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794
제 794화
지하 비밀 창고를 본격적으로 둘러보기 시작했다.
“상당히 크네.”
“응. 금혈방에서도 이 정도 크기면 대형 물자 창고로 써.”
“상자들은 모두가 다 아편이야. 그것도 제법 순도가 높다. 그 말은 이걸 정제할 기술과 시설이 있다는 건데…….”
대체 그만한 걸 어디서 이렇게 들여온 걸까.
위성도 헬기도 드론도 없는 세계이니 어딘가 첩첩산중에 화전 비밀 농장 만들어 놨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그걸 재배하는 것과 아편으로 정제하여 유통하는 건 또 다른 문제.
“그러게~ 한번 알아볼까? 이런 건 우리가 전문이니까.”
사마현의 말에 진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주면 고맙지. 아무리 고관대작의 가문이라고 해도 이런 걸 흔적 없이 가져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일 테니까.”
숨기고 싶어도 이렇게 물건이 많으면 꼬리가 잡힐 수밖에 없다.
진천희가 뒤통수를 득득 긁었다.
“일단, 이것에 대한 장부도 좀 찾아야겠다. 바빠지겠는걸? 우선…… 이 아편을 전부 몰수하고.”
진천희가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형을 보며 사마현은 생각했다.
‘형이 많이 화가 났는걸?’
나름대로 이름이 높은 명문가다. 거기서 본인 손으로 아편 팔이를 했다는 게 무슨 뜻인지 더 잘 알 터.
‘돌팔이가 가짜 예방주사 하고 다니던 때보다 더 화가 났네.’
그리고 얽혀 있는 상대가 너무 크다.
* * *
달이 뜬 밤.
사마현은 어둠 속을 걷고 있다.
옷은 그답지 않은 평범한 무복에 무늬도 없었다.
그럼에도 약간 세련된 느낌을 주는 것은 특유의 분위기 때문인 것이겠지.
그는 품에서 인피면구를 꺼내더니 소매로 한번 얼굴을 훑는다.
우득-
그 찰나의 순간에 바로 얼굴이 변했다.
그 누구도 청년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청년은 그대로 객잔으로 향했다.
점소이가 맞아 주었다.
“어서 옵쇼! 식사와 숙박 어느 쪽이 필요하십니까요?”
“방 하나 주게. 환기 잘되는 창문 두 개가 난 방으로.”
청년의 목소리는 어느새 거친 무인의 걸쭉한 목소리로 변해 있었다.
마치 이십 년은 칼 밥을 먹으며 살아온 듯한 낭인 그 자체였고.
“그런 방이 마침 있습죠!”
점소이는 이런 낭인을 상대하는 데 이골이 났다는 듯 손을 비볐다.
점소이를 따라 계단을 오르니 방이 나타났다.
방에 들어서자, 안에서 이미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안경을 쓴 미청년의 사내가 탁자에 앉은 채로 차를 마시고 있다.
그의 안경줄은 금으로 만들어져 화려한 느낌을 주었는데, 동시에 특유의 지적인 느낌도 들었다.
하오문주. 홍류.
“문주님을 뵙습니다.”
사마현은 여전히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홍류가 사마현을 힐끗 보았다.
금혈방, 홍루각, 투도문, 오살지파, 도박파.
그중 홍루각 출신이자 지금 하오문을 모두 통솔하고 있는 자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소문주. 역시 천변검만공의 화후가 십성에 도달했군요. 아무리 인피면구를 썼다고 하지만 그렇게 ‘타인’으로 변할 수 있는 건 당신뿐이겠지요.”
“과찬이십니다. 문주께서도 익히시지 않으셨습니까?”
사마현의 말에 홍류가 미소 지으며 담뱃대를 머금었다.
후우-
연기가 방 안에 자욱하게 깔렸다.
그가 들이켜는 것은 시중에 파는 약초와는 다른 것. 그의 무공과 관련이 있다 추측되고 있으나 확실한 것은 모른다.
그런 곳이다.
하오문은.
정파처럼 서로에 대한 신뢰는 없으나, 그들 사이에 타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질척이는 결속력이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하오문이 그 오랜 시간 존속해 올 수는 없었겠지.
그렇다고는 해도. 난잡한 이곳을 운영하고 움직이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
중요한 것은 하나. 그만한 힘이 있는가?
홍류가 말했다.
“글쎄요. 스승님께서는 무공을 전부 가르쳐 주시지 않고 종적을 감추셨으니……. 사실 제가 제대로 천변검만공을 배웠는지는 저 자신조차 의심스럽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제(師弟)?”
사형제지간.
사마현은 처음 홍류가 자신과 같은 무공을 배웠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기쁨보다는 의심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여전했다.
사마현은 선 채로, 그리고 하오문주는 앉은 채로.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사마현이 말했다.
“석 노사께서는 제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만.”
그는 자신에 관한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은 채, 천변검만공만을 사마현에게 전수하고 죽었다.
“하지만 천변검만공의 전부를 전수하지 않았습니까? 제게는 전반부만을 가르쳐 주었으니까요. 사제가 부러울 뿐입니다. 언젠가 사제께서 제 모든 것을 물려받으시겠지요.”
그렇게 둘은 석노사로 인해 본의 아니게 인연을 맺게 되었다.
“자, 앉으시죠.”
“예. 문주님.”
사마현은 문주의 맞은편에 앉았다.
“본 얼굴을 보여 주시죠.”
“분부대로.”
사마현의 얼굴에서 우득 소리가 나는 것과 동시에 소매로 얼굴을 훔치자마자 곧바로 사마현의 얼굴이 드러났다.
“후후. 역시……. 스승님은 미인을 좋아하신단 말이죠.”
“천변검만공은 원판 얼굴이 중요하다 수없이 말하더군요. 계속 얼굴을 바꿔야 하니까 본인 얼굴이 잘생겨야 덜 미친다고요~”
“다른 사파의 절학들처럼 천변검만공도 깊게 익히다 보면 광증이 돋는 무공이긴 합니다. 사부님께서는 본인 얼굴에 자신이 있어야 훗날 무엇으로 바꿔 놔도 중심을 잡을 거라 믿으신 것 같습니다만. 요즘 들어 생각해 보면 틀린 말은 아닌 듯합니다.”
역설적이게도 천변검만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얼굴을 빠르게 잘 바꾸느냐가 아니다.
무엇으로 바뀐들 본래의 얼굴을 잊지 않느냐.
아무리 연이 높이 날아오른다고 하더라도 붙잡을 실이 있어야 다치지 않고 돌아올 수가 있다.
천변검만공은 얼굴을 바꾸는 것뿐만 아니라 목소리와 행동, 나중에는 무인의 심상까지 훔쳐갈 수 있게 된다.
거기까지 가게 되면 자아가 약한 자는 진즉에 그 속에 휘말려 광증에 시달리기 시작할 터.
기억이 점점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하고, 종국에는 자신이 연기한 사람의 자아가 섞여 들어가게 된다.
무인의 심상까지 베끼게 된다는 것은 그만큼 지독한 일이었다.
‘보통은 다른 마공들처럼 그러다 기혈이 뒤틀려 죽게 되지만, 가끔은 천재성이 그것을 누르고 광증만 발현되는 경우가 있다고 했지.’
그야말로 백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기재(奇才).
천재성으로 혈도가 역류하여 죽는 일은 없다고 해도, 이미 사람 구실은 포기해야 한다고 들었다.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는 상태에서 천변검만공을 반복하다 보면 자신의 기억을 계속해서 떼어주게 되고.
나중에는 스스로가 누구인지, 뭐 하는 녀석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메아리 같은 무언가.
그다음은? 거기서 더 미친다면?
알 수 없다.
석 노사도, 석 노사에게 천변검만공을 전수해준 사람도 평생 거기까지 간 자를 보지 못했고, 그 전 단계조차도 구전으로만 전해져 온다고 했다.
그렇기에 처음부터 주의해온 석 노사조차도 이따금씩 광증이 치밀 때가 있다는 것 정도.
다른 사파의 마공들이 그렇듯.
그조차도 몇 번인가 자신을 잃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니 결코 자신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의 사마현에게는 붙잡아 줄 사람이 둘이나 있었다.
얼굴이 아무리 잘생겼다고 한들, 그걸 봐줄 사람이 곁에 없다면 돌아오지 못하게 될 터이니.
어두운 광기, 그 깊은 곳에 몸을 담가도 별(暳)이 빛나는 곳이 바로 그가 돌아갈 곳이었다.
사마혜(暳).
그 이름에 쓰는 한자도 별이 반짝인다는 뜻의 혜(暳)니까.
돌아갈 곳을 찾았으면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즐거웠던, 기뻤던 기억(喜)을 찾아서 어렵지 않게 기억을 더듬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진천희(喜).
이름에도 기쁨이 들어간다.
제아무리 절세의 고수를 모방한다고 해도 사마현은 반드시 본래의 자신을 선택한다.
진짜 소중한 게 무엇인지 기억해낸다.
그게 사마현이 가진 성취에 비해 광증이 적은 이유이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고맙지는 않다.
만약 처음부터 천변검만공을 익히지 않았다면 하오문과 얽힐 필요조차 없었을 테니까.
형의 인도를 받아 혜아처럼 좀 더 자유롭게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었겠지.
‘그런 연원이 있는 무공인 줄 알았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허나, 형을 만난 것은 다시없는 행운임을 알고 있다.
어린아이가 항주에서 혼자 살아가기 위해서는 뭐라도 있긴 했어야 했다.
‘그러니 그런 무공도 몰랐다면 어쩌면 그 전에 죽었을지도 모르겠네.’
천변검만공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사마현이 항주 밑바닥에서 스스로를 지킬 방편이 되어주긴 했었다.
석 노사는 그걸 알기에 전수할 때 이야기를 하지 않은 걸 테지.
“노친네가 그런 경향이 있기는 했죠. 그런데 사형께는 왜 스승님이 후반부를 가르쳐 주지 않은 걸까요~?”
어찌 보면 도발이라고 볼 수 있는 당돌한 질문. 허나 홍류는 화내는 법 없이 희미하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저에게는 연기력이 부족하다고 하시더군요.”
“흐음~”
진짜일까? 그가 말하지 않은 다른 원인이 있을 수도 있다.
사마현은 혜아와 형 외의 다른 이들은 철저하게 믿지 않는다.
하지만 턱을 괴고 언제나와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반만 믿고 반은 흘려보낸다.
그게 차기 하오문주 사마현의 방식.
홍류가 말을 이었다.
“자. 시답잖은 이야기는 그만하죠. 제가 직접 온 이유는 당신이 요청한 ‘아편’에 대한 정보 때문입니다.”
“네네~”
“결론만 말하자면. 일단 당신의 짐작이 맞았습니다.”
그는 깊게 연기를 내뱉었다.
방 안이 약초 향으로 가득 찼다. 이윽고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이번 대량의 아편은 해적들을 통해서 들여온 것이더군요. 해사방이 사라진 이후. 오히려 바다는 통제 불능의 지역이 되어 각종 해적들이 난립하고 있는 상태. 동시에 여기저기에서 ‘정도 이상’으로 부패했던 관리들도 아편과 해적들과의 밀거래를 대폭 늘리고 있어요.”
마치 연쇄 사슬처럼 하나가 무너지니 뒤이어 다른 것들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역시 판이 그리 돌아가는군요~”
“바다 쪽을 집중적으로 알아봐 달라고 했던 이유. 처음부터 이 모든 것을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네~ 바다 외에는 그런 걸 들여올 수 있는 데가 없었으니까 말이죠~ 하지만 그렇다면 제가 받은 이상한 의뢰는 필시 ‘그런’ 이유도 들어있을 수도 있겠네요?”
정말로 황제가 보낸 것일까.
그렇다면 왜 칙서나 밀서 같은 게 아니라 이런 이상한 ‘의뢰’일까.
하오문의 극히 소수만이 알고 있는 의뢰라고는 해도 형식이 참 괴이했다.
‘일단 동기는 알았어. 황상이 이 도박판에서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이야.’
하오문주가 말했다.
“만약 황궁에서 보낸 게 맞다고 가정한다면, 이번 아편 일에는 당신이 제격인 건 맞습니다. 오살지파와 금혈방만으로는 힘들 테니까요.”
‘흐음, 판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짜놨는데~’
사마현은 손톱으로 탁자를 톡톡 치며 생각에 잠긴다.
오살지파. 그리고 금혈방.
하오문 내에서 가장 강한 무력 단체는 사실 이 둘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다른 거대 문파들의 무력 단체들에 비해서는 처진다.
이렇게 막대한 아편이 발견되었는데 얽힌 자들은 살기 위해 움직일 터.
이번에 잡힌 괴가의 가주 위에 얽혀있는 자들이 얼마나 높으신 분들일지 상상이 되질 않았다.
그리고 그 높으신 분들의 목표는 당연히 태수 진천희.
황제조차 암살을 당하는 게 화 제국이다.
잘 지내던 태수가 어느 날 물에 빠져서 사망하거나, 떡 먹다 목에 걸려 죽거나, 사냥 나갔다가 멧돼지한테 찔려 죽는 일이 왕왕 있지 않던가.
호위로 인의 장벽을 만들었는데도 죽을 때는 잘도 자빠져 죽더라.
때문에 사마현은 계산을 한다.
진천희처럼 바둑을 놓듯 포석을 깔고, 상대의 심계를 읽어 가며 자신의 수를 하나하나 놓아 가며 진실을 찾는 방식은 아니다.
오히려 사마현의 추리는 옷감을 짜는 것과 같다.
날실과 씨실을 교차해 나가며 나오는 그림을 읽는다.
그 안에는 약간의 증거와 약간의 영감, 그리고 약간의 경험이 들어간다.
양자택일의 길이 있다면 재미있는 쪽을 상상한다.
상상하고, 상상한다.
그게 하오문주의 후계이자 광면호리 사마현의 방식.
항주 밑바닥, 어린 나이에 다른 경극의 대본이나 악보를 읽을 돈이 없어 혼자서 이야기 전체를 추리해내야 했다.
틀려도 상관없다. 재미만 있다면.
완성된 이야기는 때로는 원본 경극과 흡사할 때가 많았고, 가끔은 그 이상으로 재미있을 때도 많았다.
이 상상 끝에 다다른 결론이 과연 재미있는가?
그 어릴 때의 습관이 지금도 함께하고 있다.
‘만약 황제의 설계가 맞다면 일단 설계 자체는 그럴듯해. 하오문이라는 사파에 일이 떨어진 것도 그런 걸 거고. 진천희, 사마현, 하오문과 오륜회……. 거기에 백린의각.’
형을 이용해 제국 내에 깊이 들어온 아편을 싹 몰살시킬 좋은 기회다.
만약 제국팔가와 연루되어 있다면 이때야말로 손 안 대고 코 풀 기회.
하지만 물고기가 낚싯바늘을 무는 것과 미끼가 무사한 건 다른 문제 아닌가.
황제가 만약 다음에도 형을 써먹을 생각이라면 자신을 호위로 붙여 놓는 게 맞는 일.
‘멋진 그림이야. 효율적이기도 하고. 인간의 감정이 좀 배제되어 있는 게 피도 눈물도 없는 황상다워.’
그리고 또 하나.
‘내가 가운데에 껴있으니 형을 지키다가 죽어 주기도 딱 좋은 그림이고 말이지.’
사마현은 비릿하게 웃었다.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태선입니다.
오늘도 [의원, 다시 살다]와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해도 독자님들께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정말 감사드려요 ㅠㅠㅠㅠㅠ
아마 독자님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의원, 다시 살다는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이벤트를 받은 김에 연참을 며칠간 해보고자 합니다.
그러니 혹시 연참을 보시더라도 너무 놀라지 마시고……. 이건 순수하게 연말 감사 이벤트니까요!
아무튼, 그러면 태선호 출발하겠습니다.
독자님들 싸…… 싸…… 싸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