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827
제 827화
이제는 어디서 들었냐고 묻기도 지친다. 아마, 또 자신이 한 말이겠지.
사마현이 손깍지를 끼고서는 기지개를 켠다.
“괜찮다면~ 내가 이 할배를 설득하는 건 어때? 설득해서 치료받고자 한다면? 그건 형의 신념에 어긋나지는 않지?”
“그거야 그렇지. 가족이 설득하든, 친우가 설득하든, 낯선 타인이 설득하든 결국 본인 소관이니까. 그런데 무슨 일로 그러는 거야? 현이 너야말로 이득이 없는 일은 안 하지 않니?”
“가가~ 거참, 사람 너무 냉혈한으로 보십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음?”
사마현은 솔직하게 말했다.
“이 마을 최고급 복숭아술을 알아봤는데 이 정가장주께서 빚은 술이 최고급이래요~ 과거 선황께 진상할 정도의 명주라 하더라고.”
진천희 눈이 커졌다.
“오오, 진짜? 그 정도면 북경에서 장사해도 될 텐데 왜 여기 계시는 거야?”
“워낙 성격이 꼬장꼬장하신 데다 매년 정해진 숫자만 만들어서 예약한 가문들에게만 조용히 팔고 끝내나 보더라. 그러니까 숨겨진 명주인 거지. 혜아가 복숭아를 얼마나 잘 먹는데 거기에 술? 선황께 진상할 만큼의 최고급 술? 아, 이건 못 참지~”
사마혜에게 최고급만 주고 싶은 오빠의 마음이다.
하지만. 석연치는 않았다.
그것은 작은 이유일 뿐.
표면적인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진천희는 사마현의 얼굴을 본다.
장난스레 웃는 얼굴 속에 무슨 생각이 숨어 있는지 알기 어렵다.
‘혹시 내 마음을 헤아려서 그렇게까지 하는 건 아닐 거고…… 아아. 모르겠다.’
어쨌든 진짜 대단한 술인 모양이다.
정해진 사람만 먹을 수 있는 숨겨진 명주라…….
“아프고 나서 더는 이제 예약을 안 받나 봐~ 남는 술 없나 찾아봤는데 술은 먹으면 끝이잖아. 거기다 고관대작 애들이 가세가 기울지 않는 한 밖에 팔지도 않아.”
“살 방법이 거의 없다시피 한 거네?”
“응~ 우리 할배께서 혜아를 위해 한 병 만들어 주셔야겠어. 아니, 두 병. 아니, 세 병.”
오빠의 사랑이 아주 마리아나 해구와도 같다.
그때였다.
진천희는 귀가 잉잉거리는 듯한 파장을 느꼈다.
‘전음?’
전음이란 내공으로 소리를 제어하는 것.
음공의 기초쯤 되시겠다.
특정한 사람에게만 소리를 듣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강호인들이 서로 비밀로 대화를 나눌 때 쓰고는 한다.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음공의 초고수가 되면 다른 이들이 전음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물론 집중해야 눈치챌 수 있기도 하고, 그 내용은 음공의 고수라 해도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전음이 왔다 갔다 하는 진동을 느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유용한 경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옆에 있는 건 바로 사마현.
사마현에게 누군가 전음을 하고 있는 중이다.
“흐으으음.”
그리고 사마현이 입은 다문 채로 숨을 길게 내쉬는 게 보였다.
필시. 하오문의 누군가가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리라.
“왜? 무슨 일 있어?”
“형. 강호의 인연을 믿어?”
“……천기(天氣) 뭐 그런 거 말하는 거야?”
사마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인연. 원인이 있으니 결과가 따라오는, 그냥 기묘한 운명 말이지. 천축에서는 카르마라고 부르는 거. 하늘이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기적을 만드는 거지.”
“너는 믿어?”
그 말에 사마현이 희미하게 미소 짓는다.
“신기하게 말이야. 강호에서 정보를 다루면 다룰수록 그런 인연을 믿게 되더라고. 단순히 은원을 뛰어넘는 그런 운명 같은 게 작용할 때가 있어. 그 인연 때문에 죽을 사람이 살아 돌아오고, 결코 다시 만날 일 없는 사람이 마주치기도 하지.”
기묘한 일이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모든 정보를 쥐고 있는 금혈방의 소문주가 하고 있는 소리이니 더더욱.
“네가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니 뭔가 일이 있는 모양이네.”
“있지. 그것도 조금 재미있는 일이랄까?”
“뭔데?”
“셋째 형이 오고 있다는데?”
“셋째…… 천우가?”
갑자기 천우가 여기로 오고 있다?
‘정사대전이 끝났다지만. 무슨 일로?’
진천희의 눈이 살짝 커진다. 사마현이 휘파람을 불었다.
“그리고. 갓난아기를 품에 안고 있대. 흐음~ 우리 셋째 형이 어디서 애라도 낳은 걸까?”
“뭐어어어? 지금?! 왜–?!!”
진천희는 자신도 모르게 그만 큰 소리가 나왔다.
인연(因緣), 인연이었다.
* * *
“꽤 한적한 마을이라 들었던 거 같은데. 사람이 많네?”
거대한 체구에 외안의 사내.
무당파의 무당권왕 천우가 마을에 도착했다.
거대한 체구와는 정반대로 그의 앞섶에는 어린아이가 포대기로 안겨 있었다.
한 살도 채 안 되어 보이는 핏덩이.
추울까 싶어서 곰 가죽으로 꽁꽁 싸매 놨는데 그래서 그런지 더 안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우… 아우우우…….”
“그래그래.”
건드리면 뭉개질까 싶을 정도로 작은 아기였다.
그럼에도 아기는 천우를 무서워하는 법이 전혀 없었고, 천우도 아이를 안는 모양새가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천우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나밖에 없는 눈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결코 보지 못하는 것들을 알려 주었다.
“관군에 의원들…? 어, 저거 백린의각…….”
그때 멀리서 목소리가 들렸다.
“천우야아아아아—!”
음공 섞인 외침.
고개를 돌려보니 진천희와 사마현이 다가오고 있었다.
천우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어어? 형? 막내? 대체 두 사람 무슨 일이에요?”
“나도 놀랐어. 우리야 그냥 의료 봉사 다니는 중이지. 너야말로 여기는 무슨 일이야?”
진천희의 말에 사마현도 곧바로 끼어들었다.
“천우 형, 그 아기 어머니는 누구야? 큰형한테 말도 없이 언제 환속하고 결혼한 거야. 아, 혹시 사고 쳐서…….”
“하하하. 형. 막내가 요즘 잘 지내나 봐요. 헛소리도 하고.”
그리 말하며 거대한 몸으로 사마현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래. 현아. 그렇게 막말하면 못써.”
자연스럽게 사마현을 타박하는 모양새가 되자 사마현이 입을 비쭉였다.
“천우 형. 받아치는 솜씨가 많이 늘었네~”
“…음?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 아이는 다른 사람 아이야. 이 마을에 가족이 있다고 해서 찾아온 것뿐이고.”
“호오~ 진짜야?”
“당연하지. 애초에 도인으로서의 길에 들어선 이상, 연애라든가 그런 건 전혀 관심 없어. 그나저나 정사대전 때문에 걱정했는데 잘 지내는 것 같아 다행이야. 형, 일단 자리라도 옮길까요?”
그 말에 진천희가 화들짝 놀라 답했다.
“아, 아아. 맞다. 맞다. 그래. 내 정신 좀 봐. 따라와. 천우야.”
* * *
진천희가 거주하고 있는 집에 세 사람이 도착했다.
“낡았지만 머물 만해.”
본래는 빈집인 폐가였지만, 원활한 진료를 위해 임시로 수리하고 개축한 곳이다.
사마현이 먼저 말했다.
“차는 내가 준비할게~”
그리 말하며 먼저 달려간다.
그동안 진천희는 다과를 꺼내서 천우 앞에 내려놓았다.
금귤정과.
이 계절에 먹기 딱 좋은 놈으로 진천희가 직접 만들었다.
“추울 때는 새콤한 게 당기기 마련이거든. 차랑 마시기 딱 좋아.”
노란색이 식욕을 자극한다.
이윽고 사마현이 차를 들고 왔다.
신기하게도 차가 투명한 색이 아니라 뿌연 색이었다.
천우와 진천희가 놀라서 바라보자 사마현이 말했다.
“형이 예전에 차를 우유에 탔잖아? 마침 마을분들이 염소젖을 줘서 해 봤어. 이 지방 염소젖은 고소하고 진해서 차에 넣기 좋더라고.”
“와…. 너한테 대접한 게 한 번뿐이었는데 진짜 빨리 배우는구나.”
“후후후, 저를 누구라 생각하십니까요~ 이제 와서 겨우 한 번 마주친 천우 형이랑 다르다고요.”
사마현은 모르고 있지만 진천희는 천우랑 자주 서신을 주고받았다.
그 이야기를 할까 말까 했는데 천우가 눈짓을 했다.
자기는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말라는 뜻이었다.
[에휴, 우리 천우 이렇게 손해만 보고 살고…….] [저는 괜찮아요. 형. 그보다 현이가 기뻐 보이니까 칭찬 많이 해 주세요.]그 말에 진천희는 왠지 천우가 애틋해졌다.
사마현이 만든 밀크티, 아니 우유차는 고소하고 농후했다.
비린 맛이 날 법도 하건만, 그걸 찻잎으로 가려 버리니 자꾸자꾸 들어갔다.
거기다가 꿀을 넣을 수 있도록 옆에 작은 종지까지 준비를 했는데 벌집을 조금 잘라 올려놓은 것이 배려도 섬세했다.
‘이놈은 뭘 해도 될 놈이구나.’
고작 한 번 대접한 것을 어깨너머로 보고 흡수, 진화시키다니.
강호는 이놈을 품기에 너무 좁은 게 아닌가 싶을 지경이다.
세 사람은 그렇게 앉아서 우유차와 금귤정과를 먹었다.
특히 천우는 오랜만에 먹는 단 음식에 저도 모르게 손이 많이 갔다.
“거참, 우리 형 먹을 것도 남겨 놓으시지요~ 너무하네.”
“괜찮아. 괜찮아. 천우는 애 돌보느라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겠니.”
그리 말하며 금귤정과를 조금 더 꺼내 놓았다.
천우의 곁에서 아기는 빵긋빵긋 웃으며 주변을 기었다.
“오, 보니까 조금 있으면 일어서기도 하겠다.”
“네. 기는 데도 속도가 장난 아니에요. 정신 차려 보면 없어져 있고…….”
“아기랑 같이 여행하는 거 힘들지 않았어?”
이 강호에서 여행이란 목숨을 걸어야 하는 법이다.
본인이 무공을 익힌 고수라면 모를까, 도로도 정비되어 있지가 않고, 가로등도 없고, 호랑이며 산적이 사는 동네 아닌가.
제아무리 돈으로 어떻게든 표사들을 사서 마차로 이동한다고 해도 비포장도로를 마차가 편안히 달려가 줄 리가 없다.
아무리 폭신폭신하게 바닥을 깔아도 엉덩이는 아프다.
특히나 아기는 예민하니 더 각별하게 보호해야 하는데 쉽지 않았을 터였다.
“움직이는 것 자체는 경공이 있으니 괜찮아요. 그보다는 젖먹이라 젖동냥을 하는 게 힘들었죠.”
“마을과 마을 사이를 달려야겠구나.”
“네. 내공으로 아이의 체온을 보호하며 안고 다녀야 했죠. 다행히 제 경지가 낮은 건 아니라서 어찌저찌 되더라고요.”
저래 보여도. 아니, 딱 봐도 화경에 오른 절대고수다.
“무당권왕이 애를 품고 다닌다는 소문이 한동안 돌겠네~”
사마현은 그리 말하며 천우를 놀렸다.
천우는 곤란한 듯 웃었다.
“차라리 잘된 걸지도 몰라. 사람들이 덜 무서워한다면 말이야. 무당권왕이라는 별호를 가지고도 아직 무서워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거구의 몸과 그 특유의 날카로운 외모 덕분에 별호와 상관없이 다들 천우를 무서워한다.
그때 아기가 칭얼거리더니 울기 시작했다.
“애고애고, 벌써 시간이 되었구나.”
천우는 재빠르게 아이의 기저귀를 벗기고는 미리 준비한 수통으로 수건을 적셔 물을 짠 후, 엉덩이를 깨끗하게 닦아 주었다. 그러고는 내공으로 말린 후, 새것으로 갈아입혀 주었다.
거대한 몸이 이렇게 기민하고 섬세하게 움직일 줄은 몰라서 진천희도 사마현도 입만 벌리고 바라보았다.
“천우야. 너 엄청 잘 돌보는구나.”
보통이라면 뭔가 어설픈 티라도 나는 게 정상인데, 천우는 그런 게 없었다.
“하다 보면 느는 거죠. 그보다 곤란해요. 저 말고 다른 도인분들도 있는데 굳이 이렇게 일을 맡게 되었으니.”
“아니…. 형이 적격인 거 같아. 놀리는 게 아니라 진담으로.”