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40
제 740화
건물 전체가 흔들리며 발아래로 신호를 보낸다.
그 떨림만으로 현원전단신공의 천재적인 두뇌는 곧바로 알아냈다.
“비밀 통로가 있으셨네?”
그 순간, 지하실 문이 달칵 열리려고 했다.
허리춤에서 장침을 꺼내 집어 던진다.
“흐아악!”
팡하고 날아간 장침이 낯익은 얼굴의 미간에 박히려 한다.
진천희는 곧바로 탄지공을 쏴서 장침의 궤도를 틀었다.
탕!
일카나였다.
그녀의 뺨에 붉은 실이 그려졌다.
“형제님. 너무 가차 없으신 거 아닙니까?”
“아, 일카나인 줄 몰랐습니다.”
푸른 눈으로 헤헤헤 웃는 걸 보니 일카나는 왠지 소름이 돋았다.
저 미소, 저 분위기에 속으면 안 된다.
방금 진천희가 날린 장침은 정확하게 일카나의 눈에 꽂힐 뻔했으니까.
그건 상대가 시귀여도 효과적인 공격이고, 혈선교여도 효과적인 공격이었다.
하지만 그걸 이 난전 속에서 반응해서 쏜다고?
“됐으니까 어서 내려오십시오!”
황구가 뇌진을 업고 먼저 쏙 들어간다.
그런 황구를 따라 진천희는 구르듯 지하로 내려갔다.
진천희까지 들어오자마자 일카나는 급하게 문을 닫았다.
탁!
* * *
지하는 어두웠지만 횃불 덕에 그럭저럭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래 봤자 발아래지만.
“어째, 형제님은 저보다 밤눈이 밝으신 것 같습니다?”
“아, 반대입니다. 오히려 안 보이는 게 더 나아요.”
“……?”
무슨 개소리지?
저놈이 그런 소리 하는 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그 정도는 코웃음치고 넘길 수 있다. 허나, 그보다…….
‘빌어먹을. 손이…… 아직도…….’
손가락 끝이 계속해서 떨리고 있다.
왜일까. 시귀들과 싸우는 진천희를 보았을 때, 한순간 공포라는 것을 느꼈다.
천살성인 여하륜이나 심지어 천마를 보더라도 몸이 굳지 않는 게 그녀의 장점이었다.
차크라탄트와 강인한 정신력, 그리고 망할 제갈린의 지옥 훈련을 통해 다져진 성과라 할 수 있었다.
허나, 이번에는 달랐다.
그 무기질적인 푸른 눈을 마주하는 순간, 생각이 멎었다.
그것은 절망 비슷한 감정. 그녀는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형제님은 인간을 상대로 할 때는 상당히 봐주며 싸우셨던 거군요.”
“제가 치료해야 하잖습니까. 뭐, 어떻게 해요? 살인할 수도 없고. 그냥 적당히 아프고 더는 못 싸우게 해야지.”
제한이 풀려버린 진천희는 다른 사람이었다.
눈알을 노리고 날려버린 장침을 상대가 다른 이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궤도를 바꿔버릴 만큼의 괴물.
시귀를 보고 있다가, 자신을 보았을 때의 표정 변화.
‘후우……. 진정하자. 진정.’
상대가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는 비로소 제대로 된 표정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천마나 여하륜이 보여주는 특유의 위압감 같은 것과는 달랐다.
괴담(怪談).
평범한 인간이 도시락에서 피 묻은 손톱을 발견했을 때 느끼는 감각과도 비슷할까?
컹?
황구가 일카나의 기분을 먼저 알아챈다.
‘조금 성가시네.’
차라리 뇌진은 낫다.
새는 인간의 감정 변화에 둔하다. 애초에 그들의 삶 자체가 인간과는 거리가 있지 않나.
뇌진 자신도 야생성이 강하다 보니 인간에게는 무관심하다. 진천희 빼고.
하지만 개는 다르다.
아득히 먼 신화 시대부터 함께해 온 게 바로 개란 놈이다.
개는 고작 냄새만으로 이 사람이 자신을 예뻐하는지 아닌지, 건강이 좋은지 안 좋은지, 우울한지 아닌지까지 깨달아버린다.
헥헥헥헥!
황구가 자신의 머리를 일카나의 다리에 부빈다.
두터운 모피가 몽실하게 느껴졌다. 진천희가 말했다.
“욘석. 지금은 응석 부릴 때가 아니야.”
“괜찮습니다. 형제님. 귀엽네요.”
일카나의 떨리는 손을 황구가 첩첩 핥았다.
침 냄새가 지독하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손의 떨림이 멈추었다.
‘이래서 형제님이 그렇게 이 개를 애지중지하는 걸지도 모르겠군.’
지금이야 환골탈태까지 했으니 같이 싸우지만, 옛날에는 심하다 싶은 전투에는 아예 끼지도 않게 지키지 않았던가.
순간, 그 기분을 이해했다.
얼마나 지하를 내려갔을까.
지하 석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장까지는 약 이 장(=약 6m). 넓이는 대략 30평 정도 되어 보이는 넓은 지하 석실이다.
“호오, 지하에 이런 공간이?”
보통이라면 매복을 걱정하는데, 진천희는 그리 말하며 벽에 조각된 형태부터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아닌가.
“와, 이거이거, 비싼 장인 썼네.”
장인의 단가부터 확인한다.
‘미친놈.’
원래 이런 놈이니 이상할 건 없다.
“음, 도착했나?”
여하륜의 목소리가 지하 저층을 울린다.
새카만 머리카락이 어둠에 잠긴다.
그의 뒤로 총 열다섯 정도의 흑의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교의 무인들.
진천희는 푸른 눈을 들어 아우를 바라본다.
“오, 하나하나가 최소 절정 고수쯤 되어 보이는걸? 이 정도 집단이면 중소 규모의 문파 하나 정도는 손쉽게 절멸시킬 수 있겠어.”
정답.
허나, 그저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전력을 모두 파악해내니 모두가 진천희를 노려보았다.
여하륜이 뒤를 돌아보았다.
“네놈들. 감히 형을 불손히 바라보는 건가……?”
쿠그그그-
진천희는 깨달았다. 여하륜이 일부러 살기를 방출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그저 노기를 띤 것만으로도 살기가 새어나온다.
‘이제 심(心)을 따라 현상이 바뀌는 경지에 다다르기 시작했구나.’
그 살기가 마치 칼날처럼 대지를 누른다.
그저 그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숨을 쉬는 게 불가능했고.
“컥, 커헉… 허나…… 저희들은 소교주님께만 충성합니다!”
“그렇다면 형에게도 존경을 보이도록.”
“저… 저희들은 소교주님께만 충성합니다!”
같은 말의 반복.
뼛속 깊이 파고든 세뇌가 위기 속에서 무의식 밖으로 나온 것이리라.
“네놈들…….”
여하륜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핏빛 눈동자가 떠오르며, 죽음을 암시했다.
천살(天殺).
죽음의 총아가 손을 들려는 순간, 진천희가 먼저 한 걸음 다가간다.
“아이고~ 안녕하세요. 하륜이 의형인 진천희입니다.”
여하륜의 살기가 순식간에 정화되고, 공기는 드디어 숨 쉴 만한 것으로 돌아왔다.
그만한 경지를 쓰면서 진천희는 그 어떤 준비 자세도 취하지 않는다.
오히려 영업 사원 같은 목소리로 일부러 과장되게 조잘거릴 뿐.
“어휴! 제 동생 때문에 고생이 다들 많으시네요. 그래도 이 녀석이 매번 신세를 지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몸이 안 좋아지면 언제든 백린의각으로 찾아와주시고요. 제가 아주 그냥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싹 진맥해드릴게~”
윙크까지 하면서 몸을 건들거리는 것을 보고 모두가 생각했다.
‘이게…… 장차 천마가 되실 소교주님의 의형?’
‘일광이라더니…….’
너무나도 정반대의 분위기를 가진 형제에게 모두가 얼이 빠진다. 여하륜이 다급히 말했다.
“형. 그렇게 할 것 없다. 이 녀석들은 전부…….”
“하륜아! 야, 인마, 같이 일하시는 분들께 그러는 거 아니야. 네가 상사라고 해도 말이지. 사회에서 관계성이라는 건…….”
그 순간, 여하륜의 머릿속 천살성이 말했다.
-야. 어서 막아. 또 잔소리 시작될지도 모른다.
망할.
‘음. 막아야 하지만 어떻게……?’
형이 잔소리를 시작하면 막을 길이 없다는 것을 천살성도 여하륜도 알고 있다.
두 개의 인격이 충돌하는 순간, 일카나가 빠르게 끼어들었다.
“형제님.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하실 때가 아닙니다. 방금 전 습격을 받았지 않습니까?”
“아. 그렇죠.”
‘일카나에게 성과금을 줘야겠군.’
-동감
천살성이 재빠르게 대답했다.
여하륜은 곧바로 일카나의 말을 받았다. 원래의 여하륜이라면 보이지 않을 재빠른 대응.
“형, 이 왕도의 지하에는 또 다른 도시가 있다.”
“뭐?”
진천희는 눈이 살짝 커진다. 그도 그랬다. 자신도 그 ‘광경’을 보고 나서 눈을 의심했으니까.
여하륜이 말을 이었다.
“이 왕도의 하수도는 일종의 도시처럼 되어 있더군. 일카나가 알아본 바로는, 이 왕도는 조금씩 모래에 잠긴다고 한다. 그래서 증축에 증축을 해왔다고 한다.”
“그래서 도시 아래에 또 다른 도시가 파묻혀 있다?”
“그렇다. 그리고 그게 하수도로 쓰이고 있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게 아니라 어떠한 고도의 계산으로 만들어졌다는 건가.
‘어릴 때 영화에서 이런 거 본 적 있다.’
진천희는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헐……. 대단하네. 이 무슨 고대 유적…….”
생각나는 게 하나 더 있다.
‘아니. 뭐 지구 별에도 터키의 카파도키아 지역에 있다는 무슨 지하 도시만 해도 저 어디 8세기쯤에 만들어졌다고 하지.’
어릴 적 영화에서 본 적이 있다.
지하 80미터 넘게 파고 들어가고, 층수가 20층 정도 되었다던가?
인구 2만 명이 살 수 있는 거대 지하 도시였다고 하니까…….
‘그래. 지구 별에도 그런 게 있는데. 이 세계에 그런 게 없는 게 더 이상하지.’
그리고 비밀 결사들은 이상하게 건축술이 고도로 발달되어 있다.
각종 기관진식, 비밀 통로, 지하 사원을 짓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오오, 지하 고대 도시라니! 그래. 북해빙궁에서도 비슷한 거 봤으니 할 수 있을 거 같긴 했다 그래!’
지구 만화에서 악당 과학자가 수상할 정도로 기술력이 뛰어난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로봇이 허구헌 날 부서지는데 매번 새 로봇을 끌고 온…….
‘아, 요즘 애들은 이제 변신 로봇 안 보나?’
그럴 리가 없을 텐데. 합체와 변신으로 부모의 등골을 뽑아먹어야 하지 않나.
그것이 완구 회사의 사명.
여하륜이 말을 이었다.
“이 지하 도시가 아무래도 왕도에서 암약하는 조직들의 비밀 거점일 것이다. 우리도 이 지하 도시를 제대로 조사한 지 겨우 하루 정도 지났을 뿐이지.”
“하루? 생각보다 얼마 안 되었네.”
여하륜이 고개를 끄덕였다.
“위의 시귀들을 봤겠지?”
“응. 봤지.”
볼 뿐만 아니라 낮은 내공으로도 쉽게 잡을 수 있는 법은 없을지 이런저런 실험도 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전부 쓰러트려도 다음 날이 되면 다시 생긴다. 이 지하 도시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놈들을 거쳐야 한다는 거지.”
“다시 생긴다고? 어디서 끌고 오는 게 아니라?”
“그냥…… 생겨 있다.”
“대단히 괴이한 주술인데, 그거.”
소름이 돋았다.
이건 주술, 허나 주술만으로도 그게 될까 싶을 정도의 기현상.
여하륜이 고개를 끄덕였다.
“본교의 술사를 데려오지 않은 것이 후회되더군.”
“그래도 내가 좀 하니까 괜찮아. 이 형이 도와줄게. 그래서 계획은?”
그 말에 여하륜의 인형 같은 얼굴에 슬쩍 미소가 서렸다.
“우선 이 지하 도시를 수색해야겠지. 필시 주동자 놈들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
“하긴. 확실히 그렇겠네.”
진천희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생각에 잠긴다.
‘들어오기 위해서 반드시 시귀들을 물리쳐야 하는 상황이라는 거지? 거기다 애초에 그런 기괴한 주술을 쓸 수 있는 이는 거의 없을 거야.’
혈선교 외에 이런 기괴한 일을 할 수 있는 집단이라.
거기까지 생각하자 진천희는 머리가 탁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소설 밖의 세계구나. 여긴.’
당장 담진 왕국만 해도 지존천마에는 등장한 적이 거의 없지 않던가.
원래 지존천마에서 여하륜이 여기를 올 일이 없으니 언급이 안 된 곳이리라.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인신 공양이 없던 게 되지는 않지.’
소설에 거의 등장하지 않던 이 왕국에 혈선교가 손을 뻗치고 인신 공양이 난립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도 사람은 죽어. 악은 싹이 트는 거고.’
문득 진천희는 죽은 의원을 떠올린다.
제자라고 하기에는 강호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지만, 심장께가 아픈 건 똑같았다.
‘그 녀석의 죽음이 의미가 있는 일이었을까.’
그 녀석이 움켜쥔 소빙정 덕에 마을은 생을 이어갈 수 있었다. 허나, 그다음은?
여기서 만약 돌아가게 되면 그 녀석의 죽음은 의미 없는 게 되는 게 아닐까.
알 수는 없다.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수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작은 마을까지 퍼지리라는 것을 모를 진천희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혈액을 타고 흐르는 병마와도 같았고. 수도는, 어디든 뻗어나갈 수 있는 곳이었다.
어디든.
“형. 무언가 짊어지고 있는 얼굴이네.”
“사람 목숨이 참 무겁다. 하륜아.”
“음.”
여하륜은 그렇게 답하고는 입을 한일자로 굳힌다.
진천희가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한번 내려가 보자. 보물 같은 게 나오면 좋겠는데~”
앞장서는 진천희의 발걸음이 과장될 정도로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