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824
제 824화
여기 온 지도 약 삼 일째인가.
얼추 환자 절반은 치료했다.
물론 여기서 치료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경증 환자들. 설비가 필요한 중증 환자들은 의각 분타로 보냈다.
“오늘 치 진료 끝!”
“이 기세로 삼사 일만 더 고생하면 여기 환자도 끝이네~”
사마현은 그리 말하며 오늘 치 뒷정리를 했다.
진천희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응. 인구가 천여 명이어도 작은 의방 하나 없는 일이 많구나.”
진천희 자신도 강호를 주유하는 일이 적지 않다 보니 대충은 알고 있었다.
허나, 스쳐 지나가듯 환자를 봐왔던 것과 이렇게 각 잡고 주변을 돌아보는 건 확실히 다른 느낌을 준다.
“앞으로 얼마나 더 할 생각이야. 형~?”
“뭐, 구호 활동 하고 있는 게 나뿐만이 아니고, 의각에서도 따로 차출해서 돌고 있으니까 대충 다음 마을까지 하면 끝일 거야.”
“형의 일상을 옆에서 보니까 신기하다~”
“뭘. 그나저나 너 이렇게 오랫동안 하오문을 떠나도 되는 거야?”
진천희의 질문에 사마현이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소식은 계속 듣고 있으니 걱정 마~ 나도 황궁에서 부는 파도가 잠잠해지면 돌아가야 해.”
그리 말하며 아쉬운 기색을 내비쳤다.
‘하긴, 금분세수라도 할 게 아니면 돌아가야지. 만약 돌아오지 않는다면 사마현의 그 자리는 또 다른 사람이 차지할 테니까.’
강호가 넓은 것 같아도 빈 곳이 없다고 했다.
그동안 진천희가 생각하는 강호인의 이미지는 목적 없이 부평초처럼 떠도는 낭인 무사였다.
가끔 돈을 받고 의뢰를 해주고, 그 외에는 발 닿는 대로 돌아다니면서 협을 실천하는 자들.
하지만 막상 강호에서 살아보니 그런 사람은 극히 일부분.
대부분은 검수라고 하더라도 가족이 있고, 집이 있고, 사문이 있다.
문파가 있으면 그 안에서 권력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하고, 아무리 화목한 세가라도 문제는 늘 존재한다.
사마현은 금혈방과 하오문의 권력을 쥐고 있다.
지금은 일이 생겨 잠시 일선에서 물러나 숨는 척을 하고 있지만, 풍랑이 잦아들면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터.
그렇지 않으면 사마현의 자리를 다른 이가 차지하게 될 거고, 그자는 화근을 없애려 사마현을 공격하겠지.
권력의 속성이다.
인간의 속성이기도 하고.
강호의 속성일 수도 있겠다.
어느 쪽이든 그것은 사마현도 진천희도 아주 잘 아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나저나 형.”
“왜?”
“이상하지 않아? 여기 촌장은 형이 와 있는데 코빼기도 안 보인단 말이지.”
진천희가 태수로서 온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의료 봉사차 온 것이다 보니 어딜 가든 촌장이 몸소 맞이하러 오곤 했다.
그런데 이곳은 그러지 않았다.
“뭐어……. 그럴 수도 있지. 왜? 무슨 이유라도 있어? 병환이라고 지나가며 듣긴 했는데.”
촌장께서는 병환 중이라 사람을 맞이할 수 없다고 들었다.
사실 의원이 왔는데 병환 중이라고 만나는 것을 거절하는 건 뭔가 이상하지 않나?
보통이면 당연히 치료를 받기 위해 버선발로 달려오기 마련.
본인이 못 움직이면 가족이라도 대신 나오는 법이다.
“현이 너 이 동네 고급술을 얻고 싶다고 했는데, 뭐 알아본 거 있어?”
그 말에 사마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아보긴 했어. 촌장이 아파서 앓아누운 것은 일단 사실인 모양입니다요~”
“어? 그래? 근데 왜 치료받으러 안 오는 거야? 거동이 불편하신 거면 전갈이라도 보내면 우리 쪽에서 갈 수도 있잖아. 그런 것도 없고.”
그 말에 사마현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말입니다요. 사정이 있더라고. 정가장이 무당파 속가제자 집안인 건 몰랐지?”
“그랬어?”
“응. 그렇다더라. 그 아들도 속가제자였고, 손자도 속가제자로 무당파에서 수행을 했었나 보더라고.”
그 말에 진천희가 호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를 이어야 해서 정식 입문은 안 했나 보네. 도사가 되면 혼인을 못 하니까.”
“그런데 장주 한 명 남기고 전부 죽었다고 하더라고. 자식하고 손주 둘 다.”
하루아침에 줄초상을 겪은 셈이다.
“어쩌다가……?”
“강호의 일에 휘말렸다고는 하는데…… 정사대전 쪽 일과는 별개의 일이란 것만 알고 있어. 한번 알아볼까?”
진천희는 생각에 잠겼다가 이렇게 말했다.
“아니야. 괜찮아.”
“어떻게 하려고?”
“한번 직접 만나 보지, 뭐.”
만나 본다.
그리고 대화해 본다.
그럼에도 환자가 자신의 치료를 포기한다면. 거기서부터는 진천희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환자가 거부한다면 치료하지 않을 모양이네.”
진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설득은 할 거야. 하지만 그럼에도 본인 결심이 확고하다면…… 응. 이것만큼은 어쩔 수 없으니까. 의원이 할 수 있는 건 병이 나을 수 있도록 돕는 것까지야.”
병이란 결국 환자와 의원이 함께 해 나가는 싸움이다.
의원이 도와줄 수는 있어도, 환자 본인이 살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면 의미 없는 일.
문을 열고자 하려면 적어도 두드리는 것은 자신이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명의가 치료를 해 준다고 하더라도 강제 입원을 시킬 게 아니라면야 결국, 약은 본인 손으로 챙겨 먹어야 하지 않던가.
식이를 조절하는 것도 본인이 해야 하는 거고, 술 담배를 끊는 것도 결국 본인이 해야 하는 일. 아무리 현대의학이 대단해진다고 한들 그것만은 변하지 않는다.
“형은 의외로 그런 부분에선 냉정하지. 그러면. 바로 가 볼 거야?”
“그러자.”
둘은 촌장의 집. 정가장(貞家莊)으로 향했다.
* * *
정가장은 마을의 외곽에 위치해 있었다. 이유는 별게 아니다.
정가장에는 커다란 양조장이 딸려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 주변에는 복숭아나무가 많았고, 이 나무들 중 대다수가 정가장에 속해 있다고 했다.
장주를 만나러 간다는 말에 주민들이 정가장주에 대한 이야기를 몇 가지 해 주기도 했다.
세평은 아주 훌륭한 사람인 모양이다.
흉년이 들면 사람들에게 곡식을 베풀어 주었으며, 가끔씩 외부에서 의원을 불러다가 사람들을 치료해 주기도 했다고 사람들이 입 모아 말했다.
어쨌든 이 정가장의 주인은 지역의 명사이며, 훌륭한 어른이고, 덕망이 있는 지역 유지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자손이 모두 죽어 흙토에 묻혔다는 것.
그 충격에 두문불출하며 시름에 잠겨 있다고.
딱히 정보 수집을 하려던 것은 아니었지만, 정가장으로 향하며 듣게 된 이야기가 이렇다.
이미 마을 주민들 전부가 아는 내용이기에 쉽게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정보 수집할 필요도 없었겠는데?”
“그러게.”
“그래서. 바로 문 두드릴 거야?”
“그래야지.”
진천희와 사마현.
둘은 정가장의 대문 앞에 섰다.
조개처럼 닫혀 있는 문. 호위무사 같은 건 없다.
하기사 일가족은 이제 고인이 되었으니 정가장의 장주인 노인 한 명과 정가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뿐일 테니까.
쾅쾅쾅!
“계십니까!”
꽤 유서 깊은 가옥이다.
낡지만 손때가 많이 탄 경첩을 보고 진천희는 이 집에 몇 대나 살았을지 상상했다.
아마 조상님의 조상님의 조상님이 술을 빚으며 이 자리를 지켜 왔겠지.
그 대가 이제 끊겼다.
남은 건 정가장 혼자.
얼마나 기다렸을까 누군가가 신을 끌며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뉘시오.”
문이 열리자 곧바로 진천희의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 아니, 의원님 아니십니까요?”
진천희가 용모를 바꾸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의원으로만 알고 있는 상황.
물론 본래 용모라고 하더라도 강호인도 아닌 이런 작은 마을 양민이 바로 알아볼 확률은 적었다.
진천희는 그리 말하는 하인을 곧바로 알아보았다.
“진 노야가 이쪽에서 일하고 계셨군요.”
일전에 진료받은 자였다.
진천희는 곧바로 이름을 기억해 내어 말했다.
“진일 어르신, 고뿔은 이제 괜찮으신가요?”
“허허허. 그 많은 환자 중에 저 같은 이를 기억해 주시다니…….”
진일은 진천희가 곧바로 자신을 알아보자 기분이 좋아졌는지 웃음을 터뜨렸다.
“그나저나 어인 일로 오셨습니까?”
사마현이 말했다.
“여기 의원님께서는 병환 중이라고 하시는 정가장주를 직접 진찰하러 오셨습니다.”
그 말에 진 노야가 곤란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저 그게…… 장주님께서는 외인을 받지 말라 하셨습니다만…….”
“그래도 얼굴 정도는 뵈어야죠. 의원님께서 걱정이 되어 직접 먼길을 오셨지 않습니까요~?”
사마현이 유들유들한 목소리로 밀어붙이자 진 노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건……. 알겠습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몇 번 거절할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역시 웃는 낯에 침을 못 뱉는다는 건가.
[현아. 너 이런 거 잘한다?] [보니까 진 노야, 저 사람도 주인 어르신이 걱정되는 모양인데 이렇게 예를 읊으면 못 이기는 척 들어주기 마련이거든.]아무리 그래도 눈치만으로 상대의 복심을 때려 맞춘 후, 바로 이렇게 밀어붙이는 건 또 다른 일 아닌가.
[확실히 현이가 장사를 잘하는 이유가 있구나.] [형이야말로 수천 명의 살수들을 상대할 때는 그렇게 귀계를 짜는 양반이 왜 시골 양민 상대로는 어리바리한지 걱정이야.] [크헤헤헤!]그런 형을 보고 사마현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강자에게는 강하나, 약자에게는 약하다.
그건 형의 강점이자 약점이기도 했으니까.
그렇게 안내에 따라 장주가 기거하는 전각에 도착했다.
그 앞에서 진 노인이 공손히 말했다.
“장주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은 받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누군데 모셔 왔나그래?”
카랑카랑한 목소리.
노인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날카롭지만 어딘가 힘이 많이 빠진 목소리였다.
“백린의각 의원께서 직접 오셨다고 합니다.”
“백린의각… 백린의각이라? 후우, 어쩔 수 없지. 백린의각에는 우리 마을도 신세를 지고 있으니.”
[오오, 역시 양민들에게 백린의각의 이름은 절대적!] [……야, 좀 부끄럽다.]사마현은 그런 진천희를 존경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도 그랬다.
외진 곳일수록 의원은 귀할 수밖에 없다.
그런 곳에 의원이 오면 보통 손부터 비비면서 자기부터 봐 달라고 억지로 손목부터 보여 주는 게 이런 마을 촌장 아닌가.
굳이 치료가 아니더라도 자잘한 약재 거래 하나만 뜯어내도 큰돈이 된다.
보물고블린도 이런 보물고블린이 없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 모든 이득을 알고 있으면서도, 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는 일이 없는 양반.
이런 대쪽 같은 성격의 양반이 백린의각 의원이라고 하니 한숨을 쉬며 들여보낼 정도였으니까.
“그래. 모시게나.”
장주의 명령이 떨어지자 진천희는 진 노야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진한 백단향과 함께 단 냄새가 시큼하게 났다. 노인의 입 냄새였다.
‘이건……?’
특히나 진천희는 현원전단신공으로 인해 오감이 예민했기에 이 거리에서도 정확하게 알 수 있었던 것.
눈앞의 노인은 침상에서 상체만 일어난 채로 앉아 있었다.
하반신은 이불을 덮은 채였다.
“어서 오시구려. 아직 병환 중이라 일어나지 못하는 걸 양해해 주시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진즉 알려 주셨으면 제가 이렇게 와서 직접 치료를 하고 진료를 봤을 텐데요.”
“허허허. 의원님 말씀이 참으로 고맙소. 하지만 이미 다른 의원들이 자신들의 능력으로는 치료 불가능하다고 판별한 지 오래외다. 그리고…… 사실 더 살고 싶은 마음도 없소.”
노인의 목소리에는 사그라진 불씨의 향이 났다.
의원에게는 익숙한 향이었다.
모든 것을 포기한 자에게서 나는 특유의 분위기.
‘친족 중 살아남은 이가 아무도 없기에 그런 것이겠지…….’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으니 사는 것을 포기하는 일도 물론 존재한다.
이 정도면 충분히 살았다고.
더는 병과 싸우고 싶지도 않고, 굳이 그럴 필요성도 없다고.
하지만 가족을 잃은 노인과는 비교할 수도 없다.
그런 경우에는 ‘충분히 살았다’, ‘연명 치료를 포기한다’라는 말도 없이 어느 날 용태가 나빠지셔서 병원에 오지도 못하고 돌아가시는 일이 왕왕 있었다.
눈앞의 노인은 나이에 비해 등이 곧고 어깨가 넓은 것을 보아 타고나기를 건체로 타고나신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식과 손주를 모두 잃었다.
아내의 이야기는 없는 것으로 보아서는 이미 아내도 오래전에 잃었던 것 같다.
그 속을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을까.
그런 노인이 진천희를 바라보았다.
“촌장으로서 얼굴도 비치지 않았으니 속이 상할 만도 한데, 부득불 신경 써 주다니, 참 그릇이 큰 분이시구려.”
“아닙니다. 의원으로서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지요.”
진천희는 급히 손을 내젓는다.
그런 진천희를 바라보는 노인의 눈이 조금 더 온화해졌다.
“……그보다 다른 의원들에게 먼저 진맥을 보셨다 하셨으니, 혹시 병명을 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