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79
제 779화
금왕야가 한쪽 이마를 찌푸렸다.
“게다가 인신 공양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과거 전쟁을 일으킨 숙신족 녀석들도 별다를 건 없었어.”
“그런가요?”
“아닌가? 카후라이 칸 녀석만 해도 혈선교에 제물을 바치고 혈선과라는 걸 얻어먹었잖느냐. 그런 일을 그쪽의 주술사라는 놈들은 안 했을 것 같나?”
“그렇군요.”
진천희는 사회생활 기초 스킬 ‘반복 재생’을 켰다.
영혼 없이 맞장구만 쳐주고 있다는 뜻이다.
상대가 아무리 눈 큰 미남에 가슴에 슬픈 과거를 품고 있는 현황 뭐시기라고는 해도 수틀리면 남의 나라에 피 뿌릴 놈이다.
내 나라의 어진 황제가 딴 나라 시점으로 보면 폭군도 이런 폭군 놈이 없더라.
그것도 양아치. 생양아치.
그 양아치 황제가 말을 이었다.
“담진 왕국 쪽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곳이 지금은 고만고만한 왕국이지만, 과거에는 신성 교국이라고 자처하는 놈들의 지역까지 영역을 가지고 있었지.”
“꽤 컸군요.”
“파샤 제국이라고 칭하며 본 제국과 전쟁을 몇 번이고 하던 놈들이다. 지금은 담진, 다두, 그 외의 몇 개의 국가로 쪼개졌지만.”
“그거 언제 적 이야기입니까?”
“이백 년쯤 되었을 거다. 어쨌든 잘했다. 이번 일로 담진 왕국은 확실히 본 제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게 될 테니까.”
뭐, 결국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는 힘의 논리긴 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담진 왕국이 과거의 파샤 제국이었을 시절이었다면 지금 같은 분위기는 절대 오지 않았을 테니까.
‘그리고 금왕야는 가급적 그런 불안 요소조차도 제거하고 싶어 하는 눈치고.’
정원사로 비유한다면 은왕야는 약간의 잡초들은 놔두는 자연 친화형 정원사라면, 금왕야는 완벽하게 계산대로 식물을 키우는 정원사다.
은왕야의 정원에는 커다란 단풍나무 아래에 이름 모를 꽃이 피어 있겠지만 다소 지저분하긴 할 거다.
독초가 자랄 수도 있고.
허나, 금왕야의 정원에는 그런 건 없다.
자신이 허락한 식물만이 자라게 할 것이고, 향나무 하나도 완벽한 동그라미로 깎여 있겠지.
그런 두 사람이 조금씩 타협하고, 현실적인 문제까지 첨가되어 어찌저찌 굴리고 있는 게 현 제국의 모습이다.
금왕야가 말을 이었다.
“우역이 끝났다고 해도, 이미 죽었던 가축들이 갑자기 불어나는 건 아니지.”
“가축을 대량으로 파실 생각이시군요.”
“그래. 그리고 이권도 몇 개 얻어 오고. 네가 얻은 광산 지분보다 큰 것들이 많아.”
“꼼꼼하시네요. 황제쯤 되면 그런 거 신경 안 쓰실 줄 알았는데…….”
후릅-
그는 차를 한 모금 다시 삼키더니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리가 있느냐. 이 제국 전체를 운영하려면 돈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알지 모르겠구나. 게다가 중간에 횡령하는 놈들은 마치 바퀴벌레 같아서 주기적으로 청소해도 튀어나오고는 하지.”
아까 전에 먹으로 죽죽 선을 그은 명단이 혹시 그놈들 정리 명단이었을까?
“그건 그렇습니다. 제국 행정부에서 10을 내려 보내면, 본래 목적지에는 1 정도 들어온다고 하니까요.”
“그래. 그 이야기는 나도 잘 안다. 그래서 해결하려고 늘 노력하고 있지.”
적어도 절반만 가면 좋으련만.
그는 한숨을 쉬었다.
허나, 뇌물이 하나의 전통과 관습으로 자리 잡고 있는 현 세대에 그것은 요원한 일.
애초에 인류 역사에서 이 넓은 땅덩어리를 가진 제국은 언제나 부정부패와 싸워야 했다.
놀랍게도 그건 현대에서도 이어지고 있는 상황.
특히 토목.
거기다가 전화도 인터넷도 없는 세계이니 더더욱 타인의 부패를 알아내기가 쉽지가 않다.
금왕야는 그제야 감자칩을 입에 넣고 바삭 소리를 내며 먹는다.
그는 손가락에 가루가 묻는 게 싫은지 이마를 찌푸렸고.
제독태감은 기다렸다는 듯 긴 나무젓가락을 가져왔다.
금왕야는 그제야 감자칩을 젓가락으로 집어서 먹었다.
‘와, 진풍경이네. 진풍경.’
가루가 묻든, 조각이 흩날리든 대충 처먹는 은왕야와는 확실히 성격부터가 다르다.
“그나저나, 네 녀석은 그런 걸 걱정할 때가 아닐 것이다만?”
“네?”
“네 스승 놈이 아주 재미난 일을 하고 있더구나. 나도 슬쩍 한 손 보태고 있지.”
“스승님께서 뭘 하신다고요?”
“그거야 네가 백린현에 돌아가 보면 알게 되지 않겠느냐.”
“으으…….”
두통이 밀려왔다.
그렇지 않아도 개방에서 보았던 서책.
거기서 진천희는 스승님을 느꼈다.
허나, 그것은 결코 그리움 같은 게 아니었다.
‘한 인간이 이만큼이나 판도를 바꿀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나.’
물론 백린의각이 가지고 있는 힘은 이제는 예전과 비견할 수가 없을 터.
허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백린의각은 어디까지나 의각이지 살문(殺門)이 아니다.
만약 증거가 있었다면 그것을 개방이 놓쳤을 리가 없다.
어찌 되었건 판도는 백린의각의 오륜회가 집어삼켰고, 가장 큰 이득을 본 것은 결국 제갈린과 진천희 자신 아닌가.
허나 어디에도 증거가 없었다.
추측조차 써 있지 않았다.
그 모든 것들이 백도와 흑도가 싸우며 남긴 궤적들뿐이었기에.
진천희는 뒷목을 문질러 소름을 억지로 진정시켰다.
‘예전이었다면 내 착각이라고 넘겼겠지.’
허나 천하경영에 다다른 제자는 스승을 느끼고 있다.
경외와 공포를 담아.
“뭐, 그런 건 백린현에 가서 직접 보고 오너라.”
“네, 네!”
진천희는 자신의 잘렸던 새끼손가락 쪽을 힐끗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크게 잃은 곳은 없으니까 괜찮아.’
잘 넘길 수 있을 터였다.
“자, 그러면 네 녀석에 대한 상은 무엇이 좋을까…….”
진천희가 잽싸게 손을 들었다.
“강소성 전체에 상하수도 깔고 싶습니다. 백린의각에서 그걸 할 수 있게 허가를 내주시죠.”
“강소성 전체에?”
그 말에 진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일단 남경을 중심으로 해 볼까 합니다.”
“흐으으음. 그거 어마어마한 대공사가 되겠구나. 돈은 제국 정부에서 대고, 공사는 네가 한다 이거렷다?”
“그렇죠.”
금왕야가 씨익 웃었다.
“이권이 엄청나겠군……. 좋다. 그렇게 해 주마.”
“앗싸.”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대체 금왕야는 어째서 자신을 이렇게까지 믿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수도 민간사업 아닙니까. 이렇게 호쾌하게 줘도 되는 거야?’
자신이 나쁜 마음을 먹으면 어쩌려고 이러는 걸까.
금왕야가 말했다.
“그나저나, 네가 이렇게 기뻐하는 건 단순히 돈 때문만은 아닐 테고…… 이유가 있느냐?”
“공중 보건 증진에도 꼭 필요한 일이고. 강소성 전체에도 일자리 좀 늘리게요.”
진천희는 솔직하게 답했다.
“흠… 네 녀석은 참……. 좋다.”
허락이 떨어졌다. 그 말은 곧 이루어진다는 뜻.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런데 폐하. 여기 왔으니 할 일을 해야죠?”
“할 일?”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건강 검진입니다.”
손목 이리 내놔.
* * *
그렇게 건강 검진까지 틈틈이 마치고 나니, 며칠의 시간이 흘렀다.
진천희 역시 이제 의각으로 돌아가야 할 때.
스승님께 서신을 보내고는 황궁을 나섰다.
그렇게 밖으로 나오는 진천희를 제독태감도 함께 따라 나왔다.
“아이고~ 정말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요. 사교 놈들이 그렇게나 난리를 치고 있을 줄이야!”
“뭘요. 그 동네가 그렇게 되었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 말에 제독태감이 생글생글 웃는다.
“쇤네도 참으로 걱정을 많이 했습죠.”
“천하의 제독태감께서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뭐, 이런 건 흔한 정치적 수사 아닌가.
진천희 자신이 밖에서 객사하든 말든 황상만 별일 없다면 제독태감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걸 알고 있다.
그런 진천희의 속내를 읽기라도 한 건지 제독태감이 화들짝 놀라서 말을 이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요! 황상께서도 어찌나 걱정하시던지. 조만간 다른 방도를 하나 생각 중이시라고 하니, 기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요.”
‘아니. 그냥 하지 마. 무슨 방도인지 모르겠지만 하지 마.’
덕황이고 선황이고 그건 결국 우리 황상을 위에 둔 당대의 백성들이 찬양하는 소리고, 일해야 하는 진천희는 다른 생각이니까.
‘스승님은 바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의각에 붙여 놓으면 되는 것 아닌가.
“선물은 수레에 놓았습니다요.”
“무슨 선물씩이나…………”
“황상의 마음이지요. 원래라면 이렇게까지 고생할 여로가 아닌데 많이 걱정하셨으니까요.”
이렇게까지 말하니 진짜인가 헷갈릴 지경이다.
제독태감이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수님밖에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황상의 일이라는 것은 참으로 무정하지 않겠습니까?”
우역이 해결된 덕에 담진 왕국뿐 아니라, 화 제국도 안심할 수 있게 되었다.
소가 죽으면 농경 사회의 근간이 사라지는 일이니까.
“잘 해결되어 다행이지요.”
“그나저나 진짜로 소를 치료할 수 있는 거군요.”
“으음, 치료라기보다는 더는 확산되는 것을 막는 수준이지만, 네. 운이 좋았습니다.”
아는 병이었기에 망정이었지, 모르는 병이거나 지금 기술로 백신을 만드는 게 불가능한 병이었다면 진천희 자신도 답이 없었으리라.
뒷문으로 나오니 수레가 바뀌어 있었다.
컹!
황구의 옷도 바뀌어 있었다.
딱 봐도 천으로 된 무언가를 입고 있는 게 아닌가!
제독태감이 말했다.
“황궁 지하에 있는 보물고에서 찾았습니다요. 이야아, 사람 갑주만 있는 줄 알았는데 영물 갑주도 있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가볍고 질겼다.
뱀가죽으로 만든 건지 신축성도 있었다.
목에 스카프처럼 두른 형태인데 오히려 좋다. 움직임에 방해되면 귀찮아하니까.
“축근공으로 몸을 줄여도 빠지지 않을 겁니다요.”
“대단하군요.”
그때 뇌진이 진천희의 머리 위에서 내려왔다.
뇌진이 입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쪽도 목 부위만 조금 가리고 있는 형태다.
비행에 지장이 없어야 하니 꽤 괜찮았다.
야생동물들의 가장 큰 급소는 목이니까.
진천희가 눈을 빛냈다.
“어째서 태수님은 본인 선물보다 함께 다니는 영물들 선물을 더 좋아하는군요.”
“당연하죠.”
거기다가 황구가 끌고 다니던 마차도 바뀌었다.
흑색 철로 만든 마차의 형태였는데 딱 봐도 보통 철로 보이지 않았다.
“기왕 숙신족 상대 마차를 끌고 다닐 거면 좋은 걸 끌고 다니라는 황상의 배려이십니다. 제아무리 강력한 석궁이라도 모조리 튕겨낼 것이지요.”
“오오!”
“안에 선물도 잔뜩 넣어두었으니 그건 돌아가서 푸시면 될 듯합니다.”
과연 보물 고블린!
사람을 개처럼 부려먹고는 그 값을 치르고 있다.
‘나는 강소성 수도 깔아주는 예산만으로 행복한데!’
그렇게 진천희는 제독태감과 작별하고는 마차에 올랐다.
황성이 멀어질 즈음 쟈시가 말했다.
“비싸긴 비싼 마차 같군. 훨씬 덜 흔들린다. 이거라면 멀미를 덜 하겠지.”
“제국 장인들은 솜씨가 좋거든요.”
“그나저나 황제가 너를 아주 어여삐 여기나 보군. 애첩처럼 보인다.”
푸흡!
진천희는 그만 먹던 밀곡단을 내뱉었다.
“그 무슨 천벌받을 소리를!”
‘아차, 쟈시는 나와 황상이 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모르니 그런 소리를 하는 거겠구나.’
유교 거꾸로 도는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하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술탄의 하렘에는 다양한 자들이 있다. 여기는 그렇지 않나?”
“어, 다양한 분들이 계시지만 저는 아닙니다. 그냥 일 잘하는 소한테 여물 잘 챙겨주는 거죠.”
“그렇군.”
쟈시는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스승님께서는 대체 뭘 하고 계시는 건지…….”
“뭔가 들은 게 있나?”
황상도 자세히 말해 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안부를 물어보는 목소리에서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문득 진천희 뒷목에 다시 소름이 돋았다.
‘왜 의각 쪽으로만 가면 뭔가 오소소 돋는 건지…….’
생존 본능 같은 건가?
기묘한 일이었다.
진천희와 철갑마차는 마침내 백린의각이 자리한 휴화산 지대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