기를 두드려 가면서 여관으로 들어온 진천희.
입구에 계산대가 있고. 거기에는 여관 주인으로 짐작되는 중년인이 앉아 있었다.
기감을 통해 주변을 둘러보니, 점원 한 명이 부지런히 식탁을 쓸고 닦는다. 손님은 몇 명뿐이지만 그중에는 여인도 섞여 있었다.
한가롭다면 한가롭다.
여관주인의 기색을 보면 다급하거나 초조한 느낌이 없는 것을 보니, 본래 이런 여관인 듯싶다.
그때였다.
“방랑 악사인가? 방랑 점술가인가?”
막대로 주변을 더듬으며 걷는 모습을 본 여관 주인이 물었다.
진천희는 태연하게 답했다.
“둘 다입니다. 원하시는 음악이 있다면 언제든 연주해드리지요.”
진천희는 그리 말하고 자리에 가 앉았다.
이쪽 지역은 화 제국의 객잔과는 그 내부 구조가 조금 달랐다. 명칭부터가 여관이니까!
그렇게 진천희가 자리에 앉자. 점원이 아니라 여관 주인이 직접 왔다.
“둘 다라니 잘됐구먼. 일거리가 하나 있는데 해 보는 건 어떤가?”
“어떤 일인지 들어 봐야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연주를 부탁하고 싶네. 며칠 후에 우리 마을에 작은 축제가 있을 예정인데 여기서 연주를 해줄 수 있겠나? 사례는 충분히 함세.”
‘축제? 이 시기에 축제를 할 수 있나?’
목장 도시라는 이곳에 오면서 본 것은 드문드문 있는 소들이었다.
전해 듣기로 이 지역의 초지(草地)에는 소들이 가득하다 했는데, 지금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우역이 돌고 있는데 축제라니?
“…….”
진천희가 대답을 하지 않자 초조해졌는지 여관 주인이 한마디 덧붙였다.
“머무는 동안 식사를 공짜로 해주겠네.”
“기꺼이 연주해드리지요.”
진천희는 즉답을 해 주었다.
“하여간, 방랑자들은 왜 다들 돈을 밝히는지 원.”
여관 주인이 투덜거린다.
그 말에 진천희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까칠한 턱선에 미소가 스미자 이쪽에 관심을 두고 보던 다른 여인네들이 모두 얼굴을 붉혔다.
“기묘한 분위기의 사내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