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68
제 768화
진천희는 묘하게 백천군에게서 기시감을 느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자였다.
허나, 현원전단신공으로 아무리 뇌 속을 뒤져봐도 이 강호에서 저런 놈을 만난 적은 없었다.
이 이야기를 여하륜에게 전음으로 하니, 여하륜이 답했다.
[그런 건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죽이고 가면을 벗기면 알게 되겠지.]힘은 모든 것을 쉽게 만든다.
백천군이 말했다.
“혹여라도 제가 이 사태를 예측하여 일부러 이랬다고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이기에 할 뿐이니까요.”
그가 춤을 추자 모래가 응답하듯 흔들린다.
“악의는 없습니다.”
“악의는 없다?”
“네. 기쁨은 있지만요.”
“기쁨?”
“네. 저들을 구원함으로써 저의 공덕이 깊고 넓어졌으니, 이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나요?”
광기가 공기를 잠식했다. 현원전단신공의 단점이 하나 있다.
그리 공감하고 싶지 않아도 상대의 사고회로를 너무나도 쉽게 이해하고 마니까.
그렇기에 진천희는 힘껏 그의 사상을 거부했다.
쟈시가 물었다.
“죽여도 되살아나는 것은…… 혼백을 너에게 저당 잡혔기 때문인가.”
“물론입니다. 적어도 이 도시의 권역 내에서 저들은 죽어도 되살아납니다. 혼백을 일부 주시면 부활도 해드리는 훌륭한 방침이지요. 이렇게 밑지는 장사가 없습니다요♪”
화악.
순간 뒤에서 강렬한 기도가 밀려온다.
뒤를 돌아보니 여하륜의 몸 전체에 기운이 불길처럼 일어나 타오르고 있었다.
“네놈…….”
천살성이 분노한다. 여하륜이 분노한다.
두 존재는 본시 하나.
합일된 분노로 천살성인 여하륜이 대로하여 살기를 흘렸다. 그것만으로도 주변의 공기가 칼날처럼 날카로워진다.
두 눈이 서로 다른 색으로 빛난다.
하지만.
진천희는 바로 싸우지 않기로 했다.
아직 알아내야 할 정보가 있다.
“하륜아, 잠시만. 조금만 시간을 줘. 물어볼 게 있어.”
진천희와 여하륜의 시선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보통은 말을 잘 듣는 착한 동생 여하륜이지만, 지금은 전설에 나오는 투신처럼 타오르며 진천희를 바라보고 있다.
반드시 백천군을 죽이겠다는 단단한 의지.
그것은 멸해야 할 악(惡)이었다.
‘그래. 이게 주인공이지.’
진천희는 속으로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조금이면 돼.”
“기다리지.”
여하륜이 뒤로 물러선다. 그의 두 눈 색은 여전히 다르다.
합일을 이룬 여하륜은 아득히 인간을 벗어나버린 존재.
이런 그를 설득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쿠그그그-
진천희가 할 수 있는 것은 잠시 시간을 끄는 것뿐.
여하륜에게서 시선을 돌려 백천군을 바라보았다.
녀석은 여전히 우아하게 몸을 돌리며 춤을 추고 있다.
마치 지금은 거의 하지 않는 오래된 고전극과 같은 움직임.
“백천군. 저 사람들을 본래대로 되돌릴 방법이 있습니까?”
“이미 잡아먹힌 자를 어찌 살릴 수 있겠습니까. 음, 불가능한 것은 아니나 모두를 살리는 것은 불가능하겠죠.”
“하긴, 자원이 드는 일일 테니.”
혈선교가 죽은 사람도 되돌리는 대단한 집단이라고는 하나, 기껏해야 하나, 둘.
약을 먹은 도시 사람 모두를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되돌리는 것조차도 말도 안 되는 대가를 요구하게 될 터.
‘어쩔 수 없는 건가.’
깨진 유리잔에 구원은 오지 않는가.
아무리 조각을 이어붙인들 두 번 다시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한번 그어진 실금은 영원히 함께하게 될 터.
고작 유리잔도 그럴진대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은 말할 것도 없겠지.
“그러면 여기서 당신이 하고 있는 것은 그저 공덕을 쌓는 것뿐이다?”
“네.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가급적 반선의 씨앗 당신에게도 손을 대고 싶지 않았다고요.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당신의 가치에 비해 져야 할 위험이 너무 크다고나 할까요?”
그것은 그동안 만나 왔던 십천군과는 너무 다른 시각이었고, 그렇기에 더욱 두려웠다.
그는 미쳐있고 피를 갈망하며 사방에 광기를 흩뿌리고 다니나, 결코 거짓말을 하는 법이 없고.
오히려 인간 자신의 광기를 즐거이 관조하고 있지 않은가.
‘백천군. 대체 뭐 하는 자이지?’
진천희는 그를 뜯어본다. 분명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자인 기분이 든다.
허나 아무리 기억을 뜯어 봐도 저런 걸음걸이와 습관을 가진 자는 없었다.
제아무리 머리색을 바꾸고 말투를 바꾸고 축근공으로 체구까지 바꾼다 하더라도 인간이기에 가지는 무의식적인 습관이 있을 터.
‘……그것까지 바꾸는 게 가능한가.’
만약 그게 된다면 같은 현원전단신공급의 경지이거나, 초일류 살수를 뛰어넘어야 가능했다.
여하륜이 말했다.
“안전주의자군.”
“그렇습니다. 저는 겁쟁이이고, 안전을 중요시 여기는 합리적인 상인이니까요.”
백천군이 춤을 멈춘다.
“하지만 어차피 저를 살려서 보낼 생각은 없어 보이는군요. 천살성.”
“혀가 길군.”
그 순간, 여하륜이 기세를 폭발하듯 발출한다.
알고 있다. 어차피 이 이상 대화를 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결국 마지막에 남은 것은 강호의 진리.
강자가 곧 법이며, 그가 곧 선(善)이다.
잔혹한 협(俠)의 원리 속에서 모두가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화아아악-!
잿빛 모래가 요동친다.
황구가 본래 거대한 모습으로 외형을 바꾸었다.
쟈시가 가죽을 부풀려 늑대로 만들어 내고, 여하륜의 몸에서 흘러내린 살기가 불길이 되어 타오르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진천희는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뎌 회색 모래를 밟았다.
‘그래. 싸워야 한다면. 싸워야겠지.’
무공이 실존하는 이 세계에서 개인의 선악 따위는 상관없다.
강자존의 진리 안에서 산 자만이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을 터.
진천희의 눈에 빙하가 스민다.
동시에 사방이 폭발했다.
콰아아아앙!
진천희의 몸이 유리구슬처럼 튕겨져 나갔다.
그러나 진천희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새파란 빛을 내는 눈동자로 거대 두개골 위의 백천군을 응시한다.
천천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진천희는 여하륜과 쟈시에게 전음을 보낸다.
[쟈시. 회령사 모래에 대해서는 진입 전에 이미 이야기했었으니 대응 잘 부탁드릴게요. 하륜이 너도.]전음은 보냈지만, 시간 때문에 아직 전음은 둘에게 닿지 않는다.
소리조차도 멈춘 세계.
고독한 시간 속에서 진천희는 다음 움직임을 생각했다.
초월심무‘들’이 극성으로 사용되면서 세계는 더욱 극명해진다.
진천희는 즉시 한 손을 모아 강하게 기를 응축시켰다.
기는 강기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더욱 응축되어 강환(强環)이 된다.
강기가 더욱 압축되어 흡사 구슬처럼 되는 것.
현경에 이른 자가 아니라면 쓸 수 없다고 알려진 것.
절대의 파괴력을 지닌 힘.
하지만 진천희가 현경에 도달한 것은 아니기에, 이것은 진정한 파괴의 산물이 아니다.
유사 강환!
그러나 그 위력은 역시 강기를 상회했다.
동시에 오행신공의 공능과 패천무상신공의 오의.
거기에 남궁세가의 비전인 천뢰제왕신공(天雷帝王神功)의 무리가 하나로 뒤섞인다.
손에 뇌전이 일어나 파직거린다.
그 느려진 시간 속에서 진천희의 손가락이 유사 강환을 쏘아낼 준비를 끝마쳤다.
탄지천통 최종오의.
탄지천통.
무공의 이름 그대로. 하늘을 관통하는 탄지공!
거기에 진천희가 융합해낸 무리인 천뢰패천이 뒤섞여 폭발했다.
콰릉!
번개가 내리꽂혀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느려진 시간 속에서도 무시무시하게 빠른 강환이 공간을 찢으며 쏘아진다.
그것은 흡사 SF 소설에나 나오는 레일건과도 흡사했다.
진천희는 붙잡았던 시간을 푼다.
그러자 시야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며 모든 것이 원래 속도를 찾았다.
쿠과과광!
회색 모래가 잿가루처럼 흩날린다.
회령사가 흡사 해일처럼 일어나 강환을 막아서고 그 위력을 감쇄시킨 사이, 백천군이 손을 뻗어냈다.
“과연 반선의 씨앗! 대단하군요.”
그는 솔직하게 감탄하며 강기로 된 권격을 던져낸다.
콰쾅!
약화되어 불안정해진 강환은 권강기와 충돌해 폭발하고, 그사이 여하륜은 천마군림보를 사용하며 앞으로 ‘걷기’ 시작한다.
쿠구구구궁!
모든 것이 짓눌린다.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움직이던 회령사가 보이지 않는 거인의 손에 내리눌린 듯 바닥에 달라붙어 일어서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천마군림보.
모든 것을 무릎 꿇리는 천마신공의 진정한 힘.
그렇게 걸으며 여하륜의 두 눈이 서로 다른 빛으로 타오른다.
“죽어라.”
그리고 말 한마디와 함께 여하륜의 두 손이 합장했다가 떼어진다.
그곳에는 여하륜이 자주 사용하는 천마신공의 절초가 생겨나 있다.
파천일공.
고요하게 주변의 모든 것을 끌어당겨 압착기처럼 우그러트리는 천마진기로 생성된 강환.
흡사 블랙홀과 같은 그것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날아간다.
‘뭔가 이상한데?’
그리고 진천희는 그 모습에 위화감을 느낀다.
백천군은 가만히 서서 환하게 웃는 채로 그 모습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으니까.
그리고 파천일공이 그 전면에 다다랐을 때.
불현듯 백천군이 손을 내뻗었다.
그의 손에는 회색의 모래가 요동치며 둘러져 마치 악마의 손처럼 변해 있다.
그 손이 파천일공을 부여잡는다.
콰칭!
키이이이이이이이기기기기기기기기긱!
철판을 긁어내는 것 같은 소리가 난다.
바닥에서부터 무시무시한 양의 회색 모래가 그 손으로 향한다.
그리고 잠시 후. 놀랍게도 파천일공은 소멸했다.
‘저게 된다고?’
경악스러운 모습.
“아하하핫! 이거…… 정말 강하군요. 회령사를 이만큼이나 소모하게 만들다니. 대단해요. 대단해.”
“그간의 혈선교의 잡것들과는 다르구나. 그렇다면…….”
여하륜의 두 손에서부터 천마진기가 흘러나온다.
그것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불길한 어둠처럼 생겼다.
그것들이 손에서 흘러나와 허공에서 뭉쳐 회전한다.
진천희는 저것이 뭔지 안다.
“이걸 받아보아라!”
천마신공 파천일공.
흑천개문(黑天開門).
하늘을 연다는 뜻은 사실 반어법이다.
저것은 기존의 파천일공을 초월하는 무공.
검은 하늘로의 문이 열리는 순간.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가며 소멸해 버린다.
그야말로 지고의 파괴 무학!
쏴아아아아악!
회령사가 미친 듯이 빨려 들어간다.
주변의 공기까지 끌려가는 상황에서 백천군이 웃음을 터트린다.
“하하하핫! 좋아요. 좋습니다! 천살성의 진정한 힘……. 예전에도 맛봤었지만. 역시 각별하군요! 그러나, 이번에는 제가 이길 겁니다!”
백천군이 밟고 선 용의 머리뼈에서 빛의 운무가 생겨나 그대로 백천군에게로 빨려 들어갔다.
동시에 주변의 모든 회색 모래가 펑! 하고 굉음을 내며 폭발해 일어났다.
콰아아아아아!
그것은 모래로 된 작은 해일.
진천희의 몸 역시 허공으로 튕겨 나가고, 그것은 여하륜 역시 마찬가지였다.
진천희는 즉시 빙정검을 뽑아내며 소리쳤다.
“황구, 물러나!”
새하얀 얼음 같은 검기가 일어났다.
모래의 파도를 향해, 그리고 자신의 발밑에서 폭발하는 모래를 향해 한 호흡 만에 수십 번의 검을 내뻗는다.
콰지지직!
모래가 얼어붙으며 떨어져 내리지만, 곧 새로운 모래가 쏟아져 나왔다.
‘이대로는…… 지겠군! 저 용의 두개골에서 힘을 끌어내서 사용하는 건 확실해! 저걸 막지 않으면 소모전을 강요당할 거야!’
우르르르릉! 콰쾅!
‘하륜이의 흑천개문이 저지당하는 소리!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진천희의 사고가 가속한다.
이대로라면 확실히 회령사에 휩쓸려 죽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