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809
제 809화
“어디까지 보신 겁니까?”
그 말에 진천희가 미소 지었다.
“그리 많이 보진 못했습니다. 눈앞을 보는 것도 급급하였으니까요.”
“그런 것치고는 결국 고삐를 자기 쪽으로 트셨던데요.”
“음… 제가 다른 사람 계획 망치는 데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 들었거든요. 황상께서도 싫으시면 다른 이를 쓰시면 되겠지요.”
“…….”
어찌 보면 오만한 태도.
황상의 복심이라 알려진 제독태감 앞에서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다는 게 보통 배짱이 아니다.
허나, 이건 어떤 흥정이나, 공을 강조하기 위한 그런 어구가 아님을 알고 있다.
이 청년은 진심으로 다음에는 다른 이를 쓰길 바라고 있다.
이윽고 제독태감은 주름진 입술을 열어 진실을 밝혔다.
“제국팔가에 속한 가문이 이번 일에 두 곳이나 끼어 있습니다. 제국 백가에 속한 이들은 그중 서른이 넘고요. 상상 이상으로 큰 반상이었지요.”
“네. 황상은 저를 그곳 한복판에 넣었고요.”
문득 스승님의 뒷모습이 떠올랐으나, 일단은 황상만 거론했다.
제독태감이 답했다.
“아무나 넣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만큼 많은 것들이 걸려 있는 판이었으니까요.”
“…….”
제독태감은 조심스럽게 눈앞의 청년을 본다.
다행히 그는 다친 곳은 없었다.
제국의 힘의 우위를 정하는 판 한복판에서 태풍을 일으키고도 멀쩡하다.
참 웃긴 일이었다.
술자리에서도 절대 못 믿을 이야기.
“제국팔가 중 끼어있는 가문은 미가와 양가.”
“……그렇군요. 양가의 창수는 그 실력이 고절하여 놀라긴 했습니다.”
“네. 양가는 어디까지나 그 혈족이 끼어있을 뿐, 가문 전체가 끼어있는 일은 당연히 아니지요. 언제나 그렇듯 양가의 장수는 모래알만큼 많고, 어디에나 있으니 말입니다.”
이는 춘추전국시대 전부터 있던 일.
“양가의 장수에게 추살령을 내린다 하더라도 별문제 없겠지요.”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니까요. 그들은 자신보다 주군을 우선하며, 주군을 판단하지 않으며, 가문은 주군을 정할 때 가장 먼저 버리는 것이니까요.”
역시 기묘하다.
제국팔가 중에서 가장 궤를 벗어난 가문.
어째서 이러한 가문이 수천 년을 살아왔는지 알 수 없으나, 어쩌면 어디에나 있고, 어디서나 충성을 바쳐 왔기에 다른 가문보다 오래 버티고 있는 걸 수도 있겠다.
“다만 미가는 다릅니다. 미가는 이번 일로 관직에 나가있는 혈족 다수가 처형을 면치 못할 겁니다.”
“……투옥이나 귀양이 아니군요.”
“네. 황상께서 오래 준비하셨지요.”
“많이 이들이 처형당하겠군요.”
“네. 그 수만 해도 수백은 될 것이고, 재산도 전부 몰수. 어느 동창 놈 말로는 미가가 쌓아올린 황금은 제국의 2년 치 예산에 맞먹는다고 하던데. 진짜인지 볼 수 있겠군요.”
그리 말하면서도 제독태감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다.
수백의 미가를 죄다 처형하고, 그 재산을 압류할 사람이 짓는 웃음치고는 참으로 포근했다.
진천희는 생각에 잠긴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말도 안 되는 금을 쌓아온 것이겠군요.”
“양민의 피지요. 강호인만이 양민의 고혈을 짜내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관리들이야말로 가장 대표적인 자들이지요. 그런 자들이 공자를 논하고 맹자를 논하니 참 재미있지 않습니까?”
진천희는 뺨을 긁적였다.
“저는 그런 어려운 것은 모릅니다. 다만 더는 제 팔이 닿는 곳에서 아편이 돌아다니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팔이 닿는 곳을 자꾸만 황상께서 넓혀 주니 곤란하시겠군요.”
진천희는 진심을 담아 끄덕였다.
“처음에는 작은 마을로 시작했었는데 제 그릇에는 딱 그 정도가 좋은 것 같습니다. 이제는 눈이 다 핑글 돌더라고요.”
“겸손도 과하면 실례이지요.”
‘은근히 그만 좀 일 시키라고 표현했더니, 쳇. 일언지하로 거절하는군.’
이 악랄한 놈들은 계속 일을 시켜 먹을 모양이다.
진천희는 화제를 바꾸었다.
“그래서 이건 누가 꾸민 일입니까? 황상께서 생각하신 건지……. 아니면, 스승님께서 개입을 어느 정도 하신 것인지요.”
“이런이런. 이미 어느 정도 짐작하시면서 물으시는군요.”
매사에는 확인 작업이 필요하지 않던가.
제독태감이 차를 한 모금 더 삼키며 말했다.
“사실…… 황상께서는 이 정도로 판을 키우실 생각은 없으셨습니다요. 물론 처음 그린 그림이 작은 그림은 아니었습니다… 거기에 진 태수께서 자꾸 어디서 다쳐서 오시니까 쓸 만한 호위를 좀 보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게지요. 그런데 의국백께서 한마디 하시더군요. 하나보다는 둘이 더 낫지 않느냐…….”
“잠시만요. 그러면 뭡니까. 이번 소동은 의도치 않았다. 그런 말씀이신 건가요?”
“그렇게 질문하시면. 이렇게 답하라고 의국백께서 그러시더군요.”
제독태감이 소매에서 주머니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아니 이게 무슨 주머니야. 무슨 제갈공명의 세 가지 꾀주머니, 뭐 그런 거야?’
제독태감은 홀홀홀 능글맞은 웃음을 흘리며 서신을 꺼내서 건네주었다.
진천희는 돌돌 말린 서신을 펼쳐본다.
백린의각 내에서 쓰는 암호였다.
현원전단신공으로 어렵지 않게 암호를 해독하니 거기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뿔난 망아지 같은 제자야. 네가 또 사고를 크게 칠 줄 알았다.
진천희는 볼을 부풀렸다.
‘아니 내가 애도 아니고. 뭔 또 사고를 친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돌려보니 제독태감이 재미있다는 듯 웃고 있었다.
진천희가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하여간. 저 능구렁이 영감님이…….’
제독태감이 그제야 말했다.
“역시 스승은 스승이로군요. 의국백께서는 진 태수의 행동을 전부 꿰뚫어 보시고 계신 것 같습니다그려.”
“으윽, 그러고 보니 그래도 이해가 안 가는 게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의뢰’.
스승님도 황상도 왜 그런 이상한 방식으로 ‘의뢰’를 했는가.
“아, 별거 아닌 내기가 있었거든요. 그 덕에 처음부터 판이 더욱 어려워졌지요. 어지간한 책사들도 이번 판은 읽기 어려웠을 겁니다.”
“음?”
“결국, 이번 내기는 의국백께서 이기셨습니다요.”
“내기요?”
제독태감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의심암귀라는 고사를 아십니까?”
의심암귀(疑心暗鬼).
“네. 의심을 너무 품다 보면 어떠한 것을 실제와 다르게 보게 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까?”
“잘 알고 계시는군요. 사람 의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없던 귀신이 생길 정도이지요. 껄껄껄껄.”
그는 뭔가 생각이 났는지 다시 한참 웃었다.
“황상과 의국백. 두 분이 내기를 하셨습죠.”
스승님과 황상이? 대체 무슨 내기를…….
* * *
미가의 가주 미직.
그는 앉아서 떨리는 손으로 복숭아를 먹고 있었다.
분홍빛에 그야말로 싱그러운 속살과 육즙을 가진 복숭아였다. 환관들은 그의 옆에서 복숭아를 깎아주었다.
사각, 사각-
마치 나비 날개가 부딪치듯 속살거리는 소리가 울린다. 그러고 나면 다시 과즙이 가득한 복숭아가 그 자리에.
그러나 그것을 보고 있는 미직은 울고 있었다.
두려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눈물을 꽉꽉 삼키며 계속해서 울음을 터뜨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손이 복숭아를 집는다.
그의 양손은 복숭아 과즙으로 끈적끈적하다 못해 주름이 지고 있었다.
“우웁!”
억지로 먹는다.
그것을 먹는다고 표현함이 옳을까?
억지로 입안에, 볼 안 어딘가에 저장한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그의 입술에서는 시뻘건 피가 뚝뚝 흐르고 있었으니까.
그의 앞에서 한 사내가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왜 그러나? 제국에서도 최고로 단 복숭아인데. 옛날에 자네가 나에게 진상했던 물건이 아닌가? 더 먹게. 덕분에 우리 어마마마도 황후가 보는 앞에서 복숭아를 먹어야 했으니 말일세.”
복숭아를 먹고 나면 어머니의 얼굴에는 빨갛게 무언가가 돋아났다.
숨 쉬는 것도 힘들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황궁 사람들은 어머니께 복숭아를 먹였다.
그건 황궁 사람들뿐이 아니었다.
제국팔가.
황상의 총애를 받지 못한 자가 얼마나 비참한지 청년은 어릴 때부터 겪어 와서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있는 후궁들 중 누구도 총애하지 않는다.
명분상 얽혀 있을 뿐 총애는 없다.
기묘하게도 그렇게 잘라버리니 후궁들도 자기들끼리 핏대 세울 일도 없고 조용하다.
어차피 황상은 그들을 은애하지 않고, 그들도 황상을 사랑하지 않는다.
권력관계에 의해 조금 얽혀있을 뿐.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기묘한 관계.
그렇기에 풍하은은 요즘 하루하루가 즐겁다.
복숭아를 다 입에 쑤셔 넣자, 환관이 떨리는 손으로 다음 복숭아를 꺼내 깎는다.
사각사각-
사람의 명을 깎는 소리는 왜 이리도 달콤한가.
“그때 기억하나? 예전에 말일세. 자네가 진상한 복숭아를 어마마마가 먹어야 했는데 또 그걸 먹었다가는 탈이 나시지 않겠나. 그래서 일부러 욕심쟁이 불효자인 척 어머님의 복숭아를 다 뺏어 먹었지.”
우적-
“그랬더니 밤에 얼마나 체했는지 죽는 줄 알았다네. 그거 절대 한 사람이 먹을 양이 아니었어. 세 사람이 나눠 먹을 양도 아니었고.”
그래서 아직도 풍하은은 복숭아가 싫다.
“차라리 귤이었으면 좋겠는데 말이네. 어마마마께서는 귤을 참 좋아하셨네. 내 눈동자 같다고. 나도, 금이도, 누이도 모두 귤은 좋아했지. ‘그 아이’도 내가 몰래 건네준 귤을 곧잘 먹었네. 우리 같은 자들에게는 귀해서 문제지.”
우적, 우적.
“절강성 귤이 그리 맛있던데, 그걸로 주지 그랬나. 그랬으면 모두가 행복했을 텐데.”
다시 떨리는 손으로 미직이 복숭아를 먹는다.
우걱우걱-
복숭아를 씹어 다시 식도 안에 밀어 넣었다.
“자네도 참 욕보네. 황가에 이어져 내려오는 힘은 참으로 고약하지. 뭐어. 이해하네. 이렇게 사람을 말로 조종한다는 게 두려울 만하지. 그러니 자네들 제국팔가도 우리를 경계하며 자네들 나름의 수를 늘 써오지 않았나.”
우웁. 우우우웁!
“아, 토하지 말게나. 금이가 더러운 건 엄청 싫어해서 말일세.”
사각사각-
다시 복숭아가 얹어진다.
이번에도 손이 부들부들 떨리며 복숭아를 향해 간다.
기묘하게도 손은 이미 보라색으로 물든다.
복숭아를 집어 들고.
다시 먹고.
“꺼억, 끄어어억-”
“뭐, 피차 자비를 바랄 사이는 아니지 않나. 우리가.”
결국 얼굴이 보라색으로 물들더니 부르르 떨다 쓰러졌다.
제국팔가 중 재상을 해왔던 가문, 그 가주의 말로가 꽤나 볼만했다.
“죽었나?”
환관이 목의 맥을 짚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흠, 나약하군. 겨우 이 정도로 죽다니. 그렇지 않은가. 의국백?”
백린의선은 그림처럼 앉아있었다.
그의 뒤에는 이름 없는 책들이 산처럼 쌓여있었고, 본인은 어린아이만 한 커다란 두루마리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백린의선은 두루마리를 의념만으로 도로 굴려 넣고는 이렇게 말했다.
“글쎄요. 왕야께서 미숙하신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만.”
“미숙하다?”
“예, 기왕 한다면 자식은 먹다 목이 막혀 죽게 하고 본인은 그걸 보다 굶어 죽게 하는 쪽이 낫지 않나 싶은데. 그걸로 분이 풀리십니까?”
제갈린이 푸른 눈과 풍하은의 금색 눈이 찰나에 스친다.
“나한테 그런 조언을 할 자는 거의 없는데 말이지. 팔열지옥 악귀라도 울고 가겠어.”
“사연을 들어 보니 그게 나은 듯하여 드리는 간언입니다.”
오만하다.
황상을 앞에 두고도 제갈린은 전혀 비굴함이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은 다 하는 그 인성질에 기분이 껄쩍지근해졌다.
제아무리 궁에서 잔뼈가 굵은 풍하은도 이 제갈세가의 천재는 살짝 버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