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42
제 742화
진천희가 품 안으로 손을 넣었다. 그리고 품 안에서 오색의 작은 깃발을 꺼내어 주변으로 던졌다.
“오행귀문둔갑의 진을 여기에 펼치나니! 사악한 것들은 힘을 잃으리라!”
그것은 제갈세가의 비전 진법 중 하나.
본래는 귀신을 쫓고 퇴마를 하는 용도의 진법이지만 당연히 실전성은 떨어졌다.
허나, 주술을 익힌 진천희가 조금 손본 것으로.
달려드는 시귀를 약화시키기에도 충분하다!
치이이익!
달려들던 시귀들의 몸에서 연기가 흘러나온다. 칼로 가슴이 뚫려도 멀쩡한 놈들이 괴로운지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했다.
그럼에도 놈들은 덤벼든다.
“깃발을 지키면서 싸우세요! 기회를 만들어 탈출할 것이니 모두 내공을 아끼시고요!”
“모두 형제님의 말에 따르도록 합니다!”
일카나가 먼저 두 손을 마주하고 합장하며 외쳤다. 그러자 마교인들이 모두 검을 꺼내든다.
사방에서 짓쳐드는 연기를 내뿜는 시귀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검기가 없어도 고수의 검날은 단번에 시귀의 목을 잘라냈다.
진법의 영향 덕분에 시귀들의 움직임이 둔화되었기에 가능한 일.
하지만 목을 잘라 쓰러진 몸뚱이를 밟으며 다음 시귀가 덤벼든다.
순식간에 시귀의 시체로 만들어진 벽이 생겨나고 그게 쓰러질 지경이 된다.
그야말로 해일 그 자체!
그사이에 일카나가 두 손을 합장한 상태로 두 눈을 감았다가 떴다.
“프라나여, 프라나여. 오문을 연 나에게 생명을 허락하라!”
세림 교국의 전통적인 무술.
차크라.
그것은 인체 내부에 있다는 일곱 문을 여는 것이다.
칠문경색(七門景色)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하나의 문을 열 때마다 하나의 프라나(Prana)를 얻게 된다.
프라나는 생명의 힘이며, 영력의 원천.
강호인식으로 따지면 내공과 같지만 사실 전혀 다른 종류의 힘이다.
주술력과도 다른 이 힘은 세림 교국에서는 가장 널리 알려진 종류의 무술의 힘이었다.
일카나는 현재 다섯 번째 문을 열어 오문경색의 프라나를 쓸 수 있는 자.
세림교국에서도 육문을 연 이가 단둘뿐이며, 칠문을 전부 연 자는 전설에나 있다고 전해진다.
오문경색 프라나의 힘이 일카나를 중심으로 번져 나간다.
그러자.
마교의 고수들은 검기를 쓰지 않았음에도 검에 검기와 같은 힘이 서린 것을 깨닫는다.
그들의 몸에 힘이 서리며 마치 내공을 사용한 것 같은 괴력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것이 차크라 칠문경색의 힘이다!
진천희는 일카나의 힘을 보며 놀라서 입을 벌렸다. 그것은 처음 보는 것에 대한 공포가 아닌.
‘원리가 뭐지? 저것도 나중에 배울 수 있나?’
순수한 학구적인 욕심이었다.
여하륜이 말했다.
“준비됐다.”
약간의 시간을 벌고, 일카나의 칠문경색 중 오문경색의 프라나가 여하륜 안에도 들어찼다.
그 결과.
여하륜은 불과 일각의 시간 만에 아까의 대파괴를 일으킬 힘을 회복했다.
다시 한번 여하륜의 손끝에서 파멸이 시작되었다.
파천일공 십파(十破)–!!
콰과과광!
“이 틈에 후퇴하라!”
여하륜의 명에 따라 마교인들 모두가 재빠르게 도망친다.
그 뒤로 여하륜이 파천일공을 두 번이나 추가로 날리는 게 아닌가!!
어둠이 죽음 그 자체가 되어 모두에게 사형선고를 날린다.
단 한 점의 자비도 없이 그저 모든 것을 삼키며 쓸어버리고 또 쓸어버렸다.
단번에 거의 일천 단위의 시귀가 사라진다. 진천희는 어이가 없어 중얼거렸다.
“오우, 황군이 마교 안 때려잡는 게 이유가 있었구나?”
반역도는 반역도인데 겁나 강한 반역도였던 것.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니 또 다르네.’
거기다가 여하륜은 소교주로서 이제는 어디 가서 그 무위가 꿀리지 않는 수준에 이르렀으니 더욱 그랬다.
‘파천일공을 단번에 여러 번을 쓸 수 있을 정도면 대체 여하륜의 경지는 어느 정도인 거지?’
* * *
이 난리 통에도 지하 도시는 무너지지 않았다.
진천희는 고대의 신비를 느끼며 곧바로 지하 석실 통로로 되돌아왔다.
다만, 처음 들어왔던 장소가 아니라 아예 다른 곳이다.
여하륜이 말했다.
“음, 과연 저 위쪽까지 올라오지는 않는 모양인데?”
진천희가 말했다.
“어쩌면 저 지하 도시 자체가 주술의 근원일지도 모르지.”
“주술의 근원?”
“그래. 저 어마어마한 양을 단번에 계속해서 생산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야. 그게 가능하려면 엄청난 대가가 필요해. 그러니까 주술사 몇이 인신 공양 좀 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지.”
“그러니까 도시 전체가 주술의 근원으로서 작용한다?”
“고대의 유적이니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어찌 되었건 아래에 있는 게 혈선교 근거지이긴 할 거야.”
“어이가 없군. 그런 게 왕국 아래에 있다니.”
여하륜이 혀를 찼다. 진천희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나도 어제 이 소리를 들었으면 미친 소리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라.”
두 눈으로 그 광경을 보았으니 이제는 부정할 수도 없다.
“흠, 결국 저것을 파괴해야만 혈선교 놈들을 처단할 수 있겠군.”
여하륜식의 해결법.
허나, 이 세계에서는 대부분의 일들이 이렇게 돌아간다.
여하륜이 말했다.
“짜증 나는 주술이군. 내가 경지에 이르렀다면 도시 전체를 파괴했을 텐데.”
“야야, 그러면 안 되지. 아무리 여기가 신비의 고대 유적이라고 해도 도시 전체를 파괴하면 위에 있는 진짜 왕도 사람들은 어떻게 되겠냐?”
진천희는 눈을 감고 턱을 쓸다가 이윽고 답했다.
“사실 아까 그 정도만의 위력으로도 도시 전체를 파괴하는 것은 가능할 거야.”
“음?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기반은 고대 유적이지만, 그 위를 지탱하는 것은 비교적 최근 양식이야. 그러니까 그걸 깎아서 쌓은 것은 우리가 아는 석공들이라는 거지.”
“그래서?”
“이런 대규모 설계를 할 때는 가장 먼저 동서남북 네 개의 축을 쌓고, 그 축을 보완하는 중간축을 쌓아가며 하중을 분산하는데. 초기에 만든 네 개의 축을 터뜨리기만 하면 아마 도시 전체를 파괴하는 건 가능할걸? 그 정도는 네 파천일공으로도 충분히 가능할 거야.”
즉답으로 대책이 나오자. 마교도들은 경악했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진천희는 말을 이어 나갔다.
“잘만하면 모래에 파묻히게 해서……. 으음. 아니다. 역시 위험해. 내가 지질 조사를 한 것도 아니고. 결국 어떻게 해도 사상자가 나올 수밖에 없어.”
일카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는 일광을 보며 생각했다.
‘역시 일광이다. 미친놈이야. 저런 소리를 태연하게 하다니.’
파천일공으로 싹 다 날려버리고 싶다는 여하륜의 말에 곧바로 실행 방안을 만들어내지 않던가.
‘4개의 축을 뭐? 하중? 석공?’
오자마자 음각한 벽화를 유심히 보기에 왜인가 했더니 이것을 지은 석공이며 목수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함이었나.
이윽고 진천희가 눈을 떴다. 푸른 안광이 새벽 바다처럼 빛났다.
“생각해보니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방법이 있나?”
“그래. 예로부터 사자(死者)는 불에 약하다고 했거든. 그리고 여기 건축 양식이 열에는 끄떡없겠더라.”
일광은 뺨까지 살짝 붉히며 배시시 웃었다.
“불이 최고야.”
역시 마지막에 믿을 것은 화력이지.
한국인의 얼을 담은 크고 멋진 화력.
* * *
마교인은 눈앞의 광경을 의심했다.
그것을 멍하니 보다가 다시 눈을 비비고 다시 본다.
‘내가 헛것을 보고 있나?’
석실 아래로 펼쳐진 지하 도시 전체가 화염에 뒤덮이고 있었다.
시귀가 불길에 휩싸여 바둥거리면서 비명을 지른다.
퍼억!
불을 이겨내지 못하고 시귀의 몸이 사라진다. 이윽고 다음 시귀가 허공에서 나타났다.
허나, 그놈도 결국 화력을 이기지 못하고 불타서 사라졌다.
끼아아아악!
염라대왕이 보낸다는 불지옥이 있다면 이곳일까.
시귀의 시체가 하나둘 쌓여간다.
몇이 나오든 계속해서 쌓이고, 불이 붙으며 사방이 지옥으로 변모했다.
일광은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음. 여기 환기 시스템이 잘되어 있어서 다행이야. 진법을 설치해서 불을 만들 수는 있지만 공기가 없으면 불을 일으킬 수 없거든. 고대 유적의 힘을 이용한 것 같은데 나중에 연구해보고 싶어.”
“거기다 지맥까지.”
“그래. 애초에 주술로 망자들을 계속해서 소환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이곳의 지맥이 대단하다는 거지. 그걸 조금 우리를 위해 끌어 쓴다고 별일 생기진 않아.”
“그런가?”
“응. 애초에 무언가를 살리는 것보다 파괴하는 게 훨씬 내공이 덜 들거든. 그건 지맥도 마찬가지고.”
평생 인간을 살려온 사람이 하는 말이었다.
스승님께서 직접 알려주신 제갈세가의 비전.
화공진.
불을 일으키는 진법이다.
“여기에 주술을 살짝 결합하면 저렇게 시귀 그 자체를 원료로 계속 타오르거든. 과연 스승님이야. 제자 고생하는 꼴은 못 보지.”
“……그 혈린 제갈린도 설마하니 고대 유적에서 시귀를 태울 거라 상정하고 가르쳐주진 않았을 것 같다만.”
“모르지. 스승님은 뭐든지 알고 계시니까.”
“그냥 건드리는 놈이 있다면 사도련이고, 무림맹이고, 마교고 다 불 지르라고 가르친 게 아닐까.”
“세상에! 사람을 불태워 죽이다니. 내가 그런 끔찍한 짓을 할 리가 없잖아?”
“…….”
혈린광살은 했다.
엿 같은 강호 새끼들 어차피 잃을 것도 없는 거 다 같이 타 죽어버리라고 질러버린다.
그랬다.
혈린광살이 백린의선이 된 것에는 이러한 이유도 있었다.
강호 노괴들이 혈린광살에 가진 두려움은 비단 그 무력에만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제아무리 강한 고수라고 하더라도 꼬우면 문파에 불을 지르는데 도리가 있나.
나는 발이 달려 도망치면 되지만, 내 황금은 도망칠 곳이 없다.
하필 대부분의 문파들은 영산 같은 명당에 거점을 두고 진법을 펼친다.
산의 영기가 내공을 주천시키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
그걸 이용해서 화공진을 벌이는 미친 짓을 하는 놈이 여기 있었다.
네놈들이 영기를 이용해 양생진을 펼치면 그거 좀 나도 빨아다가 화공진도 펼쳐보겠다는 의미.
그런 상황이니 당연히 돈이 많고 거대한 세가, 문파일수록 화공진에 약할 수밖에 없다.
-제발 혈린광살 그 미친놈 좀 말려 보게!
-원한이 있으면 칼을 들고 쳐들어와야지, 불부터 지르는 게 말이 된단 말인가?
-혈린광살도 사람인데 재산이 그래도 남아있어야 뜯어먹을 게 있을 거 아닌가. 이놈은 아깝지도 않나?
-구음절맥이라 곧 죽는다고 들었는데 대체 언제 죽는 거요? 죽는 게 맞기는 한 거요?
혈린이 의원을 한다고 했을 때 많은 노괴들이 잘됐다고 박수를 쳐준 것은 그 화공진 탓도 있었다.
대체 그가 그 끝에서 얻은 진실이 무엇인지는 강호의 누구도 모른다.
그게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묻고 싶지는 않은 게 모두의 속내.
의원을 하는 동안은 그래도 불은 안 지를 거니까.
그리고 의원이 된다고 한들, 이놈은 여전히 잃을 것이 없는 놈.
함께할 세가도 없고 수명도 없다.
뒤를 이을 후인조차 없었다.
그러니 차라리 명예를 주자.
‘백린의선’이라는 명예를.
실제로 혈린광살은 많은 이들을 살려냈다.
이전까지 불가능하다 했던 병들도 그의 손으로 치료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세운 백린의각은 강호의 수많은 무인들을 구해냈다.
주화입마에 들면 결코 살 수 없다 알려진다.
허나, 아직 초입이라면 백린의선이 구해낼 수 있다.
그것은 하나의 기적이었다.
-부디 계속해서 혈린광살이 백린의선으로서 있어주기를.
-그리고 백린의선으로 지내다가 조용히 죽어주기를.
많은 강호 노괴들이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
잃을 것 없는 천재가 강호에 은혜를 뿌렸다.
이제 그가 다 포기하고 죽는 날만을 기다릴 때.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느린 자살이었고, 모든 이들은 그 장례식에 참석하는 날만을 기대했다.
그것이 강호에서 백린의선이라는 자가 가진 이름이었고.
일종의 주박(呪縛)이기도 했다.
진천희란 놈이 제자가 될 때까지는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