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35
제 735화
면역혈청법.
우선 병에 걸리지 않은 멀쩡한 소들을 준비한다.
진법 속에서 철저하게 관리한 소들로, 이 소들에게 우역균을 주사한다. 이놈이 살아남으면 몸에서 항체가 생기는 것.
이 항체가 생긴 피를 뽑아 혈청을 추출한다.
그리고 그 혈청을 병 걸린 소와 병에 걸리지 않은 소 모두에게 다시 주사.
병에 안 걸린 소는 이 혈청을 통해 면역을 획득하게 되고, 병에 걸린 소는 영화처럼 백신 맞는다고 살 수는 없다.
그냥 재수 좋으면 살 거고, 재수 없으면 죽는다.
허나, 여기에 진천희가 끼어든다.
‘주술과. 그리고 중원의 의술!’
이 방식을 병행하면 꽤 많은 소들을 건질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다시 그 소들에게서 혈청을 추출한다.
이 방법을 계속해서 반복해 나가는 게 바로 원시적인 백신 제조법이라고 할 수 있다.
‘문명이 후퇴하고 좀비가 활보하는 아포칼립스 때가 오면 그때나 쓸 방법이지.’
왜 그런 소설들 있지 않나.
그걸 자신이 하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래도 사람이 아니라 소한테 하고 있으니 마음은 편하다.’
두창(천연두)은 우두라는 하늘이 내린 접종법이 있지만, 그 외의 적들을 상대할 때는 달리 선택지가 많지가 않았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자본도 많이 필요하며, 기술력도 많이 든다.
행정력도 많이 필요하다.
그렇게 해도 원시 백신이니 위험 부담도 있다.
다행히 여기는 소를 전문적으로 키우기에 최적화된 곳이고 왕국과 리틀 천마 여하륜의 마교 사적 이용 덕에 편의를 보고 있는 셈.
그렇게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기묘함을 느꼈다.
“어라? 왜인지 오늘따라 죽은 소가…… 없……구려?”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 * *
오늘도 맹인 악사인 척했던 그 의원은 목장을 달리고 있다.
그 의원 곁에는 다른 의원들이 모두 합세해서 욕을 하며 같이 달렸다.
이제는 주술사까지.
분주할 때는 분주했고, 느긋할 때는 느긋했다.
그때는 목장에 앉아서 돌 비파를 연주했다.
딩- 딩- 디잉-
소들은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푸른 눈의 청년 주변으로 몰려들곤 했다.
그의 곁에는 언제나 붉은 눈의 청년이 호위를 하고 있었다.
“의외로 이번에는 시간이 많군.”
“면역이라는 게 내가 분주하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거든. 바쁠 때는 엄청 바빠지지만.”
처음으로 죽은 소가 없는 날.
진천희는 앞으로 이런 날이 더 늘 거라고 확신했다.
“형은 아직도 눈을 감고 있고.”
“일할 때는 뜨고 다녀. 그냥 지금이 편해서 그래.”
현원전단신공은 오래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시간에 적응하기 힘들게 만든다.
빠르게 사고한다는 것은 주변이 느려진다는 것이니.
그렇다고 현원전단신공을 완전히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니 눈을 감아 외부 자극을 조절한다.
물론 그런 것을 아우에게 말하지는 않는다.
그저 능글거리며 비파를 튕길 뿐.
“그러고 보니 말이야. 그때 네가 날 한 번에 알아본 거. 이 돌 비파 때문이었어? 얼굴을 바꾸고 있었잖아.”
인신공양.
수없이 모여 있는 사람들 중에 여하륜은 단번에 형을 알아보았다.
얼굴도 옷도, 심지어 황구조차도 축근공을 이용해 몸을 바꿔 봤다. 거기다 냄새와 파리가 심해 멀리 떨어지라 시켰는데도 여하륜은 한 번에 알아보았다.
“그런 자리에서 굳이 바른말 하고 돌 맞고 있을 사람이 내 형밖에 없겠더군.”
“아하하하…….”
대체 여하륜 안에 이 큰형은 어떤 형태인 걸까.
진천희는 형으로서 체면이 구겨진 느낌이라 웃고 말았다.
무으으으-
소들이 진천희에게 다음 곡을 신청했다.
모두 접종을 마친 소들이다.
이렇게 소들과 가까이 하며 알게 되었는데, 이놈들 생각 이상으로 머리가 좋다.
음악을 좋아하고, 외양간 자기 자리도 알고 있고, 심지어 베스트 프렌드도 하나씩 만들어 놓는다.
그래서 그 절친과 같이 풀 뜯어 먹고, 같이 물 마시고, 같이 뒹군다.
“잘 보면 괴롭힘 당하는 소도 있고.”
여하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능이 높다는 말은 뒤집어서 말하면, 나쁜 짓도 곧잘 한다는 뜻.
“사람도 똑같지, 뭐.”
디리링-
진천희는 옛 유행가나 열심히 연주했다.
소들은 기분이 좋아져서 모두 진천희가 연주하는 방향으로 머리를 댔다.
그대로 철푸덕 앉아서 듣는 소들까지 생겼다.
뇌진은 창공을 날며 부지런히 서신을 나르고, 황구는 양치기 개한테 소를 모는 법을 배웠다.
좋은 날이었다.
* * *
점점 소들이 죽지 않는 날이 늘기 시작했다.
주술사들은 계속해서 소를 돌보았고, 접종도 순조롭다.
주삿바늘 숫자가 모자라는 게 가장 큰 문제인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거리만 따지면 중원보다 여기가 더 당문세가와 가깝다.
‘이야, 돈이 그냥 쭉쭉 빠지는구만.’
1800년도 중반에 인류는 피하주사기를 발명하고 그것을 1900년도 중반까지 재사용을 해왔다.
그러니까…… 100년을 재사용해 온 샘.
현대 기준으로 미친 짓이긴 했지만 나름 멸균도 하고 그랬던 모양이다. 그래도 미친 짓이 맞긴 하지만.
주사기 발명 초창기에는 그리 많이 쓰이진 않았다고는 해도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당연히 알파요, 오메가가 되어 가고 있고.
현대에 와서는 마약 중독자들을 제외하고는 주사기를 재사용하는 일은 없다지만, 제3국에서는 워낙 지원이 부족한 상황이니 그렇게라도 쓴다.
무림 별은 주술이나 진법만 갖춰지면 소독 자체는 현대보다 쉬운 편이긴 하다.
준비하는 과정은 아득하게 많은 돈과 시간과 풍수지리가 필요하지만.
그래도 백린의각에서는 사람에게 주사기 재사용은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
애초에 세가든 문파든 칼로 돈을 만드는 곳이다. 황금이야 늘 남아도는 곳이다 보니 단가를 얼마나 올린들 그것 자체는 큰 문제는 없다.
다만 가축은 다르다.
가축 상대로는 주술이나 진법을 통한 소독을 거칠 것, 그것도 처음부터 수의학 다회용으로 만들어진 주사기를 사용한다.
‘가축 숫자만큼 주사기가 갖춰지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결국 이가 없으니 잇몸으로 하고 있는 셈.
‘대량생산이 불가능한 세계에서 방역은 한계가 있구나.’
인간적으로 천연두 접종이 사기적으로 쉬웠다.
이건 사람 편견을 깨는 게 훨씬 힘든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외의 다른 질병은 사람이 아니라 가축에게 접종하는 것만으로도 훨씬 어렵다.
그러니까 1800년, 1900년대 기술을 가져오되, 그것보다는 조금 더…… 위험성을 낮춘 정도의 수준이 현실적인 한계.
그래도 맞는 판단이었다.
더 많은 가축에게 백신을 접종함으로써 우역이 점차 잦아들었고, 이제 왕국과 연계하면서 주변 마을에 접종을 점점 더 늘려가기 시작했다.
모든 가축에게 예방접종을 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주변 지역에서 키우는 우족류 가축에 한에서는 우역이 잦아들기 시작했으니까.
계절이 변한다.
강호만큼은 아니어도 여기도 계절은 변하고 있었다.
“오오! 성자시여!”
돌을 던지던 사람들이 이제는 다시 진천희를 성자로 모시기 시작했다. 여하륜은 그게 고까워서 숫자를 속으로 셌다.
하나.
물론 둘까지는 가지 못한다. 형이 싫어하니까.
진천희는 사람들의 찬양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주술사와 의원들에게 대략적인 기초적 지식을 설명했다.
백린의각 의원들이 속속들이 오고 있는 중이긴 하지만, 어찌 되었건 혼자서 해야 할 터이니.
“성자님께서 지식을 전수하신다!”
“우리도 이제 우역을 잠재울 수 있다!”
악용할 소지가 있는 것들은 전수하진 않았으나, 한동안 백린의각에서 계속 의원을 파견해야 할 것 같다.
진천희는 구름의 경계 너머로 비가 내리는 것을 보았다.
스콜.
건기와 우기는 이곳의 특징이다.
오독문, 백린의각 의원들이 움직였다.
의원들을 따라 우역이 종결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주변 지역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소빙정들이 백신을 보존하고 옮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 와중에 그 빙정을 빼앗기 위해 마적들이 난립했다.
소빙정을 빼앗기게 되면 백신들은 모두 파기해야 한다.
가축이 전부 죽게 되면 마을 세 곳이 전부 굶어죽을 수 있으나, 그건 마적들에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여하륜의 마교도들이 마적들을 상대했다.
그들에게 있어 소교주의 명은 하늘이었고, 목숨도 바칠 수 있었으니까.
대부분의 마적들은 마교도들이 무찌를 수 있었으나 어떤 마적들은 힘들었다.
그때는 빙정을 내주라고 명했다.
하지만 왜인지 의원들은 소빙정을 끌어안고 도주를 택하려 했다. 자원은 늘 부족했다.
이번 파견이 실패한다면 이 마을에 다음 기회가 올지 알 수 없었으니까.
마중 나온 주술사들이야 자기 마을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걸었지만 의원들은 달랐다.
고작 타국. 타향.
희생할 필요는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의원이 한 명 죽었다.
소빙정과 백신을 지키기 위해서 마지막까지 도망치고 또 도망치다가.
진천희는 그날 오랫동안 연초를 태웠다.
치사율 90%의 우역보다 무서운 것은 인간의 악의였다.
인간의 악의는 깊고 어둡다.
소빙정을 얻으면 평생 부자로 살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을 인질로 삼기도 하고, 때로는 식수에 독을 타기도 했다. 소를 미리 다 죽인 자들도 있었다.
그러한 악의를 덮는 것 또한 인간의 의지였다.
많은 주술사들이 죽었다.
마교도들이 죽거나 다치고 나면, 주술사는 목숨을 걸고 땅을 지켰다. 뒤로 물러날 곳은 없었다.
한 뼘의 여유도 없었다.
왕국군이 도착한 이후에는 좀 더 쉬워졌다.
가축이 살아남자 굶어 죽는 사람도 자연히 줄기 시작했다.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자 인간은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되기 시작했다.
문명은 무너지지 않았다.
야만과 싸울 수 있게 되었다.
진천희는 다시 비의 경계를 본다. 구름 바깥은 해가 있는 곳.
구름 안쪽은 비가 쏟아지는 곳.
스콜이 강을 범람시킨다.
마침내 진천희는 여기서의 일이 모두 끝났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아직 많이 남았어.’
인근 지역의 우역은 처리가 되고 있지만, 담진 왕국 전체의 우역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본래 혈선교에 대한 조사도 겸하며 두 개의 도시를 더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이곳에서 우역에 대한 면역혈청법을 시작해 버리는 바람에 시간이 너무 흘렀다.
이제는 왕도로 가야 할 때.
어찌 보면 전화위복이다.
이 도시에서의 우역 근절을 근거로 한다면, 왕을 설득하기가 더 쉬울 테니까.
‘이제는 왕도로 가야겠군.’
혈선교에 대한 조사는 그 뒤로 미룰 수밖에.
* * *
마을 사람들은 축제를 열었다.
진천희는 출장 온 의원들을 모두 이곳에 남겼다. 관군과 마교도들이 있는 한 여기가 가장 안전하다.
‘화 제국에서 추가로 관군이 도착하면 돌아가기도 더욱 수월해질 거고.’
의원들이 말했다.
“저희도 소각주님을 따라가겠습니다.”
“아직 마적이 많습니다. 좀 더 안전해지면 그때 생각해 보지요.”
“그래 놓고 또 험지로 혼자 가시려는 거잖습니까!”
이기심이라고 해도 좋았다.
직접 키운 아이들이다. 이런 식으로 죽을 아이들이 아니었다.
‘누굴 닮았는지 다들 미련하게 착하고 무모해 가지고는…….’
어차피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인데 그냥 적당히 하다 도망치라는 말조차 안 듣는 뿔난 송아지들.
진천희 자신은 괜찮다.
천하 십 대 고수가 아닌가. 몸을 지키는 것도, 여차하면 몸을 빼는 것도 자신 있다.
하지만 이 녀석들은 안 된다.
‘이미 의원 한 명을 잃었어. 두 번은 안 돼.’
인간의 악의는 인간의 상상력보다 강했다. 늘 그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