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49
제 749화
‘진짜로 장작이 모자라는구나.’
이런 수인성 질병 치료의 기본은 끓는 물이다.
물을 끓여야 뭘 해먹을 수가 있다.
오아시스가 다행히 존재하고, 지하수로 연결되어 있어 우물도 존재한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나무가 잘 자라는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나무가 많지 않은 것이다.
괜히 사막 지대에서 말똥이나 낙타똥 같은 가축의 분뇨를 잘 말려서 연료로 쓰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나온 해답이 인신 공양이었구나.’
사람 하나 죽여 해결하는 쪽이 빠르고 즉효인 거겠지.
그런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진 게 왕자가 말한 ‘신목’인 것이겠고.
‘모래와 돌은 참 많은데 말이야.’
잡초도 많다.
우역이 지나간 자리다 보니 우족류 야생 동물들이 이미 한번 떼죽음을 당했거든.
그러니 그 녀석들이 먹는 잡초들도 무성해지기 시작했고.
덕분에 모기도 창궐하기 시작한 상황.
다행히 생태계가 살아있어서 ‘아직은’ 괜찮다. 모기가 창궐하면서 모기를 잡아먹는 잠자리나 작은 새들도 같이 증가하고 있으니까.
우역을 그래도 빨리 잡은 덕분이다.
‘일단 할 수 있는 걸 하자.’
그렇게 다짐한 진천희였지만 빡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진천희는 치졸하지만, 정말 치졸하지만.
야밤에 외출을 했다.
그리고 왕자 놈의 뒤통수를 호되게 후리고 되돌아 왔다.
진천희도 이제는 강호 십 대 고수가 아닌가?
게다가 온갖 기묘한 잡다한 무공에 주술까지 익혀서 야밤에 남의 나라 왕궁의 수비병들과 주술사들의 장막을 헤치고 돌아다닐 수 있는 수준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꽤 세게 팼는데 이 새끼가 뻔뻔하게 머리통에 큰 혹을 달고 오더라.
그 뻔뻔함에 빡이 쳐서, 다음 날에 또 가서 이번에는 눈두덩을 냅다 때리고 왔다.
이번에는 얼굴에 커다란 멍을 달고 나오더라.
‘너 이 새끼, 나 간 다음에 마교 조심해라.’
서신을 보내니 여하륜은 아직은 죽이지 않는다고 했다. 아직은.
형이 있을 때 죽으면 형이 뒤집어쓸 테니까.
아무튼 진천희는 뜯어낼 수 있는 자원은 죄다 뜯어갔다.
낮에는 담진 왕국의 치료술사들을 모아 놓고, 이질의 치료법을 가르쳤다.
치료술사들은 전원 주술사지만 약초학에도 제법 일가견이 있다.
“치료 주술 자체가 술력을 소모하지요. 치료술을 안 쓰고도 해결할 수 있다면 약초로 해결하는 게 상책입니다.”
그랬다.
제아무리 뛰어난 치료술사도 하루에 열 명도 치료하지 못한다.
그러니 약초를 사용해서 조금이라도 술력을 아끼는 것.
‘그렇다고 고등 의술이 발달한 형태는 아니지. 경미한 질병과 중병을 나누어서 치료하는 느낌인 거고.’
그게 기본 개념.
치료술사는 왕도에 총 이백여 명이 거주한다.
그중 백여 명이 왕실 소속.
진천희는 벼슬아치도 아니겠다, 권한도 전권 이양받았겠다, 왕실 소속 오십 명에 왕도에 거주만 하는 일종의 프리랜서 치료술사 오십 명을 따로 차출해 교육시켰다.
병의 원인을 가르치고, 그걸 예방하는 방식.
의료용 알코올을 증류시키는 방법.
그리고 끓인 물.
‘빌어먹을 끓인 물.’
남만에서는 이런 고생은 한 적이 없었다.
그건 북해빙궁도 마찬가지였고, 심지어 섬인 보타문도 장작이 없어서 고생하지는 않았다.
“역시 인신 공양이 가장 맞는 방식이지 않겠습니까?”
왕자 놈은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 얼굴로 싱글싱글 웃는다.
진천희의 실패를 점치는 느낌이다.
“중원에서 백린의각이 어떤 식으로 의술을 펼치는지 저도 약간 공부했습니다만, 모두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더군요.”
“…….”
“그조차도 없는 척박한 땅에서 끓는 물이 가능할까요?”
진천희는 입을 열었다.
“왜 자원이 없다 생각하십니까?”
“흐음. 설마 이 모래와 오아시스에 고인 물을 자원이라 할 생각인 건 아니죠? 일 년에 건기 아니면 우기밖에 없는 지역입니다. 우기에도 비가 풍족하게 내리는 것도 아니고, 불을 피우는 것도 늘 심사숙고를 해야 하죠. 그런 환경에서 항상 물을 끓여서 먹어야 한다?”
그는 작게 키득이더니 말을 이었다.
“다두 왕국이라면 가능할 겁니다. 그곳은 차가 유행하니까요. 하지만 담진은 아닙니다.”
너라고 별수 없다. 포기해라. 그런 말을 아주 그럴싸하게 돌려서 말하고 있다.
“이 전염병뿐만이 아닙니다. 이후에도. 여러 가지 많은 문제가 있을 테고. 우리는 그저 했던 대로 할 겁니다. 당신이 떠난 다음에도…….”
그걸 당신이 막을 수 있을까?
역사를, 삶을, 그리고 그 방법을.
했던 것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거기다가 해왔던 것이 효율적일 때는 더더욱.
인신 공양이 정말로 효과가 있는 세계.
인간은 무지란 뗏목을 붙잡고 죽음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그 와중에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은 결국 불가피하지 않은가?
진천희 자신도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틀린 것은 틀린 거라 말할 용기는 있었다.
그때, 어느 마을에서 돌을 맞던 것과 똑같이.
“하……. 참, 나.”
진천희는 한숨을 내쉬고는 인상을 팍 찌그렸다.
“라단 왕자. 저번에 제가 말한 거 기억하실려나 모르겠네요.”
“하신 말씀이 많다 보니 어떤 말을 얘기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진짜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고자 한다면 다 같이 해야죠?”
라단의 표정이 조금은 굳었다.
“제비뽑기에서 혼자 쏙 빠지는 건 비겁하지 않습니까?”
뽑히는 제비는 언제나 약자이지 않던가.
“그렇다면 당신은 정말로 이 모든 재앙을 끝낼 수 있다는 겁니까?”
진천희는 곧은 시선으로 대답했다.
“예.”
진천희의 단답에 라단은 기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가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그것은 새하얀, 주먹만 한 돌이었다.
“그렇다면 진 태수. 내기를 하시죠.”
진천희가 노려보면서 말했다.
“내기요?”
“그래요. 내기.”
일전에 그가 지나가듯 내기하자고 말했던 게 기억났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진담일 줄은 몰랐다.
“이런 상황에서 농을 하시진 않을 것 같고……. 무슨 내기를 하시겠다는 거죠?”
“이것은 언약의 돌이라고 합니다. 언약의 석판이라는 것의 일부지요.”
언약의 돌. 언약의 석판.
“저희 왕가에 대대로 내려져 오는 유물입니다. 성물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응룡도 만나 보았던 진천희다.
이런 신물이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래서요?”
“이것에 대고 언약을 나눌시 절대로 어겨서는 안 됩니다. 어긴 자에게는 크나큰 화가 들이닥치게 되죠.”
석판 조각에서 엄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래서, 내기를 하자?”
“그래요. 당신이 옳은지. 제가 옳은지 내기를 하죠.”
라단 왕자가 지긋이 진천희를 바라본다.
“좋아요. 하죠. 제가 전염병과 수질 문제를 해결한다면 이기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반대의 경우에는 당신이 지는 거겠죠.”
“그렇다면 제가 해내면 이 왕국에서 인신 공양을 완전히 금지해 주시죠. 당신이 왕자의 권한으로 그렇게 하는 겁니다.”
신의(神醫)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 모습에 왕자는 내심 놀랐다.
‘미친놈은 미친놈이군. 기가 질려 도망칠 줄 알았더니.’
실패할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모습.
대체 이 사내는 어디에서 그런 자신감이 나오는 걸까.
“좋습니다. 대신 진 태수. 당신이 내기에서 진다면…….”
“진다면?”
“……저희 미륵교에 입교해 주셔야겠습니다. 당신은 나라를 원했으니, 저는 당신을 원합니다. 그 정도는 되어야 공평한 것 아니겠습니까?”
“…….”
“정말로 당신이 내기에서 이긴다면 저는 계약에 따라 인신 공양을 금지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겠지요. 차라리 죽는 게 더 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된다면 제 자리에 앉은 다른 누군가가 우리나라 전통 행사를 해줄 테니까요.”
진천희는 그제야 웃음기를 거둔다.
“좋습니다. 당신은 나라를 걸고, 저는 저를 걸도록 할까요.”
오싹-
왕자는 소름이 돋았다.
도망친다면 당신이야말로 위선자라 비웃어줄 생각이었다.
허나, 신의에게서는 광기마저 느껴졌다.
웃지 않는 사내는 어딘가 날 선 칼날처럼 보였다.
왕자는 일부러 강하게 말했다.
“그러면 어떻게 하실 건지 진 태수의 솜씨를 한번 보겠습니다.”
진천희는 그런 라단 왕자의 말에 고개를 돌려 태양을 본다.
“아까 불 피우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고 하셨죠? 연료가 없으니까.”
라단 왕자는 갑자기 아까 전의 이야기로 되돌아간 진천희를 바라본다.
무슨 의미로 말을 꺼낸 것일까?
“대신 햇빛은 엄청나게 많잖아요. 그쵸?”
그래. 여기에는 태양이 있다.
썬 연료가 저 하늘에 있는데, 다른 연료가 필요해?
“태양? 설마 그게 자원이라고 할 생각이십니까?”
진천희는 여전히 웃음기 없는 표정으로 답했다.
“제가 있던 곳에는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이 없으면 잇몸’이라고.”
그렇게 말하더니 무표정 그대로 양손을 곧게 뻗어 Y자로 만들고 태양을 응시했다.
과거 진천희가 했던 게임의 ‘태양의 기사’ 자세.
오오. 찬양하라!
오오! 태양!
그랬다. 장작이 없으면 태양이다.
* * *
낮에는 치료사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다른 계열의 주술사들 그리고 차크라탄트 무인들과 함께 다른 작업을 시작했다.
진천희가 하려는 것은 단 하나.
대형 돋보기.
담진 왕국의 유리 세공 기술은 진천희가 전부터 탐내고 있던 것 중 하나다.
‘그걸 이렇게 쓰게 되네.’
좋은 게 좋은 것 아닐까.
정령을 이용하여 주술과 결합해 만드는 유리들은 하나같이 아름답고 정교하다.
허나, 진천희가 만들려는 건 더욱 컸다.
“열양기는 저한테 맡기십시오.”
눅진하게 녹은 유리물을 틀에 붓는다.
원래라면 커다란 유리를 만든다는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유호를 쓰는 게 아니라면.
허나 주술사들이 정령의 힘을 이용해 유리 안의 불순물을 빼내고 틀 안에 매끄럽게 고정시킨다.
콰아아아!
주술사들이 쓰러지지 않도록 차크라탄트로 보조하고, 진천희는 열양기와 빙한기로 온도를 조절한다.
‘와, 이게 되네.’
여기에 내공까지 보조하니 마치 수정처럼 단단하고 매끄러운 거대한 유리 렌즈가 완성되었다.
“이렇게 열 개만 더 완성해 보죠.”
“허억, 허억……. 잠시만 쉬고.”
차크라탄트의 도움을 받았는데도 주술사들은 엎어져서 가쁜 숨을 쉬기 바빴다.
대형 돋보기.
아주 큰 대형 돋보기.
이렇게 틀에 넣고 만들고 나서 끝이 아니다.
어찌 보면 안경과 똑같다.
미세한 연마 작업과 코팅 작업이 필수다.
때문에 작업에 참여한 이들 모두가 지치고 힘들어하고 있다.
심지어는 진천희가 이걸 왜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해 주지 않았기에 더 힘들었다.
왕자가 무슨 수작을 부릴지 알 수 없으니 일이 끝날 때까지는 설명할 수가 없는 상황.
허나, 사람이라는 존재는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의 이유를 모르면 갑갑함을 느끼기 마련.
어릴 때 하던 블록 놀이도 뭘 쌓는지, 그래도 목표를 정하는 게 사람 마음 아닌가.
공룡이든, 집이든. 뭔가 그래도 소득이 있어야 한다.
“목표를 모르니, 원.”
“일단 둥글고 크게만 만들면 되는 건가? 매끄럽게?”
“그런 셈이지.”
“그릇으로 하기에는 너무 크고 말이지.”
“이런 걸 대체 왜 시키는지, 원.”
때문에 진천희는 슬쩍 사람들을 보며 달래 줘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여기서는…… 일단 먹는 걸로 달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