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75
제 775화
아, 역시! 일광이 맞았군!
사방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진천희를 알지만 진천희는 그들을 모른다.
유명세의 특징이다.
왕망은 잠깐 망설이더니 뭔가 결심했는지 눈썹이 한일자로 굳어진다.
“우선 귀하가 여기에 있는 이유를 알고 싶소.”
“지나가는 길입니다만…….”
“무슨 일로 지나가는 것이오?”
이쯤 되니 진천희도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황제 폐하의 어명을 받들어 공무를 수행 중에 있습니다만.”
전생, 현생에 걸친 오랜 사회생활 짬으로 일단 황제 핑계부터 댔다.
관무불가침인 강호에서 황제가 튀어나오면 큰일이 되기 마련.
더는 귀찮게 하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왕망이 흠칫하며 놀랐다.
‘맞아. 일광 저거…… 태수 됐었지?’
일광 이놈은 강호인이자 의원이다.
의술로 인해 태수의 자리에 오른 것은 그야말로 파격적인 상황.
‘태수급은… 건드리면 피박이다. 황제의 주치의라고도 들었으니…….’
왕망은 꼬리를 내렸다.
“으음. 그렇구려. 과민하게 굴어서 미안하오.”
‘사과를 해? 사도련의 칠무단주가?’
귀찮게 하지 말라는 의미였지 이 정도로 깨갱할 줄은 몰랐다.
“그래서. 무슨 일입니까?”
“음……. 어차피 알게 될 일이겠지. 말해 드리리다. 본련은 무림맹과 전쟁 중이오.”
‘헐!? 정사대전!?’
진천희의 눈이 커진다.
그가 새외에 있는 동안 강호에 대체 무슨 파란이 분 것인가.
왕망이 말을 이었다.
“사천당가를 치러 왔지만……. 철수 명령이 떨어져 돌아가던 중이었지. 전쟁을 잠시 멈추고 소강상태로 있기로 했소.”
“그러시군요.”
“우리는 귀하와 싸우고 싶지 않기에 이렇게 대화를 청한 것이오. 오해 없기를 바라오.”
“예. 알겠습니다.”
여기까지 이야기했으니 더 말을 섞을 일은 없다.
“그럼 이만.”
그는 짧게 다시 예를 표하고는 수하들에게 돌아갔다.
칠무단은 객잔 최대한 구석으로 몰려 들어가서 식사를 주문했다.
그야말로 일광 놈과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겠다는 의지!
아니나 다를까, 진천희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자기들 딴에는 조용히 말한다 하겠지만 그 수가 오십이 되니 간간히 들리기 시작했다.
“저게 일광?”
“일광 맞다. 나 저놈 때문에 고막 터질 뻔했으니까.”
“입에서 괴음을 낸다며?”
“미친놈이지. 입에서 이상한 소리 내면서 강호인은 무기를 버리고 해산하라는데 정신이 나갈 것 같더군.”
“해사방주 건은 어떻고?”
밥을 먹던 진천희는 한숨을 쉬었다.
옆에서 같이 식사를 하던 쟈시가 물었다.
“네놈. 대체 어떤 생활을 한 거냐?”
“이게 다 활인의 길이지요. 허허허허.”
진천희는 해탈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나저나, 뭔가 좀 알아봐야 할 것 같긴 하네요.”
사천당가가 공격을 당한 건지, 아닌 건지 알아야 했다.
당아가 걱정되었다.
* * *
식사를 끝내고 진천희는 황구를 따라 걸었다.
이윽고 황구는 어떤 거지 앞에 섰다.
거지는 배까지 불룩 내밀고는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었다.
컹컹!
꼬리까지 흔들며 반가워하는 개에 거지가 잠이 깨서 욕설을 내뱉었다.
“이게 무슨 개새…….”
그 순간, 그의 눈이 황구 목에 매달린 매듭에 고정되었다.
“이건! 본방의 영물 황구 님 아니십니까요오오!”
헥헥헥헥헥-
황구는 거지의 더러운 얼굴을 찹찹 핥았다.
평범한 개방도에게 있어 황구는 선대 방주님의 직계 제자이니 자신보다 배분이 높다.
하지만 개는 그런 거 모른다.
그냥 사람이 좋으니 핥는다.
얼굴이 구정물투성이든 아니든.
“어이쿠, 황구 님. 그만… 그만……! 황구 님이 여기 있다는 말은 이, 일광?”
진천희가 답했다.
“안녕하십니까.”
“당신은 분명 서역에 가 있다 들었는데……?”
“방금 돌아왔거든요.”
“그, 그랬군.”
진천희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저를 알아보는 대협의 존함은 어찌 되시는지…….”
“미안하오. 너무 놀라서. 개방의 제자인 각산이라고 하오.”
“만나서 반갑습니다. 각산 대협.”
보통 강호에 이름 좀 알려진 놈이라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기고만장하는 게 통상적인 일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인지 일광에게서는 그런 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깍듯하게 예를 갖추는 게 무서워질 지경.
“험험, 대협까지야……. 그래. 무슨 일로 본 걸개를 찾으셨소?”
“제가 이제 막 강호로 되돌아온지라……. 전쟁이 났다던데, 좀 자세히 알 수 있겠습니까?”
그 말에 각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오늘 밤 안에 정리하여 서책으로 가져다 드리리다. 이야기가 좀 길다 보니…….”
“아, 예. 제가 머무는 곳이…….”
진천희가 객잔 위치를 설명하려고 하는데 각산이 답했다.
“번거롭게 말할 필요 없소. 어디에 있든 이 마을에만 있으면 우리가 찾아낼 터이니. 그러면 밤에 봅시다.”
대단한 자신감이었다.
진천희는 그런 각산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어이쿠, 감사합니다.”
곧바로 인사하며 금자를 건네니 각산의 입이 찢어져라 벌어졌다.
“은자도 아니고 금자라니, 역시 시원시원하구먼!”
* * *
같은 시간.
칠무단주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진천희가 머무는 객잔을 진즉에 벗어나, 도망치듯 다른 객잔에 앉아있었다.
죽엽청을 자작하여 혼자 술잔을 기울이는데, 그의 앞에 한 노인이 앉는다.
탕-
그런 노인을 힐끔 보고는 칠무단주는 예를 표하지도 않고 본론만 말했다.
“일광이 혼자 있다지만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외다.”
“허허허, 칠무단주가 언제부터 이렇게 새가슴이 되었나?”
노인이 히죽 웃었다.
치아의 절반이 검게 변색되어 있었고, 전체적으로 인상이 뱀과 같은 자였다.
한독혈수. 그것이 그의 별호.
빙한기공의 일종인 한독마공을 익힌 고수.
한독마공은 음한지기와 독기를 동시에 수련해야만 나오는 무공이다.
그런 한독마공을 극한까지 익힌 노인은 사파들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고수 중의 하나였다.
칠무단주 왕망은 그런 한독혈수를 보며 인상을 구겼다.
“당신은 비동 때 그의 행동을 못 봐서 그러는 거요. 게다가 이미 철수 명령이 내려왔지 않소?”
“무공이 그리도 강하던가?”
“당시 기준으로 일광보다 강한 자들이야 강호에 존재하오. 허나, 그 기묘한 행동이 강호인을 돌아버리게 만들지. 그 무공도 지금은 더 강해졌을 거고.”
사도련의 무력 단체는 칠무단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낭사단이라는 곳도 존재했다.
낭사단.
추격을 전문으로 하는 집단.
주로 사도련의 공적으로 찍힌 자들을 사냥하는 자들로 칠무단보다는 조금 약하지만, 야비한 수단을 많이 사용하는 집단이다.
그렇기에 강호 내에서도 평판이 흉흉한 데다가 같은 사파들조차 낭사단을 기피했다.
“낭사단 삼백 명. 칠무단 이백 명. 도합 오백. 거기에 사도련에 속하는 문파 두 곳을 합쳐 도합 이천여 명이 본래 사천당가를 습격하기로 했었지 않았나?”
“그리고 철수 명령 때문에 여기에 온 거요.”
“일광이 제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우리를 이길 수 없어.”
낭사단주 동적이 단언한다.
한독혈수의 별호만큼이나 그는 오만했다.
그의 주름진 얼굴을 칠무단주가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음… 확실히 그렇긴 하지만, 그에게는 기묘한 음공이 있소.”
“내 사문에 내려오는 독이 있네. 그걸 사용하면 되는 것 아니겠나.”
“죽이면 안 된다는 것을 알 텐데……. 만약 일광이 죽는다면 혈린광살이 필시 혈채를 받아내겠다고 할 거요.”
그 말에 한독혈수가 혀를 찼다.
그래도 젊은 편인 칠무단주는 혈린광살을 겪어본 일이 없으나,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 한독혈수는 혈린광살이 어떤 놈인지 알고 있었다.
시한부라 안심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아니라는 것도.
“그래. 물론 죽이면 안 되지. 그 미친놈이 사도련을 잿더미로 만들 테니까. 내게는 아직 그 정도의 이성은 남아있네. 그러니 죽이지는 않을 걸세.”
“장담하오?”
“그래.”
“…….”
노인의 말에 칠무단주는 술잔을 조용히 기울인다.
고민의 시간은 짧았다.
‘이대로 그냥 손 놓고 가게 된다면 강호가 나를 비웃을 터. 까짓것 해보자.’
이렇게 많은 고수들을 모아놓고 돌아가기에는 너무 먼 길을 오지 않았나.
“좋소. 그렇다면 해 봅시다.”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한독혈수가 기괴하게 웃었다.
“크크크크. 그래, 해 보자고.”
* * *
진천희는 다시 객잔에 돌아왔다.
‘이야, 일 하나 끝내니 또 밥때구나. 뭐만 하면 다시 밥때가 오니, 원.’
왜 하루는 고작 24시간일까.
진천희는 투덜거리며 식당으로 왔다.
마침 쟈시도 객잔에서 푹 쉬고는 밥을 먹으러 내려오고 있었다.
진천희와 쟈시는 한 탁자에 앉아서 밥을 시켰다.
그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쟈시의 눈이 흥미로 반짝였다.
“거지가 조직을 이룬단 말인가? 과연 강호 놈들은 제정신이 아니군.”
“으음, 담진으로 치면… 차트라탄트나 주술을 익힌 거지들의 조직이라고 보면 되겠네요.”
“대체 그런 능력을 가지고 왜 거지로 사는 건가?”
정곡이다.
진천희 자신도 늘 이게 궁금하긴 했다.
하지만 일단 개방도분들을 경험해보고, 또 지금 방주님이나 선대 방주님을 만나본 결과.
“거지가 자유롭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게 정의와 협의를 지키기 쉽다나…….”
“음…. 기이하군.”
그 말에 진천희는 웃음을 터뜨렸다.
“저도 사실 이해는 잘 안 갑니다. 그냥 그런갑다 하는 거지. 다만 개방의 숫자는 강호에서도 제일 많고. 그 많은 숫자 덕분에 정보에 있어서는 강호에서 손꼽지요.”
금혈방 정보 조직과 비등할 거다.
차이점이라면 정보가 다종다양한 것은 개방일 거고, 고급 정보가 많은 것은 금혈방일 터.
그 정도의 차이가 아닐까.
“대체 개방도가 얼마나 많기에 그러나?”
“글쎄요. 적어도 개방 이름 달고 있는 사람의 수가 십만 명에 가깝다고 하더군요.”
“허…. 놀라운 일이로군. 정말 놀라운 일이야. 그 사람들이 전부 무공을 익힌 건가?”
“그건 아닙니다. 그 안에 평범한 거지도 있고, 고아나 갈 곳 없는 노인들도 들어있는 거죠. 그 사람들을 모두 개방도로 묶어 두면 혹시 핍박을 당했을 때 돕기가 좋지요.”
“그렇다면 사람을 구휼한다는 말은 사실인 모양이군. 협(俠)이 틀림없어.”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가장 낮은 곳에서 많은 이들을 지킨다는 사실만큼은 틀림없지 싶어요.”
쟈시는 생각했다.
어찌 보면 눈앞의 의원이 추구하는 방향과 닮은 부분이 있다고.
그렇게 대화하는 사이에 점소이가 음식을 내려놓았다.
그것을 내려놓자마자 황구가 왕왕! 짖는 게 아닌가?
그러고는 진천희가 든 젓가락을 주둥이로 탁 쳐냈다.
“왜? 어? 설마 독이 있어?”
컹!
그 모습에 쟈시가 곧바로 숟가락을 뗐다.
중원의 젓가락에 익숙지가 않아서 대부분의 식사를 숟가락으로 하는 쟈시였다.
진천희는 은침을 꺼내 음식을 찔러 보았다.
“변색이 되지 않는군.”
“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알 수 없지요. 일급 독이면 은침이 통하지 않으니까요.”
그리 말하며 새끼손가락으로 찍어서 혀끝으로 살짝 맛만 보았다.
“오우……. 알싸한 칠보단의 맛!”
칠보단.
일곱 걸음을 걸으면 내장이 꼬이며 사망한다는 극독.
물론 진천희에게는 소용이 없는 독이었다.
대신 배앓이는 조금 하겠지만.
“황구는 이거 먹으면 설사 좀 하겠네요. 쟈시는 드시지 마세요.”
“자네, 독을 굳이 먹어 봐야 하나?”
“제가 이래 봬도 천독불침이거든요. 거기다 내공도 고강하고. 독공도 익혀 놔서 괜찮습니다.”
그 또한 스승님의 안배이긴 했다.
“괜찮다고 독을 먹는 건 이상 행동 같은데…….”
그 말에 진천희가 손사래를 쳤다.
“그럴 리가요. 신화에 의하면 신농께서도 약초와 독초를 일일이 먹어 보고 알아냈다고 하는걸요.”
쟈시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