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76
제 776화
그때.
일단의 무리가 안으로 들어왔다.
낮에 봤던 칠무단주. 그리고 그 옆에는 야비한 인상의 노인이 보였다.
진천희는 자리에 일어나 예를 표했다.
“오우! 칠무단주님, 다시 뵙는군요. 무슨 일이신지?”
추임새가 좀 이상했지만 일광은 원래 그런 놈이었다.
‘설마 칠보단을 눈치챈 건가? 영물이라고 하나 무색무취의 칠보단을? 저 개가 그 정도의 후각을 가지고 있다고……? 아니, 머, 먹었군.’
원래라면 칠보단을 먹고 쓰러진 일광을 재빠르게 해독한 후 점혈을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놈은 칠보단이라는 걸 눈치챘으면 도망을 칠 것이지.
독이라는 것을 알면서 기어코 한입 찍어 먹은 흔적이 보인다.
“일광, 순순히 포박당한다면 사지는 온전하게 보존해주겠다.”
“어이쿠! 대뜸 그런 말씀을 하시다뇨. 그래서 옆의 분은?”
이런 위압적인 상황에서도 일광은 오히려 과장되게 장난을 치는 게 아닌가.
그 모습에 노인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본좌는 한독혈수 동적이라고 한다. 내 이름을 들어 보았겠지?”
그 말에 진천희는 현원전단신공을 이용해 곧바로 그를 떠올렸다.
“오오!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한독혈수 동적.”
옛날에 사라진 한독마문의 무공이 후세에 발견되었는데, 그걸 발견한 사람이 다름 아닌 한독혈수 동적.
가뜩이나 마공인 데다가 본디 가진 성정도 포악하여 무공을 대성한 후 여러 가지 많은 악행을 저지르다 사도련에 투신했다.
이놈도 사마현이 편찬한 인명록에 들어있다.
“지금은 낭사단주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어린놈이 잘도 아는구나. 죽기 싫다면 순순히 잡히는 게 어떻겠느냐?”
“으음…… 글쎄요. 제가 굳이 잡혀드려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뭣이라?”
한독혈수가 살기를 발출한다. 장내가 그 기세에 압박당했다.
쟈시조차도 걱정이 되어 숨을 삼키는데 일광만큼은 태연했다.
“두 분께서 같이 덤벼도 제 상대가 안 되시는데. 뭐, 그냥 지금 돌아가시면 이번 일은 없던 것으로 해드리지요.”
“하! 어린놈이 방자하구나!”
자존심이 상한 한독혈수가 먼저 덤벼들었다.
진천희는 그의 손목을 붙잡아 마치 춤을 추듯 함께 빙그르르 돌았다.
“어르신 성격도 급하시네.”
태극권 기본 초식.
도권굉.
고작 기체조를 할 법한 초식으로 절세의 공격을 흘려버리고는 가볍게 태극장권의 초식으로 명치를 후려쳤다.
콰광!
한독혈수의 몸뚱이가 그 일격에 객잔 밖까지 나가떨어졌다.
“우오오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객잔 사람들이 놀라서 감탄했다.
진천희가 방긋 웃었다.
“배웅은 안 나가겠습니다. 어르신.”
“네 이노오오오오옴!”
한독혈수가 일갈한다. 진천희는 객잔 밖에 모인 수백 명의 무인들을 보았다.
보통이라면 이 수백의 고수들이 내는 기세에 짓눌리는 게 정상일 터.
왜일까?
진천희는 전혀 그들이 무섭지 않았다.
‘아아, 그렇군. 이번 새외행에서 또 깨달음을 얻은 덕분인가.’
강호 명성이 허명이 많다 들었는데.
자신도 그러리라 생각했던 걸까.
아니면 이렇게 고수가 많으니 아무리 일광이라도 꼼짝 못 할 거라고 생각한 걸까.
‘그래. 불과 몇 년 전의 나라면 아마 도망을 생각했겠군.’
진천희는 이번에는 칠무단주인 사독비검을 바라본다.
“큭.”
칠무단주는 진천희의 눈을 보고 기세에 눌린 듯 뒤로 물러나 후퇴를 시도했다.
‘뭐, 빨리 안 끝내면 저놈들이 객잔 안으로 들어올 거고, 그러면 객잔 주인 입장에서는 곤란해지겠네. 장사는 공칠 테니까. 어쩔 수 없나? 적당히 상대해주는 수밖에.’
진천희는 거기까지 생각을 마치고는 뒷짐을 지고 밖으로 나갔다.
한독혈수는 시뻘게진 얼굴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일광! 험한 꼴 보기 싫으면 도망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낭사단! 낭사진 개진!”
한독혈수의 외침에 낭사단의 무복을 입은 수백여 명이 쇠사슬을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했다.
쇠사슬 끝에는 철추가 매달려 있었다.
“오우, 이런 진법은 처음 보네요. 저걸로 묶은 다음에 공격하는 거죠? 괜찮네. 이거.”
진천희는 솔직하게 감탄했다.
뜬금없는 칭찬에 낭사단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래서야 마치 고수가 하수를 대하는 꼴 아닌가.
“네 이놈! 제아무리 초절정 고수라 하더라도 이 진법을 당해내지 못하거늘!”
“큰형님, 저놈에게 매운맛을 보여줍시다!”
낭사진은 제아무리 고수라 하더라도 한번 안에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하다는 것을 강호가 알고 있었다.
‘그 악명을 알고도 저딴 소리를 하다니!’
낭사진을 이루는 낭사단 무인들도 분노를 토했다.
한독혈수가 외쳤다.
“공격!”
그러자 쇠사슬 수십 개가 날아왔다.
“으음, 수백 명이 동시에 쓰면 꼬이니까 나름대로 순서를 정한 거네요? 방위는 꽤 잘 잡았고.”
진천희의 눈이 새파랗게 빛났다.
그의 손이 가장 처음 날아온 쇠사슬을 붙잡는다.
그러고는 마치 어린아이 줄넘기를 하듯 붙잡아 회전시켜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날렸다.
콰과과광!
이어서 다른 손으로 다음 쇠사슬을 붙잡아 당기더니 한번 휘휘 저어 다른 쇠사슬과 얽히게 만들었다.
거기까지는 고작 눈 한 번 깜박할 정도의 찰나였고.
진천희는 가볍게 열 번의 손을 뻗어 장법과 금나수법을 사용했다.
사슬이 허공에 엉켜서 아예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것.
그 모습에 다들 경악한다.
“이 미친놈!”
“사슬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엉킨 사슬을 풀어라!”
흡사 거미줄처럼 엉켜버린 사슬 위에서 진천희는 조롱을 하듯 물구나무를 섰다.
그러고는 두 손을 움직여 쇠사슬을 튕겨냈다.
투두두두둥!
그것은 음악이었다.
그리고 그 음악에 공력이 실렸다.
“귀를 막아라! 음공이다!”
왕망이 다급하게 소리쳤으나 모여든 사도련의 무인들 전원이 크억! 하고 피를 토하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소리는 점점 더 커져만 갔고 순식간에 수백여 명이 쓰러진다.
쇠사슬이 땅을 굴렀다.
비단 일선에서 싸운 낭사단만 당한 게 아니었다.
조금 뒤에 서 있던 칠무단까지 함께 쓰러졌고.
남은 건 그나마 몇몇 초절정의 고수와 왕망, 동적뿐.
서 있는 이들의 수가 서른 명도 채 되지 않았다.
문제는 초절정 고수들도 이를 악물고 부들거리며 서 있을 뿐이라는 점.
“빌어먹을! 이렇게 강할 줄이야!”
“새외에서 무슨 깨달음이라도 얻고 온 건가?”
그 순간, 동적이 왕망에게 전음을 보냈다.
[바로 같이 쳐야 하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이상 어쩔 수 없군. 알겠소!]둘은 동시에 진천희를 향해 공격을 시도했다.
동적은 자신 있는 절기를 진천희를 향해 쏘았다.
비전절초 한독혈수장!
그를 따라 왕망은 거의 동시에 사행비독검을 쏘았다.
검이 마치 한 마리 뱀이 된 것처럼 상대의 목을 노리며 날아왔다.
진천희는 그 모습을 보고 생각했다.
현원전단신공의 찰나 속에서 진천희의 생각은 빠르게 뻗어갔다.
‘음, 멋져. 여기는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소리도 없고, 밥이 없어서 굶어 죽을 바에는 락샤샤에게 먹혀서 기억을 유지해 보겠다는 말도 없고. 그래. 이게 강호지. 강호야.’
그동안 강호가 지옥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지옥은 새외에 있었다.
‘자, 봐봐, 수틀리니까 뒤를 안 돌아보고 칼 쏘는 거. 마공이나 사공을 익히면 무공 특성 때문에 전투 중에 충동적으로 구는 면이 있지. 그래도 이 와중에 양민 하나 제물로 바쳐서 더 강해져야겠다는 생각은 안 하잖아. 조저도 본인 목숨만 조진다고. 여긴!’
크으, 건강한 강호. 건강한 강호인, 건강한 사파!
관절만 꺾어 주면 끝나는 이 평범한 개싸움을 보라.
진천희는 일종의 힐링마저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전쟁터를 전전해 온 병사가 문명사회에서 K-1을 시청하는 기분이었다.
진천희는 곧바로 양의심공을 사용했다.
오른손에는 태청산수, 왼손에는 패천무상신공의 패천무상 장법이 깃들었다.
원래라면 패천무상신공은 그 파괴력이 지나치게 패도적이고, 진천희 자신도 위력을 조절하기 지극히 어려워 좀처럼 쓰지 않았다.
허나, 이번 백천군과의 생사결을 통해서 위력을 완벽하게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준비를 끝낸 진천희는 붙잡았던 시간을 다시 놓는다.
거의 일시정지에 가깝던 시간이 한순간 빨라지며 세 사람이 충돌했다.
콰과과과과과광!!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왕망과 동적이 동시에 나가떨어졌다.
그 와중에 진천희만이 홀로 멀쩡하게 서 있을 뿐.
동적은 쿨럭쿨럭 피 섞인 기침을 내뱉었다.
“어… 어찌 내 극한한독을 맞고도 멀쩡할 수 있단 말인가!”
“극한한독이라고 하셔도…….”
진천희의 왼팔에 검은 기류가 생겨났다.
“저의 왼팔의 흑독룡에 비하면 뭐……. 좀 그렇습디다.”
검은 기류가 만들어낸 독기에 주변의 풀들이 스러지기 시작했다.
과거 오독문에서 얻어낸 현경지독의 독.
“커… 커헉. 그건…… 대체 어떤 독이냐……. 이럴 수가……!”
그 말을 끝으로 동적 어르신이 쓰러졌다.
먼저 쓰러진 한독혈수에 비해 왕망은 아직 기절까지는 하지 않았다. 똑같이 피 섞인 기침을 뱉으며 쓰러질 뿐.
진천희는 그런 왕망을 보며 말했다.
“이리된 이상 어쩔 수 없군요. 전부…….”
“……죽이지는 않는다 들었다.”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관아에 가서 현상금으로 환전은 받아야겠지요.”
“그, 그게 무슨 말이냐. 일광! 관무불가침인 것을 모르느냐!”
“관무불가침이고 나발이고. 현상금은 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사파가 몇인데 이 중에 산적, 수적, 마적 출신 아닌 놈이 몇이나 된다고요.”
“커억!”
왕망은 그 말을 끝으로 쓰러졌다.
진천희는 옆에 있던 쟈시를 손가락으로 불렀다.
“아, 쟈시. 탈골하는 법은 알아요?”
“죽이거나 분지르는 법만 안다.”
“아……. 그렇구나. 이 참에 배워요. 쟈시는 그래도 무예에 재능이 있어서 금방 배울 겁니다.”
우드득!
진천희는 기절한 왕망의 팔을 꺾으며 경쾌하게 말했다.
“가, 강호는 원래 이러나?”
안색이 창백해진 쟈시에게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 진 놈이 이긴 놈의 깽값을 지불해주는 것, 그것이 강호이지요.”
“……무… 무서운 곳이로군.”
“그래요? 저는 새외가 가장 무섭던데.”
우드득-
자, 모두 돈이 되어라.
* * *
주머니가 두둑해졌다.
‘음. 개방에 금자 하나 쓴 게 벌써 복구가 되고 남는군. 다들 역시 비싼 놈들이었어.’
돈은 역시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는 게 최고였다.
진천희는 독채에 머무르며 운기조식을 했다.
운기조식이라고 해봐야 깊게 하여 몰아 상태에 빠지는 일은 없다.
기습을 대비하여 언제든 깨어 있는 상태를 유지했다.
그때 문득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진천희가 곧바로 밖으로 나가 보니 낮의 개방도가 거기에 서 있었다.
그는 히죽 웃으며 독채 안으로 들어왔다.
“역시 천하일광이로군. 감탄했소.”
“갑자기 감탄이시라뇨.”
“낮에 사도련 수백을 홀로 잡아들이지 않았소? 과연 천하에서 누가 이런 일을 할 수 있겠소.”
그 말에 진천희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에고고. 그리 자랑할 만한 일도 아닌걸요.”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라니?”
“사파 좀 잡는다고 해도 강호는 그저 강호일 뿐이지요. 그보다는 텃밭에서 감자나 일구는 게 훨씬 재미있고 뜻깊은 일이니까요.”
아무렇지도 않게 사파를 토벌하는 일과 감자 농사를 같은 선상에 두는 일광을 보며 개방도는 그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핫! 과연 천하일광이로다. 방주께서 친우라고 한 까닭이 있었구려.”
그는 그리 말하며 서책을 꺼냈다.
“자, 여기 있소. 진 소각주. 당신의 오늘 활약 덕분에 사도련은 한동안 더 조용히 있을 터이니 참으로 다행이오.”
“어이쿠! 감사합니다.”
“후후후. 그러면 다시 봅시다.”
개방도는 그리 말하고는 잽싸게 어딘가로 사라졌다.
“휘우, 저분도 무공이 보통이 아니구나.”
역시 강호는 넓고 고수는 많았다.
진천희는 휘파람을 불며 서책을 펼쳐 보았다.
그러고는 파라락 훑어보다가 저도 모르게 한마디 뱉고 말았다.
‘스, 스승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