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816
제 816화
사도련주 술제.
무림맹주 창왕.
오륜회주 백린의선이 한자리에 모여 앉았다.
무림맹주 창왕 악진이 입을 열었다.
“지독하군, 지독해. 그대는 정말로 지독하구려.”
“이 새끼가 치사하고 더러운 놈이라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 그렇다고는 해도 이렇게까지 할 줄이야.”
술제도 덩달아 욕을 내뱉었다.
그 사이에서 제갈린이 조용히 차를 삼킨다.
술제가 버럭 화냈다.
“야! 내 말은 이제 씹냐!? 이래서 젊은 척하는 늙은 놈들은!”
“……무슨 말씀이신지 이 제갈 모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갈린이 태연히 답하자 술제는 더 화가 나서 버럭버럭 화를 냈다.
“의뭉 떨지 마! 네놈이 정사대전에서 살수랑 살검루가 빠지게 만든 거잖아! 네놈……. 관무불가침을 잊은 건 아니겠지!?”
제갈린이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한다.
“이 제갈 모가 어찌 그런 일을 가능케 하겠습니까. 게다가 만약 이 제갈 모가 그리했다면, 무림맹주께 지독하다는 소리를 들을 필요는 없지요.”
창왕 악진도 결국 한마디 거들었다.
“그대가 뒤에서 보급품에 장난을 친 것을 알고 있네. 허…. 이대로라면 무림맹의 문파 중 몇몇은 파산이더군.”
그 말에 제갈린이 부채를 흔든다.
“이런, 돈 계산이 천하다고 멸시하더니……. 이래서 학문은 어떤 분야든 게을리 하면 안 되는 것인데 안타깝습니다.”
제갈린의 말에 순간 창왕 악진의 목에 핏대가 섰다.
여기서 버럭 소리라도 지른다면, 보통 무인이라면 창왕 악진이 내는 분노에 기가 질려 오금이라도 저릴 터. 그러나 눈앞의 괴물은 다르다.
괜한 즐거움 하나만 추가될 뿐.
술제가 말했다.
“가증스러운 녀석…… 그래. 이제 구음절맥도 극복했다 이것이냐?”
과거.
제갈린이 구음절맥 때문에 일찍 단명할 거라는 것은 온 강호가 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그의 구음절맥이 치료되었다.
완전히 해결한 것은 아니라고는 하나, 적어도 급사할 가능성은 이제 한없이 무(無)에 가깝지 않나.
그의 하나뿐인 제자, 진천희가 만들어낸 기적.
때문에 그의 죽음을 바라던 이들 다수가 얼마나 경악했던가?
그리고 지금.
병들어 죽어버리길 바랐던 괴물은 이렇게 강호를 활보하며 사람들을 농락하고 있다.
술제의 발언은 그런 제갈린의 행보를 두고 비꼰 것이다.
“제자가 준 수명입니다.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원래라면 진즉에 죽어 흙이 되었어야 할 놈이다.
옛날 혈린광살 때를 기억하는 자라면 모두가 그의 죽음을 바라지 않았던가.
그런 놈이 이제는 그런 적 없다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있으니 속이 탄다.
‘예전에는 일을 치고, 내가 쳤으면 어쩔 거냐, 증거 있냐 뻔뻔하기라도 했지. 이제는 처음 듣는 소리인 양 구는 꼴이 참 구렁이야, 구렁이.’
연륜이 이래서 안 좋다.
가뜩이나 상대하기 힘든 놈이 연륜까지 생기니 더욱 힘들어지지 않던가.
“에잉. 됐다. 됐어! 네놈이 그놈의 제자의 이념에 모든 걸 걸고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으니까. 휴전이다. 휴전!”
술제의 말에 창왕 악진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화를 낸들, 신세를 한탄한들 눈앞의 노괴들이 그것을 들어줄 자들이 아니지 않나.
“그렇소. 정사대전은 여기서 휴전이오.”
무림맹주 자리를 내려놓을 때가 된 것인가.
요즘 명치에 돌이 앉은 것 같아 진맥을 보니 가슴에 울화가 많이 쌓였기 때문이라고 의원이 이야기했다.
더 진행되면 심마가 될 수 있으니 조금이라도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다음 무림맹주 자리야 이미 점찍어 놨다만…….’
남궁세가의 남궁운.
허나, 이제 갓 세가의 가주 자리를 물려받았고 선대 가주가 마공에 손을 대어 단전이 폐해지는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반대하는 문파들도 제법 있을 터.
‘사람은 참 괜찮은데 말이지.’
하지만 세대 교체라는 게 뭐 어디 쉽던가.
그런 창왕 악진을 즐거이 지켜보며 제갈린이 부채를 흔들었다.
“두 분이 휴전의 중재인으로 이 제갈 모를 불러주시니 이 어찌 영광스럽지 않겠습니까? 기꺼이 공증인이 되어 드리지요.”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다시 악진의 명치에 울화가 치민다.
저놈은 분명 사람을 고치는 의선일진대, 웃는 모습이 왜 이리도 사람 건강에 안 좋단 말인가.
그렇게 세 사람은 조약에 수결을 했다.
“각자 한 장씩 잘 보관하도록 하지요.”
“육시럴! 나는 먼저 가볼 거다.”
술제는 그리 말하며 몸을 일으키더니 바로 튀어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악진은 생각했다.
‘영감, 울화 관리를 잘하시는구려.’
그랬다.
화병을 만들지 않으려면 그 원인과 멀어져야 하는 법.
술제는 한시도 제갈린과 가까이 있고 싶지 않아했다.
그것은 건강에 매우 좋은 일이었으니까.
“따로 배웅 나가지는 않겠습니다. 안녕히 가시지요.”
그걸 본인도 알고 있는지 뒤쫓아 가지도 않는다.
창왕은 그런 제갈린을 바라보다가 다시 한숨을 쉬었다.
“강호 정복이라도 하고 싶으신 거요?”
“글쎄요……. 제자가 그런 건 달리 원하지 않는 모양입니다만.”
그 오만한 태도에 창왕은 기가 막혔다.
“그대의 제자가 원한다면 그럴 수 있단 말인가. 하! 일광이 여전히 사람 살리기에 미쳐 있기를 바라야겠군.”
창왕도 더는 대화를 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심마에 안 좋다.
제갈린, 그리고 일광도 마찬가지.
저 사제는 사람을 고치는 놈들이면서 사람 복장 뒤집어버리는 일도 능히 잘하지 않던가.
그렇게 창왕이 떠나자 제갈린은 빈방에서 차를 한 모금 삼키더니 잔을 내려놓았다.
“유호, 차가 식었군.”
문이 드르륵 열리며 유호가 안으로 들어온다.
“일은 잘 끝났습니까?”
“물론일세. 이로써… 사파의 강호인들은 대략……. 사 할 정도는 죽었군그래. 정파 쪽은 이 할 정도지만, 어차피 상관없겠지. 사파의 빈자리는 보통 사파로 또 채워지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 상황이면 마교가 확장하려 할 것이고. 마교가 확장하려 한다면 여기에 혈선교 역시 마찬가지…….”
“혈선교를 끌어들이시는 게 목적이십니까?”
“혈선교가 만반의 준비를 끝낸다면 우리가 대응하기는 늦네. 그러니 이렇게 미끼를 던져주는 거지. 기회라는 미끼 말이지.”
“겉으로 본다면 지금 끼어드는 게 적기라고 느끼겠군요.”
“하지만 어디까지나 미끼일 뿐. 그건 마교도 마찬가지.”
제갈린은 혈선교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기본적으로 정사마 모두를 싫어한다.
“정파와 사파의 크기를 줄였으니 남은 두 쪽도 모두 줄일 셈이십니까.”
“그런 셈이지.”
“…….”
유호는 생각에 잠기다가 물었다.
“주인님께서는 참 사람 싫어하시는군요. 저 같은 존재야 그게 당연한 일이지만, 주인님께서는 그 궤를 달리하시는 것 같습니다.”
유호는 본질적으로 인간을 싫어한다.
그렇기에 과거 참살하여 간을 파먹지 않았던가. 유호가 가진 게 그런 종류의 분노라면, 제갈린은 달랐다.
전문 도구와 살충제와 그걸 해줄 인부들과 심지어 상위 포식자까지 들여와서 면밀하게 계산하여 조경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었다.
제갈린은 제자가 뛰어 놀 아름다운 정원을 원했다.
그랬다. 유호도 제갈린도 둘 다 사람 싫어하는 건 똑같긴 하지만 두 사람이 하는 짓은 본질적으로 달랐다.
“도련놈을 위해서입니까?”
“그거야 당연한 일 아니겠나. 모든 것은 희를 위해서지. 환자를 절반으로 줄이고 싶으면 사실 해답은 간단하네. 강호인을 절반만 줄이면 되네.”
“평화는요?”
“강호사에서 평화? 강호를 전부 덮을 전방위 세뇌술을 익히면 가능할지도 모르겠군.”
신선도 그건 불가능하다.
제갈린이 말했다.
“결국 혈사가 일어나고 정사대전이 일어나는 것도 양쪽 모두 힘의 여유가 있다 판단해서지. 힘의 여유가 있다는 뜻은 그만큼 산 놈이 많아서라는 뜻이고.”
제갈린은 찻잔을 내려놓았다.
“자, 그러면 이런저런 강호 일들도 끝났고, 혈채도 받아두었으니 이제 슬슬 가세나. 희는 이미 돌아와 있겠지?”
유호가 한쪽 눈을 감더니 입을 열었다.
“네. 남경의 일을 끝내고 돌아와 있습니다. 족쇄를 찬 상태로 잘도 돌아다니다 집에 왔군요.”
그 말에 제갈린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작게 웃는다.
이 사내가 이렇게 진심으로 웃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제자 때문이 아니라면 특히.
“자, 그러면 우리도 슬슬 돌아가세나.”
제갈린은 그리 말하고는 본인도 몸을 일으켰다.
* * *
“흥흥흥♪”
[기분이 좋아 보이는군, 백천군.] [좋아 보이네.] [동생을 만나서 그런 거려나요?]여러 가지 목소리가 항아리에서 흘러 나왔다.
기묘하게 생긴 형태의 항아리로, 항아리에는 사람의 입이 여러 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 입에는 저마다 입술 주름과 치아와 혀까지 구현되어 있었는데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 형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악몽에 시달릴 터.
신기하게도 그 하나하나의 입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가 튀어나오고 있다.
연극 무대 위.
그 무대 중심에서 백천군은 춤을 춘다.
항아리는 마치 관객처럼 서로 떠들어 대고 있었다.
“아. 물론이죠! 아주… 아주 기분 좋아요. 저의 혜아가 살아 있었다면……. 저렇게 헌앙하게 자랄 수 있었을 테니까. 아주 기쁘답니다. 하지만 당신들의 말 중 하나는 틀렸어요.”
[뭐가 틀렸다는 건가?] [네 동생이 맞는걸.] [틀린 건 없어.]“혜아는 물론 소중하고 아름답지만, 그래도 또 다른 혜아잖아요. 저의 혜아가 아니니까. 생각보다 그 차이~ 아주 크답니다♪”
[너는 여전하군.] [이야~ 백천군. 역시 백천군이야~] [이리 네게 축복을 내려주었는데도 마다하는 것이냐?]“그렇다고 해도 그쪽 혜아를 건드릴 생각은 하지 말아요. 모든 혜아가 모두 소중하니까……. 당신들이라고 해도. 갈기갈기 찢어 죽여 버리고 싶어진다고요?”
[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겠지.] [후후후. 이런 드센 남자도 좋더라.] [네가 우리를 찢어 죽일 수 있을 정도가 된다면, 그것 역시 우리의 큰 기쁨이도다!]목소리.
그것들은 단순한 이들이 아니었다.
십천군의 통솔자인 혈선교의 교주만이 소통이 가능하다고 알려진 자들.
과거.
카후라이 칸의 몸을 빌어 잠시간 강신했던 존재.
혈선.
그것들의 목소리가 항아리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십천군들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다.
그만큼 백천군이 특별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백천군은 환하게 웃었다.
“세상 따위 모두 불타 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지만……. 그래요. 살다 보니 역시 생각은 바뀌는군요. 아하하하. 이럴 줄 알았다면, 좀 더 오래 살아남아 볼 것을! 안타깝답니다~”
[그래서 너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너는 변칙적인 수에 강하잖아~ 그래서 반선의 씨앗을 포섭할 방법은 생각났어?] [충분히 우리 쪽으로 끌어올 수 있을 거야. 그 녀석은 무엇이든 될 수 있으니까.]“글쎄요~ 아직은 조금 더 생각해 봐야겠네요. 그래요. 이쪽 사마현의 말투를 빌리자면, 가가께서…… 신첩을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게 먼저겠죠?”
순식간에 다른 사람이 덧씌워진 듯 태도가 변한다.
아니, 어찌 보면 본질적으로 같은 사람인가.
진흙처럼 뒤섞인 자아가 단번에 정답을 이끌어내고. 그 순간만큼은 사마현의 목소리와 말투를 정확하게 베껴 온다.
춤을 추던 백천군은 손을 뻗어 가면을 벗었다.
달칵-
가면 아래로 진짜 얼굴이 드러났다.
그 아래로 드러난 백천군의 얼굴은.
조금 더 나이를 먹고 나른해진 사마현 같았다.
“그렇죠. 저도 이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의 혜아를 위해 남은 일을 해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