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59
제 759화
“아, 그 이야기군요. 으음……. 하긴, 성주님께서 인정하신 귀빈이시니 말해도 되겠지요. 도시 사람들 모두 다 아는 이야기다 보니 외인에게 그리 숨겨질 일도 아니니까요.”
다행이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저희는 대단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은혜라면?”
“미륵교의 성인께서 저희를 아부처(亞佛陀)로 만들어 주셨거든요!”
“아부처?”
뜻만 그대로 해석하면 부처는 부처인데 비슷한, 아류의 부처라는 뜻인데.
일단 그냥 부처와는 다른 모양이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적게 먹어도 배가 고프지 않고. 늘 활기가 넘칩니다. 아주 좋죠! 예전의 십분지 일만 먹어도 배가 불러서 늘 힘이 넘치게 살고 있습니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알통을 보여주었다.
팔이 통통했다.
“잠시만 진맥을 해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진맥을 해봐도 굶주린 사람의 맥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위장에 음식이 없을 뿐, 활력은 건강한 사람과 똑같네.’
진천희가 물었다.
“이상한 고기를 먹었다거나, 아니면 술법으로 썩은 고기를 새로 도축한 것처럼 바꾼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요?”
“아니요. 전혀. 그냥 가끔 생각날 때 조금 빵을 뜯어먹은 것으로 충분합니다.”
실로 이상한 이야기였다.
“그러면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귀빈께서는 편히 쉬십시오.”
병사는 인사하고 다시 도련님을 찾으러갔다.
그 모습을 보고 쟈시가 말했다.
“그 말대로면 정말로 큰 은혜군. 열흘 중에 하루만 먹어도 살 수 있다니. 그야말로 꿈에 그리던 천국 아닌가?”
“사람이 곰벌레가 아닌데 대체 어떻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여기는 뒤틀려 있다. 특히 저 아이는 주술에 저항하는 힘이 있더군. 보통 일이 아니다. 게다가 아부처라니…….”
쟈시는 그리 말하며 생각에 잠긴다.
진천희는 그런 쟈시를 지긋이 바라보더니 이윽고 짐에서 완농산 비스킷을 꺼내 쟈시에게 건넸다.
“어째 그대는 먹을 게 끊임없이 나오는군.”
“먹는 게 남는 거죠.”
효율이 별로 안 좋은 몸뚱이다 보니 계속 먹어치워야 한다는 말은 달리 하지 않았다.
여하륜이 말했다.
“일단 밤이 되면 탐색을 시작하자.”
쟈시도 그 말에 동의했다.
“그렇게 하는 게 좋겠지. 거기다 진천희, 네가 성주에게서 들은 락샤샤라는 놈도 문제다. 천축 설화에나 나오는 게 이곳에 있다니.”
진천희는 어깨를 으쓱했다.
“한번 까보면 알겠죠.”
“어째 자네는 전혀 놀라지 않는군.”
시귀와 주술과.
인간의 어둠, 그 끝을 본 진천희였다.
여기서 뭐가 더 얹어진들 충격받을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보다 일카나가 걱정인데.’
* * *
해가 지는 동안 진천희는 이것저것 만들어서 모두와 나누어 먹었다.
불을 피우고 싶었지만 부엌에 들어갈 수가 없으니 열양기로 덥혀야 하는 상황.
여기에 겸사겸사 이름 모를 환약과 주사기, 투명한 유리병 같은 것들을 금혈방 기물 안에 넣고 혁대에 돌돌 말아 준비했다.
“형은 준비를 많이 하는군.”
“의술의 기본은 첫째도 장비고, 둘째도 장비야. 약 없고, 주사 없고, 소독제 없이 뭘 하겠냐.”
붕대까지 야무지게 준비하는 것을 보며 여하륜은 기가 막혔다.
“어떻게 저게 다 들어가는 거지?”
진천희는 손등을 감싸는 손목 보호갑을 보여주었다.
“이 안에는 장침이랑 부술용 바늘이 들어있다. 스승님이 돈 좀 써서 사천당가 암기랑 똑같은 재료로 만들었어.”
“그것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보호가 되겠군.”
“사천당가 암기를 가로세로로 빽빽하게 꽂아놓은 형국이니까 그런 셈이지. 대신 많이 무거워. 손목갑도 천잠사까지는 아니어도 백잠사 정도는 되고.”
“그 스승은 이래도 되는 겐가. 제자란 본디 보호하려면 보호할수록 더 약해지는 법이거늘.”
쟈시는 제갈린의 과보호가 못마땅한지 헛기침을 했다.
진천희가 답했다.
“의원으로서의 사제지간인 셈이니까요. 주술사나 강호 무인들의 사제지간과는 많이 다릅니다.”
“도제라도 이렇게 싸고돌지는 않네.”
“하하하, 유리 공방 장인들에게 많이 들었습니다. 배울 때 스승님께 눈물이 나도록 맞았다고.”
“그게 다 사랑이지.”
“그렇긴…… 한데. 스승님께서는 대련 외에는 폭력을 쓰시는 일은 거의 없으세요.”
그 대련이 토할 만큼 지독하게 힘들 뿐.
‘그러고 보면 스승님이 강호에서 좀 유별나기는 한가.’
그렇기에 진천희와 잘 맞는 걸 수도 있겠다.
여하륜이 말했다.
“목숨의 은인인데 그 정도는 해줘야지. 그리고 형이 다른 의원들처럼 안전한 곳만 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
“그게 걱정이 되면 혈린은 형을 마교로 보내야 한다.”
왜 결론이 그쪽인 걸까.
진천희는 거기까지 생각하고는 황구의 목과 등에도 짐을 옮겨 담았다.
컹!
“황구가 있어서 확실히 편하다니까.”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창 너머로 땅거미가 지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앉아서 시간을 조금 더 보내니 독채를 지키던 경비병까지 어딘가로 사라지고 사방에는 풀벌레 소리만이 고요했다.
창 밖에는 간간히 촛불을 켜놓은 집이 보였지만 그저 그뿐.
다른 도시들처럼 밤늦게까지 장사하는 곳은 거의 없어 보였다.
“슬슬 가볼까?”
그 말과 함께 세 사람은 동시에 밖으로 나왔다.
“쟈시, 따라오기 힘들면 황구를 타세요.”
“그럴 필요 없네.”
정령술이 신체를 이렇게까지 강화시켜줄 수 있는 걸까.
진천희는 쟈시가 하고 있는 금술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짐작하고 있었으나, 그것을 깰 방법은 좀처럼 생각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모든 주술은 대가를 동반하지 않던가.
라단 왕자가 어떻게 죽었는지 아직도 기억에 선연했다.
진천희는 그 기억을 없애기 위해 고개를 휘휘 젓고는 거리로 나갔다.
‘걱정해봐야 의미 없어. 방법을 계속 생각해보자.’
현원전단신공과 양의신공은 한 번에 여러 가지 생각을 계속 돌릴 수 있게 해준다.
‘포기하지 마라.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보면 답이 나오겠지.’
그게 바로 제갈세가 개파조사 제갈량께서 이 신공을 만든 이유 아니던가.
그런 진천희를, 그런 형의 푸른 눈을 여하륜은 바라본다.
‘형은 대체 어떤 결말에 도달할 생각이지.’
늘 그래 왔다.
소의선은 언제나 풍경을 바꾸는 존재였으니까.
제아무리 지옥 속이라고 하더라도 그랬다.
그는 빛을 향해 꽃을 피운다.
설령 그로 인해 뿌리가 탈지언정.
* * *
“아무리 돌아다녀 봐도 일월신교 교인들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군.”
“그뿐만 아니네. 미륵교, 혈선교 할 거 없이 전혀 꼬리도 안 비치는구만.”
“그러네요. 가축도 안 보이고요.”
밤이니 닭 우는 소리는 안 들려도 으레 개 짖는 소리 정도는 들리기 마련이다.
그조차도 없는 적막 속.
완벽한 어둠 속을 세 사람은 걸었다. 진천희가 말했다.
“일단 흩어져서 찾아보는 게 더 빠를 것 같군요.”
그렇게 세 사람은 각자 흩어졌다.
진천희는 황구를 데리고 우선 여관으로 향했다. 근방에서 유일하게 불이 켜진 곳으로, 사람의 인기척도 느껴졌으니까.
여관에 들어가 보니 사람들 중 몇이 술을 마시고 있다.
‘여전히 안주는 없군.’
모두가 술잔만 기울이고 있는 상황.
위장은 안녕하신지 걱정이 되었지만, 애초에 열흘에 한 번 밥을 먹는다는 양반들이다.
‘진짜로 아부처인가 뭔가가 된 걸까?’
쟈시가 말했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그야말로 꿈에 그리던 천국이라고.
‘정말 그럴까?’
진천희를 알아본 여관 주인이 말했다.
“낮에 들어왔다던 외지인이군그래. 성주의 손님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후덕한 인상의 여관 주인은 허허롭게 웃으며 진천희를 맞이했다.
“소문이 벌써 돌았습니까?”
“최근에 외지인이 거의 안 오니까 말이오. 옛날에는 그래도 수행자라도 왔었는데 우역이 돈 이후로는 그마저도 뚝 끊겼소. 덕분에 나도 장사가 안 되서 죽겠지. 하긴, 먹을 것도 없으니 외지인이 온들 무슨 소용이겠냐마는.”
모두가 아부처가 된 도시.
누구도 먹을 것에 목숨을 걸 필요도 없는 곳.
사람들의 마음은 누구보다 편안해 보였다.
주인이 물었다.
“그래서 뭘 드릴까? 줄 거라고는 술밖에 없다만.”
“술은 많이 남았나 보군요?”
“술로 배 채울 수 있는 건 아니잖소. 게다가 여기는 광산이오. 원래 술을 많이 쟁여 놨지. 먹을 거는 두 달 만에 거의 다 떨어져 버렸지만.”
광부들은 술이 없으면 일을 하지 않는다고 여관 주인은 장난스럽게 투덜거렸다.
“일단 술 한잔 부탁드립니다. 먹을 건 아예 안 됩니까?”
“되긴 되지. 하지만 비싸오.”
“얼마죠?”
“금화 하나. 그것도 마른 육포 두 덩이에 말린 야채 정도네.”
말도 안 되는 가격.
‘아니, 은도 아니고 금?’
이곳의 금화도 중원의 금전과 가치는 비슷하다.
애초에 금본위제의 세계에서 금이라는 건 어딜 가나 비슷한 가치를 가지고 있으니까.
‘뭐 이딴 폭리가……?’
하지만 일단 조사를 위한 것. 제대로 된 육포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술 한잔, 그리고 육포도.”
진천희는 그리 말하고는 금전을 손가락으로 튕겨 날렸다.
“여기 화폐는 아니군. 금이 맞나?”
그리 말하고는 한번 깨물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금이 맞군.”
“네.”
“과연 화 제국 사신이야. 통이 커. 자네 신변은 괜찮나? 아무리 저런 개를 데리고 다닌다지만 강도 안 만나게 조심하게나. 하긴 이 도시에 남의 돈을 빼앗으려는 파렴치한 따위는 없긴 하다만.”
진천희는 이번에는 철전을 꺼내서 그것을 손가락으로 쥐었다 폈다.
흡사 종잇장처럼 구겨지는 철전을 보며 여관 주인이 물었다.
“허……. 요술인가?”
“차크라탄트 같은 겁니다.”
“전사였군. 예쁘장하게 생겨서 몰랐구먼. 잠시 기다리게.”
자리에 가 앉아 있으니 황구가 조용히 진천희 발아래에 누웠다.
여관 주인은 그렇게 술과 육포 두 덩이, 말린 당근을 내려놓았다.
컹!
황구가 바로 자기를 달라며 조른다.
“너는 그렇게 많이 먹고 또 먹니?”
그리 말하고는 냄새를 맡는다. 평범한 육포다.
황구와 나란히 나누어 먹었는데 역시나 그냥 육포였다.
소고기로 만든 육포.
‘역시 인육 같은 건 아닌 모양인데…….’
밥 먹을 때마다 독 대신 인육 걱정을 해야 하는 처지에 조금 서글퍼졌지만 이 육포는 정상이 맞았다.
진천희는 생각에 잠겼다.
‘아니, 여기에도 단서가 없네. 이러면 일월신교 사람들은 어디 가서 찾아야 하지? 혈선교도 찾아야 하는데.’
그때 술집 주인이 진천희 건너편 의자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그래, 외지인이자 성주의 손님. 외부는 요새 어떤가?”
외부 소식을 듣고 싶어 하는 모양이었다.
‘차라리 잘됐군. 이 주인과 친해져서 정보를 따내 볼까?’
그리 생각하며 적당히 외부 이야기를 했다.
왕도는 정상화되었고, 우역이 종결되면서 주변의 식량과 가축을 사들여오는 한편, 국가 정상화를 위해 왕궁에서 움직이고 있다.
이런 것들.
중간에 왕자라든가, 지하 유적 같은 이야기들은 쏙 빼놓았다.
“어이쿠, 덕분에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는구만. 고맙네.”
여관 주인은 연신 진천희에게 감사를 표했다.
주는 것이 있으면 받는 것도 있는 법. 진천희는 이번에는 여관 주인에게 반대로 물었다.
“구원에 대해 아는 게 있으십니까?”
경비에게 들은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아아. 미륵교의 성자께서 수행이 없이도 부처가 되는 비약을 내려 주셨지. 사실 진정한 부처라고 하기에는 모자라기에 아부처라고 한다네.”
“아부처……. 그런데 비약이요?”
약을 먹으면 그 아부처라는 게 가능하다?
“그렇다네.”
“호오.”
“부처께서 말씀하시기를 번뇌야말로 해탈을 막고, 윤회전생을 떠돌게 만드는 원인 아니겠나?”
“그렇지요.”
“그렇기에 미륵교의 성자께서 번뇌 중 하나인 굶주림을 면하게 해 주셨지.”
번뇌를 멸하기 위해 배고픔도 없앤다. 신박한 발상이었다.
‘그래. 교리상 뭐 대충 아다리가 맞는 느낌……도 드는군. 말만 들으면 세상에 천국을 가져다 줄 느낌이야.’
하지만 그저 그것뿐이라면 대체 뭐지?
왜 여기서?
그가 말을 이었다.
“그 비약을 먹으면 본래 먹던 것은 십분지 일만 먹어도 배고프지 않고 건강하다네.”
열흘 중에 하루만 날을 잡아 밥을 먹으면 충분하다라.
“도시 사람들 전부가 그렇게 된 건가요?”
“그렇지. 안 그랬으면 지금 이미 아사자가 속출했을 게야.”
이 눈, 알고 있다.
구원자를 보는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