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70
제 770화
그 짧은 순간, 진천희가 다음 공격을 이어 나가려던 때.
누구도 예측 못 할 일이 벌어졌다.
쉬리리릭!
회령사가 부러진 백천군의 왼손을 억지로 맞추고, 이어 붙이더니 그대로 속도를 낸다.
푹!
늑골 아래. 그나마 내장은 빗겨나갔다.
금강불괴에 준하는 육신이 아니었다면 방금의 일격으로 몸 전체가 갈라졌으리라.
면도날 같은 고통 속에서 진천희는 눈앞의 백천군을 보았다.
웃고 있다.
손이 부러지고, 어깨뼈가 으스러졌음에도. 녀석은 웃고 있었다.
“하하핫! 이럴 줄 몰랐죠? 이제 이대로 내장을 가르면 제가 이깁니다!”
꽈악.
“아하. 근육을 조여서 멈추고 있는 겁니까? 하지만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얼마든지. 언제든지.”
“하하핫! 왜 그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저들은 저들 스스로 저렇게 된 것뿐. 인간으로서 죽을지, 괴물이 되어 살아남을지를 선택한 것뿐이잖습니까. 당신이 이렇게까지 할 이유는 없을 텐데요?”
“아니. 있어.”
“흐음……. 무슨 이유죠?”
“광산에 지분이 있거든. 사람을 보낼 때마다 죽어 돌아오면 찝찝할 거니까. 그리고.”
우득-
진천희의 손목 위로 힘줄이 터질 듯 꿈틀거린다.
힘을 뺐는데도 이런 상황이면 좋지 못한 징조였다. 기혈이 한계까지 가속되고 있다는 증거니까.
“……그리고! 나는. 의원이니까. 환자가 있다면 뭐라도 해야지.”
의사는 사람을 구한다.
환자가 있다면. 구한다.
진천희는 그렇게 살아왔다.
“죽은 자들인데요? 그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요괴일 뿐입니다.”
“맞아. 하지만…… 아직 사망 선고는 안 했거든.”
‘나’라는 게 무엇인지.
낮에는 가족들을 사랑하고 하루를 지키며, 밭을 갈고, 광물을 캐는 자들.
그들이 과연 사람인지, 아니면 피해자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살인자인지 아직도 모른다.
모르기에 의원은 아직 사망 선고를 하지 않았다.
여하륜도 쟈시도 자기만의 답을 찾아냈다.
허나, 둔한 이 머리는 왜인지 마지막까지 정답을 구하지 못하여 이렇게 해매고 있었다.
그 답을 어쩌면 이곳에서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리고 한 가지 가르쳐 줄까?”
덥석.
옆구리를 찌른 백천군의 손을 진천희가 단단히 붙잡았다.
“네가 졌어.”
“하하! 어째서죠?”
“너는 혼자니까. 하륜아아아아! 쟈시이이이이! 황구야아아아!”
꽈악.
진천희는 온몸의 근육을 한계까지 조여 냈다. 그리고 백천군의 손목을 으스러지도록 쥐었다.
진기를 모조리 끌어 올리고, 거기에 잠력까지 끌어낸다.
화아아악!
“당신… 미쳤군요?”
백천군은 그런 진천희를 향해 얼굴을 가까이 내민다.
아까보다 더욱 웃고 있다.
“그래. 미쳤어. 그래서 다들 일광이라고 부르잖아.”
“하하하하! 하지만 저 역시 여기서 죽어줄 수는 없겠습니다!”
화악! 모래가 흩날린다.
회령사가 움직이며 진천희를 휘감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집채만 한 체구의 맹수가 하늘에서부터 떨어져 내렸다.
그 모습은 마치 신화 속에 나오는 해를 먹는 개와도 같았고.
쾅!
백천군의 목을 내리치며 떨어져 내린 황구.
그러나 목이 조금 눌렸을지언정 백천군은 그 일격에 쓰러지지 않았다.
촤아아악!
회령사가 그의 몸 전체를 휘감는다.
그리고 그는 아직 비어 있는-그러나 어깨뼈가 으스러진-팔을 들어 황구의 목을 잡는다.
“하핫! 상위 영물이 된 개라! 잘하면 견신이 될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명을 끊…….”
푸확!
용의 두개골 아래. 회색 모래 사이에서 나무뿌리가 신화 속 거목처럼 튀어나와 백천군의 몸을 찌른다.
회령사에 가로막혀 관통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 뿌리는 그대로 회령사와 함께 백천군의 몸을 옭아맨다.
그 순간.
백천군의 뒤로 여하륜 역시 나타났다.
여하륜의 모습은 전과는 완전히 다르다.
평소와 똑같으나 다른 모습.
껍데기는 분명 여하륜이 맞으나 알맹이는 여하륜이 아니었다.
기묘한 합일.
살기가 가득한 그 속에서 왼쪽 눈 하나만이 붉은빛으로 타오르고 있다.
흑룡 같은 눈은 적을 결코 놓치지 않는다.
“죽어라.”
여하륜의 손이 회색 모래를 뚫고 백천군의 몸을 꿰뚫었다.
“카하핫!”
백천군이 피를 토한다.
분명 백천군은 강했지만. 진천희가 스스로의 몸을 미끼로 붙잡아 둔 사이에 행해진 합공은 그로서도 버틸 수 없는 힘이었던 것이다.
“아아……. 이거 참. 정말 즐거워요. 즐거워. 이렇게 즐거운 건……. 정말 오랜만이란 말이죠.”
“그 즐거움도 여기서 끝이다.”
“과연 그럴까요?”
백천군이 히죽 웃는다.
그리고 용의 두개골이 어마어마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허튼 수작을 하는구나!”
쟈시가 회색 모래 아래에서 치솟아 오른다.
이제는 거의 인간을 잃어버린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처절하고 끔찍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는 우샤가 죽었을 때, 정령들의 저주를 모았을 때 이미 죽음을 각오했으니까.
이제는 통증조차 느껴지지 않는 몸을 관조하며 생각했다.
옛날로 돌아갈 수 없다고.
그래도 좋았다. 그를 죽일 수만 있다면.
이 원한을 토해낼 수만 있다면!
분노는 불이었다. 무언가를 태우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불.
그가 불이 되기로 선택한 이상 이 결말은 어쩔 수 없다고 그는 자조한다.
그렇기에 백천군에게 달려들어 그 목을 잡아 쥐어 부러트리려고 했다.
그러나 그 시도는 실패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
백천군의 몸에 남아 있던 회색 모래가 믹서처럼 회전하며 미증유의 위력을 만들어낸다.
그 힘이 사방으로 발산된다!
콰지직! 콰아아!
나무뿌리, 식물 줄기가 단번에 잘려나간다.
쟈시가 튕겨져 나가고, 여하륜 역시 그 힘에 뒤로 밀려 떨어졌다.
그러나.
진천희는 움직이지 않고 있다.
“핫? 당신……. 어떻게 견뎌낸 거죠?”
“역근세수경. 금강부동.”
진천희의 두 눈동자가 새파랗게 빛나고 있다.
* * *
강호의 세인(世人)들은 승려들의 문파를 이리 불렀다.
천년소림(千年小林).
강호의 거목(巨木).
그런 소림사의 최고의 무경(武經)은 역근세수경이라고 한다.
그것은 불경이며, 무경이기도 한 것.
그리고 그 오래된 역사 속에서. 역근세수경은 조금씩 강호에 퍼져 나갔다.
때로는 국가 간의 전쟁 통에 유실되고, 때로는 무영신투 같은 도둑이 훔쳐내기도 했으며, 때로는 심마에 빠져 마경을 접하게 된 파문 제자가 역근세수경의 일부를 가지고 도주하기도 했다.
그리고 제갈린은 거래를 통해서 역근세수경의 4개의 책 중 둘을 얻어내었으니…….
그 진전은 여기 제갈세가의 마지막 후계자에게로 이어져 있다.
-제갈 시주. 한 가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어떤 것이 궁금하신지요?
-이미 이십 년 전 역근세수경의 아뇩다라(阿縟多羅) 4개의 서책 중 다의 권(券)을 손에 넣으신 것으로 압니다. 제갈 시주의 천형을 고치기 위해서였지요. 그런데 왜 이제 와서 라의 권을 원하시는 것입니까?
과거 제갈린이 제자를 위해 했던 어떤 거래.
제자가 해사방을 상대로 다음 환자 들어오라고 외칠 때.
스승은 그런 미친 제자를 위해 다음을 안배하고 또 안배했다.
아뇩다라삼막삼보리(阿縟多羅三貘三菩提).
부처는 결국 무엇을 깨달았는가.
돈오(頓悟)가 가는 곳은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망념이 다다른 곳이 어디인지 제갈린은 잘 알고 있었다.
망념은 곧 집착이었다.
제자 하나를 살리기 위한 그의 집착.
왜 이렇게까지 하냐는 원진 대사의 말에 제갈린은 답했다.
-당연히 제자 녀석을 위해서지요. 그 녀석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지원하고자 요청을 한 것뿐입니다.
-진 시주는 확실히 아주 훌륭한 사람입니다만…… 제갈 시주. 부디 선업을 쌓으시기를 바랍니다.
-글쎄요…… 저는 이미 늦은 것이 아닐는지.
-아미타불…….
원진은 당시 제갈린이 하는 것이 탑을 깎는 석공과 같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올 환난 속에서 그놈만은 살아남기를.
오롯이 한 사람만을 위해 바치는 공(貢).
스승은 제자를 지킨다.
설령 그 자리에 없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안배해야 한다.
제자는 스승께 깊은 감사를 올렸다.
과거 스승님께서 놓았던 포석 하나.
천원(天元)도 화점(花點)도 벗어난 구석진 모서리에 놓은 돌 하나가, 그 포석이 살아남아 제자를 지켰다.
과거 제자가 스승의 목숨을 구했듯 스승 역시 제자의 목숨을 구해냈다.
아니, 구해내고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제갈린이 있든 없든 그것은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후우.”
진천희는 깊게 숨을 내쉰다.
모든 무리를 통달하고, 그것을 분석하여 사용하는 제갈세가의 직계 제자에게 그것은 숨 쉬듯이 당연한 일.
그리고 지금.
그 역근세수경의 무리를 이용한 무공을 사용해서 진천희는 여기에 서 있다.
두 다리는 대지에 뿌리를 내린 듯 꿈적도 하지 않고, 그 몸은 금강역사(金剛力士)가 된 듯 강기조차 통하지 않는 육신이 되었다.
옷은 넝마가 되도록 찢겨져 너덜거려 거의 알몸이나 다름없고, 옆구리에는 여전히 백천군의 왼손이 찔러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진천희는 굳건히 서 있었다.
백천군은 그 모습에서 경이(驚異)와 경외(敬畏)를 느낀다.
솜털이 곤두서는 짜릿함이 등골을 타고 샘솟는다.
“당신 정말 기이하군요. 진실로 당신 같은 인간은 본 적이 없습니다♪”
아프다.
목숨을 건졌다는 것과 별개로 통증도 없는 건 아니었다.
이렇게 뇌가 살려고 진통 호르몬을 뿜어대고 있는데도 통증은 화끈하다.
현원전단신공으로 고통을 밀어내려다가 포기한다.
고통에 둔감해진다는 건 손끝도 둔감해진다는 뜻.
거기에 내력을 쓸 만큼 상대가 호락호락한 상태가 아니기에.
“이참에 실컷 보십시오.”
“아아. 물론이죠! 당신을 잡아서 꼭 표본으로 만들고 싶군요. 봐도 봐도 안 질리지 않을까요?”
이 녀석은 진천희를 제물로 바치는 것은 별로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십천군이라면 가지고 있을 기본적인 충성심이 결여된 자.
그렇기에 역대 만나 왔던 십천군들 중에 가장 강한 것이겠지.
“그래. 그러든지. 하지만 말이죠.”
진천희는 백천군의 손목을 쥐고 있는 자신의 손을 떼어냈다.
“…값을 치러야지. 구경값 말이야.”
진천희의 양손은 이제 자유롭다.
그 상태로 진천희의 좌수(左手)가 백천군의 명치를 후려쳤다. 그리고 이번에는 우수(右手)가 나아가 격타한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일곱 번. 여덟 번. 아홉 번.
그리고 마지막.
열 번–!!
각각 서로 다른 초식이 열 번이나 가격한다.
무당파 십단금!
그것은 겨우 눈 한 번 깜빡이는 순간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퍽!
콰광!!
뭔가가 뚫리고, 폭발하는 소리가 난다.
“커억!”
백천군의 왼손이 진천희의 옆구리에서 빠져 나간다.
몸이 활처럼 휘며 백천군의 몸이 뒤로 튕겨져 날아가 처박힌다.
그 모든 것이 느리게 보인다.
그렇기에 진천희는 백천군이 고통의 와중에도 웃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죽어 가는데도 즐거워 보이는군.’
허나, 상관없다.
오늘 반드시 놈의 목숨을 끊는다.
진천희의 손이 무정하게도 적의 목젖을 향해 날아갔다.
우드득!
생을 끊는 감촉이 느껴진다.
진천희는 자신 안의 무언가가 죽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진천희 자신이 그토록 지키려고 했던 것.
허나, 포기하기로 결심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