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7
제 77화
“칼. 겸자. 뜸 준비. 가지고 온 식염수.”
살을 가른다. 강제로 죽은피를 빼냈다. 그리고 재빠르게 봉합했다. 동상을 입은 발과 손을 살리기 위해서 그 죽어 버린 살덩이의 죽은피를 빼낸 것이다.
동시에 방주의 단전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내 진기로는 죽은 신경세포를 재생하는 것은 불가능해. 양이 부족하니까. 비록 기혈이 엉켜 엉망이라지만 내공 그 자체는 오행신공을 이용해 억지로 끌어서 사용할 수 있어. 그러니 이걸 이용해야 해.’
“장침.”
진천희의 손에 장침이 쥐어진다. 그것을 찔러 넣고, 동시에 오행진기를 흘려 넣었다. 오행진기가 개방주의 웅후한 기와 닿았다.
본래라면 이종진기의 충돌로 더욱 크게 주화입마가 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하지만, 진천희는 땀을 뻘뻘 흘리며 정신을 집중하고 기를 제어하기 위해서 이를 악물었다.
마치 갈대처럼. 흔들거리듯 오행진기를 흘려 넣고, 그걸로 상대의 기운을 움직이려고 했다.
‘움직여!’
툭. 툭. 투욱.
‘움직이라고!’
화악!
방주의 내공이 노도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방주의 몸 전체에 꽂힌 침들이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주화입마 때문에 엉망진창으로 흘러야 할 진기가 침에 의해서 제어되어 전신으로 번져 나간 것이다.
‘됐어! 그러면 이제는 저것만 되면…….’
출혈이 단번에 멎는다. 상처가 봉합되었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이미 예상한 바.
이제부터가 진짜이기에 진천희는 눈을 부릅뜨고 동상 부위를 바라보았다.
아까 칼을 대어 갈랐던 곳에서부터 썩은 피가 왈칵 흐른다. 그리고 이내, 맑은 피가 흘러나오는 게 보였다.
동상 때문에 시커메진 발과 손에 무수히 꽂힌 침들이 기를 맞이해서 흔들거렸다. 그걸 진천희는 두 눈을 부릅뜨고 쳐다본다.
그리고 보았다.
까딱. 까닥.
손가락이 까닥거린다. 근육이, 신경이 살아 있다!
“저…… 저럴 수가! 얼어서 괴사한 손이 움직이다니!”
“과, 과연 각주님의 수제자로구나!”
주변의 의원들이 놀라며 하는 소리를 진천희는 듣지 못했다. 방주의 단전에 꽂은 장침을 뽑아내기 위해서 다시 한번 심력을 쏟아야 했기 때문이다.
단전은 내공을 모으는 장소.
그곳에 침이 들어가는 것도 어렵지만, 빼내는 것도 보통의 일이 아니었다.
진천희는 최후의 순간까지 심력을 집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의원들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눈에 새기겠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 * *
노사는 혼몽을 꾸었다.
개방의 방주가 되기 전, 한 아이를 주울 때의 이야기였다.
겨울 산, 어린아이가 나무에 깔려 울고 있었다.
산의 밤은 빠르고 깊고 차갑다. 오늘이 지나면 이 아이는 늑대에게 물려 죽든, 얼어 죽든 할 것이 분명했다.
당시 지금보다는 젊었던 노사는 아이를 향해 내려갔다.
‘부모님은 어디 계시더냐?’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이윽고 ‘이젠 혼자예요’라고 힘든 목소리로 답했다.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입은 옷치고는 꽤 때깔이 고왔기에 이상하긴 했다.
‘의탁할 친척은 없느냐?’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의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렸다.
‘가진 건 거지 밥밖에 없는데 그거라도 먹으련?’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젊었던 노사는 아이를 등에 업었다.
‘우선 의원을 찾아가자꾸나. 밥은 그다음에 먹고. 그리고 관아에 맡길 테니 그러면 연고자가 누구든 찾아와 주겠지.’
‘할아버지는 누구세요?’
지금보다 젊기는 했지만 노사는 그때도 노사였다.
‘거지다.’
‘그거 나쁜 직업이라고 했는데…….’
‘크크크, 거지 덕에 살아남은 주제에 말도 잘하는구나.’
아이는 노사의 등에 뺨을 문댔다. 작고 차가운 뺨이었다.
자식은커녕 정인도 만들지 않았다. 거지새끼가 가족을 만들어서 뭐 하누 싶었다.
하늘을 천장 삼아, 땅을 이불 삼아 일생 동안 강호독보를 하며 살아 온 노사였다.
노사는 아이의 이름도 묻지 않았다.
그저 의원에게 맡기고 밥을 먹인 후, 관아에 넘겼다.
그렇게 보름.
누구도 아이를 찾지 않았다.
백 일이 되었을 때 노사는 그제야 아이에게 이름을 물었다.
‘설화요. 성은 몰라요.’
기이한 일이었다. 이름은 알면서 성은 부모가 가르쳐 주지 않다니.
그러나 어린아이, 까먹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넌 뭘 할 거니.’
‘할아버지 같은 거지 할래.’
‘예끼! 욘석아! 거지가 뭐가 좋다고…….’
‘싫어! 할아버지처럼 거지 할 거야! 거지 좋아! 거지!’
‘절대 안 된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는 절대 안 돼!’
‘할! 거! 야아아아!’
설화는 그때부터 고집이 보통이 아니었다.
* * *
노사는 천천히 눈을 떴다.
‘일생에서 가장 잘했던 일이 있다면 그때 너를 구한 것이었겠구나.’
노사는 아이를 거두고 강호독보를 포기했다. 그러고는 그 아이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전수했다.
비록 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그에게 있어 손녀딸과 같은 아이였다.
노사는 사지를 움직여 보았다.
“…….”
팔다리에 감각이 전혀 느껴지질 않았다.
‘마치 나무토막 같구나. 두 개는 살릴 수 있다 들었는데, 역시 사지 전부를 잘라 냈어야 했나.’
허탈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이다.
‘하지만 아직 그 아이에게 전해 주지 않은 게 많아. 그걸 다 전해 줄 때까지는 아직 죽을 수 없는 일이지.’
형식적으로 개방의 방주가 되었을 뿐, 빈껍데기다. 강호의 비사부터 개방의 숨겨진 은신처들, 그리고 방주만이 접근할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전해 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
‘거기에 팔다리는 필요 없지. 암…….’
구멍 뚫린 가슴을 억지로 감추며 호기롭게 웃어 보였다.
‘내공도 남아 있으니 전해 줄 수도 있을 거고.’
하늘이 도와주셔서 이런 귀한 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구나.
노사는 그리 생각했다.
그때 진천희가 안으로 들어왔다.
“깨어나셨군요!”
밝은 목소리다.
“아이야, 구해 줘서 고맙다. 이 은혜는 개방이 절대 잊지 않을 거란다.”
“은혜는 무슨, 우선 환부부터 잠시 확인할게요.”
그렇게 말하며 가죽 모포를 젖히는데 곧바로 설개의 목소리가 울렸다.
“영감!”
“왜 그러냐. 미친개야.”
그녀는 달려와 노사를 끌어안으려고 했다. 하지만 환자라 어쩌지도 못하고 허공에 팔다리만 휘저었다.
그 모습이 참 우스꽝스러워 노사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여간 이 상황에도 주접은 여전하구나.”
“사람이 얼마나 걱정했는데 그런 소리를 해!”
“끌끌끌…….”
노사는 웃음을 흘렸다. 눈이 퉁퉁 부은 설개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쓰디쓰다.
“살아 있으면 된 거지. 그걸로 된 거 아니겠느냐.”
“하여간 말이라고…….”
그녀는 다시 눈에 물기가 맺힌 건지 몰래 손등으로 얼굴을 훔쳤다.
노사는 생각했다. 아직 줄 것이 남아 있다고. 그때까지는 절대 죽지 않겠다고.
진천희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더 잘했어야 했는데…….”
한숨이 동굴을 덮었다. 그러나 노사는 훌훌 털듯이 고개를 저었다.
“백린의선이 왔어도 이보다 더 잘할 수 있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네.”
“하지만…….”
“괜찮네.”
설개가 말했다.
“그래. 백룡 꼬마는 최선을 다했어. 그 정도면 엄청 잘했지.”
“아닙니다.”
목소리가 깊게 내려앉는다.
“결국 손가락 둘은 잘라 냈어야 했으니까요. 내공도 상당 부분 소실되었고요.”
“하지만 몸조리만 잘하면 다시 무공을 쓸 수 있다며?”
“네. 무공을…….”
그 순간, 노사의 머리에서 빛이 번쩍했다.
“뭐, 뭣이, 무, 무공? 소, 손가락 둘? 두 개라 했느냐?”
진천희는 착잡하게 말했다.
“네. 오른손 검지와 중지, 둘을 살리지 못했습니다. 무림인에게 중요한 손가락인데…….”
“아, 아니! 그게! 그게 아니고!”
노사는 일생 동안 느꼈던 최고의 충격을 함께 느끼고 있었다.
“손가락 둘만 없어지고 사지는 살아 있다는 말이냐!”
노사가 소리치자 진천희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네! 나머지는 정양만 잘하시면 회복하실 겁니다.”
“살았다고!? 내가! 다시 타구봉을 쥘 수 있다고?!”
“물론 손가락 두 개가 없어지셨으니 예전처럼은…….”
“……그게 무슨 소리냐! 사지가 없어질 뻔했는데 고작 손가락 둘 없어진 걸로 누가 뭐라 한단 말이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방금처럼 허탈감 나오는 웃음이 아니었다.
“살렸구나. 그걸 살렸어. 그걸 살려 내다니……!”
노사의 눈이 물기로 붉어졌다.
“미친개야. 내 아직 널 위해 더 해 줄 수 있는 게 있는 모양이구나.”
“응? 내 뒤통수를 더 때리겠다는 말이야?”
“하하하하. 그래. 그런 뜻이다. 욘석아!”
입이 아니라 이제는 직접 가르칠 수 있었다.
그 말에 설개가 말했다.
“영감, 이제 영감도 정정한데 이거 돌려주면 안 돼?”
허리춤에 건 매듭이다.
개방주의 상징이었다. 노사는 고개를 저었다.
“늙은이 좀 그만 괴롭혀라. 나도 좀 쉬자.”
“하여간…… 나만 죽어나겠네.”
툴툴거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맑았다. 심마에서 벗어난 그때의 그 목소리.
고집스럽고, 독하고,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무엇도 놓치지 않는 그 목소리였다.
“미친개야.”
“응?”
“나는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널 주울 것이란다.”
“…….”
설개는 노사의 옆에 앉았다.
“나도 다시 태어나도 거지 할라요.”
“그러진 말고.”
“크흐흐흐.”
설개가 심술궂게 웃었다. 그러자 노사도 함께 웃어 주었다.
진천희는 그런 둘을 놔두고 밖으로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의사 생활 평생 동안, 한 번이라도 보고 싶어 했던 광경을 오늘 이루었다.
012. 흑과 백
일차 치료가 끝나고 상태가 안정이 되자 개방 방주를 백린의각의 분타로 옮겼다.
완전히 나을 때까지는 계속 정양을 해야 할 거고, 그러기 위해서는 약과 처치가 필요하다.
앞으로가 중요하다는 진천희의 말에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개방은 이 은혜를 잊지 않을 걸세.”
노사의 말에 설견도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 덧붙였다.
“후일 방주로서 백린의각 본점에 직접 찾아가도록 할게.”
과연 심마에서 벗어난 덕분인지 설개에서 이제는 설견(犬)이라고 불릴 만큼의 총기를 보여 주고 있었다.
다 같은 개지만 그래도 문자를 써 줄 정도로는 돌아온 것 같았다.
따악!
“아코!”
찻잔이 설견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방주는 무슨! 방주 노릇 하려면 멀었다, 이눔아!”
‘허공섭물도 가능하시구나, 노사님. 하긴, 오랫동안 개방의 방주직을 하셨던 걸 생각하면 내공이 일 갑자는 충분히 있으시겠지.’
문제는 그 허공섭물로 제자 놈의 뒤통수를 딱딱 때리고 있다는 거다.
“이 영감탱이가! 멀쩡히 간호해 주는 사람을 때려!”
“자리도 안 잡았는데 벌써 방주 대접을 받으려고 하니까 그렇지, 이눔아!”
겉으로 봐서는 원수지간도 이런 원수지간이 없다.
‘사이가 너무 좋아도 문제야. 허허허허.’
간호하는 제자와 깐깐한 스승이 투닥거리는 사이 진천희는 대충 인사하고는 훌쩍 나왔다.
더 여기에 붙잡혀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