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33
제 733화
그 살기에 사람들이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엎드린다.
어떤 자들은 실금을 했는지 가랑이가 축축해졌다.
그럴 만했다. 진짜배기 무인들도 상대하기 어려운 게 천살성이 아닌가.
단순히 살기 때문만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게 있었다.
이상한 건 아니다. 개구리가 뱀을 보듯, 쥐가 고양이를 보듯, 인간도 천적을 보면 몸이 마비되기 마련이니까.
‘와, 이 녀석 어디에서 어떻게 뛰어서 나타난 거지?’
주변 건물과는 제법 떨어져 있는데 거의 달에 닿을 것처럼 몸이 떠오르지 않았던가.
경신법으로 천하에 비견될 자가 없다는 진천희도 짐작이 잘 안 갈 지경.
여하륜이 내디딘 곳은 굉음을 일으키며 바닥에 금이 갔다.
소의 핏물이 금이 간 대지 위에 고이며 흡사 전설에 나오는 아수라나 야차와도 같았고.
‘아, 이놈 엄청 화났군.’
무표정한 얼굴에 붉은 안광만이 선연했다.
그 모습을 보며 혈불승은 두려워하는 기색도 없이 불호를 외웠다.
여하륜이 말했다.
“네놈들은 모두 버러지다.”
그는 그리 말하더니 자신의 형 앞에 선다.
방금 전까지 사람들에게 돌팔매를 맞던 형.
사실 이 형을 지킨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임을 안다.
아마 이 형이 원했다면 여기 있는 이들 모두는 죽었다.
자신이라면 기꺼이 그렇게 했으리라.
‘허나, 강자에게는 그리도 강하면서 약자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는 게 형이지.’
양민에게 무공을 쓴다?
그것은 그의 형 진천희에게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어린아이를 제물로 바치지 말라고 말하여 돌을 맞고 있다.
‘이 바보같이 강직한 자가…….’
짜증이 밀려왔다.
그것은 태생적으로 감정을 느끼기 어려운 여하륜에게 몇 없는 일이었다.
심(心)이 움직이자 기(氣)가 요동친다.
여하륜의 몸 주변으로 기운이 뿜어져 나오며 마치 전설에 나오는 파괴신처럼 주변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희생하는 것도 싫고. 그렇다고 남을 돕는 것도 싫은 거겠지. 그래서 이 아이의 희생을 받아 너희가 연명하려는 것 아닌가?”
“저, 저희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진천희를 향해 낫을 휘두르려던 인간이었다.
상대가 범상치 않은 존재임을 깨닫자 곧바로 몸을 낮춘다.
“닥쳐라!”
우우우웅-
천마군림보를 쓴 것도 아니고 그저 분노만으로도 사람들 몇이 각혈을 했다.
“고마움을 느끼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가 부끄러운 것도 아닌 버러지들.”
“하륜아, 그럴 것까지는…….”
여기까지 오니 형은 아우를 말린다.
허나, 여하륜의 분노는 쉬이 꺼지지 않는다.
“너희의 비겁함과 나약함 그리고 이기심에서 눈 돌리지 마라. 너희의 악에서 눈 돌리기 위해서 감히 형을 비난해? 모두 죽이…….”
“아니. 죽이면 안 되지.”
“……지는 않고 팔다리 탈골을 해 주겠다!”
“아니. 그냥 내가 말로 잘해 볼 테니까. 이러다가 사람 죽겠다. 하륜아.”
공포심에 숨조차 못 쉬고 꺽꺽이는 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 혈불승이 ‘옴마니반메훔(ॐ मणि पदमे हुं)’이라고 진언을 외웠다.
신기하게도 그 진언이 끝나는 순간 여하륜의 기운이 사그라지는 게 아닌가?
“네놈. 보통의 중이 아니로구나.”
“혈불사에서 수행하는 타양이라고 합니다. 시주의 살기가 너무 강하여 잠시 가라앉힌 것뿐이니 진정하시지요.”
문답무용.
이미 하늘에서 봤을 때 숫자는 다 셌다.
거기다 이놈이 혈선교가 확실하면 셀 필요도 없다.
혈선교는 즉결처형이니까.
여하륜의 손에서 가공할 만한 강기가 뻗어나간다.
콰르르릉!
강기가 만들어낸 공기만으로 사방을 뒤흔들었고. 사람들은 마치 대재앙이 강림한 것 같은 공포를 느낀다.
강기가 놈을 향해 날아가는 순간, 혈불승은 금강종을 들어 방어했다.
쩌르르릉!
그 소리와 함께 강기의 일부가 무력화된다.
그와 동시에 그 파괴력으로 사람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사, 살려! 살려줘어어어!”
“엄마, 엄마아아아아!”
결국 진천희가 나선다.
“하륜아!”
“이놈이 바로 이 사달을 일으킨 요승이 아닌가. 분명 백천군이라는 혈선교와 한패일 터!”
“그 말이 사실이더라도 여기서는 안 돼!”
진천희는 그리 말하며 허공섭물로 날아가는 사람 둘을 붙잡았다.
자신에게 돌을 던졌던 자였다. 그럼에도 의원은 단 한 점의 망념 없이 사람을 구했다.
그 모습에 여하륜은 심장께가 따가워졌다.
“형은…… 이 와중에도 단 한 번도 나와 같은 얼굴을 하질 않는군.”
무인에게 있어 양민이란 그저 염소와도 같다.
무리를 지어 돌아다니지만, 그렇다고 사람 하나 무찌를 수 있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그들의 양젖과 양털은 강호인을 배불리 먹여주며, 그들의 피와 살은 언젠가는 무인에게 잡아먹히기 위해 존재했다.
강자존.
그것이 강호를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법칙.
하물며 그런 존재가 강호인에게 욕을 하며 돌을 던진다?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
이자들은 강호를 모르고, 강호인을 모른다.
형은 묵묵히 돌을 맞았다.
“차라리 저놈들이 절정 고수였으면 좋겠군.”
“아, 그러면 나도 안 참지.”
형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방금 당한 일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이윽고 진천희가 허리를 편다. 깊게 숨을 쉬고 기운을 발출했다.
기묘하게도 그저 의기상인의 경지만으로 주변의 썩은 공기들이 정화되고 있었다.
억눌러왔던 공력을 발출하자, 여하륜의 살기마저 부드럽게 누르며 주변을 감싸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런 경지가?’
여하륜이 눈을 부릅뜬다. 그때.
“후읍!”
진천희는 숨을 크게 들이쉰다.
“여러분! 저 소들을 다 먹으면 내년에는 사람을 먹어야 할 겁니다–!”
진천희의 고함이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망념을 깨뜨리는 맑은 목소리. 절정에 다다른 음공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혈불승이 물었다.
“시주께서는 이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겁니까?”
“네–!! 그러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진천희는 그렇게 크게 답하고는 과거 어느 신의 아들이 사람들에게 했던 말을 했다.
“그때까지만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좀 도우면 안 되겠습니까? 여러부우우운!”
신의 아들은 그 말을 한 죄로 십자가에 못 박혔다.
믿음, 소망, 사랑 중 제일은 사랑이라.
그러니까 우리 조금만 더 서로를 아껴주면 안될까?
그것은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말이었고, 때에 따라서는 십자가에 못 박힐 이유이기도 했다.
진천희는 신의 아들도 아니고 사람의 죄를 사하지는 못한다.
빵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 모두를 먹여 살릴 기적도 못 일으키고, 당연히 물을 포도주로 만들지도 못한다.
‘사과 비슷한 열매를 생명이나 인과율을 바쳐서 만드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래도 그런 진천희에게는 한 가지 권능이 있었다.
아니, 진천희가 원하지 않더라도 권능이 되려는 자가 있었다.
“오늘부터 이 도시는 본교가 점한다.”
그 순간, 여하륜의 신호에 따라 어둠 속에서 수많은 인영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월의 법도 아래에서 모두 무릎을 꿇으라.”
사람들은 사랑은 싫어하지만, 폭력은 좋아했다.
그게 여하륜이 천마가 되려는 이유였다.
* * *
인생이란 그런 법이다.
정체불명의 중원 집단이 이 머나먼 새외를 점하였으니 이제 관군이 나타날 차례인가.
진천희는 빠르게 왕국에 현 상황을 알리고 서신을 보냈다.
결코 나쁜 의도가 아니고 구민 활동의 일환이라는 서신이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마교는 마교.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을 하고 있는데.
여하륜이 말했다.
“아마 괜찮을 거다. 형.”
“왜 그렇게 장담하는데?”
“여기는 강호보다 십만대산이 더 가깝다. 일월께 예를 바치지 않은 자들은 많아도, 본교의 금을 먹지 않은 자들은 없다.”
“…….”
그랬다.
십만대산은 강호의 서쪽 끝, 꼭짓점에 있다.
사실상 새외다.
새외에 자리 잡고 있는 이놈들이 허구한 날 강호일통을 하겠다고 달려오는데, 당연하게도 주변 정리를 안 할 리가 없었다.
“여기서 내가 왕을 자처하고 제후에게 반기를 들면 모르겠으나, 지역 호족들도 십만대산의 금을 먹고 있는바 평범한 도적들에게 점령당한 것보다는 유할 것이다.”
“소는?”
“이미 이곳은 죽은 소와 곧 죽을 소밖에 없지 않나.”
그도 맞는 말이었다.
현재 왕국은 다른 곳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
“수하에게 신교에서 구민 활동을 하고 신의(神醫)를 보호하고 있다 전하라 했으니 알아서 하겠지.”
“그래. 꼬우면 투석기 들고 관군들이 달려올 거고.”
“음, 본교의 금을 먹은 자들 중에 그리 배은망덕한 자는 흔치 않다. 그중에 살아 있는 자는 더욱 흔치 않고.”
마교가 괜히 마교가 아니었다.
여하륜은 손을 뻗어 흑설묘를 쓰다듬었다.
웨옹-
흑설묘는 여하륜의 손가락에 코를 부볐다.
“화 제국 군병이 점거했으면 반역인데 마교가 점거하면 그것은 구호 활동이다?”
“강호라고 다를 줄 아나? 관무불가침이란 소리가 왜 있겠나.”
그것도 그랬다.
“어차피 조세를 걷을 것도 아니고, 형이 일을 끝낼 때까지 잠시 막는 것뿐이니 그것으로 된 일이다.”
“포교는 안 하는구나?”
“본교에 입교하기 위해서는 시험을 거쳐야 한다. 민간신앙 정도야 뭐라고 하지 않겠지만.”
여하륜은 자기 입으로 일월신교를 마교라고 말한 주제에 이런 건 또 제대로 챙기고 있다.
소녀는 진천희를 쫓아왔다.
“맹인 주술사에다 맹인 악사, 당신 이번에는 뭐야?”
여하륜이 말했다.
“고맙다고 해라.”
“뭐?”
“살려줬으니 고맙다고 해라. 형이 아니었으면 모두 죽었다.”
“나는…….”
“남김없이 죽었다. 내가 직접 죽이진 않았어도, 그건 너도 마찬가지였겠지. 제물이었으니까.”
붉은 눈동자가 아이를 내려다본다.
진천희가 여하륜을 막았다.
“하륜아. 너 지금 양민을 겁박하는 거니?”
“형은 너무 물러.”
“내가 의원인데 그러면 양민 상대로 살기라도 쏘리?”
“…….”
소녀는 진천희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저씨, 의원이야?”
“응. 의원이야.”
“이상하다. 의원은 보통 치료사보다 한참 떨어지지 않나?”
이 지역의 의원들은 그랬다.
치료사가 압도적으로 효과가 빠르고, 좋다 보니까 의술이 되레 천시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 나라도 뼈가 부러지면 의원보다 주술사 찾아갈 거 같긴 해.’
주술만 외우면 생살이 돋고 뼈가 붙지 않던가.
다소의 위험성은 있지만, 의원이라고 안전한 건 또 아니니.
돈이 있다면 주술사를 찾는 게 당연한 이치였다.
진천희가 말했다.
“그냥 이것저것 한단다.”
“……진짜 이상한 사람이네.”
거기까지 말하더니 긴장이 풀린 건가. 밧줄에 묶였던 손목을 쓸었다. 벌겋게 멍이 들어 있었다. 아프다.
신기하게도 그때는 하나도 안 아팠는데, 풀린 후에도 아픈 게 안 느껴졌었는데.
이제야 몇 마디 대화만으로 아픈 게 느껴졌다.
그 부분을 한참 문지르다가 갑자기 눈물이 울컥 쏟아졌다.
“고마워. 아저씨.”
“그래.”
“고마워.”
“음.”
여하륜의 기세에 눌려서 무서워했던 동생들도 달려와 소녀를 끌어안았다.
소녀는 욕설을 하며 동생들을 끌어안았다.
긴장이 풀린 아이들이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밝은 달. 아이들은 또다시 살아남았다.
진천희는 이제 괜찮다며 아이들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는 어른이었다. 아이들이 간절히 바라던 그런 어른.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여하륜이 말했다.
“형에게 할 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