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80
제 80화
진천희는 응급치료만 하지 않았다. 천마의 배를 열어 고를 끄집어내 죽였다.
“처음 빙독을 먹어 고를 가사 상태로 만들어 두라고 했을 때 어이가 없다고 생각했지.”
이독제독이다.
혈고는 냉기에 약하다. 하지만 그게 끝이다.
냉기에 잠이 든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가사 상태로 이끄는 것뿐이지 해결 방법은 되지 못했다.
진천희가 담담하게 말했다.
“다시 만날 때 치료해 주기로 약조했었지.”
-그건 내가 치료하면 돼. 그게 혈고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야.
가사 상태에 이른 혈고를 물리적으로 적출해 내는 방식이다. 원작에서 천마는 그 방식을 죽을 위기를 수없이 넘긴 연후에 알게 되었다.
그때는 그를 따르는 소중한 자들도 죽게 되고, 본인도 기력을 다해서 단전을 폐할지, 아니면 뇌옥에 갇힐지, 또 아니면 다른 이의 꼭두각시가 될지 선택해야 하는 기로였다.
그때 우연히 방법을 알고 나서 그는 가슴을 치며 한탄했다.
일찍 알았어야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그렇게 두지 않아.’
진천희는 생각했다. 하지만 여하륜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가사 상태로 혈고를 만든 후, 다음에 만날 때를 치료하는 날로 정하자니.
그런 미친 제안을 여하륜은 승낙했다.
두 소년의 약속은 결국 이루어졌다.
그렇게 진천희는 쥐도 새도 모르게 여하륜을 치료하고, 혈고도 제거했다.
“네 몸에 혈고가 없다는 건 비밀로 해야 해.”
“동료들에게도?”
“스승에게도 말해서는 안 돼. 절대로.”
여하륜은 생각에 잠기다가 이렇게 말했다.
“참 이상한 기분이 드는군.”
“뭐가?”
“형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책사와 대화하는 게 아니라 점술가와 대화하는 기분이 드니 말이야.”
뜨끔.
진천희는 태연하게 표정을 지었다.
“원래 뛰어난 조언자는 뛰어난 점쟁이랑 구분이 안 된다잖아?”
“그렇긴 하지.”
여하륜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휴, 주인공이라 그런가 감이 좋아.’
어떨 때는 소년 같다가도 이렇게 가끔씩 천마의 면모가 튀어나올 때면 심장이 쫄깃하다.
여하륜은 눈을 반개하고는 생각에 잠긴다.
“형은 처음으로 내게 맛있는 걸 사 준 사람이야.”
“그런 것보다 목숨을 구해준 게 우선 아니냐?”
“그래. 거기다 이번에도 나를 살려주었지. 나는 아직 아무것도 보답하지 못했는데.”
빛이라고는 전혀 없는 흑발이 물처럼 흘러내렸다. 주인공답게 잡티 하나 없는 피부, 소년의 나이임에도 얼굴선이 제법 날카롭다.
환자라 머리를 빗어 올리지 않고 되는 대로 풀어 헤친 상태다.
일순, 긴 앞머리가 한쪽 눈을 가린다.
표정이 보이지 않으니 감정을 읽기가 어려웠다.
이윽고 여하륜은 생각을 마쳤다.
“형.”
“응?”
“나와 함께 본교로 갈 생각은 없어? 형은 괜찮을 거야. 원래부터 의원은 교 내에서도 가장 좋은 대우를 해주는 데다가 내가 비호하고 있으니.”
“대체 마교에서 넌 무슨 역할이야? 아직 소교주 쟁탈전도 하기 전인데 무슨.”
“괜찮아. 나는 소교주가 될 거고, 결국 교주가 될 거야.”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내가 그러기로 정했어. 교주 하기로.”
마치 오늘 저녁 뭘 먹을지 정하는 것처럼 차분하게. 눈앞의 까만 소년은 그렇게 말했다.
진천희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천마의 먹빛 눈이 마치 시험이라도 하는 것 같아서 대답이 혀끝을 맴돌았다.
“……안 가.”
“백린, 그놈 때문이야?”
“스승님 그렇게 부르지 마.”
“흠…….”
여하륜은 낮게 침음을 흘리더니 다시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이렇게 답했다.
“백린이 죽으면 나한테 올 거야?”
“스승님이 죽으면 나도 죽을 거야.”
일단 유호가 물리적으로 죽이러 올 거다. 그렇게 부려 먹었는데 그놈 성격에 진천희를 살려 둘 리가 없다.
“그러면 내가 죽으면, 내가 죽으면 형은 어쩔 건데?”
그 말에 말문이 막혔다. 몇 가지 대답을 생각해 냈지만 하나같이 시원찮았다.
어떤 대답을 해도 놈의 판에 끌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진천희는 판을 엎기로 했다.
“넌 내가 죽으면 어쩔 건데?”
“죽여야지.”
“뭘 죽여?”
“형 죽인 놈이 사람이면 죽이고, 귀신이어도 죽여야지. 살아 있다는 게 후회될 만큼 고통스럽게 뼈마디까지 죽여야지. 그리고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살려낼 거야. 형을.”
진천희가 답했다.
“그러면 나도 똑같이 해 줄게. 됐지?”
“쯧.”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진천희는 여하륜의 머리를 헝클였다.
여하륜이 말했다.
“형.”
“왜?”
“내가 죽으면 범인은 백린이다. 그것만 알아 둬.”
“스승님은 네가 천살성이라 경계하는 거야. 얘가 마교 물 좀 먹었다고 머리 회전도 좀 마교식이 됐네.”
“백린은 참 좋겠네. 제자가 이렇게 순진해 빠져서.”
그렇게 말하더니 답했다.
“사실 형의 의견은 그리 중요치 않은 거 같아.”
“뭐?”
“형은 꼭 본교에 오게 될 거야.”
“무슨 개소리…….”
“내가 그렇게 정했어.”
더는 말을 하지 말자. 진천희는 한숨을 쉬었다.
“됐으니까. 넌 퇴원이야. 오늘 밤에는 돌아가라. 위에 그렇게 말해 둘 테니까.”
“…….”
여하륜은 대답하지 않았다.
진천희는 몸을 일으켰다. 밖으로 나가려는 진천희에 대고 여하륜이 말했다.
“형, 팔찌 꼭 차고 있어. 절대 빼면 안 돼.”
“그래. 아, 참, 야!”
문득 생각나는 게 있다.
“만약 길이 막히면 주먹으로 뚫고 가는 것도 방법이야.”
“그게 무슨…….”
“그냥 알아 두라고. 형의 인생 조언이다.”
‘미래에 있을 시련을 가장 빨리 뚫는 방법이다, 이놈아. 이게 힌트야!’
여하륜은 진천희의 속도 모르고 빤히 바라보기만 하다가 이윽고 이렇게 답했다.
“알았어. 새겨 둘게.”
여하륜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다시 운공을 시작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 새끼 한 귀로 흘리겠구만 하고 생각하겠지만, 이놈은 여하륜이다.
진천희는 자신의 말이 꽤 먹힐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형 말도 잘 듣고 참 착한 동생이야.’
* * *
진천희는 그렇게 여하륜을 보냈다. 눈치를 봐서는 이대로 천년만년 뭉개고 있을 것 같아서 퇴원시켜 버렸다.
내심 아쉬워하는 눈치지만 진천희가 보낸다는데 방도가 없다.
그렇게 여하륜을 보내버리고 진천희는 오랜만의 자유를 누렸다. 아니, 누릴 생각이었다.
스승님이 환하게 웃으며 배웅하고 돌아오는 진천희의 뒷목을 잡았다.
“하하하, 희야.”
“네, 네에…… 스승님?”
평소처럼 다정한 말투지만 어쩐지 오늘따라 소름이 끼친다.
“천살성을 그렇게 보냈더구나. 하하하.”
“네, 네! 스승님. 여하륜이 저래 봬도 진짜 착해요.”
“착한 천살성이라. 내 옛 문헌에도 본 적이 없는데 제자 덕에 볼 일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그, 그렇죠.”
‘쟤는 주인공이니까요.’
스승님의 미소가 더욱 화사해져만 갔다.
“희야. 사실 나는 저것이 착한 천살성인지 나쁜 천살성인지는 알 바가 아니란다. 그저 네 곁에 맴도는 게 참 신경이 쓰이더구나. 하지만 어쩌겠니, 후……. 스승이란 이렇게 제자를 위해 인고를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을.”
이상했다. 스승님은 그대로 진천희를 들어 자신의 옆구리에 끼고는 걸으셨다.
워낙 한덩치 하시는 분이셔서 그런지 눈높이가 엄청나게 높아졌다.
“스승님……?”
“그러니 수련하자꾸나. 저것이 미친 짓을 하더라도 살아남을 만큼은 강해져야 하지 않겠니.”
“동생이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진짜 동생이 아니잖니. 의동생이지.”
“네…… 의동생.”
“희야. 그건 강호에서는 아무 관계도 아니라고 불린단다.”
“그건 아니죠. 스승님!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가 있는데 어째서 아무 관계가 아닌가요?”
“그래서 그분들이 한날한시에 돌아가셨니?”
“……아니죠.”
“그런 거란다.”
이상했다. 친형제더라도 세상천지에 한날한시에 죽는 형제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도원결의에서 유비, 관우, 장비가 한날한시에 죽자고 맹세라도 했나?
‘아, 옛날에 읽었던 책에서 그랬던 것 같기는 하네.’
짐작하건대 아마 정사는 아닐 거다. 그래도 꽤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긴 했다.
“강호에서는 사제 관계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 허구란다, 희야. 자식이 친부모를 죽이고 형제가 서로에게 칼을 꽂는 무시무시한 세상이지. 그러니 말이다.”
스승님은 그대로 진천희를 말에 앉혔다.
새카맣고 커다란 흑마였다. 이런 말은 진천희 평생 본 적이 없었다.
“우리 희에게는 지옥 훈련이 필요하겠구나. 이게 다 스승님의 선의란다.”
진천희는 생각했다.
‘그렇지.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가득 차 있지.’
지옥 훈련의 시작이다.
013. 십보신창
스승님께 잡혀 들어간 후, 그야말로 지옥 훈련의 나날들을 보냈다.
진천희의 의형제가 천살성 놈이란 걸 알게 된 제갈린은 봐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밥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이 수련에만 집중되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제갈린이 있었다.
제갈린은 딱 죽지 않을 정도로만 진천희를 굴렸다.
늘 자상한 스승님이지만 제자를 훈련시킬 때만큼은 악마가 ‘형님.’ 할 지경이다. 그리고 진천희는 그걸 불평 한 마디 없이 소화하며 자신을 연마시켰다.
제자나 스승이나 독종이었다.
“희야, 내 유일한 후회가 뭔지 아니?”
진천희는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며 답했다.
“후회요?”
후회라는 건 그나마 정상적인 인간이나 할 법한 말랑한 감정 아닌가.
스승님이 그런 걸 할 인간인가?
팡!
상단치기가 깔끔하게 이어졌다. 그다음은 중단치기, 하단 내리치기.
기초적인 동작. 삼재권법이다.
이제는 눈 감고도 할 만큼 수천 번, 수만 번 연마해 온 상태. 그러나 진천희는 계속해서 연마하고 있었다.
실전을 한번 경험해 보니 기초의 중요성을 더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중요시하던 기초를 이제는 무의식에 박아 넣을 때까지 하고 있었다.
“그때 왜 우리 제자님만 데리고 돌아가지 않았을까.”
이제는 진천희도 알고 있다. 제갈린은 말 안에 말을 감추는 버릇이 있다.
일견 필요한 말만 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것과는 달랐다.
제갈린의 말의 속뜻은 이랬다.
‘그때 천살성 놈을 놔두고 돌아갔어야 했는데.’
꿀꺽.
여하륜이 들었으면 ‘형, 놔두고 간다는 게 아니라 죽이고 간다는 표현이 정확할 거야.’ 하고 딴지를 걸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승님은 의원이시다.
아무리 그래도 환자인데 죽이기까지 하겠나……. 진천희는 생각했다.
어찌 되었건 제갈린이 하는 말을 잘 뜯어 보면 숨겨진 말 한 문장이 더 나오는데, 있는 그대로의 말만 받아들여도 상관은 없다.
진천희만 데리고 돌아가고 싶다는 말이 요점이니까.
하지만 천살성 놈에 대한 감정은 한 번 더 생각해 봐야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